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320화 (321/374)

320. 성좌의 시련(3)

승패는 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놈은 평범한 신입 성좌가 아니었다. 비겁한 선배들이 고인물 놀이는커녕 쥐 죽은 듯이 숨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자기들도 휘말릴까 봐 몸을 사렸다.

이게 어딜 봐서 신입이냐고? 신입인 줄 갈궜더니 황제의 언더커버였다던 썰 풀어 본다.

퍼퍼퍼퍼퍽!

무진은 신입으로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였다. 선배도 이젠 만족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조심스럽게 주먹을 거두었다.

스윽.

아니라면 신입으로서 초심을 계속 맛보게 될 테지만, 마왕과는 얼마나 다른지 알고 싶기도 했다.

“선배, 좋게 말할 때 내놓으세요.”

“……뭘?”

언제 좋게 말했던 거야? 힐을 걸어 주면 다냐고. 이런 게 좋은 거면 안 좋은 건 대체 어떤 거야? 상상만 했는데도 식은땀으로 전신을 도배할 지경이다.

여하튼 뭘 달라는지는 알려 줘야지.

“저야 모르죠.”

“……?”

자기도 모르면서 대뜸 내놓으란다.

노상강도도 이런 식으론 장사하지 않는다. 최소한 돈이라도 빼앗겠다는 목적의식은 뚜렷했다.

네르가나도 현세에서 제법 많은 경험을 했다고 자부했지만, 이런 상종 못 할 엉망진창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없다고 해서 통할 것 같지는 않았다.

센터 다 까이는 수가 있었다.

“참고로 저는 맘에 안 드는 선물은 받지 않습니다.”

“……?”

아무거나 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보다 무시무시했다. 살면서 처음 당하는 막무가내였다. 꼭 내 맘에 드는 걸 가지고야 말겠다는 의사가 확고했다.

네르가나로선 뭘 줘야 할지 막막해졌다. 아무거나 줬다가 맘에 안 들면 반품이었다. 더욱이 얌전히 반품하면 그나마 다행이지, 상대는 최소한이 개진상이었다. 예를 들면 유통기한 1년 지난 우유를 상했다고 들고 와서 반품하는.

망설임이 길어졌을까.

“성좌도 죽는지 궁금하네요. 누가 좀 알려 줬으면 좋겠지만, 초면에 물어보기도 그렇고.”

“다 줄게!”

“줄게?”

“줄게요!”

네르가나는 무서운 성좌가 탄생했음을 직감했다. 성좌가 죽는지 궁금하다고? 그게 소멸력에 뒈질 뻔한 성좌 앞에서 할 소린가? 성좌의 탈을 벗어나려고 노력하지만, 그건 신이 되기 위해서지 소멸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예의는 바릅니다.”

“……고맙습니다!”

선배 대접이나 해 주고서 삥을 뜯든가?

전임자들도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고. 50층의 예법을 알려 주고 싶지만, 다른 말을 하는 순간 이놈의 궁금증이 해소될지도 몰랐다.

-카르피스의 요초(妖草)

네르가나는 아공간에서 보물을 꺼내며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선배들에게 들키지 않고 보물을 지키기란 수월치 않았다. 100년만 더 있으면 완성 단계에 들어 성좌력을 올릴 수 있는 보물이었다. 2900년을 기다렸거늘, 엉뚱한 놈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아삭아삭!

그걸 받자마자 씹어 먹어? 연금을 하여 단으로 완성해야 하거늘, 네르가나는 이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놈을 저주했다.

응?

왜 안 가?

남의 보물을 한입에 꿀꺽했으면 이젠 가야 하잖아. 그게 상식이고, 기본이거늘. 세월이 많이 흘러서 이젠 진리가 바뀌었나?

“49층의 마왕을 어떻게 이겼습니까?”

“이겨? 그걸 어떻게 이겨? 무한대의 마물을 처리하고 일정 숫자에 이르면 50층에 이르는 자격이 생기는 거라고!”

“그런데도 마왕보단 강해졌네요.”

“그거야 성좌력이 있으니…… 설마?”

“희생의 가호를 부탁드립니다. 마왕도 7할을 스스로 바쳤습니다.”

“……뭐?”

그 적혈의 마왕이?

탑의 마왕은 약하지 않았다. 그는 능히 성좌에 비견이 된다. 어느 세계의 마왕과 견주어도 대적할 자가 없는, 능히 대마왕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성좌의 탑에 얽매여 있는 성좌를 구별하는 장치로 여긴다면 곤란했다.

그런 만큼 오만하고 성격도 매우 더러웠다.

네르가나도 정해진 숫자를 정리하고서야 50층에 겨우 올라올 수 있었다. 5000년이 지났음에도 그 당시 마왕의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런 건방진 마왕이 뭘 줘? 자신의 가호를 3분지 1도 아니고, 7할이나 정성을 다해서 줬다고?

솔직히 있을 수 없는 일이어야 했다. 문제는 소멸력을 경험해 보니 또 신뢰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점이다.

“……싫다면?”

“싫어?”

급정색하더니, 말투부터 바뀌었다. 지금처럼 선배 대접해 줄 때 내주지 않으면 궁금증을 해소하겠다는 협박이었다.

“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선배님. 다른 분들에게도 저는 공평합니다. 그러니 경쟁에서 낙오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고인물들의 7할을 빼앗겠다고?

그걸 공평하다고 해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왜 위안이 되고 지랄인 거냐고!

훗!

무진은 미소를 지었다.

성좌나 인간이나 다르지 않았다. 모두가 못살면 참을 수 있지만, 비슷한 줄 알았는데 갑자기 잘되면 배가 아픈 법이다. 더욱이 무조건 7할이면 하급 성좌일수록 이득이었다. 비율만 같을 뿐, 전혀 같지 않았다. 상급 성좌로선 불평등의 화신이었다.

‘젠장, 왜 즐겁지?’

여태 삥을 뜯겼던 네르가나로선 나쁘지 않게 들렸다. 하급의 7할과 상급의 7할은 어마어마한 갭이 있었다. 다시 회복한다고 해도 그 차이를 메꾸기가 수월치 않았다. 초반에 수업 진도가 빨라도, 상급으로 갈수록 느려지는 이치였다.

“다음 누굽니까?”

“굳이 찾을 필욘 없어요. 제가 희생의 가호를 주는 즉시 초급 성좌들이 이때다 싶어서 우르르! 달려들 테니까.”

“호오, 성좌력은 민감하군요.”

“성좌라고 해도 결국 피조물이에요. 누구 하나 잘되는 꼴을 못 보거든요. 일례로 속성이 다르면 흡수하기 어려운데도요.”

수양과 계약으로만 단계를 오를 수 있도록 정한 것이다. 엉성하긴 한데, 시스템적으론 나쁘지 않았다. 남의 성좌력을 빼앗으면 성좌력의 총량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이 속성에 따른 차별이 존재했다. 깨달음을 단계별로 정해서 등급을 매길 수 있다니, 그것도 나름 신선하다.

우르르르!

곧 초급 선인들이 우르르! 몰렸다.

네르가나의 패배를 모두에게 알린 상태였다. 그들도 눈깔이 달렸으니 개인플레이론 안 된다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어느 세계를 막론하고 다구리는 정석이었다. 혼자 잘난 꼴을 두고 보지 않는다.

“네 이놈! 비록 네르가나가 멍청하고 아둔하기는 하나 우리의 소중한 따까리…… 막내이니라!”

“감히 하늘 같은 선배를 능욕한 네놈에게 50층의 공손한 예의를 가르쳐 주겠노라!”

“그러니 이제부터 주는 벌을 엄히 달게 받도록!”

평소엔 반겨 주기는커녕 뭐라도 뜯어먹을 게 없나 희번덕거리는 새끼들의 뻔뻔한 태도에 네르가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거야 너희들 사정이고.

무진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일부러 찾아가는 수고를 덜었다. 초급 성좌가 전부 모이자 일보를 밟았다.

우웅!

지면과 발바닥의 거리는 20cm 남짓.

세게 밟지도, 빠르지도 않았다.

일대가 압력에 짓밟히며 무진의 패도를 깨닫는다.

철퍼덕!

어마어마한 중력이 발생했다. 멀쩡히 서 있는 걸 용납하지 않는, 항거불능의 권능이었다.

크으으윽!

일어설 수가 없다.

아니, 일어서는 것 자체를 불허했다.

패도군림.

***

보통은 단계 내에서 최강임을 확인해도 바로 윗단계, 높이 잡아도 2단계가 되면 슬슬 느려져야 했다. 같은 속도를 유지하려면 단계에 걸맞은 힘을 보여 줘야 한다.

-초급 돌파.

-중급 돌파.

……등등.

되레 시간이 걸리기는커녕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어느새 50층의 최상급 단계에 도달하기 직전이었다.

탑이 생긴 유사 이래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 단계를 초월하려면 최소 1만 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더욱이 단계가 높아질수록 시간도 배수로 늘어난다.

초월급 바로 아래라고 해도 그 수는 24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이야말로 탑을 지탱하는 기둥이나 다름이 없다. 초월급은 신이 되기 위해서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탑의 실무자 중에서도 고위 간부라고 보면 된다.

24명의 각기 다른 속성의 성좌들.

그들은 원래 한자리에 모이지 않는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세계와 차원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그런 그들의 표정에 경악이 새겨졌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대체 저 무식한 성좌력은 뭐야?”

“얼마나 많은 성좌력을 흡수한 거냐?”

“탑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라고!”

그들이 전부 모인 연유였다.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 와도 여기까지 오려면 최소 수십만 년이 걸려야 했다. 그뿐인가. 단계마다 얻을 수 있는 성좌력은 한계가 있었다. 일정 성좌력을 얻으면 반드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탑의 시스템이 발동했다.

어째서 탑이 잠잠하냐고?

우리 때는 이렇지 않았잖아.

차별이냐?

놈의 성좌력은 최상급조차 아득히 넘어서고 있었다. 탑은 편법을 용인할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들이 알고 있었던 상식을 벗어나는 현실이었다.

이런 게 되는 거였으면 자신들도 얌전히 다음 단계를 수락하지 않았다. 더 많은 성좌력을 얻어서 초월급으로 올라갔지.

더더욱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탑의 규율이고 나발이고, 신입이 고작 하루 만에 여기까지 오는 게 말이 되냐고? 수십만 년을 살아온 자신들은 뭐가 되냐고!

“어떻게 성좌력을 탈탈 털 수가 있는 거지?”

“저만큼 모였으면 곧바로 초월급으로 가야 하지 않나!”

“단계를 뛰어넘는 성좌력인데도 어째서?”

“분명 꼼수를 부렸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도저히 말이 되지 않아.”

방도를 알고는 싶지만, 차마 물어볼 순 없다.

여하튼 저 새끼는 딱 다음 단계를 넘어가기 직전 수위를 조절하고 있었다. 그 말은 자신들의 성좌력도 안전하지 않다는 의미가 되었다. 놈의 만행을 반드시 단죄해야 했다. 신이 되기 위해서 무한의 세월을 버티고 버텼거늘, 그걸 홀라당 갖다 바칠 진정한 성좌는 없었다.

“과거의 그놈이 생각나는군.”

“배덕자에 이어 또 이상한 놈이 나타났어.”

“이놈이 더 위험해.”

“선택을 받아들여도 부족한 판국에 우릴 잡아먹으려는 놈이야. 규칙을 어긴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한다고.”

“탑의 존폐를 위태롭게 한 불순분자는 용납할 수 없어.”

성좌는 각성자에게 속성 버프를 주고, 성좌력을 얻는다. 기브 앤 테이크의 정석처럼 보이나. 등급이 낮을수록 성좌력의 수치는 극히 미세했다. 거의 오르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잠재력이 높은 각성자와 계약을 맺을수록 성좌력에 영향을 크게 미친다.

그렇다면 사도화는 어떨까?

사도화는 스텟의 증폭과 신앙을 얻지만, 성좌력을 소모하는 형태였다. 사도를 무분별하게 늘릴수록 성좌력을 얻는 대비 소모가 컸다. 자동차로 따지면 연비가 좋지 않은 기름 먹는 하마였다.

그런데도 사도를 두는 것은 선도의 목적이 크고, 타 성좌의 방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지금이야 공적 처리하기 위해 모였지만, 서로를 신뢰하지 않았다.

“예전의 일은 잊지 마시오.”

“그때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싹을 제거해야 해.”

“그에 더해 성좌의 위대함을 보여 주어야 하네.”

놈은 혼자지만, 우린 24성이나 되었다.

그들은 각기 차원에서 신의 권능에 맞먹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현세에 개입하려면 성좌력에 제한이 걸리긴 해도.

또한, 탑이야말로 성좌력을 얻는 가장 최적화된 루트였다. 탑을 위태롭게 하는 불협화음은 말살해야 한다.

대의에 동참한 성좌들은 비록 탑의 법칙을 벗어난 규격 외라도 살아남지 못하리라 자신했다.

두둥!

무진이 권능을 개방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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