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292화 (293/374)

292. 체제 정리(2)

우리나라는 현재 암중 세력을 솎아 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오늘 일이 외부로 알려지는 즉시 성운 그룹은 공중분해 되어 흔적도 남지 않을 수 있었다. 혹여 무사히 넘어간다고 해도 암중 세력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진 회장으로선 진퇴양난의 사면초가였다. 무진의 호언장담이 허수로 들리지 않았다. 암중 세력의 색출에 권왕이 앞장서고 있었다. 이번 일로 권왕가는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차후, 우리나라의 세력 구도는 권왕가를 중심으로 재편된다고 봐야 했다.

그런 판단이 서자, 무진의 위치가 가볍지 않았다. 보여 준 실력과 심계로 판단하건대 권왕의 차기 후계자가 확실했다. 거절하는 즉시 성운 그룹은 맨몸으로 암중 세력과 자웅을 겨뤄야 하는 처지였다.

그럼에도 절반은 과하다.

말이 절반이지, 그 반이 빠지면 그룹은 껍데기만 남는다. 하물며 그룹은 주식회사다. 이사와 주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결정하기는 어렵다.

“반이 아니라 3할만 빠져도 그룹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돼. 진정 그리되기를 바라는 게냐? 성운 그룹이 무너지면 그 후폭풍을 네가 감당할 수 있을까?”

“IMF 땐 수십 개의 그룹이 무너지고, 사라졌어요. 그래도 우린 극복하고 지금에 이르렀죠. 다만 굳이 위험을 자초할 필욘 없으니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그룹의 2할과 의사 결정권을 내어 주세요.”

“성운 그룹을 날로 먹을 심산이더냐?”

“내가 먹지 못하면, 남도 못 먹게 해 드릴 순 있습니다.”

선택의 기로였다.

의사 결정권이 중요하긴 해도, 이사와 주주들의 의견에 반할 순 없다. 더욱이 단순히 경영권에 대한 결정권을 의미하진 않는 듯했다. 그룹이 아닌, 자신과 혈족에 대한 명령권을 말하는 것이다. 그룹과 혈족을 온전히 보존하고 싶으면 무조건 따르라는 강요가 포함되었다.

“애초의 목적이 돈이 아니었구나!”

“꼭 부정적인 일만은 아니에요. 이제부터 가문, 길드, 정부, 재계는 하나로 통합이 될 테니까요.”

진 회장은 외통수에 걸렸음을 인정했다.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조만간 권왕가로 재편될 것이다. 권왕가가 만든 담장에서 벗어나는 순간 성운 그룹은 살아남지 못한다. 우리 안에 있던 가축이 홀로 야생의 세계로 내던져지는 꼴이었다. 살아남는다면 강해질 테지만, 그게 말처럼 쉬울까.

“가입 혜택은 따로 없느냐?”

“첫 가입이라서 3할이나 깎아 준 겁니다.”

“골수까지 탈탈 털어 가는구나!”

“그룹은 평소대로 운영하면 됩니다. 아버지가 잘 도와주잖아요.”

“그건 안테나잖아!”

자기 아버지를 그룹에 꽂아 놓고 감시하겠다는 노골적인 의도였다. 서로 잘해 보자고 말로만 할 뿐, 이제는 갑을 관계를 다시 고려해 봐야 했다.

‘효는 패시브 스킬이거든요.’

아들이라면 아버지의 승진, 명성, 명예, 지위를 지켜 드려야 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효의 발로였다. 또한, 재벌이라고 해서 직원을 함부로 대해선 안 된다. 이는 근로기준법에도 명시되어 있었다.

“일전에 드린 포션의 효과를 안다면 그런 말씀 못 하실 텐데요.”

“충분한 값을 치렀다고 본다만.”

“남 실장이 서두른 연유는 그동안 착실하게 진행했던 암시가 풀렸기 때문이에요.”

“암시라고? 그럴 리가. 나는 세뇌당한 적이 없어!”

“남 실장이 바보도 아니고, 대놓고 했겠어요? 조금씩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했겠죠. 한데, 최근 들어 회장님은 아버지를 길드의 총책임자로 올리고, 남 실장과 저울질하기 시작했어요.”

그간의 결정들을 되짚어 본 진 회장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 판단에 의한 성공과 실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일에 남 실장이 관여했다는 점이 중요했다. 실제로 남 실장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그때 말하지 않은 것은 남 실장을 쳐 내기 위해서였구나.”

“남 실장이 눈치를 채면 회장님이 위험했을 거예요.”

진 회장은 소름이 제대로 돋았다. 언제부터였을지는 이제 의심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토록 용의주도한 녀석이 완전히 드러낼 리 만무했다. 이제야 사실을 밝혔다는 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의미가 되었다.

‘태수의 상대가 아니구나!’

속였다는 사실마저 망각하게 해 주었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마냥 속였다고 하기에도 모호하다. 충분히 그만한 혜택을 주었다. 주고받음이 확실했다. 반대로 맺고 끊는 데도 단호하다. 어설픈 인연과 감정 호소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어때요, 이래도 손해 보는 장사인가요?”

“하아~~~! 내가 졌다, 이놈아! 네 말대로 하마.”

진 회장은 남 실장에게 당한 고문보다 무진과의 협상에 진이 더 빠졌다. 어느 것 하나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시작부터 끝까지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다가 서류도 읽어 보지 않고 사인하는 꼴이었다.

무진은 시무룩해진 진 회장을 위로해 주었다. 이 말을 듣는다면 의욕이 활활 타오를 것이다.

“다음은 백두 그룹입니다. 참고로 선착순입니다.”

“……이 망할 놈!”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하고 있었다. 백두 그룹은 재계의 라이벌이자, 조 회장과는 개인적으로도 감정이 좋지 않았다. 선착순을 언급한 이유가 사악했다. 백두 그룹과 조 회장을 발아래 둘 기회라는, 악마의 유혹이었다.

‘어떻게 이런 놈이 있을 수 있지?’

세상이 이 녀석에게 속고 있었다. 철모르고 행했던 언행이 전부 철저하게 계산된 것이다. 알면 알수록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녀석이었다.

‘……친하게 지내라고 해야겠구나!’

성운 그룹이 품기에는 그릇이 너무 컸다. 차후 가업이라도 유지하려면 무진에게 잘 보여야 했다.

한편으로 사람을 이렇게나 볼 줄 몰랐다니, 인생을 헛산 기분이었다.

그나마 인정하고 나니 마음은 편해졌다.

“아버지, 들어오세요.”

편하기는 개뿔!

협상은 이제 반이 끝났을 뿐이다.

산하가 미소를 지었다.

“회장님의 양팔(兩腕) 강 이사가 왔습니다.”

이 부자(父子) 새끼들이!

네놈이 언제부터 내 양팔이었어?

그래, 부자(富者) 돼라!

***

암중 세력, 다크니스로 명명한 빌런의 소탕 작업으로 대한민국은 대대적인 물갈이가 진행되었다. 속전속결로 단번에 끝이 날 듯했지만, 다크니스는 방대한 점조직으로 우리나라 곳곳에 파고들어 온 상태였다.

일례로 다크니스는 대기업, 중견기업, 소기업을 가리지 않고 포섭, 회유, 파견했다. 다크니스와 접점이 없는 기업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엮여 있다고 해서 무조건 기업을 무너뜨릴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경제가 폭삭! 가라앉아 버린다. 시간을 들이더라도, 솎아 내는 방법을 써야 했다.

다소 과격한 자들은 다크니스를 몰아내기 위해선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었다. 일제강점기 때 친일파를 소탕하지 못해 나라에 매국노가 많은 거라는 말로 설득력을 높였었다.

다만, 그런 식으로 처리하다간 남아나는 기업이 없다. 막상 자기 생활 터전이 박살 날 판이라, 과격한 수단을 받아들이진 못했다.

-처음엔 속전속결로 시원했는데, 이러다가 다 빠져나가는 거 아냐.

-나라를 팔아먹은 놈들을 가만둘 이유가 있나? 그냥 시원하게 박살 내 버리고 다시 시작하면 돼.

-말로는 뭔 말을 못 하냐! 막상 자기 터전이 날아가게 되면 쉽게 말 못 할걸.

-매번 여지를 주니까, 매국노들이 설치는 거야? 아싸리, 뿌리를 뽑아 버려야 해!

-공산당식 공개재판을 하자는 거야? 그런 식으로 개인의 인권을 무시하고 무조건 잡아들이는 건 시대를 역행하는 일이라고.

-애초에 연관이 안 됐으면 됐잖아. 남들 한다고 따라 하는 것도 문제고!

-지금 연관된 기업만 해도 10대 그룹 중 일곱 곳인데, 중견, 중소기업까지 합하면 밝혀진 곳만 수백도 넘어. 이게 다 무너지고 나면 아주 깨끗하게 텅텅 비겠다. 그치?

-당장은 힘들어도 깨끗하게 치워 버리고 새롭게 지으면 될 일이야. 살려 준다고 낙수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참으로 정의로운 말이다. 한데, 세상이 그렇게 흘러가도록 놔둘까? 중국, 일본, 미국의 기업사냥꾼들이 잘도 가만히 두겠다. 그치?

-내 밥줄 끊기고도 응원할 수 있는지 궁금하긴 하다.

-다들 인내심이 부족해서 그래. 우린 6.25도 잘 이겨 왔다고!

완벽한 청산.

이상적인 결론이었다. 수많은 기업이 무너지고 난 후, 다시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 줄지는 미지수다. 자국 우선주의가 만연한 팍팍한 세상에선 어림도 없었다. 하물며 일본과 중국이 우리가 일어서는 꼴을 얌전히 두고 볼 리 만무했다.

다 같이 과거로 회귀하여 보릿고개를 넘길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했다. 당장 내 가족이 쫄쫄 굶거나, 집에서 쫓겨나는 상황에서도 정의를 부르짖을 사람이 얼마나 될지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 봐야 했다.

방구석 여포처럼 모니터 앞에서 키보드질로 정의를 부르짖을 만큼 현실은 낭만적이지 않았다. 때론, 불가피한 타협도 필요하다. 하물며 사람의 인생과 인권이 달린 문제를 감정적으로만 해결할 순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과 일본이 우리를 마녀사냥 국가로 낙인을 찍으며 비방, 날조, 왜곡을 서슴지 않고 있었다. 자기들이 하지 못한 일을 하고 있으니, 얌전히 두고 보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전반적으로 굉장히 어수선했다.

마녀사냥으로 낙인이 찍히는 즉시 가문, 길드, 정·재계는 명운을 걱정해야 하는 판이었다. 당연히 정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으며 대내외적인 악재로 작용했다. 언제 문 닫을지 모르는 사태니만큼 투자나 외자 유치가 어려워진 탓이다.

넘치는 유동성으로 인해 물가가 상승할 때와는 달리 금리마저 급격하게 상승하면서 경기 침체와 맞물리는 세계 경제였다. 마치 이때를 위해서 금리를 올린 듯 악재가 겹쳤다.

당장은 외환보유고가 넉넉하고, 국민연금으로 방어하고 있다지만. 그마저도 겨우 버티는 형국이었다.

곳간이 들어차야 인심이 난다고 했다. 당장 굶어 죽는데 독야청청, 올바른 정의를 실천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목숨을 걸고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이 대단할 뿐, 대다수는 현실을 부정하지 못한다.

위태로운 상황임을 인지할수록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힘을 내는 대한민국이기도 했고. 위기와 역경에 강한 민족임은 틀림이 없다. 하나, 그러기 위해서는 구심점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권왕가.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는 평가가 있음에도, 이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필요했다. 권왕가를 주축으로 가문, 길드, 정부, 재계가 뭉치고 있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힘이 한곳으로 쏠리는 독과점을 경계하겠으나, 국란을 헤쳐 나가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였다.

권왕가는 국내외 안정이란 하나의 방향을 위해서 이중 전략을 세웠다.

권왕은 다크니스를 추격하고, 가주는 가문, 길드, 정부를 통합하는 데 힘을 썼다. 경영계는 성운 그룹과 쉐도우 길드를 주축으로 하여 줄 세우기에 나섰다. 블랙마켓이었던 쉐도우 길드는 다크니스 축출에 이바지해 공식적인 인정을 받았다.

권왕가는 명실공히 한국 최강의 가문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물론, 권왕가에 권력이 집중할수록 반감을 보이는 이들도 있으나, 대놓고 드러내진 못했다.

다크니스를 색출해야 한다는 명분 앞에선 그 어떤 반항도 용인되지 않았다. 혹여 다크니스와 연관되었다는 낙인이 찍히지 않을까 몸을 사려야 할 판이다.

제1회 대가주회의.

칠대가문의 진정한 통합을 의미하는 역사적인 회의였다. 언론에는 권왕이 대가주에 발탁되었다고 발표는 되었지만, 실제는 다크니스의 신속한 색출을 위한 대리에 불과했다.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임시방편이기에 칠대가문 전체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었다. 이제야 미루어 두었던 대가주회의를 통해 정식으로 대가주를 뽑기로 한 것이다.

임시긴 해도 여태 다크니스 색출에 공적을 세운 권왕으로선 합의를 다시 할 필요가 없긴 했다. 그럼에도 받아들인 이유는 여론의 시선과 정당성을 공인받기 위한 절차기 때문이다.

다크니스라는 공적이 사라졌을 때 대가주의 직위를 확고히 하지 않는다면 통합은 언제든 깨질 수 있었다. 분열과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형식적이긴 했다.

창황가와 정령가가 권왕가를 지지하는 한편 검신가는 중립을 표방하고 있었다. 남은 가문끼리 연합하면 가능성은 있으나, 당장 그리한다면 여론의 인정은커녕 배척받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주제에 숟가락만 얹었다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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