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327화 (328/374)

327. 재회(2)

툭하면 찾아와서 그런가, 이제는 내 집처럼 편안한 교장실이었다. 아카데미에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땐 교장 선생님을 찾으면 되었다. 문제가 없어도 밥 먹고 싶으면 찾을 때가 있었다. 가끔은 교장실에서 시켜 먹는 음식도 나쁘지 않았다.

일단 짜장면을 시킨 교장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 어른이 짜장면, 그러면 본인도 짜장면이어야 하거늘, 가장 비싼 7번 세트를 시켰다.

돈도 많은 녀석이!!

주식 수익 때문에 참을 뿐이다.

“또 뭐?”

“자꾸 했던 말 또 하시고. 이제는 식상하니 그만하세요.”

“이젠 말을 듣지도 않겠다는 것이냐?”

“입장권의 효력이 다 됐네요.”

“편하게 말하려무나.”

교장은 무진탑의 효과를 간과하지 못했다. 훈련의 질과 성장 속도가 차원이 다르다. 밖에서 몇 년을 수행해도 따르지 못할 차이가 있었다. 탑의 이름부터 맘에 들진 않지만, 입구 컷 당하는 순간 낙오자가 된다.

하물며 딸의 인생이 걸려 있었다.

‘이 망할 녀석이!’

훈련의 성과가 있을 시 우리 딸도 고려해 보겠다고 했다. 아비로서 험한 길을 원치는 않지만, 뒤처져서 고민하는 딸을 외면할 수 없었다. 더욱이 이놈 주변 애들의 성장이 눈부셨다. 멈춰 있을 때 한가롭기는커녕, 도태되어 따라가기 바빠졌다.

‘우리 애만 뱁새가 될 순 없어!’

교장도 어쩔 수 없는 부모였다. 다른 건 다 참아도, 딸의 좌절은 보고 싶지 않았다.

“제가 효자라서 그 마음을 잘 압니다.”

“안다는 놈이 그걸 악용해!”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듯 맞춤 서비스야말로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갖다 붙이는 솜씨는 카이사르도 혀를 내두르겠구나!”

인생에서 가족은 가장 소중한 존재고, 내 자식이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개중에 또라이들이 있고, 자식을 소유한다고 생각하는 정신 나간 부모도 있으나. 대부분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걸 증명하듯, 교장의 성취가 눈부셨다. 딸을 위한 아비의 눈물겨운 헌신이었다.

“슬슬 본궤도에 올라선 것 같으니, 아카데미도 정리하도록 하죠.”

“어쩐지, 네가 입장권을 순순히 내줄 때부터 이럴 줄 알았다.”

“그래서 싫으세요?”

“좋아서 몰살시키고 싶구나!”

아카데미를 팔아넘긴 벌레들을 몇 마리만 남겨 두고, 처리하기로 했다. 동시에 가문, 길드, 정·재계로 2단계 색출 작업에 들어갔다.

원래 다크니스의 개입을 고려했는데, 워낙 바퀴벌레 같은 것들이라 자가 생산이 늘고 있었다. 이대로 놔두면 골치 아플 수 있기에 처리하기로 방침을 바꾸었다.

사실상 우리나라와 중국을 건드리긴 어려운 상태였다. 다크니스로선 어떤 사태가 벌어졌는지 알지 못하니 현재로선 신중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래도 교관들의 체면을 좀 생각해 줬어야지.”

“일신우일신, 청출어람이 아카데미의 존재 의의가 아니었나요.”

“그딴 건 졸업하고 나서 해도 되잖아. 교관들이 지금 얼마나 징징거리는 줄 알아!”

“정명길 교관님은 좋아하시던데요.”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아.”

“교장 선생님처럼요.”

“……나는 달라!”

자기만 쏙 빼는 솜씨는 여전하시군.

지금까지 교관의 시련으로 불리는 결투는 명목상에 지나지 않았었다. 한데, 무진이 실제로 도전하는 바람에 교관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학부모는 무조건 뛰어난 교관을 원한다. 생도에게 졌다는 꼬리표가 붙은 교관을 바라진 않았다. 교관으로선 억울한 일일 수도 있었다. 교육이 원활하게 이루어져 생도의 성취가 높아졌다고 봐야 하는데, 현실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실력이 부족해 생도에게 졌다고 보는 부류가 꽤 많았다.

승리한 교관도, 패배한 교관도 무진으로 인해서 피곤해졌다. 원론적으로 보면 교관도 관리하는 게 맞지만, 직장에서 매사에 열과 성을 다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현실적으로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더욱이 교관은 현역을 떠난 지 오래되었고, 나이는 계속 먹고 있었다.

그러면 젊고 유능한 교관에게 자리를 물려줘야 한다고 성토하는데. 자기 일 아니라고 함부로 말하는 짓이다.

원칙적으론 맞지만, 본인이 나이가 들어서 나가야 한다면 고분고분 나가겠나. 하물며 교관의 연령은 많아도 40~50대였다. 그 나이에 해고되어 다른 일을 찾으라는 건 나가 뒈지란 소리다.

교관이 비록 전성기를 유지하지 못한다고 해도, 가르치는 건 다른 영역이었다. 엘리트 천재가 되레 가르침은 못 한 경우가 허다했다. 본인의 성취를 생도에게 투영하기 때문이다.

나는 했는데, 너는 왜 못 하냐? 이런 식이면 안 하느니만 못했다. 이런 사실을 합리적으로 이해해 줄 부모가 필요하나, 자식 앞세워서 객관적인 부모는 많지 않았다.

“아카데미 연금 나오잖아요.”

“애를 하나라도 낳고 키워 봐라, 요즘 물가가 얼마나 비싼데! 연금으론 턱도 없어!”

“벌어 놓은 거 많으면서.”

“대체 어디서 그딴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건지 원.”

현역 시절 많이 벌어 놓은 예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리 풍족하지 않다. 이러면 또 불편한 인간들이 나온다. 초년생은 아예 취직도 안 되고, 대출만 있다고.

“저완 상관없는 얘기네요.”

“인정머리라고는 씨알도 없는 녀석.”

“그랬으면 우리나라를 위해 동분서주하지도 않았죠. 저야말로 우리나라를 위해 분골쇄신하는 최고의 위인입니다. 그러니 위인전에 꼭 나와야 합니다.”

“내 생전에 자기 스스로 위인이라고 하는 놈이 있을 줄이야! 그것도 내 제자란 녀석이!”

“다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싶지 않나요. 은인자중,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는 걸로 아는데.”

이놈은 일반 관종도 아니고, 역사적인 관종이었다.

맞는 소리를 하는데도, 얄미운 걸 보면 타고났다.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답답했고, 진짜로 위인전에 실릴까 봐 걱정되었다.

주관을 빼도, 실릴 것 같긴 하다.

이놈이 우리나라를 빛낸 위인이라니!

교육자로서 끔찍하군.

“나이가 들어도 직장이 있어야 사람답게 사는 거란다.”

“젊은 사람이 잘되어야 건강한 사회가 된다던데요.”

무진과 교장은 둘 다 맞는 말을 했다. 틀렸다고 하기에는 청년과 노년의 삶이 아름답지 않았다. 어느 한쪽이라도 병이 들면 전체가 병이 드는 데다, 과일처럼 썩은 부위라고 도려낼 수도 없는 일이다. 결국 해답 없는 타협점을 찾아야 했다.

교장은 시답지 않은 논쟁에 열을 올리고 싶지 않았다. 말싸움으로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제자라면서 사부를 이기지 못해서 안달이 났다.

“그래서 뭐?”

“일본에 갔다 오려고요.”

“이번엔 또 어쩌려고?”

“저는 교장 선생님만 믿고 있겠습니다.”

“사고 치려고 작정했구나!”

“정 그러시다면 먼저 조센징이라고 하고, 독도가 다케시마라고 해도 참겠습니다.”

“그러고서 전부 내가 시켜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할 거잖아!”

과연, 우리 교장이었다.

눈치가 겁나 빨라졌다.

교장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빠져나갈 수 없는 치밀한 함정이었다. 맘대로 하라고 하면 뒷수습할 걱정이 태산이고, 참으라고 하면 교장으로서 인망이 망가진다. 우리나라는 다른 건 다 참아도 일본한테 얕보이면 국물도 없었다. 교류전을 통해 만들어 놓은 성과가 모래 위의 공든 탑이 될 수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어차피 내 말을 들을 생각도 없잖아.”

“감사합니다.”

“제발, 살살 해라!”

망할, 혈압 오르네.

어쨌든 교장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저 망나니 같은 녀석을 어찌할꼬.

‘차라리 일본에 살라고 할까?’

안에서 새는 바가지를 일본에 수출하는. 이거야말로 일본에 빅엿을 날리는 최고의 수법이 아닐까? 덤으로 세계 각국으로 수출하여 대한민국이 강대국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내정이 어려우면 외부로 눈길을 돌리는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더욱이 좋은 건 다 같이 맛을 봐야 했다.

‘이거다!’

폭탄 돌리기.

***

하아.

매분마다 그녀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근 한 달 동안 평생 먹을 욕은 전부 처먹었다.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먹고 자라기도 부족한 여리디여린 여인으로서 참기 힘든 일이었다.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댓글 몇 번 달았더니, 국가를 팔아넘긴 역적이 되었다. 지금이야 그나마 개인적인 일로 넘어가기는 했어도. 한순간에 국민 여동생에서 국민 밉상으로 자리매김하고 말았다.

‘알려 줘도 이딴 방식을 알려 주냐!’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방도를 찾아봤지만, 뾰족한 혜안이 나오지 않았다. 가뜩이나 독이 바짝 올라 있는 상대였다. 어쭙잖게 모호한 선택을 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었다.

-살고 싶으면 나처럼 해.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었다. 자기처럼 하라니?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았었다.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나이버 재팬에 검색해 보란다.

찾아낸 무진의 기록과 뉴스에 미츠키는 기겁했다.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닌 것 같았다. 하물며 자신이 누구인가? 대일본 제국의 고귀한 피를 이어받은 일국의 공주였다. 선민사상을 옹호하진 않지만, 인간적으로 할 짓이 못 되었다. 그런 걸 자기보고 하라니, 이건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싫다면?

-아비처럼 비명횡사하겠지.

-이 썩을 놈이, 할 말이 있지! 씨발, 다른 방도는 없어?

-얼마 줄 건데?

-그놈의 돈돈돈!

-싫으면 말고.

-인정머리 없는 인간!

결과적으로 비슷한 방식이지만, 그나마 나은 방식이 댓글이었다. 그 정도로 엄청난 파문을 불러올 줄은 솔직히 몰랐다. 일부러 댓글에 댓글을 달았고, 계정을 알려 줘서 찾아낸 것으로 비쳤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감정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를 실감하게 해 주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아도, 반한 감정이 뿌리 깊이 새겨져 있었다. 이 문제는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바뀌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욕받이도 아니고.’

욕먹기 위해서 돈까지 내어 주는 공주의 심정을 너희들이 아느냐고! 하지만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다크니스의 다음 타깃으로 본국이 유력했다. 일례로 내부의 배신자들이 설치고 있는 걸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안 거야?’

어지간하면 외면하고픈 방도였다. 공주로서 고귀하게 살아온 위엄과 품위를 잃고 싶지 않았다. 하나, 내부에 독버섯들이 버젓이 활보하는 걸 낌새조차 차리지 못했었다. 자칫 잘못했으면 더 큰 화를 입을 수도 있었다.

‘내 탓이기도 하고.’

아버지의 서거.

이토록 갑작스럽게 사고가 벌어질 줄은 미처 몰랐다. 만약 조금 더 빨리 알아차렸다면 시간을 벌었을 텐데.

-아비는 괜찮다. 부디 행복하거라.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그간 앓은 병이 독이었단 사실에 분노가 치밀었다. 어떻게든 이 나라에서 다크니스는 물론, 연관된 이들을 단죄해야 했다.

그러려면 일단은 살아남는 게 먼저였다. 세상이 바뀌면서 전통적으로 남자에게만 주어진 황위 계승권이 공주에게도 주어졌다.

처음에는 운이 좋다고 여겼지만, 이게 목줄을 죄는 올가미가 될 줄은 몰랐다. 아버지도 방해된다고 죽였던 자들이었다. 여태 조심스럽게 움직이다가 갑작스럽게 행동한 것도 그렇고. 다크니스도 다급해졌다는 걸 보여 주었다.

황위 계승자를 만들기 위해서 일전에 자신을 포섭하려고 했지만, 지금은 방해가 되기에 제거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래서 최대한 멀어지려고 노력했다.

‘가까이선 보지 못하는 법이지.’

황위 계승권이 좁혀질수록 범인에 대한 윤곽도 나타나기 마련이었다. 탐탁지는 않지만, 무진의 권유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이제 계승권과는 상관이 없는 야인이나 다름이 없었다. 한류와 한국 남자를 좋아하는 철없는 공주가 황위를 잇는 일은 불가능했다.

나쁘진 않았다.

결과만 놓고 보면 이보다 더 훌륭할 수가 없다. 다크니스의 시선에서 벗어났고, 운신의 폭이 넓어졌으니 말이다. 현재 믿을 수 있는 이들로 암천회(暗天會)를 조직해서 다크니스와 연관된 이들을 색출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 공주가 있었지만, 정보는 오롯이 무진에게서 얻었다. 더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암천회가 그런 뜻인 줄 알았으면 안 썼지.’

암천회는 무진이 지어 준 이름이기도 했다. 나중에 왜 그런 이름을 지었냐고 했더니, 우리는 악역이 어울린다나.

인간적으로 너무한 거 아니냐고!

띠리링!

핸드폰이 울렸다.

웬 전화지?

의아했던 미츠키는 발신인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먼저 연락하면 받지도 않는 인간이 전화를 해 왔다. 그렇다고 전화를 받지 않을 수도 없는 형편이다. 목이 마른 년이 우물을 판다고, 아쉬운 건 자신이었다.

“왜?”

-하네다 공항으로 한복 입고 마중 나와.

“야,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뚝!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었다. 미츠키는 살면서 처음 느껴 보는 울화에 휩싸였다. 재밌는 놈인 줄 알았더니, 자신조차 환장하게 만드는 망종이었다. 사람을 개쪽 주는 걸로도 부족해서, 기모노도 아니고 한복을 입고 공항으로 마중을 나오라니. 이건 대놓고 얼굴을 팔라는 의미였다. 지금까지 먹은 욕은 약과에 불과했다.

“이 씨발 놈! 시간은 알려 줘야 할 거 아냐!”

***

웅성, 웅성!

이 순간 압도적인 주인공이 되었다. 사람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쳐다본다. 이러면 기분이 좋아야 하지만, 철창에 갇혀서 주인공이 된들 기분이 좋을 리 만무했다.

내가 동물원의 원숭이도 아니고.

-진짜였어?

-아무리 그래도 공주님이 왜?

-저거 개량 한복이잖아!

-이건 음모야!

-한국인이 사술을 쓴 게 분명해!

-일본엔 왜 온 거야?

미츠키는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들리지라도 않으면 좋을 텐데, 무공을 익혀서 귓구멍이 천리(千里)였다. 얼굴이 팔릴 대로 팔린 데다가, 간간이 욕설도 들렸다.

-공주도 이젠 맛이 갔네.

-그러니까 계승권에서 멀어지지.

-이젠 멀어졌다는 표현도 과분하지. 이래서 여자는 안 되는 거야.

-전통과 질서를 지켜야 하거늘.

-조센징 앞에서 침이나 질질 흘리고, 더러운 년!

공주의 마중은 실시간으로 여론을 탔다. 다른 때 같으면 한 500년은 걸렸을 일본의 융통성 없는 절차도 오늘만큼은 달랐다. 사진을 찍어서 올리기가 무섭게 실시간 검색어 1위를 달성했다. 우리나라처럼 댓글이라도 차단했으면 모를까, 원색적인 비난이 올라왔다.

하아!

천년만년 수명이 늘어 불사신에 가까워진 미츠키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난 아무 잘못도 없다는 저 인간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전신류 극신의 파동권이 땡겼다.

한 대만 전력으로 날렸으면.

우리나라 전통의 철권 맛을 보여 줄 차례다.

빤히.

무진이 미츠키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왜?”

“짐 빼 와야 할 거 아냐. 손님 맞는 태도가 영 글러 먹었네.”

“……?”

무진의 당당한 요구에 미츠키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뻔뻔함에도 단계가 있다면 최종 단계를 가뿐히 넘어섰다.

한복을 입고 나온 걸로도 부족했는지, 이젠 캐리어 셔틀을 시켰다. 공주로서 이런 기분 처음이라고 하기에는 죽어 버리고 싶어질 지경이다.

***

-이 새끼, 진짜로 일본 갔구나.

-생도가 시간이 어디 있다고 놀러 가? 요즘 아카데미는 안 되겠네.

-소문 못 들었냐, 폭군 요즘 최전성기야. 교관도 한 수 접어준단다.

-잘할수록 더 열심히 해야지. 저런 놈은 잠깐 반짝했다가 사라질 거야.

-응, 루저들 희망 사항!

-일본 공주가 한복을 입고 마중을 나오다니, 기부니가 매우 기모찌해지네!

-댓글로 칭찬 좀 해 줬다고 찾아간 거면 킹왕짱 레알 대단한 놈이다, 진짜!

-일본 애들 아우성치는 소리가 백록담까지 들려오는구나.

-어째 애국자 같냐!

-아무리 그래도 일국의 공주를 셔틀로 쓰냐, 부럽다!

무진의 등장에 일본이 침몰할 듯 댓글의 쓰나미가 일었다. 불과 1시간도 안 되어서 검색 사이트를 점령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너도나도 댓글을 달며 웃고, 맛보고, 뜯고, 즐겼다.

무진이 우리나라의 국민 밉상이기는 해도, 까도 우리가 깐다. 하물며 우리나라가 아닌 일본 수출은 환영할 만한 희소식이었다. 최소한 우리나라는 조용해질 테니 말이다. 하루가 멀다고 대형 이슈를 터뜨렸던 걸 고려하면 일본 여행이 기대되었다.

한국의 기자들이 서둘러 일본으로 출국한 기록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볼 땐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었다. 다들 우리나라에서 하던 거만큼만 하라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거 국제 망신 아닐까? 우리가 폭군 같은 줄 알 거 아냐!

-안에서 새는 바가지를 굳이 왜국으로. 잘하는 짓이네.

-우리도 이제 선진국이잖아. 중국처럼 행동하지 말자.

-너희들, 폭군이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같은 취급 하지 마라. 근본이 다른 종자야.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미친 짓을 하고 다닐걸.

-SNS 떴다. 공주 한복도 폭군이 시킨 거란다.

-역시 폭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우리나라 여론은 기대가 컸다. 일본에 한국인 관광객이 많아서 실시간으로 기사가 올라오리라 보았다. 일본의 역사, 정치는 싫어도 관광하기는 최고였다. 제주도가 너무 비싸서 씁쓸하기는 했다.

우리나라의 긍정적인 여론과 달리 일본은 길길이 날뛰었다. 특히 우익은 공주를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으로 취급했다. 어떤 식으로든 한국과 엮여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나갔다.

-세대가 달라졌다고 해도, 일국의 공주가 저래도 되는 거야?

-나라를 팔아먹은 더러운 년! 당장 할복해야 해!

-저딴 년에겐 사무라이의 명예로운 할복도 아깝다고.

-황궁에선 대체 어떻게 교육을 하는 거야. 당장 삭발 진행시켜!

-나라 망신 그만 시키고, 차라리 한국으로 꺼져!

부정적인 기류가 대부분이지만, 자기들 공주라고 옹호하는 댓글도 있었다. 한류의 영향을 받은 세대는 별달리 신경 쓰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내심은 어떤지 몰라도, 자기들 삶과 상관이 없다고 보았다. 여론에 민감해할 만큼 현실이 여유롭지 않은 것도 있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세계로 넓히면 부국인데도 불구하고, 상대적 박탈감은 오히려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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