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 국뽕(2)
꽈아앙!
지수와 루이스가 붙었다.
루이스는 장위부터 죽이려고 했지만, 현실이 어디 맘대로 되나. 지수라는 벽은 녹록하지 않았다. 여태 루이스가 알고 있었던 최강자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더욱이 현재 온전하지 않은 상태였다. 본원진기를 쓸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억지로 끌어 올렸을 뿐이다. 모든 일이 그렇듯, 순리를 역행하여 강제로 하게 되면 파탄이 나기 마련이었다.
“후회하게 해 주마!”
십혈뢰(十血雷), 10개의 핏빛 벼락이 무형지풍처럼 발출되었다. 직선, 사선, 곡선에 벼락을 하나 더 숨겨 막았을 때를 노렸다.
퍼퍼펑, 찌지지직!
충돌 후 뇌기의 폭풍이 발생하자, 공간 속성인 [허공제어]를 펼쳐 뇌기를 가두어 극점에서 폭발시켰다.
쩌저저정!
무공, 속성, 스킬의 연계가 상당한 수준이었다. 한국에서 죽였던 그리드보다 하위 서열임에도 전투에 대한 이해력은 한층 천재적이다.
“죽어랏!”
가둔 후 이어진 뇌폭.
끝이 났다고 판단한 루이스는 애초의 목표물인 장위를 향해 천뢰강을 뿌리려고 했다.
스륵, 퍼어어억!
왼쪽 옆구리를 강타한 무지막지한 권격이 아니었다면.
일순, 옆구리가 뜯겨 나가는 줄 알았다. 허리가 새우처럼 휘며 상대방을 보게 된 루이스는 기겁했다.
“……어떻게?”
“확인 사살부터 했어야지. 이렇게!”
지수의 공격은 일격이 아닌 연속 동작으로 이어졌다. 허리를 굽힌 놈의 머리를 왼 주먹으로 곡괭이질을 하듯 바닥으로 내리찍는다.
뻐어억!
얼굴이 뭉개지며 지면으로 떨어져 내릴 때, 솟아오르는 무릎이 있었다. 이연격이 아니라, 무릎이 결정타인 삼연격이다. 허리가 꺾이고, 얼굴이 찍히고, 다시 얼굴을 강타당했다.
크어어억!
코가 뭉개지고, 입술이 터졌지만 가벼운 외상에 불과했다. 진짜는 내상이다. 옆구리의 갈비뼈가 조각조각 부서지고, 얼굴로 스며든 침투경이 뇌를 거칠게 흔들었다.
“……뭐가 어떻게?”
피거품을 토한 루이스는 정신을 못 차렸다. 삼연격을 맞은 이후로 사고가 일시 정지되었다. 그저 왜? 라는 의문이 들었다. 십혈뢰와 뇌폭의 연계는 숨겨 둔 비장의 수였다. 그걸 맞고도 아무렇지 않게 반격하다니!!
‘……결계에 권강을 뿌린 게 이 계집이었…… 크악!’
장위를 수호하듯 막아선 사내가 절대경의 고수인 줄 알았더니. 명백한 착각이자, 실수였다.
그러나 이대로 끝날 수는 없었다.
꽈악, 퍼억!
퍼퍼퍼퍽!
죽음을 각오한 루이스의 기세는 대단했다. 다만, 한 번의 실수를 지수는 용납하지 않았다. 집요할 정도로 루이스에게 반격 기회를 주지 않고 두들겨 팼다.
최후의 기회 따윈 오지 않았다. 흔들리기는커녕 일로일격에 속도, 권로, 파괴력을 집중하여 루이스의 전력을 숭덩숭덩 날려 버렸다.
도무지 빈틈이 보이지 않자 루이스는 좌절했다. 이렇게나 강하면서 속임수를 쓰다니, 무인으로서 용납하지 못했다.
“……비겁……한……!”
“여자라고 우습게 여겼지. 그러니까, 네가 안 되는 거야.”
지수는 말보다 주먹이 더 빠르고 정확했다. 대화는 때리고 난 후에 해도 늦지 않았다. 선후의 판단 미스를 범한 루이스는 일방적으로 당하다, 되레 최후의 일격을 제대로 맞았다.
지수는 더욱더 거세게 밀어붙였다. 다음 기회는 환생한 후에 하라는 듯.
처어어엉!
너무나 유려하고 아름다운 권로였다. 이상적인 권격이 나오는, 일격으로 영혼마저 끊어 낼 파괴력이었다. 때리는 자와 맞는 자가 조화를 이루어야 가능했다. 물론, 맞는 자로선 최악일 수밖에 없다.
철퍼덕!
바닥에 맥없이 엎어졌다. 전봇대처럼 뒤로 반동을 줄 사이도 없이 벌어진 광경이었다. 골백번은 더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림이 나왔다. 신화천권의 기본 투로지만, 지수 나름의 식을 완성한 권형이었다.
“끝났나?”
지수는 해서는 안 되는 트리거를 내뱉으며 바닥에 죽은 듯이 엎어진 놈을 밟아 댔다.
진작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죽었나?”
이쯤 되면 다시 일어나기를 바라는 거 아닌가? 명백한 고의였다. 방심이라도 하면서 그러면 모르겠는데, 반격의 여지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꼼꼼하게 전신의 뼈들을 잘근잘근 부숴 주었다.
“끝났나? 죽었나?”
진짜로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이쯤 밟았으면 성의를 봐서라도, 으스러진 무릎으로 반드시 일어나야 할 듯싶었다.
오싹!
무진의 뒤에서 빼꼼히 눈만 내밀어서 사태를 관망한 장위는 마른침을 여러 번 삼켰다. 죽일 듯한 강렬한 살기가 여기까지 전해졌었다. 사생결단의 너 죽고, 나 죽자고 달려들 때까지만 해도 위험해질 것 같았다.
‘씨발, 존나 잘해 줘야겠다!’
흘러가는 정황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않고 걸레로 만드는 지수의 폭력성에 장위는 혀를 내둘렀다.
솔직히 교류전 때도 강하긴 했어도, 이렇게까지 말도 안 되게 강할 거라고는.
‘아니, 뭘 먹고 저렇게까지 강해진 거야?’
지나치게 강했다. 한편으로 저렇게 강한데도 방심은커녕 확인 사살까지 완벽하다. 걸레가 되었는데도 단전을 부수고, 사지 근맥을 자르고, 구속구까지 채웠다.
‘도축업자냐?’
그걸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무진의 모습에 장위는 말문이 막혔다. 마치 스승이 제자를 바라보는 듯한 따뜻한 시선이었다. 근맥을 깔끔하게 잘라 내고 웃는 지수도 제정신처럼 보이진 않는다.
‘얘네들 대체 무슨 사이야?’
요즘 남녀 친구들은 저러고 노나?
장위는 강 대형 못지않게 형수님도 만만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무력만 봐서는 어쩌면 강 대형보다 강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하다 싸우면 형수님 편을 들어야겠다.
질질질!
지수가 놈의 발목을 잡고 끌고 왔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혈로(血路)가 그려졌다. 피를 저만큼이나 흘렸는데도, 살아 있는 걸 보면 대단했다.
“얼마나 알고 있나 볼까.”
놈의 머리끄덩이를 친절하게 잡아서 들어 올린 후, 심상 구현을 가동했다. 아는 내용이 많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리드의 서열대로라면 고작 해 봐야 중국의 사내 정치에 불과했다. 다만, 그걸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값어치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으아아아악!
바르르르르!
차라리 죽여 달라는 외침에 장위는 몸서리가 쳐졌다. 뭔 놈의 생도가 고문을 아무렇지 않게 일상처럼 하냐고. 사람이 저렇게까지 처절히 울부짖으면 보통은 조금의 동요라도 있을 텐데, 오늘 저녁 뭐 먹을까였다.
“네가 잡은 거다.”
“정말요?”
“와룡답게 행동해.”
“제가요?”
“그래.”
“……감사합니다.”
제갈공명의 화신, 장위에게는 언감생심 꿈도 꿔 보지 않았던 감지덕지한 별호였다. 살아생전 와룡이라 불릴 줄 누가 알았을까? 한편으로 걱정도 되었다. 예전이라면 걱정 따윈 하지도 않고, 천방지축으로 행동하겠으나.
‘이래도 되나?’
들통나면 개망신이었다.
그나마 제갈공명은 저술한 책이 알려지지 않았으니 다행이지, 손자의 화신이었으면 병법을 물어봤을 거 아냐.
정리는 알아서 하고, 돌아서려는 때.
저벅!
예견된 발소리가 들렸다.
무진은 일행과 함께 돌아서서 상대를 보았다.
머리끄덩이를 잡힌 루이스의 얼굴을 보란 듯이 노출시켰다. 지수가 엉망진창으로 만들긴 했어도, 고수의 안목은 체형과 골격까지 본다. 고수일수록 어설픈 속임수가 통하지 않는 연유였다.
얼굴과 몸을 바꾸어도 호흡, 기질, 기세는 사람마다 제각각이었다. 그마저도 흉내를 내거나 카피한다면 변신의 대가였다.
흠.
검신의 입에서 편치 않은 숨결이 토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결계를 빠져나오느라 고생이 심했는지, 선풍도골의 선인 같은 외양과는 거리가 멀었다. 머리카락은 정리되지 않고 나풀거리고, 강화된 무복은 군데군데 찢겨 있다.
특히 얼굴에는 불만이 한가득하였다. 마치 자기의 먹잇감을 다른 이가 채 갔다는 아쉬움이 교차하는 것 같았다.
먹잇감에 대한 분노는 곧 한심함으로 바뀌었다. 둘은 몰라도, 하나는 분명히 아는 얼굴이었다. 관심이 없기는 했어도, 주석의 아들을 잊어 먹진 않았다.
그래서일까? 자신을 이토록 골탕을 먹인 놈이 고작 장위에게 잡혔다는 사실에 짜증이 치밀었다.
한편으로 주석의 말이 뇌리를 스쳤다. 아들이 개과천선해서 이제는 사람이 됐다고. 이번 작전도 아들의 계획이라고 했지만, 여전히 믿기는 어려웠다.
여하튼.
이대로는 안 되었다.
“그놈, 넘겨주지 않겠나? 본파를 통해서 섭섭지 않은 보상을 해 주겠네.”
“싫은데.”
“그래, 넘겨…… 뭐시라!”
“싫다고.”
못 들은 듯 행동하자, 무진은 쐐기를 박아 주었다.
빼꼼히 듣고 있던 장위의 안색이 재차 퍼렇게 질렸다. 상대는 무당파의 전대 고수이자 삼천의 검신이었다. 그 앞에서 당당하게 의지를 표명하는 배포를 칭찬하기엔 간덩이가 지나치게 부었다.
‘아버지가 검신만큼은 건드리지 말라고 했는데!’
삼천 중 돌아가신 두 분이 가장 성격이 좋았고, 검신의 악명은 알게 모르게 자자했다.
‘굳이 성질을 돋울 필요가 있나?’
검신의 검미가 꿈틀거리는 것으로 보아 성질 제대로 돋게 한 듯했다. 이러다간 큰 사달이 날 것 같아서 중재하려고 했지만, 입도 뻥끗할 수 없었다.
“부탁하는 처지인 만큼, 이번은 눈감아 줄 테니 그만 넘기거라.”
“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지.”
“하늘 모르고 날뛰는 망아지 같은 녀석이군. 대체 네놈은 누구기에 이리 오만방자한 것이냐?”
“와룡의 수신 호위다.”
“와룡? 혹, 이번 작전을 짠 자를 말하는 것이냐?”
“그래.”
“하면 어디 있느냐? 내 직접 허락을 구하겠다.”
“멀리서 찾을 필요 있나.”
검신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멀리서 찾지 말라면, 가까이 있다는 의미가 되는데.
“네놈이냐?”
“난 아냐.”
무진의 부정에 검신은 여인을 보았다. 와룡이라고 하기엔 너무 어리다.
“나도 아니거든요.”
“흠, 대체 와룡이 어디 있단 말이냐? 혹, 내 앞에서 말장난하는 거라면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검신은 기감을 개방해 일대를 둘러보았다. 장난이 아니라면 주변에 인기척이라도 있어야 했다. 하지만 어딜 봐도 느껴지는 인기척은 저들밖에 없다.
‘아니, 난 왜 빼는데!’
듣고 보니, 화가 나는 장위였다.
둘이 아니라고 했으면 최소한 맞냐고 물어는 봤어야지!
처음부터 자신은 배제하고 무시해 버렸다. 이렇게나 신망이 떨어져 버렸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면서도 오기가 발동했다.
모처럼 장위가 한 걸음 나서서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포권에 제법 절도가 있었다.
“소인 장위가 삼천의 일인이자 위대한 검신 철양진인을 뵙습니다.”
“혹, 네가?”
“많이 부족하지만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럴 리가!!”
다른 어떤 때보다 놀라는 검신이었다.
이게 아닌데의 정점!
주석의 아들이 천방지축 개망나니란 사실은 천하가 다 알고 있었다. 연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건 사고를 일으켰다. 본인을 숨기다 못해 매장당해도 싼 짓을 해 왔다. 그런 주제에 와룡(臥龍)이라고 하면, 어느 누가 선뜻 믿을 수 있을까? 차라리 와룡(蛙龍)이면 이해라도 하지. 온갖 더러운 짓을 하며 세간의 이슈를 만든 놈이 와룡이라고?
개구리답게 눈은 똘망똘망하구나.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심경과는 별개로, 부정하기 힘든 정황증거가 발목을 잡는다.
“근래에 달라졌다고 하더니, 처음부터 모두를 속였단 말이더냐.”
“아버지의 주변엔 정적이 너무 많습니다. 부족하나마 아버지를 돕고자 부득이하게 결례를 범했습니다.”
완전히 믿는 눈치는 아니지만, 검신은 일정 부분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총리는 물론, 팔대세가와 다크니스의 결탁을 알고 있었다면 이해는 되었다.
그렇더라도, 굳이 할 필요도 없는 추행과 행패는 좀 아니지 않나? 그렇게까지 해야 적을 속일 수 있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겠지만.
음.
대중화에 깊이 뿌리를 내리며 통제했던 다크니스의 은밀함을 고려해야 했다. 실제로 한국에서 벌어진 소요가 없었다면 다크니스 자체를 몰랐을 것이다.
장위처럼 해야 속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