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 방관자(2)
오사무의 [데스소울]이 하야토의 영혼을 감지했다. 의지가 약해지는 순간, 죽음의 인형으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너의 주인으로 명한다. 굴복하라.”
“……헛소리!!”
평소 같으면 저항하겠으나, 내력의 흐름이 이상했다. 정신마저 혼미해지면서 굴복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누나에 대한 복수와 무진을 끌어들인 자책감이 아니었다면 진작 굴복했을 것이다.
“애송이치곤 끈질기군.”
“그래 봤자, 얼마 못 버틸 겁니다. 쥐새끼에 대한 처리도 끝났을 테니까요.”
밖의 상황은 보지 않아도 명약관화였다. 애송이가 날뛰어 봤자, 무의미한 저항에 불과했다. 한편으로 이 애송이가 가문의 힘을 빌렸다면 그간의 계획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을 것이다. 자기 분수를 몰라서 다행이었다.
‘……미안하다!!’
하야토는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분노하긴 했어도, 교류전 이후로 검공은 진일보했다. 그간 봐 왔던 히데키의 실력을 알고 있었고. 이만하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으리란 자만심이 일을 그르치고 말았다.
혼자 죽었어야 했는데.
“……내 실수야!”
오사무와 히데키는 애송이의 자책에 이죽거렸다. 지금 와서 후회해 봤자 무슨 의미가 있다고. 아카데미였다면 반성하고 끝났겠지만, 현실은 두 번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저벅, 저벅!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절망하는 하야토와 달리 오사무와 히데키는 평온했다. 결계를 뚫고 들어온 방도는 몰라도, 아지트의 전력은 천검가와 맞상대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끝이군.”
“애송이치곤 잘 버텼다.”
하야토는 최후를 실감했다. 복수는커녕 이런 허망한 최후라니, 억울하고 분하다.
절망의 끝자락.
꽈아아앙!
쇄액!
문이 박살 나며 파편이 쇄도했다.
평온을 되찾았던 오사무와 히데키는 자신들을 향해 쏘아지는 총알 같은 파편에 화들짝 놀랐다.
예상하지 못한 돌발 사태였다.
퍼어엉!
의도치 않았지만, 오사무의 대응은 기민했다. 서둘러 전의를 가다듬은 후 문 앞에 선 상대를 보다 의아한 기색을 비쳤다. 아지트의 부하들은 전부 꿰고 있었다.
“네놈은?”
“이거, 웃기는 상황이었네.”
히죽 미소를 지은 무진은 손을 뻗었다. 옭아매진 채 무릎을 꿇고 있던 하야토가 허공섭물에 사로잡혀 끌려왔다.
“……아니!!”
단순히 허공섭물을 썼다고 해서 놀라지 않았다. 사용한 속성이 일순간에 끊어져 버렸다. 영혼이 제압되기 전이라, 잘못 건드리면 되레 위험할 수 있었다. 그걸 아무렇지 않게 끊어 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더욱이 저놈은 여기에 있어선 안 되었다. 시선을 끌고 있어야 할 광대가 무대에서 사라진 것이다. 마치 지금까지의 광대 연기가 시선을 가리기 위한 용도처럼 다가왔다. 그러자 섬뜩한 진실과 마주할 것 같은 위화감이 번진다.
“네놈이구나!”
“잘 가.”
“조센징 따위가 주제도 모르고 기고만장하는구나. 그래 봤자 네놈도 천검가의 애송이와 다르지…….”
“인사하면 받아야지.”
내지르는 주먹은 보이지 않았다. 빛이 번쩍했다는 느낌도 없다. 그저 말이 끝나자 히데키의 상체가 사라져 버렸다. 마치 뜨거운 용암에 스티로폼이 닿은 듯한 광경이었다.
척!
언제?
목이 잡힌 오사무는 기겁했다. 문과 방 안의 거리가 짧다곤 해도, 어떻게 움직였는지 눈에 보이지 않았다. 헉! 하는 순간 육신이 사로잡혔다.
무진은 오사무의 두 눈을 마주했다.
“눈이 참 좋네.”
한 번의 기회밖에 없다는 걸 인지한 오사무가 [데스소울]을 극한까지 개방했다. 미증유의 힘을 가진 놈이다. 대업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을 넘어 천적이라 불려야 했다. 어떻게든 조직에 알려야 하기에 영혼을 걸었다. 물리를 벗어난 소울이라면 승산이 있었다.
“대단한 실력이긴 하지만, 네놈도 애송이에 지나지 않아!”
“반사.”
“그딴 장난이 통할 성…… 크아아아아악!”
“어디 얼마나 알고 있나 볼까.”
알아서 자발적으로 영혼을 열어 주다니, 불감청 고소원이었다. 무진은 주는 선물을 마다하지 않고 감사히 받아 주었다.
역시 운빨의 사나이, 뭘 해도 된다.
무진계로 끌어들인 후, 영혼을 하나부터 열까지 탈탈 털었다. 금제의 발동에 일시적으로 제한을 걸었다.
‘보기와 달리 대단한 놈인데.’
전투력이 뛰어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인간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이용할 줄 알았다. 사람을 가지고 노는 데 천부적인 놈이었다. 더욱이 속성도 영혼 장악에 특화했다. 하야토가 일방적으로 당한 것도 이해가 되었다.
부르르르!
부들부들!
맨몸으로 삭풍을 맞은 듯 오사무는 입에 흰 거품까지 물며 심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눈은 이미 돌아가서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털썩!
정보를 다 얻은 영혼은 모래성처럼 부스러졌다. 육체는 영혼을 찾지 못한 채 주저앉았다. 천검가를 비롯해서 검가를 뒤흔든 배후치곤 허무한 최후였다.
“……어떻게?”
“버러지들한테도 고전하고, 일본의 신성답지 않네.”
무진의 막말에도 하야토는 화를 내지 않았다. 조금만 늦었으면 놈들의 꼭두각시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 무진은 자신뿐만 아니라, 평생의 숙원을 해결해 준 은인이었다.
‘방금은 대체?’
너무 순식간에 끝나기도 했고, 몸 상태를 회복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고 돌아가는 사태를 살폈으나, 다 끝나고 난 후였다. 자신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시피 한 자들이 이처럼 맥없이 당하다니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실력을 숨겼구나!”
“혹시, 일본은 본실력을 공개하는 사회냐? 그런 것치고는 보는 것 이상으로 폐쇄적이던데.”
남이사 실력을 숨기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무진의 당당함에 하야토는 압도당했다. 일견 무례한 대응처럼 들리나, 실로 타당한 대응이었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일을 망쳤어.”
“네가 하는 일이 그렇지.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으니까, 괜찮아.”
큭!
하야토는 헛바람을 삼키려다 혀를 깨물 뻔했다. 보통은 아니라고 하거나, 심려하지 말라고 위로라도 하거늘. 뼈를 때리는 팩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사람 속을 뒤집어 놓다 못해 자괴감을 느끼게 했다. 심신이 미약한 사람이라면 자살 충동을 느끼고도 남는다.
“내가 많이 무능했다. 그러니 똑똑하고 강한 분께서 여기서 어떻게 나갈지 알려 줬으면 고맙겠다.”
“나가긴 어딜 나가.”
하야토가 만류하기도 전에 무진은 방문 밖으로 나갔다. 대책 없는 행동에 서둘러 뒤를 따르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말문이 막혔다.
“……대체 무슨 짓을?”
“잡것들이 설치기에 조용히 시켰지.”
아지트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할 수밖에 없었다. 살아 있다고 하기에는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사방팔방에 성치 않은 주검들이 널려 있다. 마치 융단폭격을 맞고 전사한 듯 처참하다. 혹여, 도망치지 못할까 노심초사했던 걱정이 무색해졌다.
‘이럴 수가 있나?’
배신자와 암중인을 죽인 건 기습의 우위를 점했다곤 해도, 이번은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었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학살에 가까웠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이 지랄을 떨었는데도 소리나 진동조차 들리지 않았다.
꿀꺽!
하야토는 본능적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같은 생도라고 하기에는 까마득한 벽을 느꼈다. 마치 아버지를 마주할 때와 비슷했다. 그렇다면 무진이 아버지에 비견된다는 뜻이 되는데.
일개 생도가 검가의 가주와 쌍벽을 이룬다? 애초에 논제 자체가 되지 않아야 하나, 눈앞에 펼쳐진 학살에 장담하지 못했다.
‘교류전 때보다 더 강해진 건가?’
그래야 그나마 이치에 합당할 텐데, 의례적인 태도를 보아하니 실력을 숨긴 것 같았다. 그렇다면 교류전 때는 가지고 놀았다는 표현도 부족하다.
“저 방으로 가자.”
“거긴 왜?”
“이놈들이 모아 놓은 자료를 찾아야지. 그냥 가기엔 걸리는 점이 많잖아. 가문에 아까 같은 놈이 또 있지 말란 법도 없고.”
“……그렇구나!”
히데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부에서 손을 맞춘 자들이 있어야 했다. 천검십향이 전멸했음에도 히데키를 의심하지 못했던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를 옹호했던 자들이 의심스러웠다.
이리저리 방을 뒤질 필욘 없다. 필요한 방만 찾으면 된다. 오사무의 정보를 토대로 시간을 낭비하진 않았다.
가문 내 배신자를 확인한 하야토의 동공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나, 정보가 너무나 명확했다.
“……어떻게?”
“새삼스럽게 왜 그래. 명문가의 패륜은 자연스러운 거야.”
“네 일이라면 그리 말할 수 있어?”
“내 일이 아니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지.”
“……?”
이놈은 인정이란 게 없나? 어떻게 이리 매정하게 말을 한단 말인가. 그런데도 무진을 탓하진 못했다. 배신의 아픔이 크지만, 구명지은에 이어 중요한 정보를 주었다. 은혜를 갚아도 모자란 판국에 화를 낼 처지가 아니었다.
“돈이 최고지.”
“……얼마를 달라는 거야?”
“1조면 괜찮네.”
“엔은 아니겠지?”
“습득이 빠르구나.”
“안 빠를 수가 있냐!”
눈 뻔히 뜨고 코를 베인 타쿠토 왕자라는 훌륭한 선례가 있었다. 그걸 보고도 또 당한다면 정신에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었다. 그렇더라도 1조를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무진이 제정신인지 의구심이 든다.
‘가치를 논하면 또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가문을 떠나 본국에 커다란 환란을 가져올 위험을 제거해 주었다. 실제로 십대검가 간에 균형이 무너진다면 그 이후의 파문은 짐작하기도 힘들다.
“마지막으로 이쪽만 보면 되겠군.”
“거긴 또 뭐가 있는데?”
“나미코가 있지.”
“……뭐?”
드륵!
철문을 열자 4열로 100개의 캡슐이 배치되어 있었다. 방안은 전체적으로 서늘했다. 캡슐 안에는 사람이 동면 상태로 누워 있었다.
과거 천검가와 사검가의 분란을 일으켰던 불멸검대의 완성형이었다. 불멸검대는 활강시와 비슷한 살아 있는 언데드였다. 철저히 오사무의 명령에만 반응하도록 영혼이 금제되어 있었다.
캡슐을 살피던 하야토는 경악했다.
아는 얼굴이다.
“……누나!!”
뜻하지 않은 재회였다.
당시 천검십향의 전멸에도 누나의 시체를 찾진 못했지만, 사투의 현장에 남은 흔적을 외면할 순 없었다. 가문의 직계가 아니고선 펼치지 못할 천검류의 비기였었다.
크윽!
누나의 죽음을 막지 못한 하야토는 죄책감이 시달려야 했었다. 그런데 오늘 죽은 줄 알았던 누나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오열했다.
무진은 나미코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건 얼마나 줄 거야?”
“……이 와중에 할 소리야!”
“언데드 상태를 풀어 줄 수도 있어.”
“……얼마면 되는데?”
“1조.”
“……원이겠지?”
“빈틈이 없구나.”
상봉으로 감정이 흔들릴 때를 노렸거늘, 하야토의 계산이 철저했다. 분노에 이성을 잃었던 좀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이래서 경험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