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2. 분배(1)
-1분 넘었지?
-2분도 넘은 거 같은데.
-왜 넘어?
-버프를 얼마나 받으려고 저렇게 오래 있지?
-잠재력도 높다는 뜻이잖아.
-인생 참, 되는 놈만 되는구나!
-몰랐냐, 인생은 운빨이야.
2분이 넘자 곳곳에서 웅성거렸다. 이례적인 경우로 2분이 넘는 적은 단연코 없었다. 하물며 3분에 육박하고 있었다.
두드드드!
우우우웅!
갑자기 탑이 진동하며 마력을 분출했다. 마력 돌풍이 거세게 휘몰아치며 일대를 휩쓸었다.
“사람들 대피시키고, 모두 물러서!”
심상치 않은 마력 폭풍이었다. 돌연한 사태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외부의 침입이나 던전의 오픈으로 탑의 마력에 영향을 미쳤다면 모를까.
휘이이이잉!
아카데미의 위험 대비 시스템을 가동해 탑의 마력을 안정화하는 작업에 들어갔었다. 그런데도 마력 폭풍은 잠잠해지기는커녕 거세졌다.
교장은 조금의 위험도 용납하지 않았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생도와 관람객을 대피시키고 결계를 발동했다.
하아!
교장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탑이 별안간 미쳐서 날뛰는 이율 다른 곳에서 찾아 봤자 무의미했다. 들어가기 전에 무진이 한 말이 걸렸다.
‘이놈의 자식은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구나!’
이렇게 말하면 분명 사전 고지했다고 반박할 놈이었다.
생도의 인생에 변곡점이 될 잔칫날을 초상집으로 만들고서도, 자기는 잘못 없다고 끝까지 우기겠지.
‘탑에서 뭘 어떻게 해야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거야?’
탓을 하려고 해도 원인 제공자만 있을 뿐, 돌아가는 형국을 아무도 모른다. 탑에 올랐는지, 들어갔는지, 공략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어야 물어보지.
다들 버프만 주고 끝나는 줄 알았거늘, 숨겨진 내막이 있는 듯했다.
여하튼 무진은 탑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각성 시간만 해도 세계최고기록을 가뿐히 경신했으니 두고두고 회자할 만했다. 애초에 싹이 다르긴 해도, 정말 보면 볼수록 상상을 초월한다. 어떻게 된 녀석이 끊임없이 매번 놀래키는지, 심층 연구 대상이었다.
‘정말로 뭔가가 있기는 한 건가?’
인간은 성좌를 버프기 정도로 보겠지만, 성과의 입장도 들어 봐야 했다. 마냥 퍼 주기만 한다면 그것도 이상한 관계였다.
세상천지에 조건 없이 베푸는 예는 부모와 자식밖에 없다. 그마저도 천륜을 배반하고 패륜을 저지르곤 하는데. 생판 모르는 성좌가 인간을 위해 능력을 공짜로 내어 준다? 누가 봐도 이상하긴 했다. 이해득실을 살펴본다면 이득이 있어야 하는 관계였다.
근원적인 의심이 들 만도 하겠지만, 성좌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초월자였다. 인외를 인간의 잣대로 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각성자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성좌의 버프를 받아들였다. 딱히 부작용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여태 잘 살아왔으니 간과한 것이다.
‘일단 다 치워 놓기는 했는데.’
교장이 신속히 반응한 건 불필요한 희생을 막고, 무진이 나왔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각성 기록을 뛰어넘는 사태가 발생한 이상, 세계의 이목이 쏠릴 수 있었다. 다크니스가 관여한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이럴 줄 알고, 영상 장치를 통제하라고 했구나.’
변수를 제어하는 무진의 통찰력은 실로 놀라웠다. 무력이야 천부적이더라도. 사태를 분석하여 예측하는 능력은 별개였다. 천재가 실수를 통해 경험과 연륜을 쌓았을 때나 가능했다. 도대체 평소에 어떤 생활을 하기에 이토록 완벽한지 놀라울 따름이다.
이렇게까지 했으니, 나중에 문제가 될 린 없다. 조작이라고 하기엔 마력 폭풍에 의한 작동 불능으로 처리하면 그만이었다.
그나저나 탑의 상태가 정상적이지 않았다. 혹여, 탑이 박살 나기라도 한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다. 각 나라의 국력은 탑의 존재 여부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휘이이이잉, 쩌저저적!
균열이 발생하며 탑이 흔들렸다. 와장창!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스쳤다.
다른 놈도 아니고, 무진이라면.
화려하다 못해 복장 터질 일을 대수롭지 않게 일으켰던 전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적당히 좀 하거라.”
“그러려고요.”
“……너 언제 온 거야?”
“방금 왔어요.”
이토록 요란한 광경을 만들고서 본인은 은근슬쩍 몰래 나왔다. 탑에서 나오고 싶다고 해서 나올 순 없다지만, 저 평온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걱정을 왜 했나 싶다.
“또 뭔 짓을 한 게야?”
“또라니요? 말씀의 요지가 굉장히 불손하시네요. 혹, 듣고 싶지 않은 건가요?”
“탑에 진짜로 뭔가 있구나!”
“몰라요.”
탑의 비밀을 푼 역사적인 날이거늘.
몰라요~~~!
천인공노할 만행이었다.
교장은 무진의 의도대로 끌려다니고 싶지 않았다. 알고는 싶으나, 몰라도 사는 데 지장은 없다.
“성좌들이 참, 사도는 또 어떻고? 시스템의 비밀은 대단했지.”
“누구랑 말하는 거냐?”
“혼잣말이에요.”
“왜 다 들리게 말해.”
이 악마 같은 녀석은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저런 말을 듣고 어떻게 가만히 있냐고? 게다가 왠지 모르게 무진의 말을 거역하기 힘들었다.
“저 탑은 이미지니까, 조금 부서져도 괜찮죠?”
“도대체 뭔 짓을 한 거야?”
조금은커녕 대형 사고였다.
탑이 인터넷처럼 연동한다면, 전 지구의 탑이 위험해질 수 있는 재앙이었다.
“갑자기 현기증이. 저는 교장 선생님만 믿고 쓰러집니다.”
“……이 미친놈이!”
이딴 짓을 하고, 쓰러지겠다고
털썩!
무진이 기절했다.
야, 이 개새끼야!
교장의 무소음 외침이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소리를 칠 수도 없는, 안타깝고 답답한 현실이었다.
***
동시다발적인 탑의 기현상.
각국에선 난리가 났었다. 마지막에 벌어진 기현상은 국가적인 재난 사태였다. 탑에 균열이 생기고, 축이 기울어지면서 피사의 사탑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무너져 버리진 않을까 노심초사했다.
탑의 유무가 각성자의 스텟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다. 세계는 느닷없이 벌어진 동시다발적인 재난을 파악하기 위해서 애를 썼다.
천만다행으로 3일이 지나자 탑은 파문과 균열을 멈추었다. 원래 상태로 돌아가진 않았어도, 악화하는 불상사는 피했다. 그러나 탑에 문제가 있었단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다음 성좌의 선택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성좌의 선택으로 버프를 받고, 못 받고의 차이는 크다. 그러나 탑에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어린 생도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생도의 일생과 목숨 중 선택의 기로가 되었다. 하지 말라고도, 하라고도 못 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이다.
생도를 둔 부모는 정부에 인과를 분명히 밝혀 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확실하지 않으면 다음 선거는 국물도 없게 생겼다.
정부로서도 난감했다.
탑의 모든 관리와 권한은 아카데미에 전적으로 일임해 놓았다. 인과를 정확히 밝히려면 탑 안으로 들어가 보기라도 해야 하는데, 알아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나저나 폭군은 어떻게 된 거야?
-탑의 이상 현상으로 수면에서 깨지 못하고 있어.
-아카데미의 잠자는 폭군이 됐네.
-혹시, 권후가 키스한 후에 일어나는 거 아냐?
-나는 혀 안 쓰면 키스로 안 친다.
-이 미친 모태솔로 새끼들이 아무 말이나 지껄이네! 방구석에 처박혀 있지만 말고 제발 밖으로 나가서 사람이라도 만나라.
-도라이들 많네, 애가 마나 폭풍에 휘말려서 쓰러졌는데 농담이 나오냐!
-꼭 그러다 사람이 죽으면 자긴 착한 척하더라.
-솔직히 죽든 말든 사람들은 관심 없을걸. 그냥 까고 싶은 거지.
건강에는 이상이 없지만, 수면 상태가 지속되었다. 아카데미 역사에 남을 기록임에도, 부적응자로 취급받게 되었다.
언론은 탑의 이상 징후에 관해서만 매일 속보로 내보내고 있었다. 괜히 탑의 부작용으로 비치면 더더욱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정부로서도 껄끄러운 사태였다.
성좌의 시련에서 탑의 방해로 추방당한 후 무진은 성좌력을 사용할 방안을 고심했다. 탑에 있을 때와 달리 성좌력의 개화가 10%로 줄어들었다. 한계를 벗어나려고 하면 흐름에 제한을 받는다.
탑과 현세의 흐름이 다른 것이다. 전체적으로 10%의 버프가 작지는 않지만, 100%를 가지고도 활용 못 하는 건 낭비였다.
시스템에 대한 저항은 무진에게도 버거웠다. 성좌력을 개개인의 자아로 분리하여 사용해 봤지만, 꼼수는 통하지 않았다. 이런 걸 보면 탑은 그나마 인간적이었다.
더욱이 강하게 저항할수록 현세에 파격과 균열을 일으켰다. 자칫 던전이 우후죽순으로 열리며 감당하지 못할 적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 이상의 접근은 세계의 멸망을 초래한다는 경고처럼.
‘탑의 흐름을 복사해 던전처럼 영역 결계를 펼친다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현 상태에서 10%의 버프만 해도 적수는 없다고 자부한다. 그럼에도 매달리는 연유는 탑과 고위 성자가 한 말 때문이었다.
‘배덕자라.’
당시에는 어떻게든 보내려고 악담을 퍼부은 줄 알았는데, 흘려듣기엔 빈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배덕자가 다크니스와 연관된 강림자라면 인과가 들어맞는다.
가정이긴 해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탑과 고위 성좌가 동귀어진을 언급한 이상 확실한 준비를 해야 했다.
특히 주변 강화는 필수였다. 최소한 강림자 외에는 당하지 않도록 해야 했다.
‘감이 좋아진 게 꼭 좋은 것도 아니군.’
성좌력을 분산하여 탑에 복속되지 않았을 뿐, 능력 자체는 고위 성좌를 넘어섰다. 그래서일까? 걱정이 태산이다. 이전에 느껴지지 않았던 예지력이 생겼다.
장구용 선배의 강신령과 공조한다면 미래의 윤곽을 좀 더 확실하게 볼 수 있겠지.
물론, 예지를 맹신하진 않았다. 운명은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탑에서 그 난리를 쳤으니, 분명 각성자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성좌력은 성좌에게 있어 근원이나 다름이 없다. 1성을 쌓기 위한 세월을 고려하면 분통이 터지는 일이다. 하루아침에 고위 성좌에서 하위 성좌가 되었으니 얼마나 억울하겠어.
처음부터 없었던 것과 있다가 없어진 차이는 의외로 컸다. 사람이든 성좌든 익숙함에 체감하지 못할 뿐, 고위 성좌일수록 과거의 영광에 목매기 마련이다.
단순히 성좌력을 늘리기 위해서 희생의 가호를 걸어 달라고 요청하지 않았다. 이제 성좌는 성좌력을 얻기 위해서 더욱 치열한 사투를 벌여야 했다.
여기에.
무진은 자아의 일부를 탑에 심어 놓았다. 당장은 의식하지 않았어도, 자아는 점차 범위를 넓히게 될 것이다. 계획대로 된다면 차후 성좌를 이용해 각성자를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