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 똥 밟다(1)
-이 새끼 정령가로 출근하던데.
-그새 지수 버리고 유정이한테 간 거냐?
-와, 씨발! 난봉꾼이었네!
-어쩐지 조용히 다니더라니, 권왕한테 뒤지겠다.
-어서 일러, 죽어랏!
-어째 조용하다 싶었다. 역시 데스패치다.
철들었는지 은인자중하던 무진의 사생활이 언론을 탔다. 집, 아카데미라는 모범생 루트를 타 여론의 관심이 줄었지만, 데스패치의 집요함을 간과한 것이다.
돈이 된다면 목표한 인물이 죽어도 끝나지 않는다. 그러다 진짜로 죽으면 심심한 위로를 보내면 그만이다. 어차피 여론의 관심은 오래가지 않는다.
-헤어지긴, 셋이 같이 있구먼.
-개자식, 능력자였네!
-이거 나만 불편해? 하나도 아니고, 양심이 없는 행동이잖아!
-좋았어, 일부다처제 실행시켜!
-여기가 인도나 아랍이냐? 뭐 이런 병신이 다 있어!
-여자 망신 그만 시켜라, 저런 난봉꾼이 뭐가 좋다고 매달리는 거야?
-누가 보면 사귀는 줄! 사진은 길 가다 같이 찍힌 것뿐이잖아. 모텔에서 땀 빼고 나온 것도 아니고.
-생각들이 다 저질이냐, 그러니까 너희들이 방구석을 못 벗어나지. 사람을 만나는 봤냐?
-우리 때는 참 낭만이 있고, 순수했는데. 요즘은 자만추가 대세라니!
무진과 유정이 정령가의 본가로 들어가는 사진은 설왕설래를 만들기에 적절했다. 자기가 당하면 극대로겠지만, 제삼자에게 치정은 씹고 뜯고 맛보는 여흥이었다.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았다. 열여덟 살 한창 혈기 왕성한 시기였고, 어린 생도를 놓고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언론이 좋게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권왕가와 정령가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칠대가문을 엮어 놓으니 아주 흥미진진했다. 권왕가와 정령가로선 자존심 싸움이 될 수 있었다.
더욱이 치정의 주인공이 평지풍파, 풍운아를 대표하는 무진이었다. 둘이 먹다 둘 다 체해도 이상하지 않을 녀석을 놓고, 엘리트 여생도가 다툼을 벌이니 특이할 만했다.
-정령가의 수왕과 권왕가의 권왕이 한판 붙는 거 아냐?
-수왕은 은거한 거 아닌가? 거의 활약하지 않잖아. 일전에도 그렇고.
-저 시기엔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해도 이상하지 않아. 막말로 약혼을 했어, 결혼을 했어! 한 사람만 평생 만나야 하는 거냐?
-그런 상식적인 얘기를 권왕과 수왕 앞에서 떠들어 봐. 그러면 내 인정한다.
-그러네, 상식이 뭐가 중요해! 정령가와 권왕가라고!
-수왕이 권왕을 이길 수나 있나? 권왕은 전보다 더 강해진 것 같던데.
-정령소가의 무서움을 모르네. 전대, 전전대 가주가 살아 있다고.
-거의 100세는 넘지 않았나? 이상하게 오래 살기는 해. 연금을 대체 얼마나 타 먹은 거야?
-적게 내고 많이 타 먹었겠지. 이거 거의 폰지 사기급인데. 정령소가는 연금으로 운영하나 보다.
-연금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제발 카테고리에 맞는 얘기 좀 해! 그런 얘기 할 거면 정치, 사회면으로 가라고!
정령소가의 무서움은 노장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문의 전대 어른들이 살아 있었다. 저출산 고령화의 현신, 완벽한 꼰대가였다.
그래서일까? 생각만큼 가주의 파워가 막강하진 않았다. 전대 가주와 장로, 전전대 가주의 힘이 오히려 더 강했다. 권왕도 전대 가주긴 한데, 연배 차이가 있었다. 다만, 경로 우대가 아닌 경로 파괴자인 권왕을 상기하면 어떻게 될지 예측 불가였다.
-아무리 그래도 무진을 놓고 서로 싸우는 건 그렇지 않나?
-무진이가 어때서? 신입생 선발전에서 화제를 일으켰고, 성운맹의 창설에 단초가 되었고, 교류전에서도 활약해서 MVP가 되었잖아.
-와, 전적 화려한 것 보소! 전적만 놓고 보면 경쟁할 생도가 없네.
-지랄을 하도 떨어서 이력이 다 가려진 거지.
-이번에 돈도 엄청나게 벌었다고 하던데.
-돈 벌었으면 기부 좀 하자. 빌딩 사고, 땅 투기하면 가만 안 둔다.
-우리나라는 돈 벌면 애도 가차 없구나!
무진의 신상을 털수록 흠집이 없다는 사실에 전 국민이 놀랐다. 전적도 화려하고, 돈도 많고, 실력도 뛰어난 축에 속했다. 자기소개서만 보면 완벽한 1등 신랑감이었다.
너무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살지 않는 것처럼, 보통 이 정도로 청결하면 흠집 하나에도 타격이 심할 텐데. 무진은 여론의 집중포화에도 타격감이 제로였다. 멋대로 씹고, 뜯어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원래 자기 스스로 깨끗하다고 하는 새끼들치고, 진짜로 깨끗한 놈들은 없었는데. 얜 대체 뭐지?
-인간은 완전무결하지 않아, 위선자만 있을 뿐이지. 그런데 얜 뭐지?
-안과 밖이 똑같은 인간은 많지 않아. 그러면 뒤가 구려야 하는데, 얜 대체 뭐야?
-구릴 대로 구린 인간이 분명한데, 딱히 흠을 잡을 수가 없어. 도대체 이 인간은 뭐냐고?
-깨끗하지 않은데, 왜 털어서 먼지가 안 나냐고? 누가 이 인간의 정체를 알려 달라고!
가루가 되도록 까인 적이 있음에도, 평소와 다르지 않으니 의미가 없어졌다. 애먼 짓을 벌이면 도리어 타격을 받고 주화입마에 빠지곤 했다.
건드려 봤자 무용지물인데도 건드리고 싶게 하는, 무진은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인간이었다.
“왜?”
“불공평해.”
“어디가?”
“특혜는 나쁜 거야.”
“팔은 안으로 굽거든.”
“나도 굽혀 줘.”
무진과 혜진의 대화에 지수와 유정은 고개를 흔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대화의 맥락이 없어도, 통하는 것 보면 신기할 지경이었다. 숨은 뜻이나, 다른 내막이 있는 것도 아니거늘. 은어나 외계어처럼 들린다.
‘한국말을 해, 이것들아!’
게다가 대화의 시점이 변화무쌍한 데다가 기승전결이 없이 결과만 덩그러니 남았다. 밑도 끝도 없이 단락을 끊어 내고 연결하니 파고들 여지도 없다.
“우리 집에 와도 돼.”
“다음에.”
“다음 언제?”
“시간 되면.”
초지일관의 무관심한 표정과 달리 혜진은 다급했다. 요즘 들어 부쩍 조급함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유정과 결투한 이후로 심경이 편치 않았다.
지수와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는 와중, 유정이에게 따라잡힌 것이다. 처음에는 발밑을 보지 않은 나태함인 줄 알고 반성했었다.
무진과 특훈이라니, 상대적 박탈감이 휘몰아쳤다. 나, 지수, 유정의 우정은 변치 않을 줄 알았거늘.
대체 왜 지수, 유정의 집에만 가정방문을 해?
우리 집도 있잖아.
혜진은 벽에 막혀 있었다. 다음 경지로 나아가려고 애를 쓰지만, 진전이 되지 않아 답답했다.
“그거 욕심이야.”
“뒤처지고 싶지 않아.”
“혼자서도 잘했잖아.”
“이젠 한계야.”
성장의 관점에서 보면 혜진은 천재적이었다. 혼자서도 상당히 빠른 성취를 보였다. 지금도 본인 딴에는 벽에 막혀 있다지만, 나아가고 있었다. 근래에 유정의 성취가 워낙 빨라서 조바심을 느낀 것이다.
그 해답이 가정방문이었다. 유정의 급격한 성장이 정령가를 들락날락한 이후인 이상, 검신가도 방문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오는 김에 휴지와 세제는 필수였다.
혜진은 엠보싱을 선호했다.
“아버지도 한번 보고 싶대.”
“당장은 어려운데.”
“그러면 나도 너희 집에서 훈련해도 되는 거지?”
“그러든지.”
무진은 혜진과의 실랑이를 즐겼다. 누군가 찍고 있는 걸 안다는 듯이. 장사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프로답게 시선 처리는 완벽했다. 이제야 권왕가, 정령가, 검신가의 삼각 편대를 완성할 수 있었다.
‘개연성은 중요하지.’
가정방문에는 반드시 명분이 있어야 했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매지 않듯. 뜬금없는 가정방문은 의혹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정령가의 일이 끝나는 대로 검신가를 찾으면 된다. 쌍둥이라서 그런지, 조급해하는 기색이 보였다.
“저기, 나는?”
“지조를 지켰어야지.”
기회는 이때다 싶은 상원이 패키지로 꼽사리 끼려고 했다. 사태를 모면하기 위한 처세술이었다. 근래에 들어 유정의 차디찬 냉대에 시달리고 있었다.
한편으로 억울했다.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고, 무심코 바라봤을 뿐이다. 그게 그렇게까지 큰 죄인가? 장발장도 자신의 사정을 들으면 눈물을 펑펑 흘리며 공감했을 것이다.
그건 상원의 사정이고, 유정이 거들었다. 귀찮은 진드기를 이번 기회에 떼어 버리려고 했다.
“난 나보다 약한 남자는 관심 없어.”
현재로선 불가능했다. 상원은 유정과의 결투에서 연전연패였다. 그 전까지는 반쯤 장난식이었지만, 지금은 차이가 꽤 벌어졌다.
“나도 같이 훈련할 수 없을까?”
“얼마까지 알아보고 왔니?”
간절히 원하는 호구…… 아니 친구를 위해서 무진은 일타 PT 강사 모드로 전환했다. 한 달 3만 원을 고려했다면 최소 300만 원까지 늘려 줄 자신이 있었다.
단, vat는 별도다.
“……돈 받으려고?”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으려나?”
“천만 원!”
“얘들아, 손님 나가신다.”
상원도 생도치곤 크게 불렀으나, 무진의 성엔 차지 않았다. 수조의 맛을 봤는데, 돈 천만 원이 눈에 들어올까?
더욱이 상원이 끼어들 판도 아니다. 동기로서 친하게 지낼 순 있어도, 진실을 알기에는 부족하다. 어설프게 진실을 알게 되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었다. 나중에 가족이 인질로 잡혔다고, 질질 짜면 가만두지 않는다.
“설마 아직도 아버지의 마법서가 필요한 건 아니지?”
“당연하지. 마제 스승님이 있는데.”
마제에게 배운 건 많지 않지만, 적절한 간판으로 쓰기에는 효과적이었다. 무극 길드를 제집처럼 방문할 때도 수월하고.
큭!
상원은 심마가 오는 기분이었다. 귀여운 얼굴로 동정심을 유발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어떻게 안 될까? 내 사정 알잖아.”
“몰라.”
친구 관계에선 깨끗한 돈 관계가 우선이다. 사람이 먼저라고? 따지고 보면 돈이 먼저다. 돈 나고 사람 나지, 사람 나고 돈 나지 않는다. 친구가 우리 사이를 들먹이면, 그 순간 손절해라. 그것이 친구는 잃어도, 돈은 잃지 않는 방법이다.
“이건 명백한 친구 차별이라고!”
“꺼져.”
상원의 투정과는 별개로 개연성을 만드는 작업은 무진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걸 증명하듯, 벌써 인터넷에 사진이 올라왔다.
-삼각관계도 아니고 사각, 문어발이네!
-이젠 하다 하다 검신가까지 건드리는 거야?
-검화는 쌍둥이라서 1+1이잖아!
-저질 새끼, 사람 가지고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냥 대화만 하는 거잖아!
-이러면 마제의 딸도 위험하다고!
-과연 스케일이 다르네. 이젠 그냥 면전에서 바람을 피우는구나!
바람과 불륜, 구설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최고의 먹잇감이었다. 사진 몇 장이 불러오는 파급력이 상당했다.
‘됐군.’
무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젠 어디든 출입할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