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329화 (330/374)

329. 연막(2)

[한국 무시하기에 본보기를 보여 줬다.]

무진은 SNS에 사진과 함께 한 문장의 글을 올렸다. 파급력은 예상대로 엄청났다. 이런 말 하면 이상하지만, 무진의 SNS 구독자가 500만이 넘는다. 대부분이 악플이나, 어쨌든 SNS의 인기 스타였다. 더욱이 올라온 사진은 인기를 끌 수밖에 없었다.

-저 피떡이 된 인간은 대체 뭐냐?

-계승권에서 멀어지긴 했어도 왕자라던데.

-가자마자 일본 황실에서 왕자를 패는 패기, 폭군답다.

-저런 짓을 하면 우리나라도 위험한 거 아냐!

-노재팬 하면 그만이야.

-일본 여행이나 가지 마라!

-여행하고 노재팬하고 무슨 상관이야? 돈카스 오이시이!

-일본 만화가 계속 1등이네.

-우리에게 이득이 되면 취하는 거지.

-그런 식이니까, 지금까지 친일 매국노가 설치는 거야!

-그만 좀 하자, 귀찮다.

한일 관계의 역설이었다. 가장 싫어하면서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국가가 잘하는 건 신경 안 쓴다.

여론은 딱히 놀라진 않았다.

무진이 일본에 갔다고 해서 얌전히 있으리란 기대는 애초에 없었다. 다들 그럴 줄 알았다는 분위기였지만, 시작부터 대형 사고를 터뜨려서 앞으로 어떤 짓을 할지 자못 궁금했다.

-저 미친 조센징이 우릴 대놓고 농락하는데도 두고 볼 거야?

-황실에서 왕자한테 폭력을 썼다고! 어서 공권력을 투입하지 않고 뭐 해!

-영상을 봤으면 그런 말 못 할 텐데, 시비는 왕자가 걸었다더라.

-영상 속 장소가 미츠키 공주의 방이었잖아. 늦은 저녁에 갑자기 찾아온 것도 이상하고.

-이 더러운 년이 그 시간에 조센징하고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

공개된 영상은 철저히 무진의 주관적인 사견이 들어가 있었다. 앞에 도발은 잘라 내고, 도전을 물리려고 했던 부분만 잘라 내보냈다. 편집해서 작위적으로 만들지는 않았으나, 타쿠토의 입장에선 억울한 일이었다.

-먼저 도발하고 처맞았는데, 공권력을 어따 투입해! 혹시, 쌍방과실이냐?

-쟤들은 몰라도, 우린 폭군을 알잖아. 저 쫄리는 말투와 킹 받는 표정은 너무 작위적인데.

-일본 왕자라고 해 봤자 교류전에서 나오지도 않았던 쭉정이고, 상대적으로 유리하지 않았나?

-앞부분이 아무래도 잘려 나간 것 같은데, 이거 출처가 어딘지 확인해 봐야지 않을까?

-그래도 그렇지, 일격이 뭐냐? 존나 쪽팔리겠다!

-외화벌이도 하고 좋지. 내기의 단위가 1,000억인 줄 알았는데, 1,000억 엔이더라.

-우리나라에서도 애들 패고 다니더니, 이젠 국제 깡패가 됐구나!

-세계 제일의 생폭 방지 위원이야.

간밤에 벌어진 해프닝에 우린 웃고 넘어갔지만, 일본은 또 한 번 뒤집혔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한국인에게 당한 망신을 갚아 줘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이대로 한국으로 무사히 돌아가게 한다면 자존심은 물론 국격 훼손이었다.

“대체 어디까지 망신을 줘야 직성이 풀리겠느냐?”

“……아버지, 잘못했어요!”

“닥쳐랏! 계승권을 잃은 것도 참아 줬거늘, 이따위 짓거리를 해!”

“그게, 놈이 우리 대일본 제국의 황실을 모독…… 크악!”

후지와라 다이토는 아들의 빌빌거리는 태도에 더더욱 분기탱천했다. 막내라고 사고를 쳐도 오냐오냐했던 것이 잘못이었다. 진작 사고 치지 못하도록 방에 가두었어야 했다.

타쿠토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놈이 그렇게나 강할 줄 누가 알았나, 사기가 분명했다. 자신을 도발해서 함정에 빠뜨린 것이다.

“미츠키 그년이 판 함정이 분명해…… 커억!”

“함정이고, 자시고 이겼어야지! 그런 망신을 당하고 그대로 돌아와! 게다가 이건 또 뭐냐?”

“무슨 말씀이신지?”

“신성한 결투에 돈내기를 해! 네놈이 그러고도 사람 새끼야! 이거 대체 어떻게 할 거야?”

“제가 해결…… 커억!”

“네놈이 이걸 무슨 수로 해결해! 나도 이런 돈은 없어!”

1,000억이 과도한 액수긴 해도, 아버지가 나서면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놈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걸 다 받지는 않을 테고, 최소 3분지 1로 줄일 수도 있었다.

“300억 정도면 합의가 될…… 까악!”

대체 어디서 자꾸 재떨이가 나오는 거야? 한 번 던지고 나면 끝인 줄 알았는데, 무한 재떨이였다. 이마가 남아나지를 않지만, 타쿠토는 지은 죄가 있어서 암말도 못 했다.

“너 같으면 10분지 1도 안 되는 액수를 받고 떨어지겠느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놈이 액수도 제대로 확인 안 하고 덥석 계약했구나!”

“분명 1,000억이라고 했는…… 흐엑!”

원이 아니라 엔이란 걸 확인하자, 타쿠토는 기겁했다. 간밤에 기절해 있어서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이미 언론에 퍼졌고, 본인의 사인까지 버젓이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니라고 해 봤자, 영상이 돌고 있어서 반박하기도 힘들었다.

“아버지, 함정이에요! 그 요망한 년하고 조센징이 짜고 친!”

“닥쳐! 너 때문에 내가 얼굴 들고 다닐 수가 없어! 맘 같아서는 갱도에 집어넣고 평생 곡괭이질만 시키고 싶구나!”

단위를 속인 사기라고 해 봤자,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자기가 못났다고 대놓고 광고하는 꼴이었다. 그걸 대체 누가 믿는단 말인가?

설령 믿는다고 해도, 멍청한 짓이 아닐 수 없었다. 계약하는데, 약관은 둘째 치고 액수조차 확인하지 않았으니 당해도 쌌다. 사기 치는 사기꾼이 최악이긴 해도, 결국 나 자신을 지키려면 꼼꼼해야 했다. 사기를 당한 후 사기꾼을 탓해 봤자 피해 보상은 하나도 받지 못한다.

“어서 꺼지지 않고 뭐 해!”

“아버지, 제발 용서…… 크악!”

다이토는 마지막 재떨이로 아들을 집무실에서 쫓아냈다.

저 멍청한 아들놈이 한 짓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명예의 훼손이 더 컸다. 실제로 돈을 주지 않는다고 해도, 법적으론 걸고넘어질 수 없다. 하지만 정당한 내기를 하고도 돈을 주지 않는다면 신뢰가 무너져 버린다. 그런 식이면 누가 자신의 말을 믿고 따르겠는가.

드륵!

다다미 구조로 되어 있는 옆의 문이 열리며 대기하고 있던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대화를 다 듣고 있었지만, 명이 있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말해 봐.”

“암습을 하기에는 눈이 너무 많습니다. 자칫 사고라도 당하게 된다면 문제가 커질 수 있습니다.”

“하면?”

“당장은 공개 대결로 해결해야 합니다.”

“내 자식이 못나긴 했어도, 일격에 당할 만큼 약하진 않아. 상대할 수 있겠나?”

“꼭 정상적인 대결일 필요는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보다 먼저 나서고 싶어 하는 쪽이 꽤 있지 않습니까. 이번 소란을 이용한다면 더더욱 좋지요.”

“흠, 그렇군.”

일을 크게 만들어 봐야 좋을 게 없지만, 훼손된 명예를 회복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차후 황실의 후계에 오점이 생기지 않는다. 더욱이 당장은 그 천둥벌거숭이보다 황태자와 그 파벌이 먼저였다. 애송이가 일으킨 소란을 이용해서 은밀히 뒤를 친다면 효과적이었다.

‘이번 대의 천황은 반드시 내 아들이 잇는다.’

법이 바뀌는 데 수십 년의 세월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양성평등을 내세워 황실의 개혁을 겨우 밀어붙였다. 더는 이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방해한다면 누가 됐든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

도쿄의 유명한 테마파크인 디즈니랜드를 둘렀다. 여러 구경거리가 있었지만, 무진은 대충 둘러보았다. 그보다는 맛집이 아주 궁금했다.

추천 메뉴는 미츠키의 몫이었다.

장어덮밥과 오므라이스가 입맛에 맞았다. 남자의 사료인 돈가스와 제육볶음에 비견되었다.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데다 짧은 시간 많이 먹을 수 있었다.

후르르륵!

여긴 오므라이스 맛집이었다. 입에 들이붓기가 무섭게 매끄럽게 식도를 타고 내려가 위장에 스며든다. 공주의 추천이라 미심쩍었지만,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맛집은 맞았다.

“이 집, 계란 잘하네.”

“당연하지, 내 추천인데.”

“적절하게 배율이 되었어. 물론, 내가 더 잘하지만.”

“그게 스무 그릇이나 처먹고 할 소리야!”

“원한다면 성에 돌아가서 해 줄게. 비교해 봐라.”

“차라리 여기서 하지 그래.”

“얼마?”

“씨발, 도박에 미쳤나!”

언성이 컸는지, 다들 놀라는 기색이었다. 공주가 저런 상스러운 욕을 대놓고 할 줄 몰랐던 듯. 비록 계승권에서 밀려나기는 했어도, 공주로서 품위를 지켜야 했다.

‘젠장!’

미츠키도 이러고 싶지 않았다.

이 녀석하고 있으면 고승이 아니고선 화를 참기 힘들다. 어제 그 지랄을 떨고, 오므라이스를 태연히 처먹고 있는 것만 봐도 제정신은 절대 아니다.

‘내 주제에 무슨 황제냐.’

이번 생은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미 더럽혀진 몸, 나라를 위해, 좀먹는 바퀴벌레를 처단하는 데 헌신하기로 했다. 그것이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는 일이기도 하고.

그런데 나, 결혼은 할 수 있는 거야?

이렇게까지 이미지를 망가뜨려 놓고. 천황은 못 해도, 결혼은 하게 해 줘야지.

누가 데려가냐고?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평생 혼자 살다가 고고하게 갔다더라. 처녀 여왕이라나.”

“이 개자식이! 됐고, 네 여자 친구는 어째서 안 데리고 온 거야?”

“방사능 때문에.”

“말조심해, 우린 국제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어!”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그래, 한국인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까지 막을 순 없다. 실제로 위험하지 않다고 하기엔 ‘먹어서 응원하자’의 피해가 컸다. 국민 건강과 안전이 걸린 문제를 협약으로 해결하려는 건 위험했다. 자국민도 믿기 어려운데, 남의 나라보고 믿으란 것도 어불성설이고.

이해는 해도, 여긴 일본이라고?

속으로 생각만 해도 되는 걸 입으로 말하는 건 무슨 심보냐고? 오므라이스를 스무 그릇이나 얻어 처먹고 저러는 건 너무하는 것 아닌가? 이놈이 무례한 거야? 한국이 무례한 거야?

전에 봤을 때가 그나마 신사였다.

“넌 양심이란 게 있기는 해?”

“사실대로 말하는데 양심을 왜 찾아.”

“민폐는 아니고?”

“문화는 상대적인 거지.”

주변에서 다 쳐다보고 있었다. 작게 말해도 들릴 판인데, 필터링이 전혀 되지 않았다. 곳곳에서 사진을 찍고, 영상을 올리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댓글이 첩첩산중이 되어 갔다. 한가롭게 놀고 있을 때가 아닌 비난 일색이었다.

“오늘은 한복 입으라고 하지 않았잖아. 너무 눈치를 주네.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르겠어.”

“그새 다섯 그릇이나 더 먹고 할 소리냐고!”

대화하는 도중에 언제 먹은 거야?

말하는 입하고, 먹는 입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 해 주었다. 먹성과 식성이 판타스틱하다 못해 천외천이었다.

“먹는 걸 가지고 이러는 것도 치사하긴 한데, 이걸 왜 내가 내야 하냐고?”

“네가 초대한 거잖아.”

지가 멋대로 오고선!

요즘은 통보가 초대냐?

너무 뻔뻔해서 아니라고 반박도 못 했다. 게다가 부정해 봤자 지금까지 쌓아 온 이미지가 박살 난 지 오래였다. 예전이었다면 사람들이 믿었을 텐데, 이젠 콩으로 나토를 빚어도 믿지 않을 판이다. 일단 의심부터 하는 시선이 식당 안에서도 느껴진다.

내 인망!

내 명성!

내 체면!

다 꽝이다.

그런데 공주의 심정을 동조해 주는 자가 불현듯 등장했다. 도와주는 듯해서 말리기엔 늦었다.

“이봐, 공주님께 너무 무례하잖아. 한국은 예의범절도 모르는 나라더냐?”

무지막지한 거구에 일본식 전통 의상을 입은 사내였다. 막아서니 한쪽 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꽉 찼다. 오오이쵸 머리 모양과 덩치를 보면 뭐 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카와모토 코지잖아!”

“무패의 요코즈나!! 우리의 자랑!”

씨름이 각성의 시대가 되면서 아예 없어져 버린 것과 달리 일본은 여전히 스모 시장이 활성화가 잘되었다. 역사적인 전통을 고수하며 세대가 바뀌어도 보존하는 일본의 장인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어떤 면에선 부러우면서도, 굉장히 고리타분하게 느껴진다. 우리나라처럼 빨리빨리에 익숙한 사람은 일본이나 기타 국가의 느려 터진 행정에 답답해할 수밖에 없다.

스윽!

대중적 인기 스타인 스모 선수가 할 일 없어서 놀이공원에 찾아오진 않았을 테고. 뻔한 의도에 무진은 일어섰다.

190cm가 넘어가는 무진이었지만, 코지는 2m가 넘었다. 서로 마주했을 뿐인데도, 탁 트였던 오므라이스집은 숨이 막혔다.

두드드드!

일촉즉발의 국면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지켜봤다. 남의 집 불구경 다음으로 남의 싸움 구경이 최고긴 했다.

물론, 가게 주인은 여기가 강호 무림의 객잔도 아닌데 저러냐며 울상이 되었다. 가게가 파손됐다고 물어 달라고 할 분위기가 아니라서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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