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 패륜전(2)
쿨럭!
주르르르!
소연준과 소연해가 검은 피를 흘렸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전혀 방비를 못 하고 상처를 입었다. 분가와 대척하는 사이 시선이 한곳으로 쏠린 틈을 노린 것이다.
“……네가 왜?”
“분가가 합심하는데, 나라고 빠질 수가 있나.”
3분가의 가주가 담담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느닷없이 당한 소연준과 소연해는 분노 이전에 의문이 들었다. 다른 분가와 달리 3분가주는 자신들의 동생이었다.
직계혈족이면서 분가의 편을 들다니.
“……너희들!”
“……왜?”
소씨, 강씨 형제도 기가 막혔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당하는 동안 자신들도 3분가의 형제들에게 기습당해 제압되었다. 암기에 독이 묻었는지 힘을 쓸수록 전력이 숭덩숭덩 빠져나갔다.
씨익!
소연생은 분해하는 형과 누나를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렇게나 당황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앓던 이를 뺀 듯 시원한 쾌감에 전율이 일었다.
“가주를 시켜 주겠다잖아.”
“그렇다고 가족을 배신해!”
하하, 둘째 형이 웃기는 재주가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둘째 형이 가족을 입에 담을 줄은 미처 몰랐다.
“언제는 가족이었나? 우리끼리 모이기만 하면 맨날 큰형 험담만 했으면서, 이제 와 없던 의리라도 생긴 거라면 많이 얄팍한데.”
“닥치지 못햇!”
“꼭 할 말 없으면 그러더라.”
소연준과 소연해는 동생의 팩트에 울화가 치밀었다. 모이는 날이면 큰형을 안주 삼아 심하게 까기는 했었다. 그러나 형제자매 간에 그 정도의 불평불만은 누구나 있지 않은가. 그런 사소한 언쟁으로 가족의 뒤통수를 친다면 핑계에 지나지 않았다.
소연생은 분해하는 형과 누나를 위해서 솔직해졌다. 굳이 가식을 떨며, 본심을 숨기지 않았다. 뒷담화나 일삼는 형, 누나와는 다르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
“다 핑계고, 가주가 되고 싶었어. 이런 기회가 흔히 오는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 기다릴 순 없잖아. 다음이 내 차례도 아닐 테고. 형이나 누나나 양보와는 거리가 멀잖아.”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가족의 등에 칼을 꽂고 혼자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러니까 순순히 항복해 줬으면 좋겠는데, 나도 패륜을 저지르고 싶진 않아.”
“이런다고 네가 가주가 될 것 같으냐? 저놈들은 너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야! 단물이 빠지면 네놈도 갈아 치울 거다!”
“그럴지도 모르지만, 형이나 누나보다는 오래 살 것 같은데.”
당장 죽으나, 나중에 죽으나.
결과는 같아도, 맥락이 같다고 볼 순 없다. 나머지 분가가 협력한 이상 협조하지 않으면 어떤 꼴을 당할지 뻔했다.
물론, 가주가 되고 싶은 욕심이 가장 컸다. 차례가 오기를 기다려 봤자, 늙어 죽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집안이 워낙 동안이라 같이 늙어 가기는 하겠지.
부들, 부들!
둘째가 분노하여 소리쳤다. 만만하던 동생에게 당했으니 더더욱 화가 치밀었다.
“이 새끼가! 내가 가만둘 것 같으냐!”
“죽고 싶다면 하는 수 없지.”
소연생은 날카로운 비수를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후환이 되겠다니, 당장 처리하겠다는 의도를 비쳤다.
“……너 미쳤어!”
“난 형이나 누나처럼 말론 안 해. 아하, 잘 몰랐지? 그래서 대화가 중요한 거야. 난 형과 누나를 너무 잘 알거든. 주둥이만 살아서 나불거릴 줄만 알지, 실제로는 아무것도 못 하지. 아니라면 반박해 봐. 멱을 따 줄게.”
살기등등한 기세를 발산하진 않았다. 소연생은 언제나 있는 듯 없는 듯 공기처럼 살아왔다. 존재감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작금의 모습이 굉장히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부르르르, 오싹!
소연준과 소연해는 동생을 아예 모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다고 인정하자니, 자존심이 상했다. 가주 경쟁에선 생각도 해 보지 않은 녀석이었다. 평소에도 그리 여겼기에 거리끼지 않았었다.
“대답해 보라니까, 왜 이렇게 분노 조절을 잘하지? 평소 화를 달고 다니던 형과 누나는 어디 갔을까? 크크크크.”
“너 이 자식! 이러고도 무사…… 크억!”
소연생이 휘두른 비수가 소연준의 목에 닿았다. 핏물이 팟! 하고 튀면서 선혈이 옷을 적신다.
큭!
급히 목을 잡고 물러선 소연준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재생]이 발동하면서 피가 멈추긴 했어도, 조금만 깊었다면 즉사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칼을 휘둘렀다. 소연해는 소름이 돋는 광경에 망연자실했다.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며 뒷걸음을 치고 있었다.
“걸크러쉬의 화신 같은 우리 누님께서는 어디를 그리 급히 가시나?”
“……오지 마!”
“도망치게? 귀엽네, 우리 누나.”
“……내가 잘못했어! 제발!”
“역시 우리 누나야. 확실히 처맞기 전과 후가 너무 달라. 후후후후.”
동생의 조롱에도 소연해는 대답하지 못했다. 말을 하는 순간 오빠처럼 목이 잘릴 것 같았다. 평소 상태였다면 모를까, 어찌 된 이유인지 정령 소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몸에 스며든 독이 정령력을 막고 있는 것 같았다.
파르르!
시조의 입술이 경련을 일으켰다. 좀처럼 감정의 변화가 없는 편이지만, 지금처럼 화가 나는 일은 생애 처음이었다. 분가의 반란도 용납할 수 없거늘, 자신의 피를 이은 녀석이 가족의 등에 칼을 꽂았다.
화르르르!
김준수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본가를 배신하는 것으로도 부족해, 혈족의 관계마저 훼손했다.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인 4분가주를 용서할 순 없다. 가문을 세운 장본인으로서 결자해지의 선택을 해야 했다.
“해선 안 되는 짓을 하는구나.”
“어이구, 그리 노려보시니 너무나 무섭습니다. 역시 시조님의 기세는 감당하기도 벅차군요.”
“네놈이 기어이 나를 능멸하는 것이더냐!”
“능멸이라니요? 전 저를 과대평가도, 과소평가도 하지 않습니다. 혹시, 정정당당한 대결을 바라시진 않았겠지요. 따지고 보면 시조님은 반칙 같은 존재가 아닙니까.”
“더는 용서를 바라지 말거라!”
“호오, 가족마저 버리겠단 말씀이군요. 시조님다운 결단입니다. 그렇다면 밖에 있는 가족들도 상관없겠군요.”
“……너 설마!”
“당연하지 않습니까. 누차 말씀드리지만, 저는 제 분수를 잘 압니다.”
본인 능력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김준수의 태도, 상황이 이렇지만 않았다면 분수를 아는 겸허함이었다.
김준수의 겸양이 시조, 수왕, 장로들에겐 최악의 현실을 선사해 주었다. 피해를 감수하고 손을 쓴다면 감당하기 힘든 참상을 마주해야 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들까지 죽이겠다는 것이냐?”
“가족이 뭡니까? 함께해야 가족이지요.”
김준수의 패는 너무나 막강했다.
제아무리 철석간장을 지닌 소민성도 손을 쓰기는커녕 망설였다. 정령원의 결계가 도리어 자신들의 목을 조르는 도구가 될 줄 누가 알았으랴.
꽈득!
분가가 반목하더라도 건재한 이상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것이 이제는 미련한 오만이자 뼈아픈 패착임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빠득!
시조만큼이나 수왕도 분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는 현재의 대치 구도가 아닌, 본인의 오만에 대한 자책이었다.
‘내 실수다.’
작금의 현실을 아예 몰랐다고 볼 순 없다. 분가의 불만이 극도로 쌓여 있었고, 시조께서 의문의 독에 당했었다. 시조께서 건재하단 걸 알리기만 하면 자연히 해결되리라 안일하게 판단한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도, 대수롭지 않게 넘긴 대가였다.
-위험할 텐데요.
-걱정은 고마우나, 가문의 일이다.
-하긴, 주제넘게 외부인이 간섭할 일은 아니었네요.
-따로 보상은 해 주마.
수왕은 무진의 염려를 흘려들었었다. 설령 문제가 일어나도 자신과 장로들이 있으니, 시조님이 나서지 않아도 얼마든지 막아 낼 수 있다고 자신했었다.
그러나 분가가 준비한 수는 예측한 범위를 넘어섰다. 정령의식이 아닌 본가 자체를 노릴 줄이야.
‘이 녀석 말대로…… 응?’
시선을 잠시 돌렸던 수왕은 있어야 할 자리에 무진이 없자 당황했다. 그 앞에서 멀뚱히 바라보고 있는 딸의 표정이 가관이었다.
대체 어디로?
퍼억, 꽈당!
무진을 찾는 데 오래 걸리진 않았다. 언제, 어떻게 움직였는지 모르지만, 소연생이 뒤통수를 처맞고 바닥에 얼굴을 찍었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무진은 엎어진 소연생의 허리를 발로 강타했다.
뿌거거걱!
허리가 아작 나는 파열음이 들렸다.
흐어어어억!
소연생이 헛바람을 삼키기도 전에 눈을 까뒤집으며, 한겨울 빙판에 선 개처럼 경련을 일으키다 의식을 잃었다. 한껏 형과 누나를 조롱하며 득의만만했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부르르르르르르!
암중의 흑막이라도 된 것처럼 기세등등했던 걸 상기하면 극과 극의 대비가 기가 막힌다. 더욱이 뒤통수를 친 상대가 아카데미의 현역 생도인 이상, 소연생의 가치는 더더욱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다. 입소문이라도 돌면 소연생의 명예는 시궁창에 빠지는 셈이었다.
워낙 기습이 시기적절하긴 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타이밍에 공간이동을 한 것이다. 사전에 좌표를 설정해 놓고, 적기를 노렸기에 예측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가족 간의 피비린내 나는 패륜전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되었다.
‘직계 중 하나는 남아 있어야 명분이 생기지.’
무진의 짐작은 직계 중 하나였다. 소연생인지까지는 알지 못했다. 애초에 밝힐 필요도 없었다. 셋이 있으니, 그중 하나였고. 손을 쓴 이상, 더는 망설이지 않아도 되었다.
소연생을 처리한 무진은 틈을 주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소연생의 핏줄을 처리했다. 목적을 위해선 혈육도 과감히 처리한 용단을 존중해 주었다.
쐐액!
뻑, 뿌각!
소연생의 첫째 소유산은 낭심에서 전해지는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지르려다, 훅성으로 들어오는 주먹에 맞고 맥없이 튕겨 나갔다. 둘째 소유명은 화들짝 놀라다 정신을 차렸지만, 무진의 팔꿈치가 더 빨랐다.
퍼억, 크어어억!
창처럼 찌르는 날카로운 팔꿈치였다. 소유명은 일언반구도 없이 날아간 후 바닥을 볼썽사납게 굴렀다. 죽지는 않았으나, 반격은 기대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워낙 잘 맞았다.
궤적, 속도, 타점이 완벽했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팔꿈치 치기였다. 자세마저 완벽해서 교본으로 제작하고 싶어질 지경이다. 그래서일까? 눈에 확 띄며, 슬로모션처럼 지나갔다. 모두의 뇌리에 완벽하게 각인이 된 것이다.
“……저런!!”
“한눈팔 때가 아닌데.”
분가는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무진은 질풍처럼 달려들었다. 8분가의 전사란과 전사구의 안면에 주먹을 한 방씩 새겨, 미남미녀를 한순간에 추남추녀로 만들어 주었다. 다행히 함몰은 면해서 수술하면 훈남훈녀는 될지 모르겠다.
안 되면 말고.
일순간에 인질극을 벌였던 대상을 처리해 경계를 세웠다.
분가를 막아선 무진은.
씨익!
소씨, 강씨 형제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기습으로 옴짝달싹 못 하는 상태에서 구함을 받았다. 하지만 운명은 얄궂었다. 하필이면 구원자가 원하지 않던 놈이라 떨떠름했다. 누구라도 자신들을 구해 주길 바랐지만, 무진일 줄 누가 알았으랴.
처지가 참으로 어정쩡했다.
그 지랄을 떤 놈에게 구원받았으니 고맙다고 하기도 껄끄러웠다. 더욱이 남겨진 채무가 100억이나 되었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휙!
애써 시선을 외면한 소씨, 강씨 형제는 그냥 모른 척 지나가기를 바랐다. 반란이 끝난 것도 아닌데, 굳이 공치사를 듣겠다고 언급하지는 않겠지?
하나, 아직도 무진을 모르고서 하는 소리였다.
일이 바빠도, 예의를 우선시했다.
“고맙다고도 안 하네. 분가는 기본적인 예의를 안 배우나?”
“……고맙다.”
누워서 절 받기식이라며 핀잔을 준 무진은 쓰러져 있는 소연생을 일으켰다. 잡을 게 없어서 일단 적당히 목을 잡았다.
꽈악!
재수 없는 놈치곤, 그립감이 제법이었다.
커어어!
잃었던 의식이 돌아오면서 비명을 지르는 소연생이었다.
방정맞은 비명과 몸부림에 무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어른이면, 고통도 감내할 수 있어야지. 형과 누나를 베고서도 실실 쪼갰던 것치고는 강단이 약했다. 확실히 사람은 궁지에 몰려야 진실을 드러낸다.
정신 못 차리는 소연생을 위해서 무진은 살짝 목을 흔들었다. 이 느낌은 돈을 어디에다 쓰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매년 흔들어 대는 구세군과 비슷했다.
흔들!
크아아아아!
삐끗한 허리에서 전해진 디스크 파열에 소연생의 포효가 정령원을 뒤흔들었다. 왜 그렇게 허리가 중요한지 보여 주는 대목이었다.
이 고통은 당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했던가? 완전히 어긋나면 희망이라도 없지, 척추의 부서진 작은 파편이 고통을 가중시킨다.
“막내라고 오냐오냐 키우니까 이렇죠. 인내심이 없어, 인내심이. 나 때는 안 그랬는데, 쯧쯧쯧!”
무진의 헛소리에 다들 망연자실했다.
지금이 그런 한가한 소리나 할 때인가?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참상이라, 다들 손을 쓰기는커녕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조, 수왕, 장로들도 가만히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