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318화 (319/374)

318. 성좌의 시련(1)

-성좌의 탑에 도전하겠는가?

크기와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탑의 전언이 들렸다. 시험자의 의지로는 거스르기 힘든 권능이었다. 선택을 구하는 물음임에도 Yes 외에는 받지 않겠다는 항거 불능의 의지가 담겼다.

생도의 정신력을 시험해 보려는 의도라고 하기엔 과하다. 즉답할수록 스피릿의 한계가 자연스럽게 스텟으로 구현된다.

“탑의 자아? 아니면 시스템?”

-허락되지 않은 물음이다. 진실을 알고 싶다면 탑을 등반하라.

컴퓨터에 입력된 명령어처럼 딱딱하게 들렸다. 허락되든, 안 되든 답을 하진 않았다.

무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의적으로 해석했다. 탑의 의도대로 따라 줄 의무는 없다.

“성좌의 시련이 아니라, 성좌가 되기 위한 시련이구나. 탑은 초월한 의지, 우주적 자아 그도 아니면 창조신쯤 되겠고. 꼼수가 있어 보이는데. 마치 양산품을 찍어 내는 대량생산 시스템 같단 말이야. 성좌력이 시스템의 동력원이라면, 성좌도 창조자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의 프로그램이라고 봐야겠지.”

-선택하라.

스스로 궁구한 답조차 확인하지 않는다. 그 자체로 무진은 원하는 답의 윤곽을 일부 알아냈다. 부정하지 않는 것부터가 답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기억을 지우는 이유구나.’

당장은 탑의 전언에 함몰되겠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답을 구할 수 있다. 그럼에도 탑의 진실을 모른다. 답의 유무와 관계없이 탑은 기억을 지워 버리면 그만이었다.

‘초월 의지라고 봐야겠어.’

각성자의 영혼은 일반인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강력한 정신 방벽을 지녀 사특한 수는 어지간해선 통하지 않는다. 하물며 수많은 각성자 중에서도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자들이 기억 삭제에 순순히 응했을 리 만무할 테고.

그런데도 부작용은커녕 저항 자체를 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 탑은 성좌를 초월한 신이라도 되는 모양이다. 그렇다는 말은 성좌들 역시도 탑의 부속품으로서 제어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어쨌든 올라가 보지 않으면 확신은 금물이겠지.’

확답에 가깝다고 자신하지만, 현실이 어디 예상대로만 흘러가겠는가. 돌발적인 변수는 어떤 형태로든 일어날 수 있었다. 게다가 성좌의 탑은 성좌가 되기 위한 시련이라고 했다.

그 말을 되돌려 보면.

‘강해질 기회를 마다할 순 없지.’

여태 적수라 여길 만한 상대를 만나 보지 못했다. 직감이긴 하나, 앞으로도 그런다는 보장은 하기 힘들다.

-탑의 도전을 시작한다.

***

-1층 돌파.

……

-10층 돌파.

……

-20층 돌파.

……

-30층 돌파.

……

현재 무진은 49층에 있었다.

49층은 악의 시험대로, 마계의 현신이었다. 수를 셀 수 없이 많은 마족이 거센 파도처럼 밀려왔었다. 보기만 해도 토가 나오는 숫자였다. 더더군다나 하급 마족조차 기를 유형화하여 다루고, 상급 이상은 강기를 우습게 형성했다.

그야말로 패배를 모르는 무한의 군단이었다.

꺼어어억!

부르르르!

무진에게 멱살이 잡힌 존재.

인간의 형체와는 거리가 멀었다. 용암처럼 붉은 육신에 칼로 갈아 놓은 발톱 같은 이빨과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거대한 두 뿔을 지니고 있었다.

49층의 지배자.

적혈의 마왕, 베론타스.

마계를 다스리는 최강자였었다. 멱살이 잡힌 채 사라진 하체를 바동거리기 전까지는.

현실을 불신하는 베론타스였다.

“……네놈은 뭐냐?”

“도전자.”

누가 그걸 몰라서 묻나?

베론타스는 믿고 싶지 않았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하늘과 마주한 마왕성의 대전 상석에 앉아 턱을 괴며 거드름을 피우고 있었다. 모처럼 49층에 도전자가 나타났다는 알람에도 시큰둥했다. 그래 봤자 겨우 도달한 자들이 태반이었기 때문이다.

무한대의 마물 군단을 뚫고서 마왕성에 도달하기란 불가능했다. 일정 수를 줄이면 전언을 보내 성취를 판단할 뿐이다. 이번에도 다른 때와 다르지 않으리라 보고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었거늘.

웬걸.

왕좌에 앉아 있었던 베론타스는 마왕성과 함께 하체가 날아가 버렸다. 무례한 도전자였다. 주인에게 왔다고 신호도 보내지 않았다. 다짜고짜 포격하여 하의 상실로 만드는 것으로도 부족해 마사불성(魔事不省)으로 두들겨 팼다.

사내로서 하체를 잃은 거대한 상실감을 인지하기도 전에 마정사정(魔情事情)없이 밟혔다.

정신을 차렸을 땐, 멱살이 잡힌 후였다.

명색이 마왕이 아무것도 못 한 채 하체를 잃고, 밟히고, 두들겨 맞고 혼절 후 깨어났다.

탑을 등반하는 도전자 중에 이런 경우가 있었나?

무한의 마물은 깨라고 있는 테스트가 아니다. 그저 숫자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는, 잠재력을 확인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였다.

그러고 보니 재생이 안 되네.

‘소멸력을 쓴다고?’

권능의 영역, 그 안에서도 최고 단계에 이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무한대 마물의 약점이다. 죽여 봤자, 다시 살아나기에 해치운 숫자만큼 늘어날 뿐이거늘.

그렇다고 쳐도.

남의 집에 들어왔으면 자기소개부터 먼저 하는 게 예의 아닌가? 얼굴을 마주하기는커녕 시작부터 소멸력을 쓰고, 집주인을 의식 잃을 때까지 패는 건 무슨 경우야? 주인으로서 대접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적혈의 마왕이 피의 권능은 써 보지도 못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권역을 발동해서 회복 자체를 억제하고 있었다.

“내가 피의 권능을 썼다면 이렇게 당하지 않았다!”

“그렇겠지.”

무진은 순순히 인정해 주었다. 피의 권능이 정확히 뭔지는 알 수 없지만, 마왕의 권능을 경시하진 않는다. 무한적으로 늘어나는 마물도, 시간이 지나면 수복할 테고.

그저 시간 낭비에 다소 귀찮았을 뿐이다.

부들부들!

인정받았지만, 베론타스는 억장이 무너졌다. 그러면 뭐 하냐고? 말만 할 수 있을 뿐, 권역은 수갑처럼 단단히 채워진 상태였다. 심신을 완벽히 구속하여 꼼짝달싹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완전한 무방비, 능히 비폭력의 마왕이었다.

“……풀어 주고나 그딴 소리를 하라고!”

“풀어 주면 뭘 줄 건데?”

“이미 목표는 달성하지 않았느냐!”

“안 간다.”

49층의 퀘스트는 마물의 수를 줄여 마왕의 인정을 받는 것이다. 마왕이 인정할수록 클리어 등급이 올라간다. 목표치는 달성한 거나 다름이 없거늘.

왜 안가?

가라고 제발!

마계는 인간이 살기에 아늑하지 않았다. 하루도 못 견디고 도망쳐야 마땅했다. 그런데 지나치게 담담하다. 이놈하고 무한의 시간을 함께한다고 상상하자 소름이 돋았다.

하루를 살아도 편하게 살아야지, 1분도 같이 있기 싫다.

“무엇을 주면 되겠느냐?”

“어쭈, 선택하게?”

가지고 있는 것 달라는 의미였다.

베론타스는 자신보다 악질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적혈의 마왕으로서 탑의 49층을 지배하는 군주이거늘. 근본 없는 양아치한테 걸려 탈탈 털리기 직전이었다.

“……난 적혈의 마왕…… 컥!”

“그럴 줄 알았어.”

40층부터는 다들 자존심이 세더라고.

싸워서 진 주제에 뭐가 그리 당당한지.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꼴을 보기 싫어서 40층부터는 퀘스트의 달성보다 대빵부터 조지고 봤다. 대화를 해 봤자 오만방자한 연놈들이라, 교장의 훈화처럼 서론이 길었다.

퍽!

두들기고.

뿌지직!

짓밟고.

죽지 않도록 소멸력을 조절하면서 재생 버튼을 눌러 주었다. 심상 구현으로 시공간의 제약마저 없애 버렸기에 불멸 지옥을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었다.

크아아아아악!

소름 돋는 고옥타브의 비명이 쩌렁쩌렁하다. 운이 좋아 살아남은 마물들은 마왕의 비명에 기겁해 최대한 멀리 도망쳤다.

“……줄게!!!”

“줄게? 말 짧다.”

“……줄게요!”

“그렇지.”

나이의 많고 적음은 초면에 중요하지 않았다. 주제에 걸맞지 않게 오만한 것들은 자존감부터 완전히 부숴 버릴 필요가 있었다. 그래야 본인의 위치를 망각하지 않고, 눈깔 착하게 뜨고 공손히 재물을 바친다.

“진실의 맹약부터 하자.”

“……예?”

“숨기다 걸리면 알지?”

“……알겠습니다!”

권능으로 맺은 맹약.

속이는 순간 환생은커녕 소멸을 각오해야 했다. 베론타스의 인생 최악의 계약이었다. 그러나 탑의 시간은 도전자의 의사에 달려 있었다. 도전을 포기하지 않으면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맹약을 하면 탈탈 털리고, 하지 않으면 억겁의 고통에 시달리고. 베론타스로선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지독한 함정에 걸렸다.

‘층마다 전부 이런 식으로 깨고 왔구나!’

아래층의 결과는 보지 않아도 명확했다. 미션은 듣지도 않고 엔딩부터 봤을 테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인과였다.

탑에 오르는 자의 평균치는 20층에 불과했다. 30층만 해도 강자의 반열에 오르지 않고서는 닿지도 못할 영역이었다. 하물며 40층은 한계를 넘어선 초월자만이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49층이야말로 성좌로 선택받을 시험 무대였다.

그나마 올라온 극소수도 49층에서 좌절하고 물러나거나 일부만이 위로 올라갈 자격을 얻었다.

성좌가 되는 최종 관문의 수문장이나 다름이 없거늘. 이게 대체 무슨 꼴이란 말인가?

이제는 소멸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한편으로 성좌에 앉지도 않고서 권능을 이렇게까지 다루는 것부터가 상식적이지 않았다.

“빨갱아, 상념이 길다.”

“가져옵니다!”

베론타스는 가진 것 전부를 내려놓았다.

그 앞에서 품평하듯 필요한 것만 고르고 있는 무진을 보고 있자니 억장이 무너졌다. 수만 년을 살아오며 어렵게 수집한 소장품들이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인정이라도 받으면 모를까, 눈깔이 병신이냐고 욕까지 먹었다.

“너, 아래층만 못하다.”

“더는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쳇, 진짜네. 희생의 가호나 해 줘.”

“……그건!”

“7할만 받을게.”

너무나 당연하게 ‘해 줘’를 연발했다. 누가 보면 대수롭지 않은 줄 알겠으나, 희생의 가호는 본인의 스텟을 희생해서 상대의 스텟을 올려 주는 수법이었다. 등가교환 비율로 따지면 굉장히 비효율적이지만, 어쨌든 스텟을 올려 준다.

베론타스가 소장품을 내어 주고서도 망설이는 연유였다. 7할의 스텟을 내어 주고 나면 자신은 빈 쭉정이가 된다. 3할은 남는다고 좋아할 수는 없지 않나. 평생을 일구어서 이 자리에 왔는데, 홀라당 빼앗길 판이었다.

‘……악마보다 더한 놈이구나!’

베론타스는 느끼고 있었다. 한두 번 해서는 나오기 힘든 모양새였다. 아래층에서 해 왔던 검증된 양아치 수법이었다. 살길을 열어 주고 탈탈 털어 댄 후, 마지막엔 생명력까지 갖다 바치는.

처음부터 희생의 가호를 달라고 했으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반항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탑 등반은 무진에겐 삥 뜯는 노하우를 전수한 꼴이었다.

-49층 돌파.

***

-성좌의 인장을 내리겠다.

50층으로 넘어가기 직전 성좌가 될 자격을 부여받는다. 정신과 스텟이 한계를 벗어나게 해 주며 인간이 아닌 성좌로서 격을 높인다. 그와 함께 어떤 특성의 성좌가 될지를 결정한다.

-판독 불가.

-스텟 오류.

-결정 보류.

성좌의 탑 전언에 에러가 났다. 이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어떻게든 에러를 수정하려고 했다. 성좌의 탑이 무진의 성좌를 결정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왜 안 되는 거야?

-이럴 리가 없는데!

-포기하지 않아!

사무적이었던 전언에 감정이 실리기 시작했다. 오점을 결단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발악에 가까웠다.

제삼자의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까지 열 낼 일인가?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하나, 성좌의 탑은 초월자의 사명을 반드시 사수해야 했다. 그것이야말로 탑이 존재하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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