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 친구야, 그 강을 넘지 마라(1)
-소 뒷걸음질 치다 쥐를 잡았군.
-날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줄 알았더니, 네놈이 이제야 사람 구실이라도 하게 됐구나.
-호오, 이번 건 쓸모가 있었어. 어디서 이런 정보를? 그래, 너도 정보원을 가질 때가 됐지.
-계속 이렇게만 하거라. 내 다음은 네가 될 게다.
개과천선하겠다고 해도, 믿지 않으셨다. 네가 뭔 짓을 해도 이젠 봐주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차가운 눈빛에 좌절했었다. 더는 아버지의 환심을 사기는 글렀다고 생각했을 때, 구원의 손길이 있었다.
어렸을 때 이후로 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기대가 서린 눈빛에 환희를 느꼈다. 망나니처럼 사는 동안에는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줄 알았었다.
더 나아가 공식적인 후계자로 거론이 되었다.
한국에서 사고를 치고 말도 못 붙였던 것이 엊그제거늘, 이제는 아버지가 먼저 기대를 품고 물어보셨다. 말만 하면 닥치라고 했던 걸 상기하면 상전벽해였다.
이게 다 강 따거로 인해서다.
나이가 같은데, 왜 따거냐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이가 많고 적어도, 땅이 작아도, 능력이 되면 대형이었다. 대중화인은 속이 좁지 않았다.
그러나 기대가 클수록 부담도 커졌다. 아버지의 물음에 답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다. 어릴 때는 부담감에 무너져 망나니가 됐지만, 이제 와 또 그럴 수는 없다. 아버지도 그때는 참지 않고 내칠 것이기 때문이다.
기쁨도 잠시, 장위는 최근 다급해졌다. 좋았던 당내의 분위기도 급변했다.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시기였다.
“어제 문자를 보냈는데, 하루면 올 때가 되지 않았나?”
전화를 먼저 하지는 못한다. 해도 안 받고, 받고 싶을 때만 받았다. 그래도 어쩌랴,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지금 사태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띠리링!
그제야 기다리고 기대하던 119 전화가 왔다. 얼마나 목을 매고 기다렸던가. 조금만 더 늦게 왔다면 숨 막혀서 질식사할 뻔했다.
“강 따거, 나 좀 살려 줘!”
-좋은 말로 할 때 한국말로 해라.
“강 대형, 대형밖에 없어. 나 지금 좆되기 일보 직전이야. 이대로 가면 다 나가리라고! 이거 한국말 맞지?”
-정말 스스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녀석이네. 너! 나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나야, 항상 대형만 믿고 있지.”
-설명해.
“자, 들어 봐! 한가하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가 아니라고.”
-닥치고 본론부터 말해.
“옙!”
현재 장 주석과 왕이 총리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한 달 전과는 다른 분위기라 이해는 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전에 구대문파를 앞세워 팔대세가의 기세를 꺾었다.
특히 도중에 숨어 있는 세작을 역으로 이용해서 이득을 챙겼다. 세작은 당연히 무진이 내어 준 정보였다. 주석이 장위를 신뢰하게 된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다.
-그러니까 구대문파의 원로 2명이 뒈졌다고?
“그 일로 인해 구대문파는 요즘 쑥대밭이야. 더욱이 팔대세가의 기세가 강해지면서 아버지의 심기가 편치 않아.”
-총리가 노렸다고 보는 거야?
“당연히 그렇지 않을까?”
-그런데 나보고 어쩌라고?
“강 대형, 이번만 도와줘. 그럼 뭐든지 다 해 줄게. 아버지도 허락하셨어.”
얘기를 들어 보면 중국이 가지고 있는 비밀 병기, 즉 삼천 중 둘이 의문의 피살을 당했다. 팔대세가가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고 알려졌지만, 자세한 내막은 오리무중이었다. 현재로선 대비를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막막했다.
-팔대세가는 아닐 거야.
“어떻게 그리 확신해?”
-총리가 다크니스와 결탁했으니까. 다크니스로선 네 아버지가 정권을 유지하길 바라진 않을 거 아냐.
“차라리 우리와 손을 잡는 편이 낫지 않나.”
-들인 공이 있을 테고, 총리의 약점도 알고 있겠지. 반면에 장 주석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잖아. 하물며 독을 썼다는 걸 알았는데, 너 같으면 손을 잡겠어?
“아버지가 다크니스를 의심하고는 있었지만, 삼천을 죽일 정도는 아닐 거라고 봤거든.”
-대국이라며! 발에 채는 게 인간인데. 절대 고수를 퍼부어.
“수가 아무리 많아도, 절대 고수가 어떻게 발에 채!”
-그래서 못 해?
“못 하긴 또 누가 못 해. 절대 고수가 발에 채진 않아도, 한국보다는 많아!”
-정말?
“당연하지.”
이제야 중공군다웠다. 짱개의 근원이 뭐겠나? 결국은 인해전술이었다. 가장 완벽한 전략이자, 성공률이 9할에 가까웠다.
이런 좋은 전략을 놔두고 짱구를 굴려봤자, 사태만 더 악화시킨다. 안 되는 상황도 사람을 갈아 넣다 보면 방법이 생기기 마련. 만리장성도 처음에는 안 될 것 같았지만, 하다 보니까 인류 문화유산이 됐잖아.
밑 빠진 독도 쏟아부으면 차기는 한다. 결국에는 물이 빠지겠지만, 그건 나중 문제였다. 언제 중국이 다음을 고려하면서 움직였냐고.
-갈아 넣을 자신이 있다면 알려 줄게.
“강 대형, 믿고 있었다고!”
-일단 소문부터 내.
“왜곡 날조는 내가 또 일가견이 있지.”
한·중·일 민족성은 어디 가지를 않는다.
중국의 왜곡과 날조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렇기에 단순 날조와 왜곡은 면역이 돼서 어지간해서는 통하지 않는다. 매우 자극적이면서도, 사실을 기반으로 해야 했다. 1할의 사실과 9할의 과장이 만나 반복되면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요즘엔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날 수 있었다.
-그럼 상담료부터 계산해 볼까요, 호갱……고객님.
“천억 줄게.”
-이게 누굴 거지로 아나. 내가 그런 코 묻은 돈 달래? 네가 아직 절박하지를 않구나.
“……얼마를 원하는데?”
-3조.
“……흐엑! 말이 돼?”
무진의 무지막지한 수수료에 대중화의 장위는 마른침을 삼켰다. 천억도 적지 않은데, 3조라니!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눈앞이 깜깜하다. 아버지한테 말해 봤자 탁자 위 재떨이를 경계해야 할 판이었다.
-말이 되지. 성공만 하면 정권을 다시 잡는 일인데. 천억이면 날로 먹겠단 심보 아닌가.
“그렇긴 한데, 당장 3조를 어떻게 구해! 저번처럼 나누어서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전에는 팔대세가와 구대문파가 어쩔 수 없이 십시일반이라도 했지. 이번에 마련해야 할 3조는 전적으로 아버지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잘못되면 뒤이을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렵다. 당권을 유지 못 해도, 3조를 손에 쥐고 있는 편이 낫지 않을까 저울질했다.
-그건 네 사정이지. 내가 그런 것까지 일일이 확인하면서 정당한 수수료를 받아야 해?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을 거야.”
장 주석이 바보가 아닌 이상, 아들이 하루아침에 천재가 됐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을 터. 무진의 실체를 정확히 알지는 못해도, 장위에게 장자방이 있으리라 짐작하겠지.
하나,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물어봤다면 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뜻이 되었다.
장 주석도 지금 수단, 방법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단순히 돈을 잃는 것으로 끝나면 다행이겠지. 공산당이 후일의 변수를 남겨 둘 리 없다.
-하긴 돈 나고 사람 났지. 관 속에 싸매고 가라.
“……죽는다고?”
-너 같으면 후환을 남겨 두겠냐? 총리란 작자가 그렇게 너그러운 사람이었어?
“주변의 이목이 있는데, 죽이진 않겠지!”
-그럼 됐네.
대화가 중단되자, 장위의 안색이 점점 퍼렇게 질려 갔다. 자기가 생각해도 얼토당토않았다. 총리에게 패하는 즉시 본국에서 도망치지 않는 이상, 살아남기 힘들었다. 세계의 중심이란 마인드의 화신, 대중화가 언제부터 주변의 이목을 신경 썼다고.
“말해 볼게. 시간을 좀 줘.”
-장 주석님, 언제까지 엿듣고 있을 겁니까? 이제는 편하게 말씀하시죠.
“……뭐?”
-문밖에 있을걸.
설마 했지만, 장위는 열린 방문을 돌아봐야 했다. 그 앞에 아버지가 떡하니 서 있었다.
“과연 보통이 아니군.”
-스피커로 돌려.
장위는 졸지에 협상에서 배제된 채 듣고만 있어야 했다.
정체를 묻지 않는 선에서 장 주석과의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3조라는 금액에도 놀라기는커녕 방도를 물었다. 무엇이 우선인지, 판단력에서 장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성공만 한다면 자네가 원하는 대로 해 주지.”
-계약서를 보내겠습니다.
***
멍!
지수와 달리 구용, 혜진, 유정, 상원, 예슬, 태수는 말문이 막힌 채 무진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전화할 때까지만 해도 별달리 의식하지 않았는데.
“장 주석?”
“그래.”
“대체 언제부터?”
“3년 전쯤.”
최근 벌어진 중국의 사건 사고가 무진과 연관이 있었을 줄이야. 이제는 국내 한정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판을 흔들고 있었다. 다크니스 못지않은 암중의 주재자였다.
그런 중차대한 결정을 동아리방에서 하고 있었다. 이걸 대체 누가 믿겠냐고? 자신들도 현실과 망상에서 헷갈리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모자라서 중국까지 들쑤시려고?”
“나도 하고 싶지 않은데 도와 달라잖아. 너희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외면하는 매정한 사람들이었어? 나는 마음이 약해서 매몰차게 거절을 못 하겠어.”
“지랄.”
마음이 약하단 놈이 대뜸 3조를 달라냐?
액수를 잘못 말하지 않았나 귀를 의심했었다. 친구하고 장난 전화를 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오히려 후자가 더 그럴듯했다.
여하튼 단서가 붙기는 해도 기어이 3조 계약을 받아 냈다. 액수만 놓고 보면 대기업에서도 맺기 까다로운 금액이었다. 그걸 아카데미 동아리에서 체결했다. 일상처럼 별거 아닌 듯이 말해서 오히려 위화감이 들었다.
“조만간 투자금도 들어오겠다, 외화벌이 자축 파티라도 할까?”
“이러려고 동아리 만든 거야?”
“동아리의 낭만이잖아.”
“낭만은 무슨, 술 퍼마실 구실이지!”
이러쿵저러쿵해도 결국, 조 단위의 돈을 경험하기는 했다. 투자 동아리 내에서 오고 가는 금액만 놓고 봐도 절대 정상은 아니었다. 생도 간에 우의를 다지기 위해서라기엔 액수가 국가를 뒤흔들 헤지펀드 수준이었다.
지수도 투덜거리기는 했어도, 딱히 문제라는 의식은 갖지 않았다. 몸만 어릴 뿐이고, 40년이 넘는 삶을 살았다. 더욱이 매번 무진은 상식과는 거리가 먼 짓을 해 왔다. 이젠 익숙해지다 못해 식상해질 때도 되었다.
술 파티도 마찬가지다.
무진은 동아리를 다른 공간으로 만들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철저함을 보였다. 완전범죄라고 하기엔, 들킬 염려 자체가 무의미했다. 더욱이 교관이 동아리를 들어오려면 결계, 환영, 마나 센서를 통과해야 하는데,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교장 선생님까지 끌어들이는 건 반칙이지.”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도움이었어.”
원금 보장에 5배의 수익률을 마다할 사람이 대체 어디 있냐고? 은행도 5천만 원밖에 보장하지 않는 시대에. 이건 명백한 뇌물이자 매수였다. 한데, 구두로 약속한 이면 계약이었다. 걸려도 정상적인 투자에 지나지 않았다.
“구용 부장, 수고했어. 한잔해.”
“감사합니다. 주군.”
투자 동아리의 일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장구용이었다. 예지로 인한 성공률이 무려 70%가 넘었다. 3개로 분산하면 적어도 2개는 먹는다고 봐야 했다. 1개만 성공해도 무조건 2배 이상인지라, 동아리가 생긴 이래로 적자는 기록하지 않았다.
“강신을 이런 쪽으로 사용하게 해서 미안해.”
“아닙니다. 이렇게라도 갚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더욱이 마냥 나쁘다고 하기엔 강신의 동화율이 점점 오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주군의 선견지명이겠지요.”
구용에 대한 무진의 전폭적인 신뢰에 술자리 맨 끝에 자리했던 태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무진이 3학년이 될 때까지 방패막이가 되었거늘.
“이제는 쓸모가 다했다는 거냐? 이거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선배, 1년 치로 해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