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 일망타진(4)
“이게 어떻게? 다들 뭐 하고 있어! 어서 저놈을 제압하지 않고!”
“성운십위를 고른 사람이 나야. 설마 당신 말을 따를 거라고 봤던 거야?”
성운십위의 일위와 이위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위기를 감지한 진 회장이 화급히 문을 향해 움직였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사로잡혔다. 일위와 이위가 진 회장의 양쪽에서 어깨를 잡아채며 눌렀다.
크윽!
진 회장은 맥없이 주저앉았다. 태연히 일어선 남 실장과는 희비가 엇갈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태에 강단 있기로 소문이 난 진 회장조차 격하게 흔들렸다.
“네놈,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게냐?”
“당신이 하려던 짓이지.”
그제야 진 회장은 별장으로 온 것이 남 실장의 계략임을 깨달았다. 천화 그룹이 근래에 암중 세력과 결탁했다고 알려지면서, 남 실장의 개입이 그룹에 영향을 줄 것을 염려하여 조용히 처리하려고 했었다.
그것이 최악의 선택이 될 거라고는.
“나를 백치로 만들어서 정신병원에 넣으려고 했으니, 그 반대가 되어도 불만은 없겠지.”
“애초에 나를 세뇌할 계획이었구나!”
“요즘 들어서 말을 듣지 않았잖아. 그러게, 강 이사를 선택하지 말았어야지.”
“네놈을 믿었거늘, 이리 뒤통수를 친단 말이더냐!”
“어차피 말 잘 듣는 머슴이 필요했으면서 억울한 척하기는. 그래도 조금은 당신을 믿었어. 그런데 운송 회사라니 기도 안 차는군. 마지막까지 당신답기는 했어.”
남 실장도 작금의 극단적인 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세뇌라는 게 완벽하지도 않을뿐더러,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부작용도 컸다. 그래서 조금씩 공을 들였거늘, 어느 순간 쌓아 놓은 암시가 모조리 풀렸다. 어떻게 암시에서 풀렸는지 아직도 이해되진 않는다.
‘빌어먹을 권왕!’
권왕이 조직을 일망타진하면서 연관된 자들이 하나둘씩 잡혀가고 있었다. 다행히 걸려들진 않았지만, 끈 떨어진 신세가 되었다. 그렇다고 조직을 배신하자니, 후환이 두려웠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면 성운 그룹을 먹어 치워야 했다.
한데, 강 이사가 진 회장의 신임을 받고 있어서 그조차도 어렵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말로만 승진일 뿐, 권력도 없는 운송 회사로 좌천당하고 말았다. 이러다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상태로, 내쳐질 수 있었다.
그 전에 선수를 치기 위해서 천화 그룹을 이용했다. 조직과 결탁했다는 정보를 흘렸으니, 진 회장이라면 자신을 별장으로 잡아 오라고 할 줄 알았다. 이때를 대비해서 성운십위와는 별개로 움직였었다. 철저히 회장의 뒤처리를 해 줄 수족으로 믿도록.
남 실장도 숨겨 놓은 성운십위를 꺼내 쓰는 것이 마음에 들진 않았다. 아까운 패를 어이없이 드러낸 꼴이다.
별다른 수가 없다는 걸 깨달은 진 회장은 저항하지 않았다. 그 전에 궁금하긴 했다.
“이렇게까지 하는 연유가 무엇이냐?”
“개처럼 일했으니 정승처럼 살아 보기는 해야지.”
“흥! 머슴 주제에 바라는 것이 많구나!”
“화는 나겠지만, 이제는 그만 꼭두각시가 되어 줘야겠어.”
“네놈 뜻대로 될 성싶으냐?”
“확실히 강단은 있어. 그래 봤자 무의미하긴 해도 말이야.”
기억 조작 아이템과 환상 스킬로 암시를 강화했다면 세뇌에 더욱 용이했겠지만, 풀려 버리는 바람에 당장은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최대한 빨리 세뇌한 후, 성운 그룹의 서열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특히 강 이사를 그룹과 길드에서 떼어 내야 했다.
“일단, 서명부터 하자고. 인사 개편이 정말 형편없었어. 나같이 유능한 사람은 그에 걸맞은 자리에 있어야 하잖아.”
“개 같은 놈,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커억!”
남 실장이 진 회장의 왼손 검지를 잡고 똑! 하고 역으로 꺾었다. 겪어 보지 않은 고통에 진 회장이 바르르! 떨며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호오.
꺾이지 않는 마음인가? 남 실장은 흥미로운 표정을 짓더니 중지와 약지를 차례로 꺾었다.
투득, 뚜드득!
저항도 못 한 채 손가락이 꺾이는 걸 두 눈으로 봐야 했던 진 회장은 극심한 고통에 몸서리를 쳤다. 언제 자신이 이런 고통을 당해 봤던가. 육체의 고통 따위는 얼마든지 버틸 수 있다고 자신했던 그간의 자신감이 얼마나 허무맹랑했는지를 깨닫는다.
“사람은 말이야, 자기가 안 당할 줄 알면 본모습을 보이지 않더라고. 어때, 당해 보니까? 당신 앞에서 살려 달라고 울부짖은 사람들이 아직도 비굴해 보이고, 연약해 보여?”
“……닥쳐랏!”
“개중에 강단 있는 놈도 있었지? 그러면 당신은 꼭 이렇게 하더라고.”
“……크으윽…… 그만!”
진 회장은 자신의 앞에서 버티는 놈을 봐주지 않았다. 살려 달라고 굽힐 때까지 피를 말렸다.
그 모든 명령을 남 실장은 충실히 따랐었다.
남 실장은 진 회장의 손가락을 전부 부러뜨린 후에 회복 포션을 부어 주었다.
주르르르!
각성의 시대가 되면서 예전과 달리 간단한 외상은 손쉽게 회복이 되었다. 그래서일까, 고문을 하기도 아주 유용하다. 차라리 손가락이 전부 부러지고 끝이 나면 좋겠는데, 원래대로 돌아가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무한의 고문.
그건 육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심적으로 상당한 부담이자 충격을 준다. 더욱이 진 회장은 주변을 고통스럽게 할 줄만 알았지, 정작 자신이 당해 본 적은 없었던 사람이다.
한창 그룹을 일굴 때야 남다른 정열이라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늙어서 이빨이 빠진 호랑이에 불과했다.
“어때, 이제는 인사 개편을 다시 할 마음이 생기나? 손가락이 불편해서 서명하기 힘들면 얼마든지 말해.”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설령 내가 서명한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을 거다!”
“설마 혼자 계획했다고 생각한 건가? 그러게, 자식들하고 사이좋게 지냈어야지.”
“……그럴 리가, 너 따위가 어떻게?”
진 회장은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욱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식들이 결탁해서 자신을 궁지로 몰 줄이야. 그러고 보면 별장을 얘기한 아들이 있었다. 그때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돌이켜 보니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졌다.
“자, 버텨 봤자 고통스러운 건 당신이야.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혹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한테 기대하는 건 아니겠지?”
“……태수는 건드리지 마라!”
진 회장은 결국 남 실장의 협박에 자포자기했다. 자식들이 관련되었다면 손자가 대응하기는 어렵다. 자신까지 제압된 상태에서 태수가 뭘 할 수 있겠는가.
한편으로 손자에게 이렇게까지 기대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자식이라도 성에 차지 않으면 돌아보지도 않았던 과거를 돌이켜 보게 했다.
서명을 받은 후 남 실장은 세뇌를 걸었다.
으으으!
아이템과 스킬을 쓰자, 진 회장은 어지럼증을 느꼈다. 의식이 점차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기분이었다. 이대로라면 남 실장의 뜻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될 것이다.
‘……안 돼!’
성운십위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서 강 이사와 투귀를 데려오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강 이사를 신뢰하지 않고, 남 실장을 믿은 대가라고 하기엔 가혹한 운명의 장난이었다.
더는 버티지 못하는 순간 문이 열렸다.
드륵
성운십위의 육위가 급히 뛰어 들어왔다.
남 실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별장 밖을 지키고 있어야 할 녀석이 이리 서둘러서 들어왔다면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였다.
“무슨 일이지?”
“습격을 당할 겁니다.”
“……?”
습격당했으면 당했지, 당할 거리니.
남 실장은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문이 막혔다. 게다가 이곳으로 누가 온단 말인가? 독단적인 진 회장의 성격상 강 이사나 투귀를 부르진 않았을 테고.
“똑바로 말해, 누가 습격을 한다는 거야?”
“나.”
……?
동문서답에 위화감을 느낄 찰나, 우문현답이 되었다.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남 실장이 급히 떨어지려고 했지만, 육위의 손 속이 더 빨랐다.
슈우욱, 푸욱!
날카로운 비수가 가슴을 찌르고 빠져나갔다. 헉! 하는 신음이 터져 나오며 남 실장은 몸이 경직되었다.
휘리릭!
육위는 멈추지 않고 팽이처럼 돌아서며 일위와 이위에게 단검을 던졌다.
타아앙!
우우웅!
성운십위의 일위와 이위답게 막아섰지만, 단검의 위력을 견디지 못하고 벽면까지 날아가서 부딪혔다. 단검에 충격 감지 폭발 스킬이 걸려 있었다. 막을 수 있을 정도로 던져 폭발이 일어나도록 유도한 것이다.
으득!
돌변 후 벌어진 사태에 남 실장은 핏발을 세우며 이를 갈았다.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의 연속이었다. 성운십위는 그가 손수 고르고 선택하여 세뇌까지 완벽하게 거친 도구였다. 세뇌가 풀렸다면 반응을 감지할 수 있어야 했다.
“누구냐, 넌?”
“독방에 갇힌 꼰대 같은 말투네.”
누군지 물어보면 대답을 해 줘야 하나? 그러나 안심해라. 그렇게 궁금하다면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누가 또 그랬다.
스르르!
변신을 풀자 드러난 모습.
남 실장은 물론, 진 회장까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네놈이 어떻게?”
“아버지가 연락했거든.”
무진의 대답에 남 실장의 얼굴은 무섭게 일그러졌다. 진 회장의 신망을 잃고 운송 회사로 좌천된 원흉이 바로 무진의 아버지였다. 강 이사로 인해서 모든 걸 잃을 뻔하다, 이제야 제자리를 찾으려고 하는데 또다시 방해받았다.
부르르르!
남 실장은 화가 치밀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었다. 아버지에 이어 그 아들까지 일을 방해했다.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종자들이!! 편히 죽을 생각은 하지도 마라!”
“이런, 화내면 피가 몰리는데, 좋지 않아.”
“닥쳐, 죽일 테다…… 헉…… 이건?”
“당연하지, 설마 비수에 독도 안 묻혔을까 봐.”
남 실장은 화를 내기보다는 비수에 묻은 독이 퍼지지 않도록 서둘러 응급조치하고 해독할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
다짜고짜 열부터 내니까, 독이 더 빨리 퍼지지.
중독된 남 실장이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무진을 노려보았지만, 타격감은 별로 없었다.
무진이 남 실장을 가지고 놀자, 진 회장은 화색이 돌았다. 자신이 당한 걸 고스란히 돌려주는 통쾌함이 있었다. 하늘을 향해 어퍼컷을 날리며 역전의 세리머니를 취했다.
“저놈은 저래도 싸다! 잘했다, 이 녀석아!”
“별말씀을요.”
“제때에 와 줬구나. 조금만 더 늦었으면 세뇌에 걸릴 뻔했어!”
“그래도 세뇌에는 걸리진 않았을 겁니다.”
“어떻게 그리 확신을 가지는 게냐? 네 몸 아니라고 함부로 말하는 거 아니다.”
“뼈 부러지는 소리가 천둥 치는 것 같았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