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302화 (303/374)

302. 친구야, 그 강을 넘지 마라(4)

‘미쳤군!’

규모로는 천상 길드와 비교가 되지 않겠지만, 내실을 따지면 그 이상이었다. 결계를 이런 식으로 변환하여 공간을 확장하고 창조할 수 있다면 부동산에 목을 맬 필요가 없었다.

부동산 투기꾼들이 봤다면 곡소리가 날 일이었다. 좁은 공간에 광활함을 담았으니 굳이 큰 집으로 갈 필요가 없어졌다. 10평이면 수백 명이 살 수 있었다.

“시작하죠.”

“약속대로 3초는 양보해 주마.”

“감사합니다.”

“오너라.”

무진은 빠꾸 없이 쇄도했다.

직선 그 자체였다. 단지, 빠를 뿐. 작용 반작용에 의해서 나아가려면 추진력이 필요하나, 뒤로 힘을 가한 것 같지 않았다. 말 그대로 추진력이 없이 속도를 내고 있었다. 방향을 예측한다고 해도, 공간을 끊어 내는 듯한 극한의 간결함이었다.

무전조(無前兆)의 쇄도.

탄력을 받아 완벽한 궤적을 이루는 권격.

두 가지가 맞물리자.

뻐어억!

방어를 용납하지 않는다. 황비홍처럼 양보를 위해 내밀던 한 손이 무안해졌다.

슈우우우웅!

처저저저적!

안면을 처맞고 직선으로 날아가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바닥을 한참이나 긁어 댄 후에야 멈춰 섰다. 바닥에 문지른 얼굴 주변으로 붉은 핏물이 아름답게 번졌다.

한동안 조용했다.

흐억!

시원한 바람에 정신이 들어 고개를 든 천제는 기함을 터뜨리다, 안면에서 전해지는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허어어억!

너무 아팠다.

덜컥! 얼굴을 매만지다 고통이 2배가 되었다. 다행이라면 머리가 남아는 있다는 점이다. 순간 정신을 잃으면서 머리통이 박살 나서 사라지는 줄 알았다.

부르르르!

초속 재생이 발동하고, 고통이 잦아들었다. 그제야 주변이 시야에 들어온다.

“괜찮으세요?”

“……넌!”

“영상이 잘 나오네요.”

“……뭐?”

카메라에 비친 본인의 모습에 천제는 기겁했다. 얼굴은 남아 있지만, 피범벅이 된 채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어 휘날렸다. 점잖은 중년의 신사로 불렸던 천제의 모습과는 상반되었다. 어딜 봐도 상거지였다.

“초고속 슬로모션으로 찍었으니, 한 컷, 한 컷 애들하고 연구나 해 봐야겠네요.”

“……잠깐!”

이런 꼴불견을 초고속으로 하나하나 파헤치겠다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광대놀음을 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 내가 일격에 기절했다고?’

쪽팔림보다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단 일격에 정신을 잃고, 기억마저 날아가 버렸다. 그런 일이 가능한가? 누군가에게 물어본다면 농담하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평생 겪어 본 적이 없었던 현실에 판단력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비현실과 망상의 경계에서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아무리 외면하려고 해도 남아 있는 고통이 현실을 증명했다.

‘이놈 대체 뭐야?’

뭘 어떻게 했는지 봤어야 알지? 한데, 봤어도 문제였다. 불문곡직, 일격에 패배했다는 사실만이 남았다. 수단, 방법을 고려해 봤자 답이 나오진 않는다. 비겁하다고 해 봤자, 상대는 생도였다. 일개 생도가 수작 좀 부렸다고 욕을 한다면 비웃음을 살 대상은 정해져 있었다.

평지풍파.

폭군.

아들에게 들어서 실력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저학년이 고학년을 두들겨 패고 다니진 못할 테니까. 권왕이 대체 얼마나 영약을 퍼부었을까, 알고 싶어서 찾아오긴 했어도.

이건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권왕과는 전투력에서 약간 밀리긴 해도, 일격에 지는 그림은 나오지 않았다. 하물며 권왕도 아니고 그 제자에게 일격에 기절했다.

수작이고, 나발이고.

당하고 나서도 믿기 어려운 망상의 극치였다. 나도 이렇게 믿기 어려운데, 말한들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아, 영상!

조작이라고 해야 하나?

다 떠나서, 이대로 끝내는 건 용납하지 못하겠다. 보이지 않는다고? 그런 설정은 만화에서도 쓰면 욕을 먹는다.

“한 번만 다시 하자!”

“한 번 양보하셨으니까, 이제 두 번 남았네요.”

“……?”

흔쾌히 받아 줘서 고맙기는 한데, 3초 양보가 이렇게 발목을 잡게 될 줄이야. 후배를 위해 양보한 미덕이 덫이 되어 돌아왔다. 덕을 베풀면 복이 되어 돌아온다는 속담은 궤변에 지나지 않았다. 자기 건 자기가 챙겨야 했다.

“한국 제일인 천상 길드의 천제께서 한 입으로 두말하시지는 않으시겠지요?”

“……난 그런 사람이 아니다.”

이 빌어먹을 놈이 얼마나 사악한 녀석인지 이제는 깨닫는다. 도무지 빠져나갈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세간에서 들리는 수많은 욕은 이놈에 대한 과소평가였다. 양보의 미덕을 끝까지 발휘해야 할 듯싶었다.

‘이번에는 허무하게 당하진 않는다!’

천성기를 극한으로 끌어 올린 후, 천성안을 발동했다. 첫 공격에 모든 수를 다 걸었으리라 봤다. 그렇다면 일격만 막으면 두 번째부터는 수월할 것이다.

“갑니다.”

“……오너라.”

“목소리가 떨렸는데, 기분 탓이겠죠?”

“당연하지!”

민준이 아버님은 아주 재미난 분이셨다. 태수 선배만큼이나 타격감이 상당했다.

속도, 무전조.

+환술.

처음 일격과 같은 속도였지만, 환술이 결합이 되자 감각이 오작동을 일으켰다. 더욱이 이 연무장은 무진이 만들어 놓은 공간. 즉, 나와바리였다. 환술과의 연계가 어떤 장소보다 유리했다.

뻐억!

쿠다다다당!

애초에 전력에서 뒤지는 천제로선 홈그라운드의 이점도 없으니 처음과 다르지 않은 결과였다. 막을 수 있다고 여겼던 전제가 환술의 극의인 환천으로 인해 완전히 뒤바뀌었다.

흐억!

한참을 기절했던 천제가 의식을 차렸다. 인식, 확인, 고통으로 이어지는 데자뷔를 느꼈다.

크아아아!

얼굴이 사라지는 고통에 현실을 인식하고, 카메라를 마주해야 했다. 이번에는 처음보다 더 거지 같은 상황이었다. 가면 갈수록 악화하는 점입가경이 되었다.

“분명히 막았는데?”

“환술을 썼어요.”

“아, 그렇구나.”

“연무장과 동화하면 잘 먹히죠.”

친절하게 설명해 줄수록, 천제는 억장이 무너졌다. 속도와 무전조를 경계했거늘, 그런 심리를 역으로 이용해서 환술을 먹인 것이다. 밖에 쳐 놓은 결계도 이 새끼가 한 게 분명했다.

“……한 번만 더 하자!”

“이제 한 번 남았네요.”

큭!

일격절명이라 반박도 못 했다. 실크로드도 아니고, 3초식이 이렇게나 길고도 험난한 여정이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그래도 해야 했다.

이렇게 허망하게 두 번이나 지면 영원히 조롱거리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실제로 한 번은 실수지만, 두 번은 실력이었다.

“갑니다.”

“……오너라!”

오늘따라 같은 일을 대체 몇 번이나 하는 거야? 이쯤 되면 최소 무한루프였다. 천제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최악의 운명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다르다.

‘음. 미래는 뭘 해도 바꿀 수 없다고 하지 않나?’

영화나 소설을 보면 주인공이 제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국에는 똑같은 결말로 귀결되는 줄거리가 대부분이었다.

천제는 일말의 불안감을 흩어 냈다.

한국 제일의 길드장으로서 세 번이나 허무하게 당할 만큼 약하지 않았다.

그렇지.

이번엔 보였다.

“홀드.”

보이는데, 정지되었다.

무방비로 얼굴을 처맞고 쭈욱! 날아가서 바닥을 구르다가 얼굴 주변에 혈화(血花)가 피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억울함이 밀려왔다.

“마법을 썼어!”

“예.”

그게 뭐 어때서란 무진의 표정에 천제는 치를 떨어야 했다. 속도, 무전조, 환술까지는 이해한다고 쳐도, 마법을 써서 꼼짝 못 하게 할 필요가 있냐는 말이다.

억울한데, 억울하다고도 못 했다. 이토록 답답하고 분통이 터지는 대결은 난생처음이었다. 비겁하게 숨기고 있다가 꺼내 들었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믿을 수가 없군!’

상기할수록 생도의 경지를 벗어나 있었다. 마법으로 자신을 옭아맬 수 있는 마법 생도가 얼마나 될까? 경지에 이른 마도사도 하기 어려운 마법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범상치 않은 수준으로, 제각각이 결합하자 무시무시한 수법이 되었다.

‘알고서야 막는다 쳐도.’

현실을 체감할수록 천제는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처음이든, 두 번째든 걸려들지 않을 수 없는 고도의 연계였다. 더욱이 이놈은 생도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있는 괴물이었다.

아카데미 생도들이 운이 나빠서 당한 것이 아니다. 최근에 마나 흡수력을 각성했다고 하는데, 이게 말이 될 법한 일인가?

애초에 생도들은 꿈도 꾸기 어려운 높이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괴물을 이기라고 아들에게 영약을 먹였다니, 부질없는 짓이었다. 아내가 아침마다 주는 장어와 같았다.

“한 번만 더 하자꾸나.”

“세 번이나 해 드렸으면 저로선 할 도리는 다했다고 보는데요.”

“원하는 걸 말해 보거라. 뭐든지 들어주마.”

“딱히 없는데요.”

말문이 막힌 천제였다. 자신이 언제 이런 취급을 받아 본 적이 있었나, 생소한 경험의 연속이었다. 더욱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는 백지에 가까운 약속을 내걸었다.

그런데도 단칼에 거절했다. 배포가 있다고 하기에는 표정이 지나치게 얄미웠다. 마치 천상 길드가 그만한 능력이 있나? 의구심이 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길드 연합이 권왕가를 지지한다면 어떤가?”

“길드에서 사부님을 이길 만한 분이 있을까요? 지금도 죄다 터지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더더군다나 길드장님도…… 이쯤 하죠.”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할 뿐이지만, 천제는 순간적으로 혈압이 솟구쳐 머리 뚜껑이 열릴 뻔했다. 맞는 말을 해도 저리 얄미울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내 명예를 걸고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겠네.”

“그건 천상 길드를 위한 일일 뿐이에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진의 냉철한 분석에 천제는 소름이 돋았다. 말로는 지지해 주겠다고 했으나, 실제로 천상 길드가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다. 되레 권왕가의 비호를 받기 위해서 애를 써야 할 판이다.

권왕가는 힘, 재력, 규모에 이어 눈앞에 미래까지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 권왕가와 척지면 살아남기 어려웠다.

밉보이기 싫으면 천상 길드는 권왕가를 대놓고 전폭적으로 지지해야 했다. 같잖은 자존심을 부려 봤자, 길드 연합으로선 무엇 하나 이롭지 않았다.

‘게다가 이 녀석의 강함은 터무니없지 않은가.’

성좌의 선택도 받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최정상 각성자를 이겼다. 세 번을 연달아 일격에 기절한 이상, 방심했다는 소린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애초에 오라 가라 하는 것 자체가 모욕이었다.

그런데도 세 번이나 받아 줬으면 예의를 갖추었다고 볼 수 있었다. 더 하자는 요구는 무례였다.

“인정하마. 어떻게 하면 대결할 수 있는 게냐?”

“서로 불편한 일 없도록 깔끔하게 대결할 때마다 100억으로 하죠.”

“그래, 그렇게 하…… 뭐라고?”

“100억이요. 돈 말고 다른 건 필요 없습니다. 아, 이기시면 100억 드립니다.”

예의가 있기는 개뿔!

100억이 우습나? 대결 때마다 100억이라니, 너무하지 않은가. 한데, 싫다고 하기도 애매해졌다. 반대로 대결에서 이기면 100억이었다. 내빼는 순간 지는 게 두려운 패배자이자, 돈이 아까운 구두쇠란 꼬리표가 달린다.

‘말도 못 하게 사악한 놈이다!’

이대로 내뺄 수도 없게 되자, 천제는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절대 져서는 안 된다. 100억이면 우리 아들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줄 수 있다. 길드 공금을 함부로 쓸 수도 없는 일이기도 하고.

천성안을 극대화하고.

마법 무력화 스킬을 쓰고.

천제는 세 번이나 당한 기억을 되짚어서 방도를 찾았다. 이번에는 처음처럼 허무하게 당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3초 양보가 끝난 이상 먼저 공격해도 되었다.

선수필승.

필사의 결의였다.

“얘들아, 나와.”

무진의 배후로 4대 정령왕, 요나, 크림이가 떡하니 자리했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매섭게 노려보자, 천제는 잔뜩 위축되었다.

“……포기!”

천제는 나이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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