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0. 국뽕(4)
화가 날 법도 하나, 검신의 이성은 차갑게 식었다. 과거 중화의 무인 대부분은 권왕의 주먹 이전에 격장지계에 먼저 무너졌었다.
‘권왕도 아니고, 그 제자한테 당할 수 없다!’
검신은 흔들리는 심리를 단단히 다잡았다.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권공에 당할 수 있었다. 권갑이나 아이템을 쓰지 않았음에도 송문고검을 쳐 내는 위력은 경시할 수 없었다.
[검안(劍眼)] 속성 개방.
검의 눈을 열어 모든 흐름을 읽어 낸다. 일시적으로 심안의 영역에 깃들어 상대의 심리를 통찰할 수 있었다.
속도, 파괴력, 민첩 스킬을 발동하여 전력을 끌어 올렸다. 평상시로 돌아가는 회복 스킬까지 전부 사용했다. 생사가 걸려 있는 위급 지경에서만 쓸 구명지초를 꺼내 든 것이다. 벌써 장문인의 협박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보인다!’
권역의 흐름이 보였다. 그럴수록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절대 지지 않는다는, 오만함의 극치였다. 패도무쌍의 화신으로서 하늘 끝에서 내려다보는 천상천하의 패황이었다.
‘나는 지지 않는다!’
대중화의 무인으로서 반도의 무인에게 또다시 패배할 수 없다. 저 오만무도한 자를 꺾고, 대중화의 기상을 보란 듯이 세우리라.
채채채챙!
퍼퍼퍼펑!
권과 검이 부딪침에 일대가 흔들리며 거칠게 요동쳤다. 하나하나의 검과 권에 실린 파괴력이 실로 대단했다. 그럼에도 찰나의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숨 막히는 결전이었다.
“걸렸다!”
“그럴 리가.”
“아니, 어떻게?”
“심안이 무적은 아니지.”
“……속였구나!”
무진은 검신이 검안을 발동하여 흐름을 읽어 내고, 다음 수를 예측하여 펼쳐 내려는 걸 진작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흐름대로 따라 주는 척하다, 마지막에 비틀었다.
같은 영역 같아 보여도 결국 검안은 누가 중국 아니랄까 봐, 심안의 짝퉁에 지나지 않았다. 완전히 본인의 영역에 올라 심안과 검안을 접목했다면 또 모를까.
쩌어엉, 푸아아앗!
송문고검이 패도권경을 버티지 못하고 터져 나갔다.
파편이 검신을 향해 쇄도하여 꽂힌다.
크아악!
팽팽해 보였던 흐름이 단숨에 반전되었다.
무진은 더는 여유를 주지 않았다. 하고 싶은 걸 하게 해 준 것만으로도 큰 배려였다. 다만, 중국인치고 배려에 감사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기는 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린 줄 알아서, 한 번씩 푸닥거리해야 한다.
퍼펑, 퍼퍼펑!
무진의 주먹이 꽂힐 때마다 검신의 방위가 크게 출렁였다. 더 이상 반전은커녕, 일방적인 흐름으로 사태는 악화한다.
헐!
장위는 두 눈을 의심했다. 검신을 도발할 때만 해도, 잘못되면 어쩌나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적당히 말로 해도 되고, 정 안 되면 루이스를 넘겨주는 것도 한 방편이었다. 처음부터 검신을 화나게 해서 싸울 필요는 없었다.
‘검신을 능가한다고?’
무진의 강함을 알고는 있었지만, 생도치고 잘하는 수준을 벗어났다. 무당파의 전대고수인 검신의 무위는 다른 삼천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대중화의 검신을 힘으로 찍어 누르고 있었다.
그것도 일개 생도가.
‘단순히 강하다고 할 수준이 아니잖아!’
성좌의 선택도 받지 않은 생도가 검신을 패고 있었다. 차후에 얼마나 강해질지 감도 오지 않는다. 지금도 저런데, 더 강해지면 대체 뭐가 되는 거지?
성좌라도 되려나?
‘그렇구나!’
어째서 시비를 거나 했더니, 보여 주려는 것이다. 딴마음을 품고, 배신하면 어찌 되는지를. 아버지의 성향상, 소국과 언제까지 손을 잡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 처신을 잘못하면 국물도 없다는 일종의 협박이었다.
‘그럴 마음도 없었는데!’
장위로선 억울했으나, 감히 내색하지 않았다. 옆에 있는 지수의 평온함만 봐도 분명했다. 결과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고, 검신은 무력을 과시하기 위한 용도에 지나지 않았다.
‘검신을 장기말로 쓴다고?’
무진의 스케일을 알아 갈수록 장위의 충성심은 하늘 높이 승천했다. 한편으로 다크니스를 상대하려면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위화감을 느꼈다. 그런 와중에 무진의 눈 밖에 난다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세뇌를 당해서 행복하다.’
장위는 당시에는 세뇌했다고 해서 열 받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다행이었다. 허튼 마음 품지 않고 명령만 잘 따르면 꿈을 이룰지도 모른다.
벌써, 와룡이지 않은가.
쿨럭, 주르르르!
바닥에 주저앉은 검신이었다. 쇠를 긁는 듯한 기침을 할 때마다 피를 한 사발이나 흘렸다. 내장 쪼가리가 튀어나오진 않았지만, 내상이 심각했다.
스윽!
힘겹게 고개를 들어 상대를 올려다보게 된 검신의 눈엔 허망함이 담겨 있었다.
현재 상태로는 도저히 어찌하지 못했다. 태청신공이 허물어지면서 침투경이 내부를 휘젓고 있었다. 밀어내기는커녕 놈의 패도기가 점점 더 영역을 확장했다. 태극현천강기가 겁먹은 개처럼 전혀 맥을 못 추었다.
하아, 하아!
호흡이 점점 가빠지는데도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태극검의 모든 무리를 합일하여 전력으로 펼쳤다.
그런데 결과는 어떠한가?
“조금도 닿지 않은 것이냐?”
“전혀.”
허허!
먼지를 툭툭! 털어 내는 무진의 대수로움에 검신은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무상해졌다. 검의 끝을 보고자, 폐관수련을 밥 먹듯이 해 왔었다. 그 모든 노력이 한순간의 꿈으로 끝이 났다. 그런데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포기하게?”
“그러고 싶구나.”
“그럼 그렇게 해.”
“아쉽지도 않은 게냐?”
“내가 왜?”
“하긴, 그렇군.”
검신은 힘겨워하면서도 일어섰다. 차라리 포기하지 말라고 했으면 일어서지 못했을 것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타인의 시선에 현실의 냉혹함을 깨닫게 한다.
-왜 이걸 못 하지?
-노력이 부족하군.
-평소에 게을렀겠지.
검신은 사제들의 부족함을 지적하며, 노력으로라도 극복하라고 들들 볶았었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다다를 수 있다고. 그런데 정작 본인은 천재성에 함몰되어 패배에 좌절하고 있었다.
검의 끝은 여전히 멀었다.
패배의 이유는 노력의 부족이었다.
검신은 마음을 다잡고, 나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 하나의 차이로 변화를 맞이했다.
우웅!
선 채로 운기행공에 들어갔다. 태청신공의 기본은 좌공이나, 검신은 자리에 구애받는 경지는 예전에 넘어섰다. 일순간의 소성이 전신으로 퍼져 나가며 깨달음의 무리가 심신에 변화를 일으킨다.
투득, 투드득!
끝에 다다랐다고 여겼던 태청신공이 벽을 넘어 새로운 영역에 도달하자 골격이 그에 걸맞은 변화를 이룬다. 동시에 내외부의 내상이 초속 재생 스킬과 맞물려 삽시간에 회복했다.
절대 고수에게 변화는 크지 않다. 이미 그에 걸맞은 내외신을 이룬 상태라 미미해 보인다. 하나, 가치를 논한다면 작금의 검신은, 이전의 검신과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완숙한 절대경에 올라섰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심검을 검안과 접목한다면 능히 천하제일검이라 할 만했다. 권왕은커녕 그 제자에게 처맞고 산산이 부서진 자신감이 차올랐다.
“이제 맞자.”
“그래, 고맙…… 뭐?”
무진은 사전 경고 후 검신을 매몰차게 두들겼다.
소성 좀 얻었다고 순간 눈깔이 굉장히 불손했다. 사람이 겸손할 줄을 알아야지. 깨달음 좀 얻었다고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처럼 달라서야 쓰나.
퍼퍼퍼퍼퍽!
겸손과 폭력은 무인의 기본 패시브였다. 눈까리가 불손할 때는 주먹부터 들어야 했다. 괜히 말로써 훈계를 해 봤자 결국에는 주먹질이다. 시간 낭비하지 않으려면 깜빡이 없이 들어가는 게 효율적이었다.
“……잠깐!”
“됐어.”
말 들어 주기 전에 주둥이부터 발로 차 버렸다. 반성하는 기색이라도 있어야지. 패배를 거름 삼아 깨달음을 얻는 건 좋다 이거야. 강해졌다고 들떠서 주제를 모를 때는 매질이 최선이었다.
근래에 들어 폭력보다는 말로 해야 한다는 대화충들이 많아졌지만, 솔직히 사람은 말로 해선 안 듣는다. 말로 해서 들을 것 같았으면 진작 알아서 고치지. 대부분 말로 해 봤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퍼퍼퍼퍽!
-리커버리힐!
파앙, 퍼어엉!
-리커버리힐!
소중한 아이템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주었다. 굳이 마도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열 번 하고 나자.
“……그만하자고, 이 새끼야! 내가 잘못했다! 됐냐?”
“안 됐는데.”
“됐다고 하면 안 될까? 내 체면도 있는데.”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
“전폭적으로 협력하마! 아니, 그냥 너 다 가져!”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선심 쓰는 척하지 마라.”
검신의 입지를 난처하게 만든 대답이었다. 다 주겠다는데도 시큰둥했다. 이러면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렇다고 계속 처맞고 있을 순 없지 않나.
‘이놈은 대체 뭐지?’
깨달음을 얻어 좀 할 만하지 않을까 하는 호승심이 들자마자, 고장 난 망상으로 만들어 주었다.
한편으로 소름이 돋는다. 여태까지 자신의 수준에 맞추어서 상대해 주었을 뿐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조금 더 강해졌다고 개기려고 했으니. 얼마나 꼴 같지 않았을까?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경이었다.
‘진짜는 보여 주지도 않았어!’
하늘 위의 하늘을 보여 주기는커녕,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걸 자각하게 된 검신이었다.
“이제 알았으니까, 그만 목 좀 놔주면 안 되나? 지면을 딛고 싶은데. 이 나이에 바동바동은 그렇잖아!”
“그립감은 별로였어.”
“……다행이군.”
남의 목을 잡고 그립감이라니, 무력 못지않게 일반 상식도 상상을 초월했다. 이 모양 그대로 모두에게 보인다면,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것이다.
“다 찍었지?”
“내 핸드폰은 고속 모드에 16k 화질이거든. 어디서든 흔들려도 잘 찍혀.”
지수가 휴대폰을 들고 와 OIS 손 떨림 방지와 화질 자랑을 하자, 검신의 안면이 새까맣게 죽어 갔다. 여태 자신이 한 꼴사나운 짓들이 고스란히 찍혀 있다는 의미가 되었다.
“퀵쉐어링은?”
“이미 했지.”
무진은 핸드폰의 영상을 검신과 같이 공유했다. 화질이 참 좋았다. 순간순간 초고속 모드와 디지털 화질 개선까지 완벽하다. 빚이 많지 않은 곳에서도 선명한 화질을 느낄 수 있는 은하수 폰이었다.
“그걸로 대체 뭘 하려고?”
“뭘 할지, 말지는 구대문파의 행보에 따라 다르겠지.”
주석에게 전폭적으로 협력하라는 뜻으로 들렸다. 그렇지 않고 다른 마음을 품으면 웨이보에 올리겠다고 했다.
언론을 통제하고 있는 주석이라면 능히 대문짝만하게 광고할 수 있었다. 얼굴 팔리는 거 신경 쓰지 않는 편이라고 해도, 그건 검신의 위명이 남아 있을 때나 가능했다.
“전폭적으로 협력하마.”
“그리고 김치는?”
“갑자기? 그건 파오차이에서 유래하지 않았느냐?”
“그렇게 나오시겠다?”
“김치는 한국의 고유 음식이다.”
“한복은?”
“한국의 고유한 복장이다. 됐느냐?”
“짜장면은?”
“……그냥 다 너희 거 해라!”
“말이 이상하네, 우린 남의 나라 걸 탐하지 않아.”
이 빌어먹을 놈이 이상하게 국뽕이었다. 검신도 대중화를 신뢰하지만, 이놈도 만만치가 않았다.
“코로나는 중국 거♬ 방사능은 일본 거♬ 독도는 우리 땅이다♬”
“……(빠직)!”
지수가 옆에서 리듬감 살리겠다고 박수로 박자를 맞추자, 장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종잡을 수가 없는 행동인데, 아무렇지 않은 걸 보면 너무나 뻔뻔하다.
‘부창부수가 확실하네.’
너희들은 헤어지지 마라.
무분별하게 방생해서 남들 힘들게 하지 말고, 꼭 백년해로하기를 바랐다.
생태계 보전은 소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