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259화 (260/374)

259. 그 남자들의 사정(3)

‘이런 게 가능한 일이었어?’

심상의 영역, 심권의 경지에 이른다고 해도 어림도 없다. 할아버지조차도 무진의 심상 구현을 파악하지 못했다. 추측건대 심권의 극한에는 이르러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젠 아예 못 할 것 같진 않단 말이야.’

그 점이 중요했다.

미래에선 있는지조차 몰랐던 새로운 경지. 감이라도 잡았으면 놀라지도 않았다. 할아버지의 경지에만 이르러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할아버지조차 과거의 경지를 넘어섰다.

‘대적자가 그만큼 강하단 뜻이겠지!’

빛과 어둠이라고 하기에는 무진이도 그레이색이긴 한데, 흑막의 강함을 되새기게 했다.

아니면 지나친 과유불급이지.

‘부족한 것보단 나으려나?’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서도, 무인의 욕망을 따르고 있었다. 암중 세력을 무너뜨리고 세상을 구하겠다는 영웅심보다는 순수하게 무인으로서 강해지고 싶었다.

씨익!

무진은 무인혼을 불태우는 지수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심상 구현으로 욕망을 자극한 효과가 있었다. 지수는 현재 회귀에 대한 필연성이 희석되었다. 굳이 돌아오지 않더라도 괜찮았을 거라는, 당위성의 부족이었다.

‘그건 좋지 않지.’

지수는 오해하고 있었다. 미래의 자신을 안다고 자신하기엔, 일부분만 확인했을 뿐이다. 단면만으로 단정은 현명하지 않았다. 더욱이 한 가지는 단언할 수 있었다. 지수가 돌아왔기에 자신은 미래보다 훨씬 강해졌다.

지수도 동기부여가 자연스럽지 않음을 깨달았다.

“의도했구나.”

“네가 있어서 지금의 내가 있는 거야. 자부심을 가져도 좋아.”

“……그딴 말을 한다고 바뀌는 건 없어!”

“얼굴 붉히진 말고.”

무진과 지수의 다툼에 유정은 연신 콧방귀를 뀌었다. 솔로는 서러워서 살 수가 없다.

“눈꼴시게 뭔 짓이야?”

“상원이는?”

“그런 줏대 없는 새끼가 내 눈에 찰 리 없잖아.”

“처음 만나서 어쩔 수 없었을 거야.”

“너는 안 그렇잖아.”

“난 특별하니까.”

“와, 사실인데도 재수 없어!”

애정 따윈 개나 줘 버린 찐 우정이었다. 자리에 없다고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었다. 모임에서 함부로 화장실을 가면 안 되는 이유다. 갑자기 수명이 느는 수가 있었다.

“지수는 따라오고, 고티아는 유정이를 부탁해.”

“염려 마.”

무진은 지수를 데리고 훈련장으로 향했고, 고티아는 유정이와 실내 정원으로 들어갔다.

우웅!

정령을 소환했다. 유정의 정령 풍야는 처음 훈련할 때보다 등급이 올라갔다. 이젠 완전한 최상급의 정령으로 진화했다. 최상급에도 레벨에 따른 차이가 있기는 하나, 나이를 고려하면 대단한 성과였다.

이뿐인가, 정령을 하나 더 소환할 수 있었다. 불의 정령, 화야였다. 불과 바람의 연계를 통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파괴력을 갖추었다.

지금은 전투 훈련을 위해서 소환하진 않았다. 정령과의 교감 능력을 극대화해 정령합일을 통한 정령투법의 완성도를 가다듬는 데 중점을 두었다.

“세계수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고티아를 따라 실내 정원에 처음 들어온 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세계수라고 생각도 못 했었다.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정령목도 아니고 세계수가 실내 정원에서 크고 있을 거라고는.

세계수인지도 모르다가 풍야와 화야가 증명해 주었다. 그저 옆에 있기만 했는데도 정령력과 친화력이 늘었다. 정령목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실제로 정령목은 세계수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에 불과했다.

‘가문에서 알면 어떻게 될까?’

정령가의 비밀을 안다면 절대 포기하지 못할 악마의 유혹이었다. 이걸 무진이 아무렇지 않게 보여 줬을 땐 이해하기 힘들었다. 친구라고 하지만, 세계수의 가치는 가볍지 않았다.

하나, 이제는 알고 있었다.

-말해 봐.

무진이 미소를 지으며 속삭였었다. 그 담담함이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섬뜩함을 주었다. 자신감! 이런 종류와도 이질적이다. 말해 봤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겪어 볼수록 이해가 되었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욕심을 내지 않겠지만, 가문의 어른들은 또 모르지.’

최상급 정령목만 해도 돈이 있어도 사기 힘들다. 하물며 세계수였다. 단순히 가치의 욕심이 아니라, 정령가에 세계수가 있다는 상징성을 무시하기 힘들다. 이는 우리나라만이 아닌 세계의 정령사들에겐 감당하기 벅찬 욕망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욕심 안 부리길 다행이지.’

굳이 욕심을 부리지 않더라도, 세계수 옆에서 훈련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연이었다. 그걸 증명하듯, 유정의 실력은 급격하게 올라갔다.

무인, 마법사가 보기에 정령사는 반칙 같은 존재일 수도 있었다. 혹독한 수련과 깨달음이 필요한 무인이나 마법사와 달리, 정령사는 정령력과 친화력에 의해 등급이 갈린다.

지지부진하다가도 어느 순간 친화력이 높아져 최상급의 정령사가 되기도 한다. 대기만성과는 다른, 벼락부자라고 볼 수도 있다.

‘고티아도 만만치 않고.’

무진은 집안일을 돕기 위해 데리고 온 식모라고 했지만, 그럴 리가 있나. 숨겨진 능력이 있다고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뛰어난 정령술사일 줄은. 정령력과 친화력은 따라가기도 벅차다. 자신이 일보를 걷는다면 고티아는 십보를 뛴다.

“언니 같은 사람이 정령사 사이에서 소문이 나지 않았다니 신기할 지경이야. 그러고 보면 이 자식은 기본이 안 돼 있어. 언니를 식모로 쓰다니, 낭비야, 낭비! 본가였으면 당장 스카우트했을 거야.”

“그만하고, 세계수와 교감하는 데나 집중해.”

“하긴, 내 코가 석 잔데 누굴 걱정한 건지 원.”

유정은 무진과 지수는 제외해도 혜진이와 라이벌 의식이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격차가 벌어지면서 포기했지만, 다시 불이 붙었다.

고티아와 유정이 친화력을 높일 때, 무진은 지수와 훈련장에서 권공을 겨루었다. 하나, 겉으론 움직이지 않았다. 정중동의 묘리를 되새기듯 서로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흐어억!

한참의 고요함이 꺼지며 지수가 털썩 주저앉았다. 정지된 화면과 달리 육신은 땀으로 번들거렸다. 심력의 소모가 어찌나 컸는지, 호흡도 굉장히 거칠었다.

“이게 너의 심권이야?”

“기본이지. 너도 할 수 있어.”

“이걸 내가 어떻게 해?”

“해야지.”

무진은 가능과 불가능을 나누지 않았다. 지수의 다음 경지였다. 반드시 해야 했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것인가? 무인은 절대 강함을 놓지 못한다. 어차피 해야 한다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했다.

긍정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지 않던가.

“발만 디디면 공간을 좌지우지할 수 있지.”

“디딜 곳이 너무 높잖아!”

오늘내일 노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된다는 식인데, 까마득히 높은 경지였다. 이럴 거면 성좌의 사도가 되는 쪽이 훨씬 수월하겠다.

“이번에는 성좌에게 선택당하지 말고, 네가 선택해.”

“너 설마 성좌의 선택을 위해서?”

“솔직히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가 내어 주는 힘 따윈 믿을 수가 없어. 세상에 온전한 선의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겠지?”

“내 힘을 기르라는 거구나.”

각성과 성좌에 의지하다가 시스템을 회수당한다면 어떻게 될까? 속절없이 뺏길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어선 안 된다.

시스템을 고유의 힘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 첫 단계가 바로 권공에선 심권, 즉 심상의 영역이다. 사부님도 느끼고 있기에 심권을 다른 어느 때보다 깊이 파고들고 있었다. 아마 초인의 범주에 들수록 강한 위화감을 느낄 것이다.

하나, 안다고 해서 바꾸기는 어렵다. 행하는 자는 시스템의 영역에서 벗어날 테지만, 안주한다면 시스템에 의해 사육되는 가축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옳고 그름이 정해지진 않는다. 올바른 판단으로 결과까지 좋으면 금상첨화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정의가 승리하는 공식은 영화나 만화에서나 있었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잖아, 안 그래?”

“왜 자꾸 어려운 길로만 가는 거야?”

“인생에서 쉬운 길이 정답이 되는 예는 많지 않아.”

“날로 먹지 말라고 비꼬는 거야?”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어. 반드시 인과가 있지. 그 점을 명심해.”

무진은 지수와 기력 대결을 이어 갔다.

다음 단계는 알려 준다고 답이 나오는 수학 공식은 아니지만, 궁구하고 또 궁구한다면 길이 보일 것이다.

“언제까지 조용할까?”

“슬슬 반응이 올 거야.”

독마를 통해 얻어 낸 정보를 토대로 밑밥을 깔았다. 당장 성과를 바라진 않았다. 최대한 서로의 연관성을 배제했다. 또한, 독마의 생존은 모르는 편이 효과적이었다. 암중 세력이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믿게 해야 한다. 그만큼 독마가 제공한 정보는 유용했다.

“독마는 어쩌려고?”

“빼먹을 대로 빼먹으면 제거해야지.”

“악당이 따로 없네.”

“악당한테는 그래도 돼.”

악당의 인권, 그딴 걸 일일이 챙기면 제 일을 못 한다. 독마가 한 행위를 고려하면 곱게 죽여 주는 것만 해도 훌륭한 선의였다. 더욱이 자기가 뿌린 죄악을 구제할 기회를 내어 주었다.

“훌륭한 재활용이지.”

“분리수거 해도 한꺼번에 처리하잖아!”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문제 중에 하나긴 했다. 하나하나 분리해도, 처리할 땐 한꺼번에 넣고 갈아 버린다.

***

재계에 지각 변동이 일었다. 사업 분야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변화에 대한 적응이 중요해졌다. 현실에 안주하다간 시류에서 도태된다.

던전 사업.

첨단 기술 집약 산업의 시대에서 부산물을 가공해서 파는 던전 가공 사업이 대세로 떠올랐다. 과거에 얽매여 있던 그룹은 각성의 시대에서 점점 밀리는 형국이었다.

성운 그룹이 재계 서열을 바꾸는 가운데, 천화 그룹은 도태되고 있었다. 뒤늦게 사업 모델을 바꾸었지만, 선점한 성운 그룹을 따라가기도 벅찼다.

워낙 현금 자산이 많아서 버티고 있을 뿐, 천화 그룹도 이대로는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특히 성운 그룹의 던전 가공 산업 중 포션과 정수의 유통은 천화 그룹과 겹치고 있었다. 어떻게든 기술과 수급처를 얻기 위해 공동 개발을 제안했지만, 진 회장은 선을 그었다.

위기였다.

때마침 천화 그룹은 한백진 회장이 죽은 이후,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첫째 아들 한창산이 그룹의 주요 사업을 이어받고, 회장이 되었다.

세대교체 후 실적 악화는 그룹의 존폐를 위태롭게 하고 있었다. 이 위기를 타개할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

둘째 한창호.

셋째 한창준.

한창산의 호출을 받고 모처럼 형제들이 회장실에 모였다. 서로 유산을 얻으려고 싸우기는 했어도, 기업이 위태롭기에 당분간은 협조했다.

“진 회장과는 어떻게 됐어?”

“노인네가 욕심이 많더군.”

다른 건 둘째 치고, 치료 회복 포션은 탐이 났다. 성운 그룹에서도 생산이 아니라 유통만 맞고 있었다. 그런데도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이번 기회에 생산을 같이 연구해 보자고 건의했더니, 씨알도 안 먹혔다.

한창산은 셋째에게 물었다.

“그년은?”

“알면서 왜 물어.”

“귀찮게 됐군.”

“그러게 진작에 죽여 버렸으면 좋았잖아.”

“실패한 건 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유산상속에 문제가 생겼다. 하필이면 그년한테 그룹의 지분 일부가 넘어갔다. 마지막까지 속을 썩인 아버지였다. 더욱이 블랙마켓이 그년의 손에 들어갔다. 이대로라면 계속해서 발목을 잡을 수 있었다.

“손을 쓸까?”

“이번엔 전과는 달라.”

“그래 봤자, 블랙마켓이지.”

“또 실패하면 곤란해질 거다.”

“어차피 그년은 모르잖아.”

“천한 년이지만, 멍청하진 않다.”

쉐도우 길드가 블랙마켓의 다른 길드를 무너뜨리고 흡수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룹의 힘으로 억누르기에는 거물이 되었다. 전처럼 살수를 썼다가 실패하면 위험했다.

“그래서 손 놓고 있자고?”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젠 그럴 수도 없군.”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얼마 전부터 적지 않은 지분이 한 사람에게 팔렸어. 아무래도 그년 같더군.”

“허어, 이년이 그동안 비수를 감추고 있었구나.”

“어미의 복수를 하겠다는 거지.”

그들도 애초에 살수를 쓸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하나, 원죄가 있었다. 아버지의 외도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불운의 씨앗이었다. 어머니께선 더는 못 참았고, 결국 선을 넘었다. 만약 전말을 알게 되었다면, 서로 넘을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거늘.”

“어차피 그년의 사업이 필요했으면서 하고 싶지 않기는. 지분은 사실 핑계잖아.”

“그렇긴 하지.”

“우리 형이지만, 참 재수 없다니까.”

단순히 복수만을 위해서라고 하기엔 형제들은 욕심이 많았다. 아버지가 사생아에게 남겨 준 지분이라고 해 봐야, 전체로 따지면 조족지혈이었다. 그마저도 내어 주고 싶지 않아서 살수를 썼었다. 운이 좋아 살았으면 은인자중해야 하는데, 겁도 없이 발톱을 드러냈다.

‘이번엔 죽여 주마.’

일전의 실패로 입지가 난처했다. 다행이라면, 확실한 도움을 주겠다는 약조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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