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331화 (332/374)

331. 방관자(1)

“여어, 오랜만이네.”

“그대 때문에 공주께서 얼마나 난처하신지 아는가?”

“호오, 자기 거라고 벌써부터 챙기는 거야?”

“……내가 언제?”

무진은 생도답지 않게 무게 잡는 하야토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약점이 뚜렷하기에 곧바로 정곡을 찔러 주었다.

“아니라고? 그렇다면 누구에게나 기회는 열려 있다는 건데, 훌륭한 마인드야.”

“무례한!! 공주님께 불경한 마음을 품는다면 용서치 않겠다!”

“됐고, 암천회의 주인으로서 명한다. 입 닥치고 얌전히 따라와.”

“암천회의 주인은 공주님이시다!”

“그러니까 더더욱 나를 잘 모셔야지. 이러면 공주님의 체면이 어찌 되냐?”

“큭, 알았다.”

하야토는 말문이 막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암천회의 주인은 미츠키 사마였다. 그녀가 무진을 임시 회주로 명한 이상, 명령을 따라야 했다.

‘네놈 때문이거늘!!’

명예를 잃은 공주님은 계승권에서도 멀어져서 더는 가문의 지원도 받지 못한다.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이 바로 무진이었다.

그러나 탓하진 못했다. 명예가 중요하긴 해도, 목숨보다 중요할 순 없다.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문의 힘만으로 공주님을 지키기란 불가능했다. 황실에서도 개입된 정황이 나타나서 더더욱 그렇다.

“이 밤중에 어딜 가는 거지?”

“가 보면 알아.”

무진은 미사키 항 부근에서 외진 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 일대는 던전이 개방되어서 황폐화된 지역이었다. 어느 나라를 가도 던전의 폐해는 곳곳에 남아 있었다.

미사키 항을 제외하면 노지로 남았다.

“내 뒤를 바짝 따라와.”

“혹시, 던전을 찾는 거면 실수하는 거다. 정부나 가문의 허락 없이 던전 공략은 불법이다.”

“누가 모범생 아니랄까 봐.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거다.”

“알았으니까, 투명 마법 걸자. 인기척도 지우고.”

무진은 하야토를 달래며 마법을 걸고, 인적 드문 어두운 지대를 향해 걸어갔다.

어?

얼마 가지 않아 하야토는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감각을 좀 더 세밀하게 컨트롤해 일대를 살폈다. 그러자 던전이 아닌데도 왜곡이 있었다. 안과 밖의 흐름이 다르다. 그 말은 결계가 쳐져 있다는 뜻이 되었다.

‘이런 외진 곳에 결계가 있다니.’

도쿄를 터전으로 둔 천검가의 후계자로서 간과할 수 없는 문제였다. 자기 안마당에 의문의 결계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위협이었다. 더욱이 결계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감지하지 못했다. 초일류 검객의 감각마저 속였다면 일반적인 결계로 볼 수 없다.

“뭘 하려는 거지?”

“결계를 파악해야 나중에 수월하거든.”

무진은 결계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어느 지점이 축이 되는지를 파악했다. 제법 까다로운 데다가 속성이 포함되었지만,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탑에 갔다 온 이후로 결계술의 완성도가 한층 업그레이드되었다.

확인, 분석, 재조합.

촌음에 끝마치고 결계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처음과 달리 말수가 사라진 하야토는 무진의 능력에 내심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능력을 감추고 있을 줄은 몰랐다. 처음 본 범상치 않은 결계를 이처럼 능수능란하게 다루기란 말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확실히 보통이 아니구나.’

실력도 실력이지만, 다방면으로 빼어났다. 누군가 이 일대에 결계를 쳤다면 외부인의 난입을 바라지 않는다는 건데. 안에서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결계를 완벽하게 분석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끌어들이려는 수작이 아니라면.’

하야토로선 전문 분야가 아니기에 무진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그로서도 이제는 결계 안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다. 미츠키 사마의 명령이 아닌 자발적인 선택이 되었다.

‘의리는 있군.’

무진이 하야토를 첫 빠따로 선택한 이유였다.

끈 떨어진 신세에 기댈 데도 없어진 공주와 끝까지 함께하는 것만 봐도 하야토는 의리가 있었다.

물론, 의리라는 관점으로만 선택하진 않았다. 일본에 오기 전부터 사전에 제인 누나와 조사를 마쳤다. 혼자 들어왔지만, 실사는 끝내 놓았다. 그런 상태에서 암천회의 불순분자를 걸러 내기 위해서 공주에게 극약 처방을 내렸다. 어중간하게 선을 걸쳐 놓고, 벌레 한두 마리만 남기면 되었다.

‘골라내기도 편하고.’

평소와 다른 반응을 보이는지가 중요했다. 알아낸 정보와 교차 검증을 통해서 확보해 놓았다.

무진과 하야토는 심부로 들어가 전 기척을 완전히 죽였다.

스륵!

***

“공주는 끝났고, 이제 황태자와 손을 잡은 가문만 적절히 견제하면 알아서 끝낼 수 있겠지.”

“천검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불씨가 남아 있는 이상, 이번에는 자중지란을 피하지 못할 겁니다.”

“피해가 클수록 명백한 증거 따윈 중요하지 않지.”

“피는 피로써 갚는 검가의 전통을 고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하고도 가만히 있는다?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검가는 공중분해가 되고 말 것이다. 증거를 찾지 못한다면 피 값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당장은 파벌을 이루어 대치하고 있지만, 오랜 세월 검가 간의 세력 다툼은 늘 있어 왔었다. 규모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힘을 합쳤으나, 연맹의 신뢰가 끈끈하지 않았다. 언제든 서로의 뒤통수를 노려도 이상하지 않은 관계였다.

일례로 천검가의 천검십향(天劍十香)이 전멸당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사검가의 사기를 발견했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검가 간의 팽팽한 대치가 이루어지는 바람에 유야무야 넘어갔다.

그 당시의 참상은 그들이 해 온 교란작전의 일부에 불과했다. 출혈은 크지 않지만, 서로에게 불씨가 남도록 견제한 것이다. 그래야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하기가 수월했다. 여태까지 십대검가가 반반으로 나뉘어 팽팽한 소모전을 한 연유였다.

이번에는 일전의 미완성과 달리 완성된 도구였다. 좀 더 확실한 충격을 줘서 균형을 깰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자기 것인 줄 아는 멍청이가 더더욱 말을 잘 들을 것이다.

응?

일순 위화감이 번졌다. 반응해야 한다는 듯, 전신의 감각이 활성화되었다.

스왁!

쩌어어어엉!

공간을 가르는 날카로운 검기가 발출되었다. 밀폐되었던 방 안에서 예상치 못한 암습이었다. 그런데도 반응하는 두 사내였다. 실로 기민함을 넘어 상상을 초월하는 반사 속도였다.

슈슈슉!

채채챙!

은신이 풀리면서 정체를 드러낸 암습자는 분노의 화신처럼 살기를 발산했다. 연거푸 천검류의 속검을 사용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분노와는 별개로 상대의 움직임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대단했다.

‘이놈들 때문에!’

밝혀지지 않은 비사의 허무한 진실이었다.

천검십향은 천검가에 여인으로만 구성된 검대였다. 그리고 하야토의 누나가 검대에 소속되어 있었다. 검가의 대의를 위해서 참아 왔던 분노가 폭발했다. 하야토가 미츠키에 대한 충성과 신뢰를 버리지 못한 건 누나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포함되었다.

방 안을 가득 채운 살검을 막아 낸 사내들.

음모의 주재자인 오사무와 히데키는 습격자의 정체를 확인했다. 검형만 봐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천검가의 애송이가 어떻게 들어온 거지?”

“네놈들 때문에! 특히 히데키 네놈만은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히데키는 하야토가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누나를 따르던 검가의 무인으로, 마지막까지 지키려고 했던 자였다. 그런 자가 정작 누나를 함정으로 끌어들인 원수였다니. 가문이 저 배신자에게 철저히 농락당했다.

후후!

안정을 찾은 오사무는 히죽였다.

천검의 애송이는 분노를 폭발시키며 가공할 살의를 발산하나, 그들에겐 미숙할 뿐이다. 순간의 감정에 욱하는 건 애송이란 방증이었다.

“멍청한 놈! 복수를 바랐으면 끝까지 숨어 있었어야지.”

“죽어랏!”

숨어 있을 땐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드러나 있다면 천검가의 신성이라도 무의미하다. 사로잡아 어떻게 들어왔는지 확인해야 했다. 이곳은 오랜 세월 은밀하게 만들어 놓은 아지트였다. 수십 년 동안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거늘, 천검가의 애송이가 발견했을 줄이야.

‘천검가가 나섰다면 골치 아픈데!’

애송이를 생포해 돌아가는 사태를 확인하고, 만약의 경우엔 인질로 사용한다. 이놈의 반응을 보니 다행히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아지트의 전력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소란이 번진 이상, 병기를 발동했을 것이다.

채채챙, 퍼엉!

오사무가 중앙에 서고, 히데키가 변칙을 쓰자 하야토의 공세는 움츠러들었다. 하야토의 검공은 분명 생도의 기준을 넘었지만, 실전에서 다져진 그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주변에서 천재라 떠받들어 봤자, 온실 속의 화초에 불과했다.

“도련님, 이렇게나 생각이 없어서 어떻게 복수를 한답니까? 먼저 간 아가씨께서 땅을 치고 후회하시겠습니다.”

“이노옴! 죽엇!”

하야토가 이성을 잃도록 히데키는 약점을 건드렸다.

그 틈을 오사무가 가볍게 파고들었다. 천검으로 완성된 검격이 일순간에 와해되었고, 검흔이 생겼다.

주르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핏물이 흐른다. 상처를 타고 들어간 오사무의 검기에 하야토는 소름이 돋았다. 체감한 것 이상으로 강했다. 분노가 치밀어 냉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도련님 혼자서 뭘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누가 혼자라는 것이냐!”

“후후, 한두 놈 정도군. 애송이는 이래서 안 돼.”

“뒤를 밟힌 이상, 네놈들은 도망칠 수 없다!”

“아이구, 친절도 하셔라. 고마워서 절이라도 해야겠습니다.”

격장지계를 펼칠수록 하야토는 꼬이고 있음을 직감했다. 놈들은 어설픈 속임수가 통할 만한 상대가 애초에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가문에 먼저 연락했어야 했다. 히데키가 이 자리에 있지만 않았어도 판단력을 잃진 않았을 텐데.

‘젠장, 이렇게 당할 순 없어!’

흔들리는 하야토를 히데키와 오사무는 놓치지 않았다. 역량에서도 우위에 있지만, 천천히 옭아매며 속속들이 파헤칠 심산이었다. 하야토의 다급한 표정만 봐도 당장은 천검가에서는 모르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놈과 같이 들어온 놈만 제압한 후, 아지트를 정리하는 선에서 끝내면 될 듯했다. 상부의 조직 개편으로 다른 마스터 소속의 넘버 내 요원이 찾아왔다. 그에게 시작부터 실패자의 인상을 심어 줄 순 없었다. 어떻게든 계획대로 십대검가를 흔들어야 했다.

“큰일 날 뻔했는데, 철모르는 애송이 덕이군.”

“닥쳐! 아직 끝나지 않았어!”

“늦었다. 비상벨이 울린 이상, 살아 나갈 수 없다. 얌전히 투항하는 것이 네놈이 할 수 있는 전부다.”

“웃기지 마라!”

심리전을 거는 와중에도 치명상을 입힐 검기가 발출되었다. 하야토는 공간 속성으로 반전을 노렸지만, 히데키의 손바닥 안이었다.

-감시만 하고, 나와.

하야토는 무진의 말대로 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감정적으로 나가선 안 되었다. 자신으로 인해서 무진도 위험해지고 말았다.

‘이런 멍청한!!’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시간이라도 끌어 줘야 했다. 본원진기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천검가의 후예로서 부끄럽지 않은 최후를 맞으리라!

“네놈 뜻대로 될 성싶으냐?”

“이러면 가문의 앞날이 걱정인데.”

히데키가 숨겨 놓았던 [마나 경화]를 발휘했다. 자신의 마력을 심어 상대의 마력을 굳게 하는 속성이었다. 살수를 쓸 수 있었음에도 상처만 낸 이유가 있었다.

사기 침투로 하야토를 사로잡을 심산이었다. 죽음의 기운을 이용해서 육신과 영혼을 통제한다. 그 순간부터는 주인이 바뀌게 된다. 숨기려고 해도, 진실을 토설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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