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295화 (296/374)

295. 아카데미의 폭군(1)

대가주회의는 성황리에 마친 것으로 공표되었다. 칠대가문의 가주들이 만장일치로 권왕을 대가주로 인정한 것이다.

여론은 대체로 수긍하는 눈치였다.

권왕이 비록 막무가내로 행동한 적이 몇 번 있기는 했어도, 정도를 벗어난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 세운 공적을 객관적으로 검토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가문이 권왕가에 신세를 졌다고 봐야 했다.

이로써 권왕은 진정한 의미의 대가주로서 길드 연합과의 협상에서도 명분을 가질 수 있었다.

가문과 길드는 개와 고양이처럼 오랫동안 배척해 왔었다. 여론에 떠밀려 권왕의 요구대로 움직이고는 있지만, 적극적으로 따르진 않았었다.

그러나 이젠 임시가 아닌 대가주였다.

길드로선 마냥 무시할 수는 없게 되었다. 뒤늦게 대길드장을 뽑겠다고 해 봤자 속 보이는 짓에 대의를 거스르는 행위였다.

공적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길드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

내부에 버젓이 독버섯이 자라고 있는데도 모르고 있었으니 대길드장을 거론할 명분조차 없었다. 남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 처지라, 따르지 않는다면 염치없는 행위였다.

길드 연합은 위기임을 직시했다.

부랴부랴 길드장들이 천상 길드에 모였다.

천제 장용성을 필두로 하여 길드장들이 회의장에 앉았다. 길드 연합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었지만, 달라진 면면이 있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10대 길드장이 나왔어야 하지만, 현재 시리어스 길드와 화이트팽 길드는 공중분해 되었다.

다크니스와의 연결 고리가 깊어서 내부를 정리하는 선으로 끝낼 수가 없는 현실이었다. 묵과하다간 길드 연합 전체로 번질 위험이 있었다.

남은 8대 길드도 온전하지 않았다. 배신의 후유증으로 내부를 통제하는 데도 벅찼다. 설상가상으로 중소 길드는 없어진 수가 더 많았다. 길드 연합의 단결력이 그 어느 때보다 약화된 시기였다.

대외적으로 길드와 가문이 대등한 관계로 알려졌지만, 가문과 길드를 대표하는 각성자 간의 실력 차가 엄연히 있었다. 그나마 양적인 우위로 대등해 보였을 뿐, 이제는 그마저도 어렵게 되었다.

길드로선 권왕이 임시로 대가주에 있기를 바랐다. 다른 가문도 권왕의 권한이 강해지기를 바라진 않을 테니, 합의가 되지 않을 줄 알았다.

“이러다간 자칫 권왕가의 들러리로 전락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당장 다크니스 색출에서도 우리는 가문의 보조에 지나지 않았지 않습니까!”

혈천 길드장 이극환이 작금의 현실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로선 어쩌면 당연했다. 배신자들이 수뇌부에 집중되면서 길드가 붕괴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대내외적인 질타도 많았고, 당장 길드를 유지하기도 버거웠다. 이 모든 사달의 원흉이 다크니스지만, 권왕이 공표하지만 않았어도 조용히 처리할 수 있었다.

“혈천 길드장의 표현이 과격하긴 해도, 틀린 말은 아닙니다. 우리가 칠대가문의 하수인도 아니고, 권왕의 명령을 따를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맞습니다. 권왕은 권왕이고, 우린 우립니다. 이제라도 길드 연합의 단결된 힘을 보여 주어야 할 때입니다.”

“이번 다크니스 색출은 우리에게 권한을 양도해야 한다고 봅니다.”

권왕의 독단에 불만이 적지 않았다. 다크니스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길드가 입은 피해가 컸다. 사전 협의도 없이 언론에 공표하는 바람에 대비하지도 못했다.

그들은 권왕이 길드를 약화하기 위해서 공표했다고 봤다. 피해의 측면에서 보면 확실히 가문보다는 길드가 크긴 했다.

결단을 내려야 할 때라고 봤다. 이대로 권왕의 의도대로 끌려다니다간 길드는 들러리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모두의 눈이 천제에게 향했다.

천제는 암묵적으로 길드 내 제일의 실력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길드 연합에서 그를 대길드장으로 추켜세우려는 분위기였다. 현재로선 그의 의견이 가장 중요했다.

“마제께선 어떻게 생각하시오?”

천제는 성급한 결정을 내리기보다 마제의 의견을 물었다. 최근 권왕과 잦은 만남을 가진 마제였기에 이해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내심은 가문과 길드 중 선택하라는 의도였다.

“단순히 규모로 피해를 산정한다면 이 자리에 앉은 분들부터 특권을 내려놓아야지요.”

편을 확실히 하라는 압박에도, 마제는 예상과 다른 발언을 내뱉었다.

혈제가 인상을 찌푸리며 거칠게 나왔다.

“권왕과 붙어먹더니, 가솔이라도 된 모양입니다!”

“객관적인 수치가 말해 주는데, 그런 식으로 몰아가는 건 불쾌하군요. 아니면 자료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비교를 해 볼까요?”

마제의 냉철한 지적에 길드장들은 움찔했다. 실제로도 양적인 피해는 길드가 컸다지만, 질적으론 가문과 비슷했다. 피해를 산출해 봤자, 여론을 뒤집기는커녕 미운털이 더 박히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이 영악한 놈.’

권왕이야 전후를 따지기는커녕 다크니스와 연관되면 무조건 부수고 보는 인간이지만, 무진은 길드의 반발을 예측하였다.

그래서 가문과 길드의 피해를 균등하게 배분한 것이다. 다크니스와 연관된 일부를 남겨 둔 것도 길드의 반발을 제어하기 위한 술책이었다.

물론, 모두가 납득하진 않았다.

혈제가 받은 피해는 다른 이들보다 훨씬 컸다. 권왕을 편드는 마제가 고까울 수밖에 없었다.

“천하의 마제가 권왕의 대변인이라도 되는 거요? 아니면 콩고물이라도 받기로 했어!”

“말이 짧네. 어린놈이 길드장이라고 높여 주니까, 내가 네 친구냐!”

마제의 돌연한 기세에 혈제도 화가 났는지 맞부딪혔다. 경계를 치듯 영역을 침범하며 서로의 기세를 시험한다.

맹수의 으르렁이었다.

우웅!

파앗!

충돌이 일어난 직후.

윽!

일순 블러드 포스가 말려 들어가면서 끊어지려고 했다. 연속성에 의한 증폭이 속성이기에 단절의 충격은 컸다.

부르르!

혈제의 눈에 당혹감이 비쳤다. 재차 흐름을 이어 가려고 하지만, 이 틈을 마제가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이 빌어먹을 노인네가 이렇게까지 강했다고?’

연륜의 차이가 있기는 했어도, 혈제는 마제에게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세월이 흘렀으니, 이젠 노쇠했을 줄 알았다.

예전에도 느껴 보지 못했던 마제의 진의에 치가 떨린다. 이대로라면 먼저 도발했다가 역으로 관광당하는 처지가 된다.

혈제로선 꼴사납게 되었다. 어차피 망신당할 바엔 비기를 사용하는 수밖에.

“그만.”

낌새를 알아차린 천제의 조용한 외침에 혈제와 마제의 줄다리기는 멈추었다. 단순한 외침이 아니었다. 별의 기운을 운용한 천성기(天星氣)를 발동했다.

‘기세를 끊어 내는 건 여전하군.’

마제도 더는 시비를 이어 가지 않고 마력을 운용한 기세를 갈무리했다.

‘쳇, 빌어먹을!’

블러드 포스가 끊기면서 되돌아온 반진력에 타격을 입었다. 체면을 구겼지만, 천제의 만류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혈제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써야 했다.

흠.

천제는 내심 마제의 반응에 놀랐다. 방금 끊어 내는 기운, 천성기를 운용한 천절린(天切鱗)을 사용했었다. 전력은 아니더라도, 반진력이 상당했을 텐데.

‘마제의 성취가 놀랍구나.’

마제는 최근 정체기를 겪고 있었다. 한 수 아래라고 봤거늘. 경시해선 안 된다는 경각심이 드는 순간이었다.

천제가 마제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되자, 혈제는 더더욱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래서 권왕에게 무조건 맞춰 주자는 거요?”

“맞춰 주지 않으면? 맞짱이라도 뜨게? 잘됐네. 억울하면 권왕이 한판 뜨자고 하더군. 가서 길드의 우월함을 보여 주시게.”

마제는 권왕이 보내온 영상을 모두 앞에서 틀어 주면서 등을 떠밀었다.

-어이, 안녕들 하슈. 다들 본 얼굴이니 인사는 됐고. 내가 시키는 일들이 고깝다는 거잖아. 그럼 뭐 하고들 있어? 어서 도전하지 않고. 난 언제나 환영해. 너희들의 나와바리로 찾아가 주마.

시장판의 건달도 아니고, 도발이 아주 저렴하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권왕의 도발이 허언이 아닌 자신감의 발로임을 모르지 않았다.

색출 작업에서 권왕은 심권을 능수능란하게 다루었다. 창황과의 대결 때보다 훨씬 강해진 것이다. 그런 권왕과 붙어서 일대일로 이기기란 간단하지 않았다.

-없으면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 내가 나만 잘되자고 이러는 게 아니에요. 너희들, 나 없었으면 등에 칼 맞고 억울하게 뒈졌을 거잖아. 강에 빠진 놈들 구해 줬더니 보따리를 내놓으라는 배은망덕은 아니겠지.

같은 말을 해도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은혜를 입은 것이 사실임에도 누구 하나 고마워하지 않았다.

‘제자가 스승을 망쳤다고 해야 하는 건가?’

무진에게 못된 것만 배웠다고 하기엔 권왕도 좋은 스승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마제는 내심 입맛이 썼다.

그러나 할 건 해야 했다. 길드 연합의 반발은 예상대로다. 불만을 말로써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으나, 길드원이나 무인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러면 어떻소? 권왕에게 도전해서 승리했다는 결과물을 가져오는 사람에게 대길드장을 주는 것이오.”

마제의 제안에 솔깃해하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권왕을 이기기만 한다면 대길드장으로서 길드와 가문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었다.

명분에서 현저히 밀리는 길드로서는 권왕에게 도전장을 내밀 자격이 없었다. 불감청고소원이라고 권왕이 먼저 제안한 이상 뒷말이 나온다고 한들 충분히 방어할 수 있었다.

“하면 누가 먼저 나서겠소?”

끓어오르는 분위기와는 달리 천제의 물음에는 망설였다. 권왕과의 대결이 과연 원하는 대로 흘러갈지 미지수였다.

다크니스의 간부를 처리할 때 권왕의 강함을 봤던지라.

그러나 놓치기는 아까운 기회였다. 안방으로 찾아온다고 했으니. 길드에 숨겨 놓은 비장의 수를 쓴다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었다.

“마제께서 나서 봄이 어떻소? 권왕을 가장 가까이서 봐 왔을 테니 말입니다.”

“나는 대길드장을 할 생각이 없소이다.”

혈제는 마제가 수락할까 조바심을 냈다가 너무 완곡한 거절에 의혹이 생겼다. 혹, 권왕과 리베이트 계약을 한 게 아닌가 하는.

빼는 모습이 이상하지만, 권왕이 뒤로 수작을 부릴 위인이 아님을 다들 알고 있었다. 귀찮아서라도 하지 않을 단순무식패악의 대명사임을 부정하지 못했다.

하물며 마제는 타이틀에 연연하지 않는 성향이었다. 천제가 길드 연합을 대표한다고 했을 때도, 한 발 뒤로 빼는 모습을 보였었다. 더더군다나 무극 길드도 이번에 상당한 피해를 당하였다. 마제의 진전을 이은 제자 중에 배신자가 있었다.

‘그 실력으로 권왕이 잘도 잡히겠다.’

칠대가문의 수장들은 쉬쉬하고 있을 뿐, 마제는 결과를 알고 있었다. 다구리로 인한 낭패에도 권왕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결론만 말하면 양패구상, 다구리로도 승부를 내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놈을 혼자서 어떻게 이겨!’

권왕만으로 끝나면 다행이게! 배후에 괴물 같은 제자가 도사리고 있었다. 이 모든 음모와 암계의 끝판왕! 자신조차도 그놈의 장기말에 불과했다.

‘집에 있는 괴물들도 그렇고.’

괴물 주변엔 괴물들만 수집되는 건가?

무진의 집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결계를 뚫고 들어가기도 힘든데, 들어가서도 문제였다. 힘들게 뚫고 들어가 봤자, 무간지옥에 갇히는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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