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7. 국뽕(1)
‘가지고 노는구나!’
장위는 보고 있기만 했는데도 숨이 막혔다. 이탈리아의 빗장 수비는 무진과 지수의 협력 수비에 비하면 자동문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원상 복구 아이템이 있나 확인해 보는 거야.”
꼼꼼하기까지.
안에 있는 놈이 들었으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 것이다. 아이템이 있으면 비장의 수를 노출할 테고, 없으면 억울한 누명이었다. 전자나 후자나 답답한 쪽은 정해져 있었다.
“출장 서비스는 시간 외 보수가 4배기도 하고.”
“……아!!”
장위는 그제야 무진이 시간을 질질 끄는 이유를 깨달았다. 계약서의 내용이 상기되었다. 출장 비용 따로, 시간외수당 따로였다. 여기에 해외 활동에 의한 추가 비용까지.
‘계약금 제외하면 시간당 1억이잖아!’
이게 4배란 소리였다.
대중화의 최저임금이 올해 시간당 5천 원이었다. 빈익빈 부익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한국도 2만 원으로 알고 있었다.
‘커플로 온 이유가!!’
혼자 와도 될 거, 여사친을 데려온 이유가 있었다. 계약 사항에 사람을 더 쓰면 시간당 액수는 절반이지만,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했다.
그야말로 땅 짚고 헤엄치는 몰상식한 부업이었다. 컨셉이 신혼부부가 아니라 부부 사기단이라고 해야 마땅했다.
‘그런데 따질 수가 없잖아!’
방금 지수의 주먹에서 나온 게 권강이었다.
권강을 날리는 생도를 본 적이 있는가? 계약을 따질 수 없게 하는 무력시위였다. 무효를 외치는 순간 권강은 궤도를 이탈하여 자신에게 추락할 것이다.
‘고의다!’
있는 것들이 더하다고.
무진의 재산이 얼마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돈 버는 데는 혈안이 되어 달려들고 있었다. 대체 어디까지 자신을 우려먹으려고 하는지, 조만간 골수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러다간 파산이다!’
천하의 장위는 자금 사정을 걱정해야 했다. 살면서 이런 적이 있었나 싶었지만, 과금이 이렇게나 무섭다. 한국의 리날지 소프트가 만든 게임보다 지독한 과금이었다. 이쯤 되면 텐젠트는 아주 양호한 회사였다.
공동 부유를 주장하면, 더 처맞겠지!
“언제까지 할 겁니까?”
“왜, 돈 아까워?”
대뜸 정곡을 찌른다.
무진과의 대화가 어려운 이유였다. 너의 머리 꼭대기에서 톡톡 춤을 추고 있으니 개짓거리는 안 통한다는 공산당식의 차단 정책이었다. 그러다 개기면 얼리버버처럼 다 뺏기고, 인체의 신비를 구경할 수 있었다.
“정 그렇게 아까우면 네가 하든가.”
“……예?”
인제 와서!!
억울하면 네가 하라는. 적아를 불문하고 울화통이 터지게 했다.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누차 말하지만, 한국을 다녀온 후 현실 파악이 누구보다 빨라졌다.
‘나만 데려온 이유가 있구나!’
그걸 좋다고 받아들였을 때, 이미 끝난 게임이었다.
장위는 무진의 능력 자체는 의심하지 않지만, 지나친 고가의 사용료에 한숨이 나왔다. 한국 차도 아니고, 왜 이렇게 옵션이 많은 거냐고? 그러나 기본을 계약하면 깡통이라서 타고 다닐 수조차 없게 했다. 어댑티드 크루즈 컨트롤 정도는 공짜로 해 줄 수 있잖아.
응?
결계 안의 돈 잡아먹는 귀신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속도와 파괴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어때, 이만하면 할 만하지. 내가 그렇게 염치가 없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 안 그래? 확실하게 말해라. 죽빵 날리기 전에.”
“그렇습니다요!”
그렇다고 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았다. 여하튼 부정하기에는 현저하게 느려지긴 했다. 쌓이고, 쌓인 누적된 피로가 갑자기 밀려온 말기 번아웃 증후군처럼.
“지수야, 좀 더 힘을 빼 놔라. 우리 호갱…… 고객께서 미덥지 않으신가 보다.”
“알았어, 여보!”
입맛 들렸나?
열아홉 살 주제에 뭐 하는 짓거리야? 따지고 보면 고딩 부부였다. 저 나이에 애를 가져 봐라, 얼마나 힘들겠는가? 태어났는데 아빠, 엄마가 조 단위 재력의 철없는 아빠, 엄마라고 생각해 봐라.
응?
좋은데.
장위는 애써 부정했다.
철없다고 하기엔 경제력이 말도 못 한다. 하물며 열아홉 살에 권강을 날리는 부부였다. 재력은 백금 수저에 재능은 다이아몬드 수저라니. 아이가 스무 살이 되어도 부모가 서른아홉 살이었다. 친구 같은 부모였다. 더욱이 쟤들은 반로환동할 거 같아.
‘나는 그래도 재능은 없잖아!’
아버지가 주석이지만, 재능은 별로여서 균형이 맞았다. 저놈들은 결혼만 하면 자식은 재능과 부를 타고나게 생겼다.
이러면 한국의 저출산을 위해서라도 많이 낳아야 했다. 돈은 둘째 치고, 저런 연놈들이 많이 태어난다고 상상해 봐라.
‘우리나라엔 저주네!’
대중화의 저력은 인구지만, 비율상 뛰어난 인재는 한국이 더 많았다. 저 작은 나라에 무진이나 지수 같은 애들이 나오는 것만 봐도. 앞으로 중한일 교류전은 쟤들 자식들의 독차지였다.
‘너무 완벽하잖아!’
이럴 때만 애국심이 차오른 국뽕 장위는 무진이 고자였으면 했다. 다만, 같이 목욕 가자는 걸로 봐선 불길하다.
흠.
장위는 무진이 부럽지만, 애써 부정했다. 당장은 비용 절감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아버지에게 결제 맡은 비용 한도를 초과한 지 오래였다. 성과야 더할 나위 없기는 하지만, 가격 조절에 실패했다. 비싸다고 욕하면서도 미국산 사과폰을 쓰는 이유였다.
‘저 정도면 내가 해도.’
지친 기색이 확연했다.
추격자가 검신이었다는 걸 고려하면 지금까지 버틴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암중으로 대중화를 흔들어 놓고, 아버지까지 궁지에 몰아넣은 녀석을 내 손으로 잡는다?
좋아, 할 수 있다!
장위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만 성공하면 아버지는 물론, 구대문파에 깊은 인상을 새겨 줄 수 있었다.
‘한 번 죽지, 두 번 죽냐!’
지쳐 있으니, 결계를 여는 즉시 급소에 일격을 날린다면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결심을 굳히자, 무진이 신호를 주었다.
“열어?”
“열어!”
장위는 맨주먹만 믿진 않았다. 아버지가 주신 장비빨을 믿는다. 주석궁의 보고에 있는 ss급 청룡권갑(靑龍拳甲)을 착용했다. 청룡의 여의주처럼 전력을 한 점에 집중하여 공격력을 300%까지 끌어 올린다.
장위는 과감하게 나아갔다. 지수가 옆으로 비켜 주었다. 힘을 집중하여 지쳐 있는 놈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퍼어어억!
맞았다!
결정타를 먹인 후, 결계가 완전히 열렸다. 청룡권갑에 적중한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끝났나?
번쩍!
눈을 감고 있었던 루이스의 눈꺼풀이 열리며 광기에 휩싸인 광망을 토한다.
“드디어 걸렸구나!”
“난, 아니다!”
당당하게 외친 장위는 어느새 지수의 뒤로 빠져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도망치는 것 하나는 수준급이었다. 핵폭발이 일어나도 살아남을 생존력이다.
“강 대형, 이거 좀!”
“잔업은 4밴 거 알지.”
망할!
비용이 사채 이자처럼 늘고 있었다. 그러나 싫다고 하는 순간, 미련 두지 않고 돌아설 매정한 인간이었다.
-돈으로 맺은 관계가 확실하지.
돈을 보지, 사람은 안 본다는.
무진의 우스갯소리가 장위의 뇌리에 맴돌았다. 그때는 농담으로 치부했지만, 무척이나 현실적이었다. 돈을 줄 때는 누구보다 친한 친구지만, 돈이 떨어지는 순간 남보다 못했다. 그 순간부터 자신을 고깃값으로 팔아 버릴지도 모른다.
더럽게도 깔끔한 관계였다.
“우리 장위가 주석도 해 보고 그래야지, 언제까지 병신처럼 주접떨며 살 거야.”
“……고맙습니다.”
좋은 일인데, 전혀 좋지 않다.
자신을 주석으로 만들어 놓고, 대중화에 빨대를 꽂겠다는 심보였다. 국정 농단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비선 실세의 등극이었다. 뻔히 미래가 보이는데도, 당장 살려면 들어줄 수밖에 없다.
“지수야, 할 수 있지?”
“나, 자기 와이프야. 믿으라고.”
“부정할 수 없는 순간이네.”
“그럼 파토지.”
무진과 지수의 위기감이라고는 일절 없는 대화에 분노하는 이가 있었다.
부들부들!
작금의 사태에 이성을 잃을 것 같았다. 평소였다면 되레 비웃고 지나갔을 테지만, 당한 게 너무 많았다. 일진이 사납다는 말로 끝내기에는 최악의 하루였다. 냉정을 유지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자신을 이렇게 만든 연놈들이 안중에도 두지 않으니 억장이 무너질 수밖에.
“장위~~~!!”
하물며 자신에게 개 같은 일격을 선사한 놈이 주석궁의 망나니 장위였다. 현실을 받아들일수록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아들이 달라졌다고 한 주석의 공표는 당권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적인 결정이 아니었다.
“네놈이 와룡이었느냐!”
장위의 주먹은 형편이 없었다. 전력을 상실한 상태에서도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주먹질이었다. 그렇다면 이해가 된다. 지금까지 보인 멍청한 짓도, 뛰어난 심계를 감추기 위한 계책이 분명했다.
헙!
난 왜?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가공할 살기에 장위는 안색이 퍼렇게 질렸다. 더욱이 와룡이 대체 뭐야? 삼국지연의도 끝까지 읽어 본 적이 없거늘. 한순간에 제갈공명으로 현신하여 분노의 표적이 되었다.
법 없이도 살 장위로선 달갑지 않은 현실과 마주했다. 아니라고 하기에는 타이밍이 늦었다. 지금 와서 부정하기도 그렇고, 와룡도 괜찮을 것 같아서 망설였다.
좋은데, 두려운.
그래도 사실은 밝혀야 할 것 같았다. 이대로 오해가 쌓이면 나중에 대책이 없을 수밖에 없다.
“우리 장위 도련님의 계책이 어떠냐? 네놈 따윈 애초에 우리 장위 도련님의 손바닥 안의 원숭이에 불과했어!”
무진은 장위의 망설임을 없애 주었다. 갈등할 때는 그냥 지껄이고 보는 편이 효과적이었다.
아, 왜?
싫어?
무진과 장위의 눈빛이 얽히며 많은 대화를 하고 있었다. 함축된 의미가 너무나 정확했다. 장위로선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게, 이제는 선을 넘었다.
“후후후후, 어쩌냐, 애송아!”
과연 눈앞의 미래만 보는 장위였다. 그것이 쥐약인 줄 뻔히 알면서도 나중의 일이었다. 근시안적인 대처는 한국이나 중국이나 다르지 않았다. 하물며 나만 잘 살면 되지, 주변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죽인다! 죽여 버릴 테다~~~! 반드시 네놈만은!”
루이스가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이제는 여력을 남길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른 이도 아니고, 벌레보다 같잖게 여겼던 장위에게 제대로 당했다.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가 없는. 이성을 상실하게 하는 현실이었다.
우우우웅!
화르르르르!
루이스는 본원진기의 소모 따윈 신경도 쓰지 않는 복수의 화신이 되었다. 몸에서 발산된 극강의 뇌기가 주변과 반응하여 일대를 낙뢰 지대로 만들었다.
호오.
무진은 장위를 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냉정을 잃을 만큼 약이 올랐을 텐데도 참아 내던 놈이 장위의 우쭐함에 이성을 잃었다. 장위야말로 대중화의 확실한 최종도발기(最終挑發機)였다. 어디나 내놔도 부끄럽기에 장위한테 당하면 치명타의 대미지가 컸다.
‘나도 못 참을 것 같다.’
무진은 놈의 심리 상태를 이해했다. 이 판을 만든 자신조차도 화나게 하는 장위의 도발력이었다.
‘한 번만 써먹기는 확실히 아까워.’
장위는 스스로 쓰임새를 증명해 냈다. 무진은 될수록 중용해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후일, 주석이 된다면 중국의 미래가 암담하려나?
‘누가 알아, 잘할지?’
보기엔 멍청해 보여도 개인의 보신이 아닌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청렴한 관리로 거듭날 가능성이 무려 0.00001%는 되었다.
유전자 검사로 친자 확률 99.99999%가 나와도 내 자식이 아니라고 우기는 인성이라면 충분하다.
“계획대로 놈을 제압해.”
“기막 쳤다.”
“컥…… 강 대형만 믿겠습니다.”
“네 관상을 보니 무병장수할 것 같다.”
“감사합니다!”
숙여야 할 때 숙일 줄 알아야 성공하는 법. 비로소 장위는 본인 포지션에서 살아남는 방도를 체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