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301화 (302/374)

301. 친구야, 그 강을 넘지 마라(3)

통상적으론 그런데.

결계와 진법이 비범하긴 했다.

천제도 호승심이 돋았다.

‘어디.’

얼마나 대단한지 감각을 개방하여 결계의 흐름을 확인했다. 결계의 목적은 얼마나 잘 속이는지가 중요하다. 부동심을 세우고, 평정심을 유지한다면 결이 보이기 마련이다.

‘저곳이군.’

흐름을 겹치게 하고, 그림자에 가두어 혼선을 주었다. 일반적인 각성자였다면 흐름을 놓치고 되돌아갈 테지만 한국 최강의 길드장, 천제의 감각을 흔들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어른의 경험과 관록을 무시하지 말거라.

이제 본질을 보여 줄 때다.

왜?

한 발자국이면 정문에 도달해야 하는데, 본인의 차 문 앞으로 되돌아왔다. 이럴 수가 있나 싶은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제야 차 옆에 꽂힌 팻말이 보였다.

-결계가 쳐져 있으니 되돌아 나온다고 놀라지 마세요. 방문자는 꼭 미리 전화해 주세요.

-집주인 올림.

친절하게 결계가 쳐져 있다고 적혀 있었다. 행여나 모르고 들어왔을 때 놀라지 말고 되돌아가라는 팻말이다.

지나치게 친절한 세부 지침이 천제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내가 또 방향감각을 잃었어?’

전문 결계사나 진법가가 아니더라도, 어지간한 수준의 결계나 진법은 자신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저 생도의 수준을 파악해 보려는 의도로 약간의 진심을 발휘했었다.

고작 10m에 불과한 결계를 뚫고 들어가지 못하다니, 천제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길치라고?

우웅!

속성인 천성기를 활용한 천성안을 개방했다. 공간 스킬, 스페이스 체이서(Space Chaser)를 발동하여 융합한다. 이 수법까지 펼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이젠 생도라고 하여 경시하지 않는다.

“이제야 보이는구나.”

아주 영악한 수법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보였던 결 안에 다른 흐름이 두 갈래로 숨어 있었다. 삼중 나선의 결을 이용한 환영이었다. 멋모르고 일선(一線)의 흐름대로 따라갔다가 되돌아오고 만 것이다.

“다시는 속지 않는다.”

초인종을 향해 걸었다.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였다. 검지를 펴서 버튼을 누른다.

응?

누르는 감각이 있었는데.

왜?

차 옆으로 돌아왔다.

몸소 겪고도 미치고 환장하는 현실이다. 방문자는 연락 달라는 팻말이 조롱하는 것처럼 해석되었다. 너 따위는 결계를 해체할 수 없으니 무의미하게 힘 빼지 말고 순순히 전화해라, 라고 하는 듯했다.

부르르르!

천제는 자만심과 우월 의식을 버리긴 했으나, 본인의 나이 반 토막도 안 되는 생도에게 조롱당했다는 사실에 울화가 치밀었다.

“이 빌어먹을 녀석이!”

혼구녕을 내 주마!

이번에는 진짜로 전력을 다했다. 천성기를 극한으로 끌어 올려 천성안의 본질 트루아이즈(True Eyes)를 발동하여 진실을 꿰뚫어 보는 영역에 도달했다.

“이놈, 끝까지 사람을 농락하는구나.”

3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9개나 되었다. 그러니 계속 쳇바퀴처럼 되돌아올 수밖에. 알면 알수록 속을 뒤집어 놓는 평지풍파의 본질을 체감했다. 어째서 이 녀석이 아카데미와 여론의 사회면을 뜨겁게 달구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것도 이젠 끝이다.

어른을 놀린 대가를 어른답게 대련으로 화답해 주마.

3초식은 양보해 주마.

어디 맘대로 발버둥을 쳐 보거라.

응?

되돌아와서 놀랐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다. 주변의 풍경이 바뀌었다. 현실의 영역과는 거리가 먼 판타지였다. 지옥이 현세에 강림한 듯 화산과 용암지대가 되었다.

하늘과 대지가 먹빛으로 물든 가운데 내리치는 벼락은 흡사 지옥마제의 강림처럼 다가온다.

“이게 무슨?”

일반인이 아닌 각성자, 즉 침입자일수록 결계는 변화를 이룬다. 무진이 만들어 놓은 결계는 허락받지 않은 침입자를 용납하지 않는다. 몰라서 들어온 사람은 되돌아가도록 배려하지만, 알고서도 들어온다면 의도가 있다고 봤다.

그래서 결을 이중 삼중으로 숨겨 놓은 것이다. 의도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결계의 흐름을 보는 안목에 담겨 있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까지 기회를 줬으니 이제는 호되게 당해도 전적으로 본인 탓이 된다. 정 그렇게 집에 들어오고 싶었으면 전화를 해야 했다.

아는 번호였다면 받을 거고.

스팸은 차단한다.

두드드드!

용암에서 화염 거인이 튀어나왔다.

천제는 거인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생도라고 해서 만만히 봤더니, 예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생도가 아니라, 초월급 결계사를 의심해야 했다.

“좋다, 끝까지 해 보자꾸나.”

화염 거인은 족히 40m가 넘어간다. 그런데도 기민하고, 민첩하다. 환영이란 걸 알면서도 오감에 전해지는 기운은 실재했다.

허어!

천제는 정신이 육체에 미치는 영향을 실감하고 있었다. 하나, 1기의 거인으로 초인을 이길 수는 없다.

두드드드드!

내심 우습게 여겼던 천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인이 우후죽순 일어서더니 어느새 수백이 넘어갔다.

1개라서 우습게 봤다고, 수백은 너무하지 않나. 단계적으로 보통은 두셋일 텐데, 상식을 가볍게 파괴했다.

1층을 깼더니 단숨에 100층으로 워프한 꼴이다.

“그래 봤자 환영일 뿐.”

천성기를 압축하여 발포하는 천성포(天星砲)를 쏘았다. 제아무리 화염 거석의 거인이라도 8성의 천성기를 담은 포격에는 무너지리라.

푸아아앙!

파편이 사방으로 총알처럼 쏘아진다. 주변에 있던 화염 거인이 파편에 맞아 휘청였다.

천제는 기선을 제압한 후 전력으로 공세를 펼쳤다.

퍼퍼퍼펑!

화르르르르르!

생도에게 쌓인 울화를 풀 생각인지, 작정을 했다. 평소 온화한 미소로 응대하던 천제를 기대했다면 커다란 착각이었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절제할 뿐, 어른도 내면엔 쪼잔함이 가득했다.

후우우!

심호흡한 후 주변을 돌아봤다

화염 거석의 파편들이 수북하게 쌓였다. 수백의 화염 거인을 기어이 처리한 것이다. 한국 길드를 대표하는 각성자다운 실력이었다. 속성, 스킬의 융합이 무인보다는 한층 더 빼어났다.

“어떠냐, 이놈!”

두드드드드드!

그 말을 들었는지.

화염 거석들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수백의 화염 거인들이 아까보다 더한 화염을 분출하며 천제를 포위했다. 주위의 온도가 급속하게 올라가며 타는 듯한 열기를 발산한다.

“젠장, 결계의 흐름부터 찾았어야 했는데!”

흥분하는 바람에 원래의 목적을 망각하고 말았다. 결계를 부수지 않고서는 어차피 화염 거인을 처리한들 무용지물이었다.

그렇다고 한들 결계의 회복력이 상상을 초월한다. 일순 흔들렸던 흐름의 결이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화염 거인을 처리한 직후, 곧바로 움직여야 했다.

꽈아앙!

재차 화염 거인을 쓰러뜨린 천제는 결계의 결을 되짚어서 안으로 파고들었다.

마침내 초인종을 눌렀다.

응?

차 옆으로 돌아왔다.

왜~~~~?

천제는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혔다. 여태 뭔 짓을 했는지 몰라도, 뻘짓은 확실했다. 되돌아올 거면 그토록 열심히 화염 거인을 무찌르지 않았다. 소모된 천성기를 확인할수록 어이가 없는 현실이었다.

이런 결계는 처음이다.

한국에 이토록 기이한 결계를 칠 수 있는 결계사가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권왕가에서 결계사를 모집했다는 공고도 보지 못했고.

이 정도면 족히 연봉 10억은 우스운 실력이다. 한데, 고용주로서 결계사한테 연봉 10억은 아까웠다.

천제는 미치고 환장했다. 여기가 신촌도 아니고, 초인종을 못 눌러서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도전하기가 망설여졌다. 결계의 흐름을 보면 볼수록 엎친 데 덮친 격이 되었다.

“설마 또?”

그 지랄을 다시 하는 것도 복장이 터지는데, 초인종을 누를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했다. 이번에도 뻘짓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화감이 들었다.

뚜뚜뚜뚜!

천제는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신호 후 상대방이 받는다.

“문 좀 열어 주게.”

나이가 들수록 포기가 빨라진다.

***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눌러 놓았다.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할 것같이 화가 치민 천제였다.

“집에 있었어?”

“그런데요.”

“있었으면 문을 열어 줬어야지!”

“초인종을 누르기가 힘들죠?”

천제는 차마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 봤자 무능력과 오기 부리는 꼰대 취급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애초에 팻말대로 했다면 괜한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본인이 자초했으니 따져 본들 본전도 찾기 어려웠다.

“녹차 드실래요?”

“됐다.”

“제가 마시려고요.”

“한 잔 다오.”

거절하면 무안해서라도 다른 선택지를 내놓기 마련인데, 이놈은 애초에 선택을 권하지도 않았다.

자기가 마시니까, 마실 거면 마시라는.

후르륵!

탐탁지는 않았어도, 냉녹차는 맛이 있었다. 녹차를 고르는 안목이 제법 있었다.

응?

입을 가득 메우는 은은한 향도 대단한데, 육신에 쌓인 탁기를 깨끗하게 씻어 내리는 청량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히 느낌뿐이었다면 놀라지 않을 텐데, 스텟에 영향을 주었다.

“한 잔 더 다오.”

“염치가 없으시군요.”

“이게 대체 뭐꼬?”

경상도 분이셨군.

“특별한 녹차예요.”

“……그렇군.”

아니라고 하기에는 효과가 뛰어났다. 매일 한 잔씩만 마셔도 무병장수하여 국민연금을 고갈시킬 막강한 파괴력이었다. 차라리 이럴 거면 기초연금만 타 먹어도 성공적이다.

‘세계수의 잎사귀로 달였으니 효과는 확실하죠.’

밖에서 개고생 한 것 같아서 세계수로 만든 녹차를 대접했다. 30번 재사용되기는 했어도 그럭저럭 터럭만큼의 효과는 있었다. 그래서 손님 대접할 때만 내놓는다. 맨 처음 효능이 가장 확실할 때는 아버지를 드렸다.

가족이 먼저거든.

“드세요.”

“고맙구나.”

귀한 차라는 걸 알게 되자 분노가 조금은 사그라드는 천제였다. 밖에서 뻘짓을 한 사실을 차분하게 상기할수록 민망해졌다. 오기를 부리기보다는 전화하면 간단하게 끝날 일이었다. 어디 가서 사실대로 말하기에도 머쓱하다.

“집이 근사하구나.”

“고마운데요. 그런 얘기 하려고 오신 건 아닐 텐데요. 건방지게 굴었던 건 죄송해요. 하지만 제가 길드장님을 만나야 할 이유도 없는데, 다짜고짜 오라고 하니 기분도 좋지 않았습니다.”

“꽤 솔직하구나.”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솔직하지 못할 이유가 있나요.”

대범하다고 해야 할지, 무모하다고 해야 할지. 듣던 대로 자유분방하고,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천제로선 좀처럼 겪어 보지 못한 직설적인 대화였다. 보통은 속내를 숨기고, 알아도 모른 척하곤 했었다.

“솔직하게 말하니, 나도 숨기지 않으마. 기분이 좋지 않았던 건 사실이지만, 나무라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나도 모르게 그간 당연하게 여겨 왔던 것 같더구나.”

“그래도 이쯤에서 마무리하실 건 아니죠?”

“소문이 자자한 네 실력을 확인해 보고 싶구나. 어떠냐? 하겠다고 한다면 3초 양보와 소정의 선물을 내어 주마.”

“좋아요, 대신 영상으로 남겨도 되나요? 두고두고 복기해 보려고요.”

“허락하마.”

뒤로 빼기에도 늦었다. 안부나 물으려고 찾아왔다고 하기에는 결계에서 너무 진을 뺐다. 진짜로 무진이 결계를 쳤는지 확인해야 했다. 이만한 수준의 결계사라면 길드에도 적용해 볼 가치가 있었다.

“연무장으로 가시죠.”

“집에 연무장도 있는 거냐?”

“이사를 한 이유예요.”

“부친께서 맹모삼천지교를 지키시는 모양이구나.”

“제 의견을 존중해 주신 거죠.”

연무장의 문을 열었다.

예상치도 못한 광활하고 시원한 대지에 천제는 혀를 내둘렀다. 연무장 내부에 결계를 친 듯한데,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방문을 여닫았을 뿐인데, 아예 다른 공간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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