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291화 (292/374)

291. 체제 정리(1)

헛소리를 들었나?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진 회장은 말문이 막힌 채 무진을 멍하니 바라봐야 했다. 이어서 외면하고 싶은 진실과 현실이 교차하고 있었다.

허!

절체절명에서 구명지은을 입었음에도 고맙지 않은 찝찝함이었다. 구해 준 건 구해 준 거고, 진 회장은 자기 손가락과 무진을 번갈아 보다 인상을 구겼다.

“언제부터?”

“협상을 아주 잘하시던데요.”

협상이라고 해 봤자 강압에 의한 굴욕스러운 승낙이었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저울질했던 머슴에게 도리어 뒤통수를 거하게 처맞고, 금치산자가 될 뻔했다.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겪어 본 적이 없는 치욕이었다. 자기 머슴조차 다스리지 못하고 당했으니, 세간에 알려진다면 망신이 아닐 수 없다. 재계의 회장들, 특히 백두 그룹 조 회장의 조롱 섞인 비웃음이 생생하게 들려왔다.

조롱과 비웃음은 차치하더라도, 무진의 대처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구할 수 있음에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게 아닌가.

어이가 없는 데다 섭섭함이 밀려왔다. 또한, 망신당하도록 유도했다는 괘씸함이 교차했다.

어른을 가지고 놀아도 유분수지.

“내가 당하기를 바란 것이더냐?”

“그런데요.”

“아니라고 해 봤자…… 뭬야?”

“궁지에 몰리지 않았다면 회장님이 과연 순순히 저를 믿었을까요?”

“그거야…… 빌어먹을!!”

“회장님도 아시잖아요.”

사전에 남 실장의 음모를 파헤치고, 사로잡았다고 해도 진 회장은 호의로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오랜 기간 함께한 남 실장에 대한 신뢰를 간과할 순 없다. 더욱이 그룹에 소속되지도 않은 무진이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다른 의도가 있다고 여길 수도 있었다.

끄응!

정곡을 찔린 진 회장의 입에서 저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평소의 진 회장이었다면 안면에 철판을 깔고, 단호히 부정했을 테지만. 무진은 처음부터 다 듣고 있었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신뢰를 거론하려면 최소한 강 이사와 사전에 논의라도 해야 했다.

자기가 먼저 믿지 않았으면서 제때 도와주지 않았다고 타박하는 건 적반하장의 극치였다.

진 회장으로선 현실을 직시할수록 말문이 궁색해질 수밖에 없었다.

“설령 그렇다고 해도 언질이라도 줄 수 있지 않았느냐!”

“아버지가 직접 남 실장을 경계하라고 당부했으면 회장님이 아! 자네의 충성심이 정말 대단하구먼, 이라며 칭찬하셨겠네요.”

“……이놈이, 어른을 비꼬는 거 아니다!”

“애초에 회장님은 대가 없는 선의를 믿지 않는 분이시잖아요. 아버지가 남 실장의 자리를 탐해서 이간질한다고 보겠죠.”

핵심을 간파한 무진의 날카로움에 진 회장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도저히 말로는 어찌해 볼 수가 없는 궁지에 몰렸다. 차라리 물리력을 동원했다면 이해라도 하지, 논리적으로 일말의 허점도 찾지 못했다.

한편으로 달리 보였다.

생도치고 유별난 녀석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처럼 거침없으면서도 예리한 화술은 재계에서도 보지 못했다. 생도의 통찰력을 넘어서는 여유와 능수능란함이었다.

“보통이 아닌 줄은 알았지만, 정말 대단한 녀석이구나!”

“칭찬으로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이시라면 곤란한데요. 참고로 이 안에 영상 장치가 아주 잘되어 있더군요.”

큭!

재차 정곡을 찔린 진 회장은 헛바람을 삼켰다.

상전벽해의 처량함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자신과 말 한마디를 하려는 이들을 줄 세우면 연병장 네 바퀴는 거뜬했다. 하물며 칭찬이라도 해 준다면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고도 남거늘. 이 녀석은 옆집 할아버지의 잔소리쯤으로 취급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MZZZZZZZ세대 놈들!

‘예리한 놈!’

실상 날로 먹으려고 한 것도 사실이다. 구함을 받은 이상, 이게 다 빚이었다. 말 몇 마디로 때울 수 있다면, 얼마든지 헤퍼질 수 있었다. 평범한 녀석이었다면 통했을 테지만, 무진에게는 역효과만 일으켰다. 원체 비싸게 구는 녀석에게 누진세를 매길 기회를 내어 준 꼴이다.

씨익!

무진이 환하게 웃을수록 진 회장은 입맛이 썼다. 부정한들 속 보이는 짓이고, 이미 들통이 났다. 이제 와 아니라고 한들 구차한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외부에 알려지면 구관이 참 명관이겠네요.”

“떠벌릴 셈이더냐?”

“진실은 밝혀져야죠.”

“사악한 놈, 차라리 날 죽여라!”

“정말요?”

“……망할 놈!”

어깨를 으쓱하며 손을 폈다.

굳이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아도 된다는 무진의 몸짓이었다. 그 앞에 중독된 남 실장이 살려고 바둥거리고 있었다.

오늘 저 꼴을 당할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되새겨 봐야 했다. 금치산자가 되어 남 실장의 꼭두각시가 되었다면 평생을 일군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기게 된다.

크으으으!

남 실장은 오장육부가 녹아내리는 고통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재생 스킬과 포션을 들이부었지만, 호전되기는커녕 악화했다. 일어설 기력도 없이 바닥에 엎어져 벌레처럼 경련을 일으킬 뿐이다.

부르르르, 덜덜덜!

분노도 육체의 극심한 통증에 함몰되었다. 오장육부가 찢어지며, 녹아내리는 걸 인내심만으로 버텨 내지는 못했다. 죽는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야 한다니, 믿고 싶지 않았다. 진 회장의 밑에서 수십 년 동안 개처럼 일만 했다.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고 죽을 순 없다.

“……살려…… 줘!”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기는 하지.”

“……배후를 말할게!”

“배후야 뻔하지, 암중 세력이잖아.”

“……그들에 대해서 알려진 건 빙산의 일각이야…… 날 살려 주면 전부 다 말하겠어!”

“금제하지 않았다는 건 고위 간부이거나 잔챙이란 건데, 당신은 그럴 만한 실력이 없잖아.”

……크헉!

고통으로 인해 사리 분별이 안 되는 지경에도, 남 실장은 소름이 돋았다. 너무나 정확하게 조직의 생리를 지적했기 때문이다. 생도 따위가 알 수 없는 정보였다. 그럼에도 살려면 그만한 가치를 증명해야 했다.

“……천화 그룹도 연관이 있어!”

“현재 천화 그룹이 무너지는 이유야.”

“……다른 그룹도 연관되어 있어…… 젠장!! 날 죽이면 넌 살인자가 되는 거다!”

“입은 적을수록 좋지. 하물며 당신처럼 입이 싼 사람은 더더욱.”

“……안 돼…… 제발…… 딸이 있다고! 아빠 없는 자식으로 크게 할 순…… 없어!”

무진은 남 실장의 애원을 한 귀로 듣고, 흘렸다. 물론, 거짓이라서가 아니다. 딸이 있지만, 남 실장을 닮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악당이란 사실을 모르고, 착하게 잘 크고 있었다.

무진은 남 실장에게 현실을 직시하도록 해 주었다.

“우리나란 헌법상 연좌제를 금지하곤 있지만, 현실이 어디 그런가? 사채를 쓰고, 집안이 멀쩡한 경우를 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이놈! 윤정이는 아무 잘못…… 없어!”

“아, 현실이 죄가 없으면 벌을 받지 않는구나.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꾸며 낸 얘기였나 봐.”

“……악마 같은 놈!”

실낱같은 희망도 사라지자, 남 실장은 아는 대로 횡설수설했다. 자식을 위해선지 몰라도, 마지막까지 생명력을 불태웠다.

인간의 다중적인 면을 볼 수 있었다. 악당이라도 자식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듯했다. 애틋한 부정이기는 한데, 본인과 자식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이기주의의 발로였다.

“……윤정이만은 제발……!”

끝내 남 실장은 숨을 거두었다. 생명력이 끊어지자, 독기가 맹렬히 활성화되며 육신이 녹아내렸다.

꿀꺽!

진 회장은 마른침을 삼켰다.

방금까지 자신과 농담 따먹기나 하며, 말장난을 했던 녀석이 맞는지 눈을 의심하게 했다. 장난이라고 하기엔 일 처리가 무섭도록 냉정하고 잔인하다. 일말의 사정도 봐주지 않는다. 혈육까지 이용해서 원하는 걸 끄집어냈다.

‘무서운 놈이다.’

젊은 시절의 자신보다 대담하고, 냉철했다. 여태 무진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해 주었다. 이런 녀석에게 말 몇 마디로 퉁 치려고 했다니, 씨알도 안 먹히는 게 당연했다.

‘내게 보여 주려는 것이구나.’

남 실장이 아는 정보는 많지 않았다. 그마저도 두서없이 횡설수설하여 정보로서의 가치가 부족한 편이다. 그런데도 실토하도록 유도한 것은 자신을 압박하려는 의도였다.

“가구 정리 좀 해야겠어요.”

무진은 소파를 원래 자리로 옮긴 후, 진 회장의 앞에 앉았다. 뉴스라도 볼 겸, TV를 틀었다. 누가 보면 휴가차 펜션에 놀러 온 줄 알겠다.

“이제 정산을 해 보실까요.”

“사채업자도 아니고 뭘 그렇게 보채는 게냐!”

“화장실 들어갔다 나온 회장님을 순수하게 믿기에는 그렇잖아요.”

“날 구해 준 대가는 확실하게 보답해 주마. 하지만 그 전에 강 이사를 먼저 봤으면 하는구나.”

“그랬으면 같이 들어왔죠.”

진 회장이 성운십위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모양이지만, 아버지와 투귀 어르신의 상대로는 조족지혈에 불과했다. 다 끝내고, 담배 한 대 시원하게 피우고 계실 것이다.

진 회장도 이제는 같이 들어오지 않은 연유를 알 수밖에 없다.

아버지는 성운 그룹에 소속된 직원이라, 진 회장으로선 성과급만 주면 그만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진은 인연은 있을지 몰라도, 성운 그룹 소속이 아니다.

소속된 상태와 아닌 경우의 차이는 크다. 더욱이 이렇게 되면 진 회장은 각자 계산해야 했다. 아버지의 직위, 연봉, 성과급은 따로 둘이서 해결할 사안이었다.

“개수작 부리지 말라는 것이냐?”

“역시 대성운 그룹을 맨손으로 일구신 분답게 눈치가 빠르셔.”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지만, 기분은 더럽게 나빴다. 하물며 사람이 녹아 버린 장소였다. 그 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웃는 무진을 가볍게 볼 수가 없었다.

‘애초에 생도의 기준을 넘어섰구나.’

남 실장과 성운십위를 간단히 제압하는 무력과 심계. 생도가 아니라 정상급의 각성자도 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걸 아무렇지 않게 끝내 버렸다면 핏덩어리로 봐선 안 되었다. 기준점이 최소한 최정상급의 헌터였다.

이런 녀석을 태수가 감당할 수 있을까?

응?

객관적으로 볼수록 문제가 있었다.

태수가 과연 남 실장과 성운십위를 이토록 수월하게 제압할 수 있을까? 4학년에서 발군의 역량을 과시하지만, 생도의 기준이었다.

“태수를 속였느냐?”

“최근 들어 일취월장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만년삼왕과 드래곤하트를 먹었다고 했잖아요. 그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좋은 걸 많이 먹었죠.”

“흡수율이 좋지 않다고 했잖아!”

“언론에 떠도는 소식을 신뢰하는 편인가 보네요. 게다가 태수 형도 알고 있었고요.”

“……이것들이 날 가지고 놀았구나!”

“말해도 믿지 않을 거면서.”

연이은 팩트 폭격에 진 회장은 병풍 뒤에서 향내를 맡는 기분이었다. 부정하기에는 현실이 시궁창보다 못했다. 여태 이놈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났다는 사실에 혀를 내둘렀다. 한편으로 세상을 자기 맘대로 가지고 놀고 있었다. 진의를 알면 알수록 소름이 돋는다.

“언제부터였느냐?”

“자꾸 핀트가 엇나가시네요. 제가 성운 그룹의 하청업자도 아니고, 매사에 꼬투리를 잡으려고 하시면 곤란해요.”

시기, 중요할 수도 있다. 하나, 모든 걸 다 잃을 처지였었다. 하청업자의 사소한 잘못을 꼬투리 잡아 비용을 후려치듯 나온다면 금치산자가 멀리 있지 않았다. 진 회장과의 인연을 중히 여기는 편도 아니고, 거래 관계에 지나지 않았다.

“인정머리 없는 녀석, 누가 또 그렇다고 했느냐!”

“서론은 그쯤 하시고, 얼마 주실 거예요?”

“다짜고짜 그리 말해 봤자, 당장 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제가 다 산정해 놨으니 어렵지 않을 겁니다.”

무진이 내민 계산서였다.

-성운 그룹 건사.

-금치산자 면피.

-본인과 혈육 보존.

인정머리라고는 한 톨도 들어 있지 않은 냉정한 단어로 조합된 문장이었다. 그러나 틀림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무진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금치산자가 되어 그룹을 빼앗기고, 혈육마저 잃었을 것이다.

빌어먹게도, 은혜가 깊다.

“절반이면 되겠죠?”

“수중의 절반이면 되겠느냐?”

“농담도 잘하시네요. 아시면서.”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다 잃은 걸로도 부족해서 원수의 발바닥을 핥으며 겨우 연명할 뻔했는데도요? 더욱이 놈들은 이용 가치가 사라지기 전에는 죽고 싶다고 해서 죽여 주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그룹의 절반이라니, 이사회에서 허락할 리가 없지 않느냐!”

“그걸 왜 저한테 말하세요.”

절차도 분명 중요하다. 다만, 진 회장의 입장일 뿐이다. 자신은 그저 받을 것만 받으면 그만이었다. 원래라면 절반도 적었다. 그간 인사치레라도 했으니, 사정을 봐준 것이다.

“당장 그만한 재산을 어떻게 주라는 거야? 주고 나면 그룹이 온전할 리도 없고!”

“자꾸 개인적인 사정을 언급하시네요.”

“기어이 다 받겠다는 거냐?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도 배를 쨀 수도 있어!”

“제가 째지 않아도, 암중 세력은 성운 그룹을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알다시피 놈들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세뇌를 비롯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버텨 낼 수 있으면 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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