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261화 (262/374)

261. 똥 밟다(2)

정령소가.

매일 출퇴근하진 않더라도, 무진은 일주일에 1, 2번은 드나들고 있었다. 무진의 가정방문이 관심을 끄는 연유는 유정과의 삼각관계도 있으나, 정령가의 특성 때문이다.

정령가는 칠대가문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명가로 폐쇄적인 분위기였다. 그렇게 말하면 ‘난 아니던데’라고 부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는 본가와 분가의 접근 방식에서 오는 괴리에 있었다.

정령가는 8개의 분가를 두고 있으며, 인재 영입에 인색하지 않다. 분가를 두는 이유는 정령을 다루는 각성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정령 친화력과 신상 검증만 되면 세가원이 될 수 있었다. 태생적인 능력과 각성이 희소할 뿐, 진입 장벽 자체는 높지 않았다.

개방적인 분가와 달리 본가는 철저히 사람을 가린다. 분가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검증된 인원에게만 출입이 허용되었다. 또한, 직계라고 할지라도 능력이 되지 않으면 분가로 가야 한다.

그렇기에 정령가는 폐쇄적이면서도 개방적인 이중적인 면모를 지녔다. 이방인에 불과한 무진의 본가 출입이 특이하게 보이는 까닭이다. 인정받은 직계나 상급의 정령술사에게만 허락된 본가를 제 맘대로 출입한다는 것 자체가 특혜나 마찬가지다.

특권 의식이 다분한 본가는 물론, 분가는 특히 그 점을 못마땅해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수왕의 부름을 받은 무진은 정령소가의 본가를 방문했다. 가슴엔 나뭇가지 형태의 배지를 달았고, 가지가 7개다.

칠지돈가?

배지는 정령가를 상징하는 마크로, 나뭇가지의 수에 따라 방문자의 등급이 정해진다. 최고는 8개고, 외부인 중에 7개 이상은 손에 꼽았다.

통상 배지만 보여 주면 정문은 무사통과였다. 7등급 배지는 가주만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왕의 허가가 떨어진 방문자를 검문하진 않았다.

무진은 가주실로 향했다.

오늘따라 다른 날과 달리 분주한 편이다. 기본적으로 느껴지는 인기척도 족히 3배는 더 많았다.

“멈춰.”

가는 길에 통로를 가로막는 자들이 있었다.

눈이 옹이구멍이 아니라면 보일 텐데, 배지는 등급을 표시한다. 7등급 배지를 보고서도 이런다면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오늘같이 중요한 날 외부인을 받을 리는 없는데.”

“못 본 사이에 본가의 경비 상태가 심각해졌구나.”

마치 허락도 받지 않고 들어온 침입자로 대우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명백한 시비였다.

모욕을 주고서도 득의만만한 표정을 보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뻔히 읽힌다. 그도 그럴 것이 무진이 비록 명성을 얻었다곤 하나, 아직은 일개 생도였다. 자신들의 위협적인 기세에 잔뜩 위축되리란 기대가 담겼다.

물론, 일반적인 생도였을 때나 그렇다. 실제로 촉법을 거론했던 애새끼들도 각성의 시대가 되면서 함부로 나대진 않는다. 어른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본보기가 있었다. 그 뒤로 애들도 법보다 무서운 일을 알게 되었다. 확실히 폭력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분노 조절을 잘하게 해 준다.

무진은 일반적인 상리와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 더욱이 도발에 관해선 일가견이 있었다.

“본가에서 낙오된 불량품 주제에 어디서 깝치는 거냐.”

“……너 뭐라고 했어!”

그들로선 들어 보지도 못했던 폭언이었다.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누가 감히 자신들에게 저딴 망언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은 가문의 직계인 소연해의 혈육으로 수왕의 조카였다. 비록 본가에서 생활하지는 않지만, 분가에선 왕자나 다름이 없었다.

강천민, 강천우 형제에겐 참기 힘든 모욕이었다. 적당히 기세를 꺾어 놓을 심산으로 막아섰거늘,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격이다.

“눈만 옹이구멍인 줄 알았더니, 귓구멍까지 막혔냐? 본가에서 낙오할 만하네.”

“이 새끼가 우리가 누군 줄 알고 그딴 망발을 해! 죽고 싶어?”

“강천민, 강천우. 본가의 낙오자들 맞잖아. 아니면 정령가의 귀빈을 생각 없이 막지도 않았겠지.”

“우릴 모욕하고서 네놈이 무사할 것 같아!”

강씨 형제는 무진의 무지를 노려서 몰아붙이려고 했다.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놈이라고 해도, 정령가의 본가였다.

더욱이 권왕가와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고 했다. 조금만 도발하면 알아서 걸려들 줄은 알았지만, 이건 자신들이 상상한 범위를 아득히 초월했다.

무진은 강씨 형제의 협박에 코웃음 쳤다.

“무사하겠지. 너희가 뭘 할 수 있지? 이대로 가주님한테 가서 고해 볼까?”

“시건방을 떨더니, 고작 한다는 짓이 고자질이더냐!”

“나는 미성년자라 고자질해도 돼. 선 넘으면 권왕가와 무극 길드에 가서도 너희들이 도발하고, 조롱하고, 욕하고, 암습을 가했다고 고발할 거다. 자, 이제 건드려 봐.”

무진이 얼굴 빳빳이 들고 고개를 내밀었다. 얼마든지 쳐 보라고 까딱거린다. 그 모습이 어찌나 얄미운지 한 대 시원하게 쳐 버리고 싶었다.

강씨 형제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토록 뻔뻔하고 파렴치한 언행은 처음이었다.

“……우리가 언제 그랬다는 것이냐?”

“그딴 짓을 했다간 전쟁이야!”

그들로선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도발하는 즉시 발끈해서 달려들기를 바랐거늘, 쪼르르 달려가 일러바치려고 할 줄이야. 평소라면 오기를 부렸을 테지만, 후폭풍을 감당하기에는 권왕과 마제였다.

자신들 때문에 칠대가문 간에 전쟁이라도 벌어진다면 어찌 될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그런 엄청난 짓을 이놈은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다.

“쳐 보라니까, 깽값 한번 거하게 받아 보지 뭐.”

“허풍 떨지 마라, 네놈이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내 소문을 못 들었나?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그분들이 네 말을 믿을 것 같으냐!”

지지 않으려고 자존심을 세워 보지만, 강씨 형제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으리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무진에 대한 소문의 일부만 들어도, 정상적인 사고방식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니겠지, 아닐 거다!’

‘미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말다툼 좀 했다고 그딴 짓을 한다고? 더욱이 우리가 언제 조롱하며 암습을 가했냐고? 하지도 않은 짓을 했다고 버젓이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뻔뻔함에 말문이 막힌다.

‘과소평가되기는 어디가?’

‘이놈은 소문보다 더하잖아!’

왜 무진이 평지풍파, 인적 재앙이라고 불리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놈은 아무렇지 않게 개 같은 짓을 벌이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까딱 잘못되면 거대한 똥을 밟게 되는 것이다.

“오늘은 바쁜 날이라 이만하마!”

“너, 운 좋은 줄 알아라!”

무진이 고개를 쑥! 내밀 때 뒷걸음쳤던 형제는 수치심이 들었지만, 사태가 더 커지면 감당하기 벅찼다.

하나, 본인들이 시작했다고, 끝도 자기들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커다란 오판이었다.

“가긴 어딜 가.”

무진은 형제가 떠나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짝다리를 짚고, 삐딱하게 서서 형제들을 불렀다.

휙!

강씨 형제는 들은 척하지 않고 돌아섰다.

저 어린놈의 싸가지 없는 반말에 화는 나지만, 같이 드잡이질하기에는 위험했다. 예로부터 미친놈은 쳐다보지도 말라고 하지 않던가.

‘유천이 형 말을 괜히 들었어!’

‘적당히 굽히긴 어디가?’

자신들도 맘대로 오지 못하는 본가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꼴이 맘에 들진 않았지만, 사촌 형의 부추김이 더 컸다.

이렇게나 미친놈인 줄 알았으면 애초에 건드리지도 않았다. 요즘 들어 얌전해졌다는 여론은 헛소리였다.

“진짜 가는 거야? 비겁하게, 존나 쫄보들이네. 그런 주제에 무슨 깡으로 나를 건드린 거냐?”

강씨 형제는 돌아서서 귀를 막았다.

대꾸해 봤자 자신들만 손해였다. 가주의 허락을 받았고, 7등급의 배지를 찼다. 실제로도 무진은 정령가의 귀빈이었다. 무진의 언행이 굉장히 무례하긴 해도, 시시비비를 따지면 자신들도 무사하긴 힘들다.

띠띠띠띠, 띠띠띠!

멈칫!

핸드폰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서 가던 강씨 형제는 멈춰 서고 말았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씨익!

무진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 화면을 보여 주었다. 번호를 누르자 저장된 이름이 화면에 떡하니 자리했다.

[권왕 사부님]

-♡천하제일권♡

흐엑!

쿨럭!

시력이라도 나쁘면 좋으련만, 각성자는 최소 3.0 이상이었다. 버젓이 화면에 적힌 이름이 눈알을 통과하여 뇌에 각인되었다. 형제는 기함을 토하며 헛바람을 삼켰다.

설마 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리라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바늘구멍 안에 낙타가 들어갈 확률이거늘, 천재지변의 괴랄한 행위를 이놈은 서슴없이 행하려고 했다.

“누를까?”

“……잠깐!”

건들 사람을 보고 건드리라는 말이 있다. 강씨 형제는 건드려선 안 되는 인간 말종을 건드린 것이다. 저 미친놈이 통화 버튼을 누르는 순간, 자신들은 정말로 좆되는 거다.

“우리가 잘못했다, 그러니 그만하자!”

“그럼 꿇어야지.”

“……뭐라고! 도가 지나치잖아!”

“싫으면 말고.”

무진이 통화 버튼을 누르려고 하자, 강씨 형제는 기겁하며 무릎을 꿇었다. 꿇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는, 이후의 파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꿇으면 되잖아, 누르지 마!”

“기다려 봐, 비디오로 바꾸게.”

강씨 형제는 깨달았다.

자신들도 그리 성격이 좋다고는 못 하지만, 진짜 개새끼가 따로 있다는 걸. 개새끼에도 등급이 있었다. 자신들이 치와와라면 이놈은 최소 도베르만이었다. 감히 따르지 못할 역겨움이 밀려왔다.

“자, 이제 말해 봐.”

“뭘 말하라는 거야? 잘못했다고 했잖아!”

“너희 같은 병신들이 감히 겁도 없이 본좌를 도발할 리 없을 테고. 부추긴 게 누구냐고?”

“……본좌라니!”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이런 중2병스러운 놈에게 당하다니, 강씨 형제는 수치심이 밀려왔다. 지금이라도 이놈을 제압해서 못된 버릇을 고쳐야 하지 않을까? 심한 내적 갈등에 휩싸였다. 그러나 핵심을 꿰뚫는 날카로움이 있었다.

“그런 거 없어!”

“있어야 할 텐데.”

무진이 통화 버튼을 다시 누르려고 했다. 화면 분할의 멀티태스크를 잊으면 곤란하지. 우리나라의 우주폰이 이런 쪽으론 꽤 강했다.

허걱!

강씨 형제는 재차 기겁했다.

협박에도 급이 있었다. 애초에 배후가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너희들이 살고 싶으면 아무나 부르라는 의미였다.

“그렇다고 진짜로 아무나 부르면 곤란할 거야. 교차 검증해서 다르면 알지?”

……예리한 새끼!

명탐정 개새낀가? 컨셉에 함몰된 중2병은 무시해선 안 되었다.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사촌 형이 시켰어.”

“요새 자리에 위기감을 느끼나 봐. 그럴 수 있지. 나를 까서 유정이를 흠집 내려는 거면.”

“……이제 됐지?”

“나는 됐는데, 너희들은 안 됐다.”

“그게 무슨…… 헉!”

무진의 시선이 뒤를 가리켰다.

돌아본 강씨 형제는 자신들을 보고 있는 소유천, 소유백 형제를 보고 헛바람을 삼켰다.

뭐야?

당황하기는 소씨 형제도 마찬가지였다. 사촌 동생들에게 적당히 도발하라고 언질만 주었었다. 지금쯤 끝이 났으려니 하고 왔는데, 예상했던 상황과는 정반대였다.

“어이, 거기. 너희들도 여기로 조용히 와서 무릎 꿇어라. 안 그러면 굉장히 후회하게 될 거다.”

“이 새끼가 지금 어른한테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자꾸 새끼, 새끼 하면 기분 더럽지.

내가 너희들 새끼냐?

무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