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8. 일망타진(2)
“……그만…… 크아아악!”
“이제 시작인데, 벌써부터 약해지면 쓰나.”
무진의 고문은 실제와 허상을 구분하지 않았다. 훈련을 위해 개발한 심상 구현을 잘만 활용하면 고문에도 아주 유용했다. 외적으로는 아무렇지 않겠지만, 정신을 무너뜨리는 데 효율적이었다.
“……저저저저 잔인한!”
“애초에 고문하려고 만든 게냐?”
“어쩐지, 이상하긴 했어!”
심상 구현을 당해 본 교장, 마제, 시조는 기겁했다. 레오와 엘리자베스의 발악에 가까운 비명을 듣자, 그간의 악몽이 떠올랐다. 더욱이 저건 훈련이 아닌 고문이다. 익숙해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허어억, 허어억!
초주검이 되어 버린 엘리자베스와 레오였다.
무진은 연인을 독방으로 분리한 후, 각자에게 원하는 정보를 물었다. 서로가 아는 정보가 틀리면 그 즉시 심상 구현을 발동했다. 그 치밀하고 지독한 고문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정보가 틀리면 연인이 더 힘들어질 거야. 잘해 주지는 못할망정, 짐이 되지는 말아야지. 올바른 연인이란 그런 거잖아.”
“……다 말하겠다…… 그만!”
강단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았다. 무진은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 고문도 마다하지 않았으며, 자발적인 계도를 강요했다. 동시에 심상에 숨겨져 있던 정보를 강제로 끄집어냈다.
추욱!
둘 다 쓸모를 다했다.
“내세엔 서로 행복해라.”
미련 없이 목을 꺾은 후, 삼매진화를 발동했다.
화르르르!
레오와 엘리자베스는 약속대로 깔끔하게 소거해 주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흔적들은 아공간에 저장해 두었다. 혹여, 재생이나 부활하면 곤란했다.
심문이 끝이 나자, 무진은 정보를 정리하여 제인 누나에게 보냈다. 제인 누나의 증거와 대조하여 확정된 자들의 리스트를 다시 작성했다.
사부님이 전면에 대대적으로 나설 차례였다. 가문, 길드, 정부를 주도할 필요가 있었다. 모든 과정이 마무리되면 일원화된 체계가 될 것이다.
“이대로 진행하면 될 겁니다.”
“난리가 나겠구나.”
“곪은 부위를 언제까지 안고 갈 순 없잖아요. 이번 기회에 깔끔하게 털고 가는 편이 낫습니다.”
“말년에 뭔 고생인지 모르겠구나.”
팔자를 운운하면서도 권왕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일전의 빚을 갚고, 놈들에게 한 방 제대로 먹여 줄 찬스기 때문이다.
‘박살을 내 주마.’
***
정확히 일주일이 지났다.
우리나라는 그 유례를 찾기 힘든 거대한 파문에 휩쓸려야 했다. 도무지 믿기 어려운 잔혹한 진실이 휘몰아쳤다.
가문, 길드, 정부, 재계를 막론하고 몰아치는 물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쉬이 믿기 어려운 사태의 연속이었다. 일례로 칠대가문과 대형 길드의 중진들이 대거 포함되었다.
평판이 좋지 않았던 자들이야 그럴 줄 알았다고 단정하는 반면, 전혀 의외의 인물들이 나열되었다. 인망과 덕을 갖추고, 실력까지 출중한 무인과 길드원이 암중 세력의 하수인이었단 사실에 충격이 컸다.
이 발표가 단순히 인터넷과 여론 매체를 통해 밝혀졌다면 이렇게까지 파문이 번지지 않았을 것이다. 중대 발표를 주도한 인물이 권왕인 데다가 마제, 수왕, 교장, 대통령, 국무총리까지 합세했다.
증거도 없이 모함했다고 하기엔 이들은 우리나라를 이끌어 가는 실세들이었다. 개개인의 무위뿐만 아니라 세력과 재력을 갖추었으며, 정부까지 연계가 되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발표했다고 하기에는 연관된 자들이 너무 많았다. 이후의 후폭풍도 고려해야 하기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반발이 거셌다.
인정하는 순간 살아온 세월을 부정당하고 현실은 매장당한다. 더욱이 암중 세력과 결탁한 죄는 가볍지 않았다. 암중 세력이 여태 자행한 테러들이 있었다. 드러나지 않을 때와는 달리, 거론된 이들은 테러의 공범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지목당한 인사들은 중상모략과 근거 없는 모함이라 주장하며 결사 항전했었다. 자결하는 이들도 있었다. 죽음으로 결백을 주장하기에 여론도 반전이 되는 듯했었다.
그런 분위기도 잠시, 인터넷으로 암중 세력과 결탁한 증거가 돌았다.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영상까지 첨부되었고, 본인이 아니고선 하기 힘든 일들이었다.
억울하다고 앞장서서 호소했던 이들이 사실은 가장 악랄했었다. 권왕은 발표 당시 죄를 시인하면 정상참작 해 주겠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항변한 대가와 배신의 후폭풍은 상상을 초월했다. 차라리 항변하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를 불러왔다.
-선비검은 아닌 줄 알았는데, 개호로 씹선비였네!
-혼일성협이라고 불렸던 정호랑은 어떻고? 이 새끼 미성년자까지 건드렸잖아.
-호군자는 완전히 사이비 새끼였네. 자기랑 자야 유토피아에 간다니, 이게 말이야, 방구야!
-죄다 더러운 위선자들이었어. 하기는 착한 척, 깨어 있는 척하는 것들치고 제대로 된 애들이 없지.
-몬스터민은 과다 복용하면 인간이 마물로 변한다고 하던데, 이걸 대량으로 유통했네!
-다른 거 다 떠나서 혈천 길드는 진짜 충격이다. 핵심 길드원이 전부 포섭됐더라고.
-솔직히 혈제가 가장 악랄하지 않았나? 암중 세력과 결탁해서 주도할 줄 알았는데 아니라고 하니 좀 이상하다.
-다른 대형 길드나 칠대가문은 괜찮은 줄 아나. 특히 화염적가는 날벼락 맞은 거지.
-검신가도 난장판이던데, 창황이 걸리지 않은 게 신기할 지경이야.
유포된 증거를 불신하기에는 지나치게 정확했다. 이유는 있었다. 한국 내 각성자들을 포섭하기 위한 암중 세력의 집요함이 상상을 초월했다.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세세한 정보까지도 수집하여 포섭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칠대가문, 대형 길드, 정재계는 반박하고 싶어도 하기 힘들었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과 사생활 불법 유포로 걸고넘어지기엔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믿고 있다가 발등을 찍혔으니 법망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법꾸라지를 용납하지 못했다.
-우리나라를 좀먹고 있는 인간들이 이렇게나 많았었나? 망하지 않은 게 다행이다.
-왜 저런 선택을 했는지 그때는 이해가 안 됐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거잖아.
-차라리 잘됐어. 뼈를 깎는 심정으로 발본색원해서 다시 시작하는 거야!
-근데 정말 무섭다. 암중 세력이 우리 생활 깊숙이까지 파고들었다는 거잖아.
-나 가르쳐 준 선생님도 포함이 된 거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었어.
-이젠 남의 얘기가 아닌 거지, 따지고 보면 여태까지는 저들만의 리그였잖아.
-씨발, 사람이 무서워서 밖에 나가지를 못하겠어!
암중 세력의 섬뜩함은 힘과 세력이 있는 사람들만 회유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까지 포섭해서 활용했다. 위만 보지 않고, 아래까지 철저하게 검증하고 이용한 것이다.
파문은 가라앉지 않고 점점 거세졌다.
죄를 시인하지 않고 항변하는 바람에 역풍을 맞았고, 정부에서도 이번 사안에 관해서만큼 특별법을 만들어서 뿌리를 뽑겠다고 공표했다.
칠대가문과 대형 길드의 핵심 수뇌부 중 포섭된 이들은 도망치려고 했으나 사전에 차단당하고 말았다.
권왕의 주도로 일명 ‘속전속결, 일망타진’ 전략이 딱딱 들어맞았다. 세간에 알려진 무신경한 권왕답지 않은 신속함과 정확성이었다.
궁지에 몰린 자들의 저항은 당연하게도 조족지혈에 지나지 않았다. 만반의 준비를 한 권왕과 마주하고서 살아남기란 불가능했다. 동시에 암중 세력의 한국 내 거점을 공략해서 심증을 확신으로 만들었다.
-권왕이 최고다, 역시 시원시원하다니까.
-처맞은 놈들 봐라, 남녀노소 평등해서 너무 좋다. 이래야지. 죄를 지었는데 어리다고 봐주고, 여자라고 봐주고, 늙었다고 왜 봐주냐고!!
-아무리 그래도 인권침해야!
-닥쳐, 피의자의 인권 따위를 왜 챙겨!
-피해자를 챙겨야지, 국민을 위한 대의다!
-인권은 소중해, 누구나 의도치 않게 피의자가 될 수 있어.
-이 새끼 학폭이다. 이름은 정수현이고, 서른두 살이다.
-……너 이거 명예훼손이야!
-찐따는 남 잘되는 거 두고 보지 않아.
-네 자식이 당하고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보자.
우리나라는 혼란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사회적으로 너무 많은 이들이 연관되어서 한동안은 소요를 진정시키기가 어려웠다.
당장은 모든 관심이 암중 세력과 결탁한 배신자에게 향했고, 증거도 없이 무분별하게 낙인을 찍는 경우도 많아졌다. 현재의 분위기로는 배신자로 낙인찍히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나마 낙인이 찍히지 않은 가문, 길드, 정·재계도 숨을 죽여야 했다. 부정적인 여론은 언제든지 향할 수 있고, 정적에겐 빌미를 제공할 수 있었다. 비바람이 부는 시기라 함부로 나대지 못하도록 강요했다.
***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가 밝았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시끄러웠다. 암중 세력과 결탁한 배신자를 찾아내기 위해 정부, 길드, 가문, 재계를 하루가 멀다고 들쑤시면서 사회 전반적으로 하루도 조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당사자는 방학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되레 여론이나 언론 매체로부터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로워졌다.
언론의 흥행 보증수표나 다름없었던 무진의 일거수일투족도, 암중 세력 이슈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생도의 연애 뉴스를 보기엔 정치, 사회, 경제면이 훨씬 재밌고, 인기도 많았다.
무진은 당장 나설 일도 없었다.
사부님을 필두로 시조, 마제, 교장이 중심을 잡은 채 소탕 작업에 나서고 있었다. 속전속결로 일망타진을 시키기는 했지만, 암중 세력과 결탁한 이들이 워낙 많았다.
‘먹잇감만 있으면 당분간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실상은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 잔챙이는 남겨 둔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핵심 관리자만 끊어 내고, 띄엄띄엄 연관된 자들은 차분히 피를 말려 주었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살도록 해 주었다.
지수, 유정, 혜진도 사부님과 함께하면서 전투 경험을 쌓았다. 특히 생도의 한계를 뛰어넘은 지수의 공적은 놀라웠다. 이미 교류전에서 보여 준 전투력보다 월등히 강해진 면모를 보였기 때문이다. 유정과 혜진도 덩달아서 칠대가문의 미래라는 타이틀로 인기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