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262화 (263/374)

262. 똥 밟다(3)

소씨 형제는 하도 어이가 없다 보니, 대답에 시간이 걸렸다. 설상가상으로 무릎을 꿇은 사촌 동생들도 빨리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70, 80년대 동네 깡패 형들에게 삥 뜯기는 동기들한테 들킨 기분이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화가 나서 욕은 했지만, 돌아가는 사태가 정말 이상했다. 상식적으로 저게 말이 되는 일인가? 무진이 교류전의 MVP긴 해도 사촌 동생은 서른 살이나 처먹었다. 하물며 둘이서 한 놈을 이기지 못하다니, 어떤 수작을 부렸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빨리 안 오냐, 후회할 텐데.”

“어린노무 새끼가 주변에서 오냐오냐하니까 뵈는 게 없는 거냐?”

“분가의 따까리 새끼들답게 주제 파악이 안 되나 보네.”

“……이 자식이! 죽여 주마!”

소씨 형제에게 있어 역린이나 다름이 없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겁도 없이 자신들을 모욕했다. 문제를 크게 일으키고 싶진 않지만, 현실 파악이 안 된다면 가르쳐 주는 수밖에.

쐐애액!

동생인 소유백이 무진을 향해 쇄도했다.

정령사라고 전투 스킬이 정령에만 국한되었다고 본다면 오산이다. 정령소가의 정령투법은 무가에서도 공인받은 무공이었다.

뚜, 띠리릭!

-무슨 일이냐?

영상통화에 소유백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강씨 형제는 대경실색했다.

기어코 사고를 친 것이다.

스윽!

무진은 쇄도해 오는 소유백을 향해 영상통화의 상대를 보여 주었다. 그 짧은 순간 봤을지는, 소유백의 운에 맡겼다. 보지 않아도 상관없고, 봤다면 알아서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했다.

“경찰서에다 전화를…… 응?”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 화면에 있었다.

무진을 향해 쇄도하던 소유백은 상대가 누군지 점점 떠오르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지르던 주먹이 닿기 전에 급히 방향을 틀었다. 이 주먹이 스마트폰과 무진을 박살 내는 순간 인생 전반이 나가리 되는 수가 있었다.

흐억!

쿠다다다당!

급브레이크의 후유증은 당연지사였다. 다행히 최악은 모면했다. 동생이 꼴사납게 나뒹굴었음에도, 소유천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최신형 돌비 옵티머스 사운드를 장착한 무진의 스마트폰을 통해 쩌렁쩌렁한 포효가 터졌다.

-이것들이 착하디착한 제자를 폭행해! 너희들 누구냐? 어쭈, 셋 셀 때까지 대답 빨리 안 하냐? 셋!

“……그런 게 아닙니다. 오해가 있었던 겁니다!”

대체 어디가 착하단 건가?

때리기라도 했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사촌 동생들이 무릎을 꿇고 있던 이유를 이제야 파악했다. 저런 식의 협박을 했을 줄이야, 무인의 사고방식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진다고는 하나, 권왕이 나서는 건 스케일의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오해하지 않도록 해야 했다.

“사부님, 저것들이 저를 겁박하고, 돈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무려 100억이나. 제가 돈이 있다는 걸 알고 한 행위가 분명합니다. 이건 명백한 권왕가에 대한 도전입니다.”

-이것들이, 진정 끝장을 보자는 거구나! 전쟁이다, 전쟁!

노발대발하는 권왕의 분노에 다들 기겁했다. 화면 속에 있는데도 바로 앞에서 분노하는 것처럼 원근감이 사실적이었다.

‘방금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미친놈이 제정신인가?’

분노 이전에 전쟁이 뇌리에 박혔다. 가문과 가문의 전쟁을 이리 가볍게 결정할 수 있다고? 더욱이 우리가 언제 돈을 뜯었다는 거야? 이게 다 저 망할 놈의 이간질이 분명했다.

“권왕 어르신! 저희는 절대 돈을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저놈의 명백한 이간질입니다!”

-저놈? 혹시 내 제자에게 하는 소린 아니겠지? 아닐 거야. 그렇고말고. 허억, 진짜라고? 이것들이 내 제자한테 이놈, 저놈 한 거야?

“그런 뜻이 아니오라, 오해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일단 화부터 다스리십시오!”

-네가 뭔데, 다스리라 말라야!

“저희는 정령가의 직계입니다!”

-정령가로 나를 겁박하는 거야? 수왕도 내 앞에서는 질질 싸는데!

뭐를 싸?

사부나, 제자나 말투가 왜 이렇게 저렴해!

수왕이 당신 친굽니까!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당장이라도 본가로 쳐들어올 기세였다. 위기감이 밀려오며 오금이 저려 왔다. 자칫하다 진짜로 전쟁이 난다고 상상해 봐라. 단순히 생도 하나를 겁박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파급력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말이 안 돼!’

‘미치지 않고서야, 대놓고 전쟁을 벌인다고?’

문제는 권왕의 전례와 성향이었다. 저 또라이 같은 권왕이 상식적인 답을 내놓을지 미지수다. 더욱이 그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제자가 눈앞에 있었다.

그 사부에 그 제자!!

“사부님, 저도 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습니다. 이제 정령가가 망하나, 제가 죽나 둘 중 하납니다!”

무진의 사생결단에 소씨, 강씨 형제는 미칠 것 같았다. 사부를 만류해도 부족한 판국에 기름을 붓고 있었다.

죽긴 누가 죽인다는 거야? 우린 그렇게까지 하진 않았다고! 어느 순간 자신들은 살인미수자에 전쟁광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제발 노여움을 푸십시오!”

“우리가 잘못했어, 너도 제발 그만해!”

소씨나 강씨나 바짝 엎드렸다.

무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영상통화는 켜 놓은 상태로 요구했다.

“그럼 꿇어야지.”

잘못했으면서 고개 바짝 드는 건 예의 없는 행동이다. 무진은 예전부터 무례한 행위를 극혐했었다.

나는 무례해도, 남은 무례하면 안 되지. 지극히 상대적인 내로남불이었다.

부르르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 앞에서 무릎을 꿇다니, 소씨 형제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요즘 결혼이 늦어지는 추세긴 해도, 조혼했다면 저만한 자식이 있을 나이였다.

“거봐, 예의를 차리니까 얼마나 좋아. 나 때는 사부님의 그림자도 안 밟았어.”

-제자야, 그런 말은 나도 처음 들어…… 크흠.

그림자는 밟지 않아도, 주먹은 날리지 않았느냐고 하려던 권왕은 제자의 무서운 얼굴에 입을 다물었다. 자애로운 부처상으로 사람을 잘 패긴 해도,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무진은 사부님의 눈치 없는 행동을 사전에 제지했다.

어딜 제자의 말에 토를 다시나.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사부는 제자의 방패막이, 명분, 배경이 되어 주고, 제자는…… 다 그런 거 아닌가.

빠드득!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도 아니고, 공감은커녕 이해조차 되지 않는 소씨, 강씨 형제였다. 권왕의 훈계라면 그나마 이해라도 하지, 나이 반 토막밖에 안 되는 놈이 벌써부터 꼰대 짓을 하고 있었다.

“이제 정산을 해 볼까.”

“정산? 아직도 남은 게 있다는 것이냐?”

이런 개짓거리를 하고, 더 남았다니! 불구대천의 원수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겠다. 우리가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것도 아니잖아.

“하아, 성년도 되지 않은 나 같은 소녀 감성의 여린 미성년자를 겁박하고, 심신에 지대한 피해를 줬으면서도 이대로 끝내자고? 세상천지에 그런 무도한 법이 어디 있냐고!”

“감성이 어쩌고?”

“무도가 어째?”

소씨, 강씨 형제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어디가 소녀 감성이라는 건가? 저딴 새끼가 여린 소녀면, 우리나라에 소녀는 다 죽었다. 가뜩이나 인구가 줄어들고 있구먼, 출산율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놈이었다.

“하아, 좋게 끝내려고 했더니, 말로는 안 되는구먼. 이거 인터넷에 올린다. 감당할 수 있으면 해 보시든가?”

“……이 미친놈이! 끝까지 해보자는 것이냐?”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영상을 인터넷에 올린단다. 그리된다면 자신들은 하루아침에 온 국민의 웃음벨 캐릭터로 전락할 것이다. 자료를 지운다고 될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지워 봤자, 영상은 무한대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재생산된다.

-어허, 반항적인 눈까리 봐라. 전쟁하고 싶다 이거지. 나야 좋지. 참고로 내 제자를 인질로 잡아도 난 협상 따윈 안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 감당할 수 있으면 질러 보라고. 하하하하하하!

소씨, 강씨 형제가 눈깔이 돌아서 무진에게 달려들려고 했지만, 권왕을 보자 다시 동공이 착해졌다. 우리나라 최강의 분노 억제기다운 성능이었다. 나날이 성능을 버전업하기에 미국 사과폰처럼 오래 쓸 수 있었다. 2년만 쓰면 느려지고, 성능 제한에도 걸리지 않는다.

“……얼마면 되는 거냐?”

“아까 말했잖아.”

“대체 언제?”

“너희들 기억 안 나? 나한테 100억 달라며.”

이게 이렇게 이어지나?

협박도 계획적이었다.

어쨌든 이어지든, 말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가 언제 100억을 삥 뜯었냐고? 하지도 않은 일을 덮어씌우고 말았다.

-겁도 없이 내 수제자에게 100억을 뜯어! 창피해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구나. 다른 건 다 참아도 내가 창피한 건 못 참는다. 그럴 바엔 다 뒈지는 거지.

이 미친 권왕이!

툭하면 뒈진대.

자기가 창피하다고 왜 남을 죽여? 소씨, 강씨 형제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적반하장의 사고 구조였다.

“아무렴요, 나보다 다른 사람이 창피한 게 낫지.”

사부나, 제자나!

자기들이 한 짓으로 인해 굴욕을 당했으면, 반성하거나 자숙을 해야지. 주변 전가, 자기 회피, 내로남불을 패시브로 장착하고 있었다.

“100억이라니, 그게 가당키나 한 소리냐! 따지고 보면 이거 협박인 거 알아?”

“단어 선택이 불건전하네. 건전한 협상을 해야지.”

“유포하는 즉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거다!”

“불가피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겠네. 해킹이라든지, 소매치기라든지.”

VPN을 우회해서 불법 사이트 좀 들락날락해야겠다. 안타깝게도 스마트폰이 국산이다. 바이러스에 굉장히 취약하지만, 운명으로 여겨야겠지.

보이스 피싱과 바이러스에 취약한, 자칭 인터넷 강국인 우리나라의 사정을 알기에 소씨, 강씨 형제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100억은 너무 많다! 그런 큰돈을 어떻게 구하라고!”

“그래? 있을 텐데. 분가에서 본가로 보내는 돈이라든지, 뭐 그런 거 있잖아.”

움찔!

소씨, 강씨 형제는 순간 당황했다. 이놈이 알고 하는 소린지, 되는대로 지껄인 소린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만약 알고 했다면 사태가 아주 심각하다.

“대답이 느리네. 너희들 진짜로 삥땅 친 거야? 아주 좋은 꿀팁 제공이야.”

“……그런 일 없다, 어디서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것이냐?”

“그거야 가주께서 조사해 보면 다 나오겠지. 어디부터 조지면 좋을까?”

“가주께서 네놈의 말을 들을 것 같으냐!”

“안 들어도 말은 해 볼 수 있지.”

100억을 주면 입을 봉하겠단 의미는 묵음 처리 되었다. 만약 이 사태가 8개의 분가 전체로 퍼진다면, 시발점이 된 자신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성냥불이 산불로 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스케일이 커지는 거야?’

‘이런 빌어먹을,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어!’

시작은 단순 시비였거늘, 자칫 잘못했다가는 분가의 회계감사로 이어질 판이다.

소씨, 강씨는 결국 자존심 대신 백기 투항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가문 내의 입지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더욱이 본가와 가문의 중진이 모이는, 가문의 중대사가 있었다.

원래라면 이런 시시비비로 시간 낭비할 이유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사소한 연유였다. 자기 주제를 모르는 무진이 꼴 보기 싫어서 적당히 기를 눌러 주려고 했을 뿐이다.

소씨, 강씨 형제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할부는 되냐?”

“시세대로지만, 변동 금리야.”

“……이자를 받겠다고?”

“내가 무슨 시공사도 아니고, 부동산 중도금 할부야, 이게?”

“……알겠다.”

무진은 계약서를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언제, 어디서든 계약을 할 수 있기에 기본 계약서를 가지고 다녔다. 내용은 대동소이하기에 몇 글자만 써 넣으면 되었다.

‘어째서 인벤토리에 계약서를 가지고 다니는 거야?’

‘……상습범이구나!’

사인을 받은 무진은 정중히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소씨, 강씨 형제에겐 화해의 손이라고 하기엔 더 뜯어먹을 게 없나 간을 보는 느낌이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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