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334화 (335/374)

334. 방관자(4)

“모두 산 채로 잡아 누클리어 벙커에 집어넣도록.”

누클리어 벙커는 각성자를 방사능으로 실험하는 지옥이었다. 살아남는다면 다크니스 최강 병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실패한다면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안고 괴물로 살아가게 된다.

“암천회는 절대로 무릎 꿇지 않는다!”

“정의의 이름으로 불의를 단죄하겠다!”

“불의는 결코 정의를 이길 수 없다!”

소름 돋는 외침이었다.

저딴 소릴 대놓고 할 수 있단 것만으로도 암천회는 대단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이 어째서 세계적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어지간한 감성으론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걸 증명하듯 감명받은 암천회의 대원들은 전의를 불태웠다.

“암천회여, 영원하라!”

“우린 굴복하지…… 커억!”

어쩌랴?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20명의 대원은 전도유망한 엘리트가 분명하지만, 고작 스무 살 전후의 생도에 불과했다. 하물며 다크니스의 넘버를 가진 자들이 작정하고 함정을 팠다. 정의의 이름을 부르짖어 봤자 씨알도 안 먹혔다. 되레 행동이 커서 빈틈만 드러났다.

퍼억!

쿠다다당!

까악!

퍼퍼퍼펑!

미츠키와 하야토가 축을 선점하여 항전하나, 양적으로도 밀리는 데다 질적으로도 격차가 있었다. 더욱이 상대는 실전으로 다져진 정예로 구성이 되었다.

“지검류 극의 지룡승천…… 크악!”

“나는 천력의 쇼타이니…… 꾸웩!”

“비겁하게 초식을 쓰기 전에 공…… 커억!”

가문의 진신 절예를 펼치고 싶었으나, 상대는 비기를 사용할 틈을 주지 않았다. 3명이 조를 이루어 유기적으로 맞물리니 필연적인 결과를 창출했다.

천검류 오형 천공패.

전신류 극강격 광야포.

명검류 이형 명천뢰.

그나마 죽음의 사선을 넘은 동지들. 하야토, 미츠키, 카즈마의 선전으로 버티고만 있었다. 오의를 펼쳐 막아 냈다 싶은 사이에도 2명이 쓰러졌다. 속절없이 당하지 않았다고 해서 기뻐할 처지가 아니었다.

한시가 급하다.

이 사태를 해결할 돌파구가 절실했다. 우리를 구원해 줄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무진이었다.

‘얘는 대체 뭘……?’

뒤에서 쭐레쭐레 같이 따라왔지만, 대형에서 빠져 있었다. 혼자 도망쳤나 했더니 창고의 벽에 기댄 채 느긋하게 구경했다. 그러면 화가 나야 하지만, 그 주변이 주검투성이였다.

퍽, 푸앗!

뻐억, 뿌각!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지만, 가까이 오면 저승행으로 직행했다. 손바닥으로 파리를 잡듯 휘젓고, 발로 대충 찼을 뿐이거늘. 막기는커녕 막아도 머리통이 박살 나고, 심장이 터진 채 즉사했다.

일장일살, 일족일살의 연속.

무진은 집중된 시선에 관여치 말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신경 쓰지 말고. 난 관계자 외라니까. 이 일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 그렇게 노려보면 너무 억울하다. 난 그냥 끌려왔다니까. 뭔가 일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안 왔지.”

그러면서 쉴 새 없이 오해라고 떠들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개짓거린지 이해가 되지 않을 지경이다. 차라리 철저히 외면하면 욕이라도 할 텐데, 암천회를 압도하는 적들을 너무나 손쉽게 처리하고 있었다. 사방에 널린 주검을 보면 가장 열심히 싸운 줄 알겠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싸우냐?

아니다.

굉장히 수동적이었다.

오면 죽이고, 안 오면 안 죽인다.

경계가 너무나 명확해서 다가서지를 못하게 했다.

휴전국이었다, 이거냐?

그런데도 가만히 두고 싶지는 않게 한다. 저 표정을 봐라, 나와는 상관없이 제삼자의 관점에서 액션 영화를 보듯 평온하다. 함정에 빠져 절망에 몸부림치기를 바라는 다크니스의 노력을 무시하는 행태였다.

휙휙, 퍽퍽!

크악!

무진은 날벌레를 잡으려는 인간의 귀찮음이 다분한 몸짓을 굉장히 잘 소화했다.

‘저게 뭐야?’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안 도와주는 것도 아니잖아!’

미츠키와 하야토가 이런데, 상대하는 적들의 심정은 오죽할까? 처음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주검이 쌓이니 가장 눈에 띄었다.

꿈틀!

여유로웠던 다닐로프의 각진 인상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한국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일본에서도 난리를 친 광대 정도로 알고 있었다. 생도치고는 실력이 나쁘진 않지만, 인상 깊게 여기진 않았다.

저게 대체 뭐란 말인가?

붉은 전갈이 똥파리 같은 죽음을 당하고 있었다. 뭘 해 보기라도 했다면 모를까, 일방적인 파리채 사냥이었다. 귀찮은 것들이 왜 자꾸 성가시게 하냐는 듯 팔짱을 낀 채 짝다리를 짚고 있어서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여론의 부정적인 시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놈은 태생적으로 반감을 사게 하는 역천의 상을 지녔다.

이대로 놔둬선 안 되었다. 애송이들을 가지고 놀려고 했는데, 대원들만 죽어 나가고 있었다. 본보기를 위해서라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테이탄, 포레드, 놈의 사지를 잘라서 이 앞으로 데리고 와.”

“그리하죠.”

둘은 다닐로프의 직속이 아닌 넘버 요원으로 레스4, 레스5였다. 레스 마스터께서 친히 능력을 보이라고 한 이상 실패는 용납할 수 없었다.

쐐액!

명을 받은 포레드가 공간에서 사라진다. 워프를 사용한 듯 스위치 하여 위치를 바꾸더니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킨다.

슈앙!

마나 샷건, 마나를 에너지 탄으로 바꾸어서 권총처럼 발사하는 기술이다. 여기에 [초음속] 속성을 마나에 전이하여 샷건의 속도와 파괴력을 월등히 배가시켰다.

꽈아아앙!

추우우우, 부르르르!

허공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예상치 못한 타점 폭발에도 포레드는 당황하지 않고 마나 샷건을 재차 발사하는 동시에 일발을 산탄화하여 포위 사격을 완성했다.

파파파파팟!

마나 블렛이 폭죽처럼 터지면서 시야를 가린다. 이 틈에 전력을 중첩 극대화하여 마나 캐논을 발출했다. 마나 샷건, 마나 산탄, 마나 캐논의 연계가 물 흐르듯이 이어지는 데다, 촌음도 걸리지 않았다.

스륵!

테이탄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포레드가 공격하는 타이밍을 노려 상대의 지척까지 접근했다. 그 즉시 [디펜스 무력화] 속성과 마나 무력화 스킬을 펼쳤다.

그는 상대의 제공권을 약화시켜 허점을 노리는 데 특화했다. 방어한 직후 방심하는 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설령 통하지 않더라도, 충격은 받았을 터 재차 공격할 타이밍을 완성한다.

푸앙, 휘이잉!

포레드는 마나 캐논을 쏜 후, 허리에 찬 권총을 뽑아 발사했다. 쏘아 낸 총알이 터지면서 독을 머금은 연기가 공간을 장악한다.

포이즌 스모크.

실로 섬뜩한 살계(殺繫)였다.

그들은 상대가 어리다고 하여 경시하지 않았다. 언제나 최선의 수를 사용하여 최고의 결과를 가져왔다. 다른 이들과 달리 둘이 함께 다니는 연유였다.

“다리부터 잘라 주마.”

요리가 됐다 싶자, 테이탄이 군용 대검을 꺼내 휘둘렀다.

푸욱!

잘 익은 수육을 찌르듯 두부처럼 매끄럽게 들어간다. 다만, 휘두름과 찌르기가 반대로였다.

팔을 자르기 위해서 내리친 포레드는 잘못된단 걸 인지할 사이도 없이 영혼이 꿰뚫린 채 육체의 통제력을 잃었다.

까앙!

초음속을 넘어선 타임머신처럼 칼이 부러진 소리가 뒤늦게 들렸다.

무진은 휘두른 대검을 부러뜨리고, 칼날을 튕겨서 포레드의 이마를 뚫어 버린 것이다.

“피해 봐.”

무진은 테이탄에게 마력탄을 되돌려 주었다. 다만, 되돌려 줄 때는 한국인의 정(情)을 듬뿍 담았다.

20미터 직경의 마력탄.

속도는 2배.

그런데 피하란다.

슈아아앙!

푸스스스!

가루는커녕 흔적도 남기지 않고, 회수까지 완벽했다.

두 놈을 처리한 무진은 또다시 팔짱을 낀 채 등을 기대고 섰다. 마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듯 태연자약했다. 그야말로 완벽한 방관자의 태도였다.

멍!

이 자리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그런다고 시선의 집중을 피하긴 어려웠다. 이 지랄을 떨었는데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아!

미츠키는 놀란 가슴을 겨우 진정시켰다.

하야토의 말을 들었을 때도 반신반의한 감정이 있었다. 강하기는 해도 천검가의 가주와 비견될 정도는 아닌 줄 알았다.

방금 죽인 자들, 분명 암천회를 압박한 자들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모두가 나설 때도 뒤에서 여유롭게 지켜보기만 했던 자들이니 실력은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자들을 상대하려면 최소한 다른 움직임을 보일 줄 알았다.

한데 저게 뭔가?

암천회가 고전하다 못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자들과 다르지 않은 허무한 최후였다. 전력을 쓰기는커녕, 혼자만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다. 더욱이 적을 죽일 때 사용한 내력은 상기할수록 소름이 돋았다. 천검가의 가주와 비견된다고? 저건 그런 수준을 넘어섰다.

‘처음부터 우리는 상대가 아니었잖아!’

한국에서 괴물을 키워 놓고 있었다. 최강의 전쟁 억제기라고 해야 하나. 저런 괴물인 줄 알았으면 재밌다느니, 초대하겠다느니 그딴 망언은 하지 않았다.

꿀꺽!

암천회의 대원들은 더할 나위 없이 놀라고 있었다. 자신들이 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후환이 두려울 지경이었다.

특히 시노스케와 미토시는 신소리를 한 당시를 삭제하고 싶어졌다. 대체 누구보고 관여하라니, 말라니 강요를 했단 말인가. 저승 문턱에서 넘을까, 말까 장난친 격이었다.

“다들 멍 때릴 시간도 있고, 한가하나 보구나. 시간은 금이라고. 나 신경 쓰지 말고 어서 하던 일들 마저 하지.”

무진은 비현실을 현실로 되돌렸다.

목숨 걸고 싸워도 부족하거늘, 정신머리가 다른 데 있으면 쓰나. 자신 같았으면 칼이라도 한 번 더 휘둘렀다며 암천회를 책망했다.

그나마 적아를 불문하고 공황 상태였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기습에 당했을 것이다.

부릅!

정신을 놓고 있기는 다닐로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너무 황당한 광경을 목도했기에 다른 때와 달리 명료한 전달을 하지 못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외형과 달리 스마트한 그로서도 납득하기 힘든 현실이었다.

다닐로프는 놈을 다시 보게 되었다.

레스4, 5를 이토록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자는 흔치 않았다. 그제야 맞춰지지 않았던 퍼즐이 완성되며 결과를 도출했다.

한국에서의 연속적인 실패가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하물며 일본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걸 우연의 반복으로 볼 수 있을까?

이 정도면 운명이고, 계획적이었다.

“네놈이구나!”

“아니라니까, 몇 번을 말해. 나 절대 아냐. 왜 계속 관계자 취급을 하는 거야? 속 터지네.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믿는 시늉이라도 하라고.”

“이런데도 건방을 떨 수 있는지 보겠다.”

“나하곤 상관없다고 몇 번을 말해.”

“정말인지 이제 알 수 있겠지, 참고로 나는 농담 따윈 하지 않는다.”

다닐로프가 시선을 주자 붉은 전갈이 여생도를 사로잡고 목에 칼을 겨누었다. 정신을 차린 붉은 전갈은 암천회를 포위하며 진형을 흩어 놓았었다.

까악!

“아키코~~~!”

대원들이 안타깝게 외치지만, 닿지 않았다. 붉은 전갈은 기계처럼 다닐로프의 명령을 따랐다.

“계집의 목숨을 살리고 싶으면 마력회로를 끊고 얌전히 투항해라.”

“내가 왜?”

“후후후, 계집의 팔을 잘라.”

다닐로프의 명을 받은 붉은 전갈이 아키코의 오른팔을 주저하지 않고 잘라 버렸다.

스걱!

턱, 파득파득!

까아아아아!

바닥에 떨어진 팔이 물가에 내놓은 생선처럼 파닥거린 직후, 아키코의 비명이 창고 안을 메아리쳤다. 그녀로선 당해 보지 못했던 고통이었고,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었다. 전국시대에 칼싸움을 즐겼던 민족답지 않은 엄살이기도 했다.

“다음은 목이다.”

“그러네.”

내 팔도 아니고, 무진은 시큰둥했다.

다닐로프의 눈빛이 흔들렸다.

감정의 변화를 감추려고 한다면 알아챘을 텐데, 놈은 태연자약했다. 진짜로 자신과는 상관이 없는 방관자처럼. 눈빛의 심연을 들여다볼수록 무심함을 엿볼 수 있었다. 이 자리의 모두가 죽는다고 해도 거리끼지 않는 무심무도(無心無道)의 부동심이었다.

‘이놈, 생도가 맞기는 한 건가?’

동료의 팔이 잘리자 공황 상태에 빠진 애송이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런 일 따위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듯 완벽한 철혈무심이었다.

다닐로프는 무진의 진의를 체감했다.

“전부 죽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을 놈이구나.”

“무서운 소릴 하네. 사람이 죽는데 어떻게 눈 하나 깜빡을 안 해. 나는 무척이나 마음이 아프다고. 제발 죽이지 않았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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