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 방관자(3)
낮에는 관광, 밤에는 습격.
무진은 미츠키의 안내를 받으며 도쿄를 샅샅이 훑었다. 맛집을 탐방하고, 걸어오는 도전을 손쉽게 짓밟았다.
황태자파, 신왕파, 십대검가가 무진을 올려 쳐서 급을 맞췄음에도 구도는 변하지 않았다. 나이가 많건 적건, 무진에게 일방적으로 처맞고 SNS의 밈으로 낙인이 찍혔다.
-일본의 차기 검신이라더니, 저딴 놈이 무슨 검신이야, 그냥 농사나 지어라.
-환영검은 무슨, 하는 족족 다 걸리냐? 누구한테 환영을 건 거야? 자기최면인가?
-황태자와 신왕의 자존심 싸움에 원래는 폭군의 등이 터져야 하는데, 어째 반대로 된 거 같냐.
-자기 나이 반 토막밖에 안 되는 폭군한테 죄다 털리는구나. 이게 일본의 진실이야. 여태 잘 숨겼지.
-우리의 폭군에게 덤빈 대가야. 아마 그 후유증은 평생을 가도 잊히지 않을걸. 크크크크!
국내에선 무진에 대한 욕이 태반이지만, 일본에서 난장을 까니 우리 무진이가 되어 있었다. 이걸 좋다고 하기엔 애매해도, 폭탄은 남의 나라에서 터져야 했다.
따지고 보면 국위선양에 가까웠다. 모양새는 이상해도, 정당한 대결이었다. 생도의 신분으로 일본의 이름 있는 각성자와 검객을 이겼다.
일각에선 생도로서 겸손해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승승장구하는 폭군을 옹호하는 여론이 대세였다. 물론, 이러다 패배하거나 굴욕을 당하면 응원이 곧 비난으로 바뀌겠지만. 오만한 만큼 그 후폭풍도 폭군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모두 간과하는 사실이 있는데, 폭군은 이제 스무 살이라고. 너희들이 스무 살 때 뭘 했는지를 봐라. 폭군만큼 명성을 떨쳐 본 적이 있냐고.
-상대하는 일본의 각성자를 보라고. 생도의 수준으론 어림도 없다는 거 알지?
-폭군이 원래 이렇게나 강했었나? 교류전의 우승은 운빨 아니었어?
-운빨로 이기는 것도 한두 번이지. 대체 얼마나 증명해야 인정할 거냐!
-나 방금 무서운 미래를 봤어. 이러다 우리나라 위인전에 폭군이 실리는 거 아닐까 하는.
-……그딴 무서운 얘기는 하는 거 아니라고. 진짜가 되면 어쩌려고!
-우리나라를 빛낸 100인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크크크크!
-우리 후손들이 이순신 장군님 다음으로 폭군을 존경하면 어떡하지?
-그 꼴 안 보려면 빨리 뒈지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빛이 강하면 어둠도 짙듯, 일본의 여론은 나날이 악화 일로였다. 어떻게 생도 하나 이기지를 못해서 망신을 당하냐고 연일 황실과 십대검가를 지탄했다. 대일본 제국의 암흑기란 말까지 돌았다. 그럴수록 미츠키에 대한 여론도 굉장히 좋지 않았다.
-이게 다 미츠키 공주 때문이라고. 왜 그딴 자식을 불러들여서 이 사달을 일으켜.
-맞아, 얌전히 있다가 황실에서 정해 준 혼처로 시집이나 갈 것이지. 이래서 계집이 설치면 안 된다니까.
-공주고 자시고, 떠받들어 주니까 자기가 뭐라도 되는 양 지랄을 떠는 거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그놈이랑 희희낙락 도쿄를 돌아다니고 있다고. 내 눈에 띄기만 해라, 절대 가만 안 둬!
-면전에 없다고 다들 무사시가 됐나? 막상 앞에 서면 아무것도 못 할 거면서.
-진짜로 할 수 있으면 인증 사진부터 찍어서 올려. 블라인드에서 불평불만이나 토로하지 말고.
황실로 공주에 대한 성토와 항의가 빗발쳤다. 더는 좌시할 수 없게 된 황실로서는 회의를 열어서 공주의 외출을 금지했다. 황족으로서 품위 유지를 해야 한다는 명목이었다.
무진은 그걸 두고 보지 않았다.
곧바로 SNS에 올렸다.
[일본은 개인의 자유를 맘대로 침해하는 독재국가]
일본에서의 일로 무진의 SNS 구독자는 이제 1,000만 명에 육박했다. 단 며칠 만에 10배로 늘어난 것이다. 그 파급력은 국내로 한정하지 않고, 순식간에 세계로 퍼져 나갔다. 더욱이 한류 콘텐츠가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이 적지 않아 일본으로선 곤욕스러운 상황이 되었다.
-공주라고 맘대로 외출도 못 한다고?
-공주가 대체 뭘 잘못한 거지? 문란한 행위를 한 것도 아니고, 친구의 관광 가이드를 한 게 잘못은 아니잖아.
-공주로 태어났으면 그에 걸맞은 품위를 지켜야 하지 않을까. 자기 절제 없는 쾌락은 없다고 봐.
-품위와 체통은 일본부터 지켜야지. 생도를 상대로 어른이 나서는 게 말이 돼.
-그런데도 계속 지는 것도 웃기던데.
-그 한국인의 이명이 범상치 않아. 한국에선 이미 폭군으로 굉장히 유명해!
-설마 독재자의 환생인가?
-그렇지는 않아. 여기 폭군의 서사가 있어.
-미친놈인데, 그래도 대단한 건 사실이야.
세계의 여론은 일본의 편이 아니었다. 무진에 대한 악의적인 여론을 형성하려고 했지만, 잘 먹히지도 않았다.
공주가 성에서 감금당하면서 일본이 개인의 자유를 멋대로 침해한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한국의 편이라고 볼 수도 없다. 자기들과는 연관이 없으니 최대한 중립적이었다.
독재국가라는 세계의 시선이 황실로선 부담되었다.
결국, 이틀이 지나기도 전에 공주의 감금은 풀렸다. 되레 자유롭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했다.
***
어둠이 짙게 깔린 시각.
20명이 분산해서 약속된 장소에 은밀히 모였다. 그들은 결행하기 전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푸슥!
나뭇잎이 부서지자, 시선을 돌렸다. 잔뜩 긴장하고 있어서 감각이 곤두서 있었다. 언제든 반격할 준비를 마쳤다.
“나야.”
무진과 미츠키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다리고 있던 20명은 암천회 요원으로 회주인 미츠키에게 고개를 숙여 예의를 갖추었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과 일탈로 실망했었지만, 그 모든 일이 황실과 검가를 위한 헌신이었음을 깨닫자 진심으로 따르게 되었다.
반면 무진을 바라보는 속내는 복잡했다.
공주의 일탈을 주도하였고, 황실과 검가를 대내외적으로 망신 주었다. 아무리 외부로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라지만, 도를 넘어선 행위였다.
무엇보다 그가 한국인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부의 위험이 사실로 드러난 시점부터 치부나 다름이 없어졌다.
모든 일이 그렇듯, 본국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일은 숨겨야 했다. 그것이 설령 옳은 일일지라도.
그런 암천회의 속내를 알고 있는 무진은 콕 집어서 말해 주었다.
“사람을 보고도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이라니, 예의의 일본이 아니었나? 혹시, 너희들 문제를 내가 해결해서 불만인 거냐? 아, 내가 잘못했구나. 아주 큰 잘못을 했어. 석고대죄라도 해야겠다.”
“심경이 복잡해서 그런 거니, 제발 빈정거리지 좀 마.”
“문제를 해결해 줘도 문제네. 이거 뭐, 엎드려서 절이라도 받을 수 있으려나 몰라.”
“사람이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하면 당황하기 마련이고. 그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잖아.”
미츠키와 하야토가 나서서 암천회를 중재하며, 무진을 다독였다. 대원들은 가문 내의 일로 심경이 날카로웠다. 믿고 의지했던 가신의 배신에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미츠키와 하야토의 속 타는 마음과 달리 암천회는 여전히 무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있어 무진은 타인이자, 한국인일 따름이다.
“이 일은 우리 검가의 문제다. 외인인 그대는 이제 나서지 않아도 된다.”
“도와준 건 따로 계산해 줄 테니 이쯤 해라.”
뇌검가의 시노스케와 수검가의 미토시가 대원들을 선동해 뜻을 내비쳤다. 실상, 무진이 개입할수록 자신들의 치부는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최대한 무진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암천회의 역량으로 해결해야 했다.
씨익!
무진이 미소를 짓자 미츠키와 하야토는 마른침을 삼켰다. 진체를 알고 있는 그들과 달리 대원들은 들어서 아는 것이 전부였다. 실체를 보지 않았기에 무진 앞에서 깝죽거릴 수 있었다. 만약 그 모습을 봤다면 절대 저런 식으로 대립하지 못한다.
‘적당히 좀 하지들!’
‘왜 자꾸 성질을 건드려!’
암천회의 입장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나, 노골적으로 드러내선 안 되었다. 괴물의 성질을 돋우는 짓이었다. 오늘이 암천회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다.
어쩌면 한적한 장소로 불러들인 것부터가 완전범죄를 꿈꾸었을지도.
“미안하다. 내가 주제넘었어. 우리나라와 일본의 우호가 걱정돼서 마음이 앞섰던 것 같다. 너희들 뜻이 정 그렇다면 나도 더는 개입하지 않으마.”
……엥?
무진의 진심 어린 사과에 암천회는 다소 감정을 풀었지만, 미츠키와 하야토는 의심부터 했다. 저 인간이 저럴 리가 없다는 확실한 고증이었다.
‘찜찜한데.’
‘이 인간, 또 왜 이러지?’
사과했으니, 가타부타 부언하기도 힘들어졌다. 더욱이 미츠키와 하야토는 암천회의 회주와 부회주였다. 대원들이 보는 자리에서 무진의 의도를 의심해 봤자, 미덥지 않다고 광고하는 꼴이었다.
또한 이전의 습격이 무진의 주도로 이루어진 단독 작전에 가까웠다면, 이번 작전은 암천회가 주도했다. 주도권을 되찾아오고, 자존심을 회복하려면 이번 작전을 암천회의 이름으로 성공시킬 필요가 있었다.
“나는 빠져 있을 테니, 수고들 해라.”
더 나아가 무진이 이 자리에서 빠지겠다고 하자, 대원들은 묘한 느낌을 받았다. 여기까지 와서 굳이 빠질 필요가 있는지 의아했다.
“얌전히 따른다면 동행은 허락하지.”
“그럴게.”
시노스케가 빠지려는 무진을 붙들었다. 혼자만 빠져서 불순한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떠보려는 심산으로 동행을 허락했더니, 순순히 따랐다.
‘수긍해서 다행이긴 한데.’
‘이거 어째 말리는 기분이잖아.’
미츠키와 하야토는 무진의 줏대 없는 언행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너희들 하라는 대로 얌전히 따라서 의구심을 더더욱 증폭했다.
그런데 말을 잘 듣는다고 나무랄 수도 없는 현실이었다. 대하면 대할수록 골치 아프게 하는 인간이다.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했다.
의구심은 들지만, 미츠키는 당장 해야 할 일부터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암중 세력을 처리한 후 배신자들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예, 회주님!”
목적지는 후쿠시마현의 오노역에서 3km 떨어진 지역에 있었다. 이 일대는 과거 원전 폭발 이후 방사능 제염 작업을 거쳐 재건했으나, 던전이 오픈되면서 재차 제한구역으로 지정되었다.
당시에 마물은 방사능에 피폭되어 태반이 죽었지만, 일부는 돌연변이가 되어 막대한 피해를 초래했었다. 십대검가에서 나서고 나서야 겨우 제압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제한구역이 되긴 했어도, 제염 작업이 이뤄져 공식적인 방사능 수치는 낮았다.
밤중에 이동하여 낡은 폐건물이 있는 지대로 들어섰다. 마을이 죽어서 숨 막힐 듯 고요했다.
“결계를 뚫어.”
결계 속성을 가진 대원이 해체하며 안으로 들어섰다. 외부에서 봤을 때처럼 죽은 마을이 아닌, 전혀 다른 공간이 나왔다. 낡은 건물은 사라지고, 신축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규모가 작지 않은데도 알려지지 않았단 사실이 의심을 확증한다.
“들어간다.”
하야토가 앞장서고 뒤를 대원들이 따랐다. 미츠키는 후미에서 일대를 살폈다.
‘하나하나가 거슬려.’
물론, 제일 후미는 무진이 서 있었다. 일절 관여하지 않으려는지 뒷짐을 진 채 산책하듯 걸었다.
사사삭!
기척을 죽이며 조심스럽게 창고형 건물의 내부로 들어섰다. 하야토의 말을 들어 보면 보통 놈들이 아니었다. 피해를 줄이려면 기습의 우위를 선점할 필요가 있었다.
딸깍!
22명 전원이 창고에 들어서자, 스위치가 올라갔다. 시야를 흐리는 새하얀 백광이 창고 안을 비추며 훤히 드러났다.
주변이 포위되었다.
짝짝짝!
전체적으로 각이 진 거구의 사내가 손뼉을 쳤었다. 전쟁 영화에서 혼자 무쌍을 찍고 다녀도 이상하지 않을 인상과 포스를 풍겼다.
레스 3 알렉산더 다닐로프.
그가 미츠키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모두를 감쪽같이 속였더군. 실로 대단한 연기였어. 아주 훌륭하다.”
“우리가 오는 걸 어떻게 알았지?”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우리가 바보도 아니고 이딴 식의 기습이 계속 통할 것 같나?”
“우리도 바보는 아냐, 이미 황실에서도 알고 있거든.”
“훗, 재밌는 소릴 하는군. 하지만 이제부터는 아주 재미없어질 거다.”
죽이는 것으론 성이 차지 않는다. 이 겁 없이 설치는 공주로 인해 일본에 들인 수십 년의 적공(積功)이 물거품이 될 뻔했다. 세상 물정 모르고 분별없이 나서면 어찌 되는지를 어른으로서 알려 줄 의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