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325화 (326/374)

325. 분배(4)

‘이너피스는 단순히 평온만을 위해선 아니지.’

성좌의 제어, 오롯이 본인의 능력으로 광폭화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적응 훈련은 연무장에서 하면 됩니다.”

성좌력의 배분을 마친 무진이 털고 나가려고 하자, 투귀는 다급해졌다.

“나는?”

“미안하지만, 솔드아웃입니다.”

“다 썼다는 게냐?”

“그렇죠.”

“진작 말했어야지!”

“어르신의 말대로 스스로 얻지 못한 힘은 분명 파격이 있을 겁니다. 무인으로서 어르신의 투쟁심을 존중합니다.”

투귀의 안면이 와락! 일그러졌다.

맞는 말이긴 했다.

노력하지 않고 얻은 힘은 모래성과 같으니. 그런데 무진의 말을 들어 보면 파격이 꼭 부정적이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무진을 넘어서기란 불가능했다. 포기하지 않는 도전은 아름답지만, 실제로는 정신 승리에 지나지 않았다.

때론 포기도 용기였다.

더욱이 무진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르는 것이 꼭 나쁘다고 볼 순 없다. 성좌를 두들겨 팬, 신에 범접한 권능을 지니고 있었다. 반드시 성공하는 길을 놔두고, 돌아가는 건 어리석었다.

성배는 목배가 진짜지만, 무진은 황금잔이 진짜였다. 보이는 것 그대로가 진실이었다. 속내를 의심하여 한 번 꼰 투귀의 아쉬움은 더더욱 커졌다.

증명은 머지않았다.

화르르르르, 솨아아아!

권왕과 지수의 투기가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되었다. 기세에 영향을 받아 범접하기도 어려워졌다.

“할아버지, 오늘이야말로 패륜의 존맛탱을 보여 드릴게요!”

“태극을 이룬 이상, 100년도 이르니라!”

연무장으로 장소를 바꾼 권왕과 지수는 할아버지와 손녀가 아닌 무인으로서 전력을 끄집어냈다. 성좌의 선택 이후로 급격하게 강해진 지수는 재차 업그레이드했기에 자신감이 차 있었다.

할아버지도 손녀를 팼으니, 이젠 손녀가 할아버지를 팰 차례였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 화목한 가정이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패면 가정 폭력으로 신고당한다.

공평하게 하자고요.

꽈아아앙!

후아아앙!

권왕의 태극과 지수의 광폭화가 빠꾸 없이 정면충돌하자 재앙이 휘몰아친다. 새만금 연무장이 아니었다면 막대한 물적 피해를 양산할 파워 인플레이션의 격돌이었다. 어디까지 파워가 상승할지 모르는, 침체를 알 수 없는 패륜 쟁투였다. 어설프게 개입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을 무관용의 대전이었다.

“죽어랏!”

“손녀한테 할 소리예요!”

“전투에 손녀가 어디 있느냐!”

“액자 속 할아버지로 만들어 드릴게요!”

“100년은 이르다고 했을 텐데!”

얼떨결에 연무장에 들어선 투귀는 할아버지와 손녀의 격돌을 지켜보며 한탄했다.

‘내 것이어야 했는데!’

저 속도, 파워, 내력, 속성, 다 내 것이야 했거늘.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더니, 망설임은 죄악이었다. 눈앞에서 압도적인 역량의 차이를 실감하니 상실감이 부풀었다.

저걸 어떻게 따라가야 할지 암담해진다. 어차피 주변엔 괴물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무인의 자존심이 중요할 땐 지났다.

“그러니까 줄 때 받지 그랬냐.”

“배 떠나고 그리워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

“남의 떡이 커 보이긴 하겠지.”

“차라리 미련을 버리든가. 욕심은 또 많아서.”

두 노괴의 이죽거림에 투귀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자기들도 아쉬워했으면서 괜히 공수래공수거인 척하는 게 역겹다.

그럴 거면 열반, 등선이나 하라고!

“선배들도 저랑 같지 않습니까!”

“같기는, 어디가?”

“아쉽지 않다는 겁니까?”

“그래도 우린 네가 있잖아.”

“……젠장!”

자신을 돗자리로 깔고 보는 노괴들의 악랄한 심보에 투귀는 울화통이 터졌다. 너만 있으면 우리는 된다는 표정도 얄미움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곱게 늙어도 시원찮을 판국에 이따위 심보라니. 저러고도 자기 세상에서는 무신과 투신으로 불렸다는 건 망조였다.

“어차피 저 아이들은 우리보다 강해질 잠재력이 있었어. 그에 반해 너는 아주 만족스럽지.”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지. 안 그러냐?”

속을 긁는 재주가 천의무봉에 이르렀다. 무진과 같이 있다 보니 초록은 동색이 되었다. 무력도 무력이지만, 하나같이 독사 같은 주둥이들이었다.

‘줄 때 받을걸!’

권왕과 지수의 일취월장에 약이 오른다. 저 인간들이 또 얼마나 복장 터지게 할지 보지 않아도 명약관화였다.

‘차라리 보여 주지나 말 것이지!’

모른 채로 사는 편이 마음은 편했을 텐데. 알고 있어서 화를 불러온 격이었다. 아쉬워해 봤자 수련과 수양에만 방해가 될 뿐이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저들의 성취를 순수하게 반겨야 했다.

“이젠 투귀 따윈 상대가 안 되겠군!”

“면전에서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에요.”

“부정하진 않는구나!”

“할아버지, 저는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 않아요.”

싸우는 와중에도 속을 긁고 있었다.

투귀의 안색이 붉으락푸르락 시도 때도 없이 변화무쌍했다. 염라대왕은 뭘 하는 거야, 저 인정머리 없는 인간들 안 잡아가고.

다들 지옥에나 떨어져라!

‘두고 보자, 내 반드시 너희들만큼은 뛰어넘는다!’

무진은 어쩔 수 없지만, 이대로 포기하진 않는다. 투귀는 전의를 불태우며 설욕을 다짐했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성좌력은 성장하는 속성이었다. 권왕, 산하, 지수는 현재에 만족하는 인간들이 아니다. 무진이 옆에 있기에 그럴 수도 없는 처지고.

별안간 깨달음이라도 오면 또 모르겠으나.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면 기연으로 취급하지도 않는다. 기연은 희소성을 뜻했다. 더욱이 경지가 높아지면 기연을 얻기가 훨씬 힘들다.

투귀는 현재 절대경이다.

빌어먹게도, 거의 끝판에 도달했다. 결국,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전에 늙어 죽을 확률이 최소 99% 이상이었다. 사도든, 뭐든 일단 받고 봤어야 했다.

투귀의 절망이 극에 이른 절묘한 타이밍에 무진이 나섰다. 연무장으로 괜히 끌고 온 건 아니다. 방향을 잡아 주고 자극을 줄 필요가 있다.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응? 성좌력이 남은 거였어? 진작 말하지. 앞으로 잘할게!”

“남지는 않았고, 다른 데 투자했어요.”

“어른을 놀리는 게냐?”

“저 앞을 보세요.”

“보긴 뭘…… 저건? 언제 저런 게 생겼어!”

“오늘이요.”

정성스럽게 선물을 포장한 듯 중첩된 안개가 사라지더니 초고층 빌딩보다 높은 거대한 탑이 자리했다.

“이게 대체 뭐냐?”

“성좌의 탑을 제 나름대로 복사해 봤어요. 다만, 50층을 10층으로 줄여서 조금 빡셀 수도 있을 거예요.”

대신 얻는 성취는 높다고 약을 쳤다.

돌아가는 길이긴 해도, 약발은 굉장히 뛰어났다. 투귀뿐만 아니라 가만히 듣던 노괴들도 가담했다.

“너만 강해지는 걸 두고 볼 순 없지!”

“그걸 대놓고 말해도 되는 겁니까?”

“들으라고 한 소리다! 이 이기적인 새끼야!”

“이 죽지 못해서 사는 노괴들이 듣자 듣자 하니까 날 대체 뭐로 보는 거야?”

“시다바리.”

“하수.”

무진으로선 아주 흡족한 결과였다. 성좌력이 남기는 해도, 나중에 활용할 방도를 찾았을 때 필요했다. 성좌의 탑을 본떠서 만들었으니, 안에서 결과를 낼수록 자신에겐 이득이었다.

‘이거야말로 일거양득이지.’

탑의 총량 보존의 법칙은 존중한다.

***

무진탑의 입장권은 성황리에 판매가 되었다.

마제, 천제, 시조, 수왕은 적지 않은 비용을 내고서 입장할 수 있었다. 원래는 터무니없는 가격이라 포기하려고 했으나 탑의 히트 상품인 투귀의 성취가 눈에 보였다. 피로 영양제와 달리 탑을 오르지 않았을 때와 올랐을 때의 차이가 컸다.

더욱이 여러분들 아니라도 할 사람은 널렸다는 무진의 악덕 사장 마인드에 안달이 날 수밖에 없다. 실제로 탑에 오른 후부터 성취도 빨라졌다.

권왕은 탑에 오르기 전부터 가문과 길드의 수장들을 패고 다니고 있었다. 이미 월등히 강해진 상태에서 탑까지 등반하니 갭은 더 벌어졌다고 봐야 했다.

권왕의 만행에도 그들은 무진을 탓하진 않았다.

특혜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탑에 오르지 못한 다른 가문과 길드는 시간이 흐를수록 도태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차후로도 차이는 좁혀지기는커녕 더더욱 벌어질 것이다.

돈이야 벌면 그만이었다. 반면, 돈을 쓴다고 해서 경지를 높이기는 어렵다. 성과가 확실한 이상, 독과점을 통해서 얼마든지 회복할 수 있었다.

무진은 유정, 혜진, 상원, 4인방, 태수, 예슬에게도 기회를 주었다.

탑을 본 선배와 친구들은 기겁했다. 아카데미에 떡하니 자리한 탑은 일종의 상징과 같았다. 반면, 새만금 연무장의 탑은 실제로 진입할 수 있었다.

“정말로 탑이야?”

“탑을 구현했을 줄은 몰랐는데.”

“아버지는 왜 말해 주지 않은 거야?”

“성좌의 탑이 실존했을 줄이야.”

그들도 탑의 이상 현상에 무진이 어떤 식으로든 개입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차원을 넘나들며 탑과 맞짱을 뜨고 왔을 줄은 몰랐다. 그러니 탑이 꼴 받아서 개지랄을 떨었겠지.

“잠깐, 버프를 받는 대신 성좌의 성향에 좌지우지된다면 탑을 정복할수록 너한테 복속되는 거잖아.”

“그런데?”

“우리가 네 부하도 아니고, 너무하는 거 아냐?”

“상원이는 안 한단다.”

무진이 곧바로 빼 버리자, 상원은 주저하지 않고 무릎을 꿇었다. 너무나 쉬운 상원이의 무릎이었다. 유정이의 식상한 표정이 이를 대변했다.

“충성을 바치겠나이다, 주군!”

“오냐.”

쓰담쓰담.

확실히 충신보다는 간신이 낫다. 상원이는 이 맛에 옆에 두었다. 예리한 구석은 있어도, 자존심은 하나도 없어서 아주 편하다. 쓸데없는 오기는 투귀망신을 당할 수 있었다. 이득이 되는 일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으며, 챙길 건 반드시 챙겨야 삶이 아쉽지 않았다.

“우리 간신은 내시가 딱인데.”

“……아니거든!!”

상원이는 조선시대에 태어났어야 했다.

연산군이 좋아할 상이다.

유정이가 폭소하며 박수 치는 광경이 대박이었다. 정말로 그리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싫다는데도 달라붙은 거머리는 화학적 거세가 아닌 물리적 거세를 해야 한다.

‘두고 봐!’

이를 악무는 상원이의 다짐에 무진은 실소했다. 신경 쓸 필요 없는 다짐이었다. 알다시피 상원이의 각오는 조루였다. 사람은 쉽게 변한다지만, 살아온 인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습관이 무서운 것이다.

‘어찌어찌 분배는 다 했네.’

친분에 따라서 순서대로 배분했다. 또한 단순히 탑에 오르는 것에만 목을 매지 않도록 히든피스를 숨겨 놓았다.

‘상원이가 먹는 건 아니겠지?’

그럼 나가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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