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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들은 왜 이렇게 조용해!’
사이렌이 시끄럽게 울리고, 폭발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쯤 되면 안위가 궁금해서라도 찾아오기 마련인데 감감무소식이었다.
외부의 습격에 놀라서 달아났다면 CCTV로 확인했을 것이다. 감시 카메라를 다 치워 버리는 바람에 방은 볼 수가 없었다.
적색단이 투입된 후는 늦는다.
장 주석은 급히 밀실에서 나와 아들의 방으로 향했다. 대체 뭘 하기에 조용한지 부모로서 확인하고, 협조를 구할 필요가 있었다.
밀실과는 멀지 않았다.
통로를 따라 아들의 방에 선 장 주석은 문고리를 돌려서 잡아당겼다.
드륵!
큭!
문이 열리지 않는다. 안에서 잠근 것이다. 장 주석은 어이가 없어서 종을 누르고 문을 세게 두들겼다.
팡팡팡!
곧, 아들이 문을 열었다.
장 주석은 급히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아들이 그 앞에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아빠, 지금은 좀.”
“시끄럽고, 비키거라!”
아들의 만류에도 장 주석은 안으로 밀고 들어가서 연놈들을 찾았다. 밖이 시끄러운데도 문을 잠그고 있는 것부터가 상식적이지 않았다.
허!
거실에 들어선 주석은 헛바람을 삼켰다. 앞에 버젓이 펼쳐진 광경은 밖의 다급하고 위험한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못해 남의 나라였다.
“어딜 만져!”
“어쩔 수 없잖아.”
“그럼 팔에서 떨어져.”
“자기야, 혀가 심심한데 딥키스나 할까?”
“안 심심해.”
너무나 적나라한 애정 행위였다. 장 주석의 눈에는 발정 난 암수로 보일 뿐이다. 사람이 죽어 가고 있는데, 저래도 되나 싶을 만큼 평온하다. 신혼부부라 깨가 쏟아진다는 자들이 있다면 총으로 쏴 버렸을 것이다.
크흠!
인기척을 냈다.
사람이 왔는데, 언제까지 껴안고 있을 거야!
스윽!
소파에서 고개를 빼꼼히 내밀던 무진과 지수는 곧 TV로 시선을 돌렸다.
빠직!
중국 최고 위원이자 통수권자가 한순간에 옆집에서 쌀 나르는 아저씨가 되었다. 설령 쌀집 아저씨라고 해도, 어른이 왔으면 일어서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지 않나? 고개만 쑥 내밀고 말다니, 대체 누가 한국을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했어?
부글부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할 듯 무섭게 쏘아보지만, 사드 배치한 듯 무진과 지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리모컨으로 TV를 돌려 보며, 재밌는 걸 찾기에 바빴다. 일단 중국 드라마는 무조건 패스. 내용은 둘째 치고, 어지간하면 사극이었다.
“그나마 우리 드라마가 낫기는 하네.”
“요즘은 우리도 돈만 많이 들였지, 스토리가 존망이야.”
“외국인들은 잔인한 걸 좋아하나 봐. 나는 살 떨려서 못 보겠던데.”
“어머! 무서워, 자기야.”
너희들이 더 무섭다!
설상가상, 점입가경 가관의 연속이었다. 첫인상부터 좋지 않았는데, 끝까지 개주접을 떨고 있었다. 지금이 TV나 처보며 잡담이나 할 때냐고?
게다가 중국 드라마야말로 세계 제일이거늘. 더욱이 많은 드라마가 있었다. 유비전, 관우전, 조룡전, 장비전, 조조전! 대(大)삼국지의 다양성과 웅장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국의 열등감이었다.
“이보게.”
“왜요?”
듣고는 있는 모양이다.
귀가 먹었으면 잘 듣는 송곳으로 뚫어 주고 싶었다. 어쨌든 그게 더 기분이 나쁘다. 다 듣고 있었으면서도 남의 일처럼 대하고 있는 것 아닌가. 대국에 왔으면 최소한 소국의 무인답게 행동해야 했다.
“궁을 습격하는 무리가 있네.”
“수고하세요.”
너희 집은 네가 알아서 지키라는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그걸 왜 우리한테 말하냐는 의미의 전달이 확실했다.
그래도 그렇지, 어른이 말을 하면 듣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어딜 말 뿌리를 잘라! 이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했다.
나이도 어린 놈이 힘만 세면 다더냐!
“곧 정리될 테지만, 한 손 거든다면 권왕가에도 좋은 일이 생기지 않겠나.”
“곧, 초상 치르시겠는데요.”
“어허, 여긴 대중화의 중심일세. 말을 함부로 하지 말게!”
“그러시다면야.”
이렇게까지 말했으면 일어나야 하지 않나?
장 주석으로선 살면서 처음 겪어 보는 상황이다. 자신이 말을 걸어 주면 황송해서 대대손손 영광으로 아는 국민이 장강을 채우고도 남았다.
이토록 건방지고, 오만하다니!
권왕의 소문이 와전되기는커녕 과소평가되었다. 자기하고 똑같은 것들만 키우고 다니는 모양이다. 콩 심은 데 콩이 났으니 유전자를 의심할 필요는 없겠다.
심기가 불편해진 장 주석의 목소리가 고압적으로 변하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권왕가는 나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생각이 없는 건가?”
“없어요.”
“……없다고?”
“없는데요.”
“왜?”
“아쉽지가 않아서요.”
대중화의 주석과 관계를 맺는 일이다. 미국의 대통령조차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애를 쓰거늘. 일개 소국의 가문 따위가 대중화의 주석을 무시하고 있었다.
“오늘 일을 잊지 않겠네!”
“오늘을 넘기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요.”
“언행이 신중하지 못하군.”
“신중할 때는 지났네요.”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 재주가 놀랍다 못해 죽이고 싶어질 정도다. 물론, 장 주석은 아들처럼 이성을 잃고 발작하진 않았다. 일국을 다스리는 왕다운 인내심과 연륜이 있었다.
그러나 처한 상황에 따라서 평가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진짜인지, 도금인지는 지금부터 알 수 있었다.
-5단계 결계가 무너졌습니다!
-적색단이 전멸하기 직전입니다!
-물러나야…… 크아아앗!
스마트워치로 들려오는 경고와 비명에 장 주석은 화들짝 놀랐다. 5단계면 이제 바로 지척이었다. 또한, 적색단은 주석궁 최강의 부대였다.
그들이 전멸지경이면, 이제 남은 수단은 36계 줄행랑이 전부다. 숨겨 놓은 비밀 통로를 이용해 공간이동 스킬을 쓴다면 탈출은 가능했다.
-대규모 마나 역장입니다!
-현무탑의 지하 통로가 파괴되었습니다!
그런 장 주석의 마음을 알았을까? 되지도 않는 헛꿈은 꾸지도 말라며 악몽 같은 전언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상대가 자신의 속내를 알고 있다는 듯이 대응했다.
다급해진 장 주석이었다.
“이보게! 이대로 있으면 자네도, 부인도 위험할 걸세!”
“까얏, 제가 얘 와이프 맞아요!”
“……?”
누가 네년보고 대답하라고 했느냐!
이년이 낄 데 안 낄 데 구분도 못 하는구나! 사태 파악이 안 되는 건가? 습격자는 주석궁의 경호와 결계를 종잇장처럼 찢으면서 들어오고 있었다. 이놈들의 목표가 자신이라면, 주변까지도 위험했다. 혹, 관계가 없다고 살려 줄 거란 기대를 하는 건가?
“지금 장난하고 있을 때가 아닐세!”
“저도 장난하고 있지 않은데요.”
“저들이 자네를 살려 줄 것 같은가?”
“이 궁의 생사는 제가 결정합니다. 제 뜻을 아셨다면 선택하셔야지요.”
움찔!
장난 같았던 모습과는 달리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이질적인 무저갱의 어둠보다 평온하다. 작금의 사태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태연함이 전해진다. 이는 자신감을 넘어선 그 어떤 미증유의 거력이었다.
헉!
무진의 본질과 마주한 장 주석은 북풍한설의 중심에 맨몸으로 서 있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인간의 관점을 아득히 벗어난 곳에서 한없이 내려다보는 무소불위였다.
털썩!
힘이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공손히 무릎을 꿇는 형태가 되었다.
억!
장위는 아버지가 갑자기 왜 저러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남을 한없이 깔아뭉개지 못해서 안달인 아버지였다. 그런 분이 저리 공손해지다니, 노망이나 치매가 의심되었다.
확실히 그럴 나이가 되기는 했다.
‘건강을 챙기시지!’
패륜아 같았지만, 장위도 효심은 있었다. 궁지에 몰렸어도 도망치지 않고 곁에 있는 건, 세뇌 때문은 아니리라.
‘검신을 두들겨 팬 인간인데, 여기가 가장 안전하지.’
도망쳐 봐야 얼마 가지도 못하고 붙잡혀서 고문이나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고문을 버텨 낼 자신은 없었다.
“도와주겠나?”
“도와주면요?”
“어떤 것이라도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네!”
“남의 위기를 기회로 삼고 싶진 않네요. 선의로 도와 드리겠습니다.”
“아니네, 이번만 도와준다면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주겠네!”
“저는 그렇게 속물이 아니거든요.”
무진의 사양에 장위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 돈 잡아먹는 귀신이 웬일로 저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줄 때 받으라고 할 뻔했다. 아버지도 누군가에게 아쉬워하는 성격이 아닌데, 장위로선 못 보던 광경이 이어졌다.
‘위선자와 속물의 경합이라!’
장위가 아버지와 강 대형을 보는 관점이었다. 딱히 이상하게 보진 않았다. 위선자면 어떻고, 속물이면 어떤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면 그게 바로 최선이었다. 대륙을 지배하고, 세계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중국의 기상이 바로 그것 아니겠는가.
‘아버지가 이길 것 같진 않지만.’
강 대형의 무서움이었다. 아버지조차 발아래 두는 절대자의 시선. 그러고 보면 자신도 꽤 사람 보는 안목이 있었다. 이럴 줄은 몰랐어도, 본능적으로 사람을 알아본 것이다.
‘와룡 맞구나!’
강 대형이 자신도 모르는 숨겨진 이면을 꿰뚫어 본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장위는 소름이 돋았다.
응?
무진은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장위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 새끼가 뭘 잘못 먹었나?’
여하튼 중요하진 않았다. 무진으로선 지금의 구도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만족했다.
‘예견된 일이니까.’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한다. 항복한다고 돈 몇 푼에 봐주는 자유민주주의와는 결이 다르다. 모든 걸 얻든가, 모든 걸 잃든가. 목숨 줄이 걸린 팔대세가의 저항은 당연했다.
설마 순순히 당해 주리라 여겼나.
이기기만 하면 중국 내 여론은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었다. 외부의 시선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망설였을 뿐이지. 눈 가리고 아옹이긴 해도, 주석만 처리하면 당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어리석은 중국 국민의 국뽕력만 자극해 주면 끝날 일이다.
‘다크니스도 이대로 포기하긴 아까울 테고.’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었다면 고민했을 테지만, 다 잡은 먹잇감을 놓칠 순 없지 않은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중국만 장악해도 동아시아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었다. 중국의 가장 큰 힘은 인구와 자원이다. 이걸 빌미로 협상 테이블 위에 우리나라, 러시아, 일본을 놓고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그리드가 탐욕이면, 남은 녀석들도 있단 뜻이겠고.’
비슷한 단어일 수도 있겠지만, 7대 죄악을 떠올렸다. 그 안에서 서열대로 나누었다면 탐욕의 주인이 따로 있을 테지.
다크니스의 역량을 알아 갈수록 방심은 금물이었다. 그만큼 상대도 자신을 알게 된다는 뜻이 되었다.
‘칼을 뽑았으면 끝장을 봐야지.’
어설프게 끝을 내면 불씨가 되어 거대한 화마로 변한다. 다크니스와의 결전은 팔대세가와 다르지 않았다.
all or noth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