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4. 분배(3)
산하는 말문이 막혔다.
7개씩이 아니라, 7개밖에?
아들의 스케일은 예나 지금이나 알다가도 모르겠다. 혹여 다른 사람이 듣기라도 했다간 돌이 무더기로 날아오고도 남았다. 배가 불러서 요강에 똥을 싼다고 하지 않으면 다행이겠다.
잠깐.
속성이 주고 싶다고 해서 줄 수 있는 건가?
근원적인 문제를 잊고 말았다. 속성이란 각성력에 의해 정해진다고 알려졌다. 하다못해 중고 거래도 돈을 받는데, 공짜로 3단계까지 기본 옵션으로 넣어 주었다.
“각성 개화에 버프까지 걸어 주다니,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어서 이실직고하지 못해!”
“이제부터 말하려고 했어요.”
무진은 성좌의 선택, 실제로는 성좌의 시련을 위한 탑에 들어갔던 일을 설명했다. 현실에선 고작 1분에서 2분 사이지만, 탑은 시공간의 흐름이 단절되어 있었다.
성좌의 선택이 버프기로 불리는 연유는 속성의 상승도 있지만, 탑을 등반한 경험도 무시 못 했다. 기억에는 남아 있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최선의 방식을 찾도록 도와주었다.
헐!
성좌의 선택 후 아무도 알지 못했던 비사가 허무하게 밝혀졌다. 실제로 성좌를 만들기 위한 탑이 존재한다는 것도 놀라웠다.
한편으로 성좌가 인간과 마찬가지로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아들이 그동안 얘기한 대로 성좌는 버프기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건 그거고, 성좌한테 삥을 뜯어!!’
탑의 이상 현상의 원인도 밝혀졌다.
그 지랄을 떨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사고였다. 무너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만 해도 천운이 따랐다. 성좌들이 탑을 복원하기 위해 아등바등했을 걸 상기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아들한텐 성좌도 얄짤없구나!’
성좌를 두들겨 팬 후, 탑에 빅엿을 선사했다.
그뿐인가? 독까지 뿌려 놓고 왔다. 순순히 협조했다면 적당한 선에서 끝났을 텐데. 탑과 성좌의 오만함이 아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내 아들이기에 망정이지, 남의 아들이었으면 끔찍했다.
“차후에 성좌의 협조를 받기는 글렀구나.”
“아버지는 제게 의지하시면 됩니다.”
“아주 든든하다 못해 환장하겠군.”
“정신 방벽과 면역을 가르쳐 드릴게요. 제가 하는 대로만 고대로 따라 하시면 됩니다.”
“이놈아, 나도 절대경이라고!”
“그런데요?”
“이젠 암기식은 탈피할 때가 되지 않았니?”
무인으로서 절대경에 오르는 경우는 극소수다. 한국에서 절대경인 무인은 칠대가문의 가주나 대형 길드의 길드장 정도가 전부다. 절대경은 본인만의 길을 개척한 경지로, 타인이 개입할수록 한계가 정해져 버린다.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고려한다면 더는 나아가지 못한다.
“일반론일 뿐이고, 저한테는 아니에요.”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저만큼 강해지면 잠재력이 보이거든요. 아들의 안목을 믿으세요.”
“운명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고 하지 않느냐!”
“아버지는 오프로드로는 갈 필요 없어요. 제가 다져 놓은 아우토반을 타시면 돼요. 그래도 비교 대상이 없을 거예요.”
허세나 허언이 아님을 산하는 직감했다. 아들이 만든 길만 똑같이 따라가면 적수는커녕 앞에 1명뿐일 것이다.
‘망할, 절대경이 돼도 예전이랑 다르지가 않네!’
아들 눈에는 절대경이나 삼류나 별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아비를 물가에 내놓은 아이 취급하고 있었다.
아버지로서 오기가 발동했다.
‘본때를 보여 주마!’
산하는 아들이 정한 기준을 넘어서겠다고 다짐했다. 한데, 그마저도 아들의 손바닥 안일 것 같아서 불안하다.
후후후.
열심히 하라고 등 떠밀리는 심경이다.
***
크헐!
투귀는 망연자실했다. 천재지변을 정통으로 연거푸 맞은 기분이었다.
“이젠 제가 더 강합니다.”
“며칠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잖아!”
“아들을 잘 둔 덕입니다.”
“뒷담화를 알고 있거늘!”
“지나긴 사연에 연연하지 않습니다만.”
투귀는 두 노괴에게 드라마 시청 시간 빼고 매번 처맞아야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일어선 건 강해지고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고작 며칠 사이에 따라잡히다니 불합리한 현실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달라질 수가 있는 거냐고?”
“주입식 교육의 승리입니다.”
“헛소리! 네 경지가 절대경이야! 주입한다고 될 것 같으면 개나 소나 절대경에 오르지! 필시 하늘의 농간, 아니, 저 새끼의 농간이라고!”
“부모 앞에서 아들한테 새끼라니,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
“가재는 게 편이더냐!”
투귀는 지독한 악몽에서 깨고 싶었다. 어쩌면 무진이의 심상 구현일지도 모른다. 빌어먹게도 아무리 꼬집고, 때려도 악몽은 현실이 되어 있었다.
산하는 분명 벽을 넘었다.
이게 주입식으로 가능한 거였나?
보통은 안 된다.
저게 가능할 것 같으면 교본으로 만들어 놓지. 절대경만 해도 그런데, 그 이상이라면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고 보면 약간 이상하긴 했다.
‘기계처럼 정확했어!’
산하의 대응이 입력된 프로그래밍처럼 작동하는 듯했다. 당할 때는 정신이 없어서 망각했지만, 돌이켜 볼수록 의혹은 확신이 되어 갔다.
‘천병류 무한 연타를 보고 쳤다는 것도 이상하고!’
산하의 말이 농담이 아님을 실감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지만, 무진이 개입한 이상 부정해 봤자 소용없었다.
그래, 반응은 그렇다 쳐!
경지는 어떻게?
절대경이라고 해서 다 같은 절대경이 아닐진대. 하루아침에 두 노괴에 필적해 있었다. 노괴들의 황당한 표정이 현실을 증명했다. 그들도 산하의 성취에 놀라는 눈치였다.
“고유 속성은 대체 언제?”
“엊그제 생겼습니다.”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잖아!”
“그러게요.”
“그것도 저 녀석이 준 거라고?”
“그렇습니다.”
속성이 주고 싶다고 줄 수 있는 건가?
상식적인 접근 따위는 불허했다. 갈수록 허무맹랑, 허세허황의 극치였다.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절대 믿지 않을 텐데.
투귀는 무진을 돌아보았다.
“나도!”
“뭘요.”
“나도~~~!!”
“제 노예…… 사도가 되어야 하는데도요.”
“노예라고 한 거 같은데?”
“심상 구현입니다.”
무진은 투귀에게 성좌력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장단점이 극명했다. 장점은 아버지가 보여 주었고. 단점으론 성좌력을 나누어 준 성좌, 즉 무진에게 귀속된다. 이는 탑의 귀속력과 같은 성질이었다.
음.
광신도가 아니면 노예가 맞다.
성좌의 본성이 이럴 줄이야? 고유 속성을 계속 사용해야 하는지 걱정이 되었다.
사도가 되자니 꺼림칙한 건 사실이다. 무진을 믿고 있지만, 귀속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더욱이 지금까지 스스로 쌓아 올린 무력을 포기하고, 전적으로 무진에게 의존하게 된다. 무에 대한 자부심 강한 투귀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었다.
“망설이시네요.”
“당연하지 않느냐!”
인생이 걸려 있는 문제였다. 한번 결정하면 돌이킬 수가 없게 된다. 내 선택이 아닌, 무진의 명을 따라야 할 수도 있다. 지금도 잘 따르고 있지만, 자율 의지는 중요했다. 신께서 인간에게 내려 준 소중한 자산이었다.
투귀는 결국 귀속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산하와 무진은 천륜으로 이어진 부모 자식이니 사도가 된다 한들 상관없겠지만, 꼭두각시가 되고 싶진 않았다. 설령 그것이 옳은 방향일지라도, 본인의 선택이 되어야 했다.
지조를 지킨다.
무인으로서 낭만이었다.
“선택하겠다고?”
“당연하지!”
투귀가 선택을 망설이는 동안, 권왕과 지수가 찾아왔다. 연락을 보냈더니 공간이동을 해 왔다.
무진은 사부와 지수에게도 갖은 조건을 내세우고, 선택을 존중했었다. 투귀는 권왕과 지수가 고민이라도 할 줄 알았다.
일언반구도 없이 허락할 줄이야.
“그래서 기어이 제자의 노예가 되겠다고?”
“강해지는데 자존심 내세우는 거 아니다.”
“제자한테 종속되면 더는 강해질 수 없어!”
“리미트는 제한하지 않았잖아.”
“이런 미친!”
권왕이란 작자가 이래도 되나?
제자의 권유를 일절의 망설임도 없이 받고, 더블을 외쳤다. 속성을 하나 더 주겠다고 하니 좋아서 입이 귀에 걸렸다. 제자를 믿는 건지, 호구인지 모를 지경이다. 그만큼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건가?
“빙결을 얻었으니, 이젠 태극이로다!”
아무거나 갖다 붙이면 태극이냐!
빙결과 화염은 아무 상관이 없는 속성이었다. 반대 성향을 하나로 합치는 일이 쉬운 일도 아니고.
“양의심공이 딱이구나.”
“3단계예요.”
무진은 [양의심공]을 주었고, 사부는 무극이 되었다.
저게 왜 융합해서 빙결화염을 이루냐고? 눈앞에서 보고 있는 사이에 권왕은 벽을 허물고, 무공의 경지를 한 단계나 뛰어넘었다.
실시간으로 강해지고 있었다.
투귀는 눈 뜬 채로 코 베이는 심정이었다. 산하는 자신을 뛰어넘었고, 권왕은 저 멀리 달아났다. 무인의 자존심을 지켰더니, 격차가 더 벌어졌다. 금도끼, 은도끼 설화는 현실과는 맞지 않았다. 지조를 지키면 복을 받기는커녕 나만 도태되었다.
빌어먹을 현실.
짜증 나게도 아직 한 방 더 남았다.
“나는?”
“너는 이너피스를 줄게.”
지수에게 있어 [마음의 평온]은 광폭화의 극의를 여는 키워드였다. 성좌에게 받은 버프로 5단에 이르렀던 광폭화가 단숨에 6단의 극의에 도달했다. 이젠 광폭화가 되어도 흥분하거나 광기에 휘말리는 광년으로 변하진 않는다.
[현상유지]
지수에게 하나 더 주었다. 광폭화는 단숨에 모든 역량을 몇 배로 토해 내기에 지속 시간에 여유가 없다. 그래서 전투력을 유지해 주는 속성을 부여했다. 광폭화에 지속성을 더했으니, 역량을 몇 배로 증폭한 최적화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지수에게 꼭 필요했던 맞춤 속성이었다. 이렇게나 속속들이 다 알고 있다면, 궁합도 볼 필요가 없어졌다.
“지수야.”
“응.”
“개수작 부리지 마라.”
“사도가 된 이상, 이건 어쩔 수 없는 귀속 본능이라고. 난 이제부터 네 거야.”
“자율 의지를 준 걸로 아는데. 더욱이 귀속 명령을 내린 적도 없어.”
“없기는, 피 끓는 네 청춘을 속이지 마. 난 오늘 밤 각오가 되어 있어!”
사도화를 핑계로 대놓고 달라붙었다. 이래서 지수에게 성좌력을 나누어 줄지 망설였다. 중국에서 신혼부부 컨셉 이후로, 틈만 나면 들이댔다.
하아.
한숨을 내쉬며 사부에게 눈짓을 주었건만.
할아비란 작자의 행태가 참.
파이팅은 아니지 않나?
무진은 사도화에 자율 의지를 거래 조건으로 내세웠다. 성좌력을 가졌지만, 성좌가 아니기에 가능했다. 음주는 했지만, 음주 운전은 아닌 것처럼.
대신, 성좌와 사도의 관계라 어디에 있든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다. 내비게이션 용도로 사도화만 한 계약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