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257화 (258/374)

257. 그 남자들의 사정(1)

신입생 선발이 엊그제 같았거늘, 어느덧 학기 중간을 지나고 있었다. 방학이 다가오는 것만 봐도, 1년 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크고 작은 사건과 연이어 터지는 평지풍파로 시끄러웠던 작년을 상기하면 상전벽해였다.

-쥐 죽은 듯 조용해서 내가 다 겁이 난다.

-자고로 폭탄이 터지기 직전은 조용한 법이야.

-작년이 유독 사건 사고가 많은 이상한 해였어, 그 전까지는 올해와 다르지 않았다고.

-작년은 핵폭탄이 끊임없이 터져서 하루하루가 참 재밌었는데.

-보는 사람이나 재밌지, 네가 진짜 당해 봐라! 자기 일 아니라고 막 말하지 마. 언젠가 화는 본인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어.

-맞을 짓 해서 원폭 맞고 징징대기는!

-그래도 이상하지 않냐, 작년까지만 해도 하루가 멀다고 사고를 쳤던 놈이 유독 조용하잖아.

-한 살 더 먹었으니까.

-열일곱 살이나, 열여덟 살이나! 웃기는 소리 하고 있네.

-놔둬, 그 나이 때 재롱떨고, 나이 들어서 이불킥 하는 건 국룰이야.

-하긴 성인 돼서 그러는 것보단 낫겠지.

신학기부터 아카데미를 주목했던 여론이었다. 작년 대형 사고 대부분이 아카데미와 연관되어 기대가 컸었다.

이슈가 될 만한 소스가 나오길 바라고 있었다. 특히 무진의 주변은 파파라치들이 꽤 많았다. 사람 쉽게 안 바뀐다고, 분명 사고를 칠 위인이었다. 편견이건 말건, 얌전히 다니는 게 이상했다. 도둑질, 강도질, 폭행질, 협박질도 해 본 인간이 더 잘하는 법이다.

그렇게 단정을 지었거늘.

뜬금없이 중국과 일본이 언론사에겐 호황이었다.

날마다 대형 사건과 스캔들이 터져서 아주 흥미진진했다. 특히 중국 내부의 권력 다툼은 구대문파와 팔대세가의 내분으로 번져 바람 잘 날 없었다.

내분이 심해질수록 일본과 중국은 암중 세력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번졌다. 그로 인해 더욱 시끄러웠다. 자신들과는 관계가 없다고 부정하면서 서로를 헐뜯었다.

교류전 이후로 동아시아의 중국과 일본이 소요에 휩싸이자 덩달아 동남아시아까지 들끓었다. 가만있다 불똥을 맞은 동남아시아로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그런데 정작 문제의 핵심이자, 소란의 중심이었던 한국이 되레 조용했다. 의도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자국 내 혼란을 외국으로 돌려서 선방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자고로 일본과 중국의 고통은 한국의 행복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는 일본, 중국, 한국이 다르지 않았다. 공식적으론 협력을 주장해도, 뒤로는 호박씨가 다반사였다.

-우리나라 망한다고 좋아하는 쪽바리들과 짱깨들 좀 봐라! 꼬시다, 쌍놈들!

-수공예를 좋아해서 그런가, 왜 팝콘을 직접 튀기냐고?

-누가 그러던데. 공주를 암살하려던 게 사실은 일본 황실이었다고.

-중국은 장 주석이 골골거리다가 다시 살아나서 역공하는 바람에 왕 총리 파벌이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는데.

-누가 이기든지 존나 파이팅이다!

-동남아시아도 지금 골치 아픈 것 같더라도. 자기들 편들라고 압박이 들어온다고 하더라.

-사무라이 쿨재팬과 일대일로 차이나의 혈투인가?

-우리는 그냥 즐기면 되는 거야.

-이게 모두 암중 세력의 계략인 거 몰라! 우리, 일본, 중국이 놀아나는 거라고.

교류전 이후로 중국과 일본이 혼란을 겪으며 여론이 좋지 않은 가운데, 우리나라만 조용했다.

두 가지로 시선이 나뉘었다. 태풍이 불기 전의 전야이거나, 암중 세력을 전부 색출했거나.

우리나라도 암중 세력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정부, 길드, 가문 내에 깊숙이 파고들어 왔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현실적으로 부정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대책 없는 지나친 부정은 의혹을 사기 마련이다.

가문과 길드는 각각 연합 회의를 통해 단속하고, 만약의 사태에 신속한 의사 결정을 위해 대(大)가주와 대(大)길드장을 뽑기로 약속했다.

칠대가문과 대형 길드가 솔선수범하여 쇄신을 약속하고, 언론을 통해 흘렸다.

여론은 긍정적으로 보진 않았다. 형식적인 제안이 아니냐고 의심했다.

칠대가문과 대형 길드로선 예상과 다른 여론의 싸늘한 반응에 대가주와 대길드장에 권한을 줄 수밖에 없었다.

퍼퍼퍼펑, 커억!

내지른 주먹이 닿자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나며 상대를 결투장 끝으로 보내 버린다. 내력을 회전시켜 발생한 경이 담긴 권폭이었다. 엑스자로 막았음에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진태수 승.

결투장의 승자가 갈렸다.

주변에 생도들이 모여 결투를 지켜보았다. 이전까지는 같은 4학년이었지만, 결투장에 쓰러진 상대는 5학년의 주축인 양준성이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을 보여 주리란 기대가 있었다.

“양준성은 투쟁 길드에서 키우는 에이스잖아.”

“진짜 이번 대결에선 고전할 줄 알았는데.”

“4학년을 제패할 만하긴 해.”

“이젠 6학년이 나서야 하는 거 아니냐!”

“도장 깨기의 시작이구나.”

“양준성이 5학년의 주축이긴 해도 서열 10위에 불과해. 5위권만 나서도 쉽지 않을걸.”

“맨날 쉽지 않대, 이 새끼는. 지는 나서지도 못하면서.”

“이 씨불 놈이, 오맹철! 결투장으로 올라와.”

“진태수, 여기 주성태가 도전하겠대!”

대화를 주도했던 오맹철과 주성태는 뒤도 안 보고 결투장에서 사라졌다. 누구도 비웃거나 신경 쓰진 않았다. 원래 그런 종자들인 줄 알고 있었다. 결투장의 아나운서와 해설자로 유명한 꼴통들이었다. 끝까지 이빨만 까고, 본인들이 나서진 않는다. 단지, 보는 눈은 좋아서 해설을 잘하긴 한다.

후우.

결투를 끝낸 태수는 심호흡한 후, 선배를 일으켜 세웠다.

양준성도 분하긴 해도, 패배는 인정했다.

돌이켜 보면 일방적인 양상이었다. 지금처럼 아무것도 해 보지 못하고 진 적이 있었나 싶었다. 4학년에서도 적수가 없다더니, 빈말이 아니었다.

“네가 이겼다.”

“힘든 싸움이었습니다.”

“흥, 웃기는 놈. 나중에 두고 보자. 기필코 갚아 주겠어!”

“그때까지 지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결투장에서 내려와 성운맹 부실로 향했다. 성운맹의 맹주 위를 지수에게 물려준 이후로, 하루도 편하지 않았다. 4학년 이상의 고학년들이 이때다 싶어서 결투 신청을 해 왔다.

‘내가 동네북도 아니고, 끝이 없네!’

누군 한가롭게 아카데미의 낭만을 즐기고, 누군 결투장을 내 집처럼 쓰고 있었다. 끝났다 싶으면 부실로 결투장이 날아와 쌓인다.

팬레터였으면 얼마나 좋아!

고학년으로선 성운맹의 저학년을 건드리기가 껄끄러우니 4학년인 태수를 노리는 것이다. 더욱이 전임 맹주란 타이틀은 상징성 있는 먹잇감이었다.

‘왜 나만 노려!’

예슬도 있고, 구용이도 있고, 다 있잖아!

개인전에서 우승하진 못했어도 4강 신화를 달성했다. 이만하면 감히 덤빌 엄두도 나지 않아야 하는데, 하필이면 저학년과 고학년 사이에 끼어 있었다. 5, 6학년에겐 4학년은 이제 막 성좌 맛을 본 애송이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결투 끝나면 또 특훈 받아야 하잖아!’

결투를 거절할 수도 없는 처지다. 초대 성운맹주로서 압도적인 실력을 선보이며, 항상 품위와 여유를 보여야 했다. 호수 위의 백조가 우아하게 물살을 가르지만, 물갈퀴는 오두방정을 떠는 이치였다.

4학년이 된 태수의 일상은 결투와 훈련으로 점철되었다.

아카데미의 낭만, 아직도 그딴 게 남아 있었나? 고학년과의 결투에서 살아남아 전적을 쌓으려면 무진의 훈련을 피할 수 없다. 결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훈련해야 하는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그러면서 그놈이 그러더라.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이게 말이야, 방구야! 고시생도 최소한 4시간은 자잖아. 어디서 성능 좋은 치료 회복 포션을 가지고 와서 하루 1시간도 못 잤다.

이러면 포기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할아버지의 기대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었다. 동네방네 재계에 손자 자랑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셨다. 할아버지의 무한한 기대와 아버지의 승승장구를 위해서라도 포기는 불가능했다.

하아!

부실의 의자에 앉을 때가 유일한 쉼터였다. 잘나가는 생도이며 재계 서열 안에 드는 재벌 3세임에도. 쉴 곳은 고작 부실뿐이라, 심한 현타가 온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오는 생도들이 있었다. 화들짝 놀라거나 품위를 지켜야 하나,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이다.

아고고고, 죽겠다!

태수의 동기이자, 친위대.

호영, 재진, 희수, 산림, 영기는 부실에 들어오자마자 다들 바닥에 누웠다.

“주군을 잘못 만났어!”

“물귀신이 따로 없구나!”

“네가 이러고도 친구야!”

태수는 도전장 전부를 상대하진 않았다. 어중간한 도전장은 친위대에 맡겼다. 주군이 고생하는데, 친위대란 것들이 놀고 있으면 안 되지. 무진의 사랑을 듬뿍, 친위대에게 내리사랑 했다.

“명성은 올렸잖아.”

“차라리 뽀록나라!”

실체가 밝혀지면 몸은 편할지 모르겠다. 마음이 불편한 것보다 몸이 불편한 게 낫다고 하는 새끼들이 있으면 입을 찢어 버릴 것이다. 몸이 불편하니, 신경도 예민해진다. 육체가 정신을 담는 그릇인 이유였다.

“무진이는?”

“뭘 물어, 꽃밭이지.”

“우리만 왜 고백이 아니라 결투냐고?”

“인생은 고통이라고 누가 그러던데!”

“너 때문이잖아!”

누군가는 그만두면 되지 않느냐고 할 거다. 하지만 본인이 아니라서, 쉽게 말하는 거다. 주변의 기대, 명성, 관종은 세트였다. 지대한 관심과 주목을 받게 되면 벗어나지를 못한다. 연예인이 지나친 관심보다 무관심에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가 있었다.

“그래도 재계 서열 올랐잖아.”

“성운 길드도 잘나가고.”

빌어먹을, 고진감래였다.

태수는 왠지 모르게 찜찜했다. 누군가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조종하는 느낌이다. 이런 기분이 우연이면 다행인데, 많이 경험해 봤다. 반복 훈련의 효과가 지나치게 극대화되었다.

‘이 자식일까?’

확신은 서지 않는다. 그래서 더 무섭다. 괴물 같은 전투력은 악랄한 심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

성운맹은 세대교체 이후에도 여전히 굳건했다.

2대 맹주 권후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그녀를 보필하는 핵심 멤버는 그대로였고, 맹원은 점점 늘었다. 성운맹과 광고 계약을 맺고 싶어 하는 기업이 넘쳐 났다.

평지풍파의 중심이었던 아카데미가 잠잠한 연유가 바로 성운맹이 건재하기 때문이었다. 생폭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책임을 강하게 묻자 생도들 스스로 조심하게 되었다.

성운맹에 동조하는 대외적인 여론의 옹호도 컸다. 반기를 들수록 생폭을 저지르는 생도로 낙인이 찍혔다. 주변의 반감을 감수하고 성운맹과 마찰을 빚기는 부담이 되었다.

그러나 빛과 어둠은 동전의 양면처럼 따라다니기 마련이다. 성운맹의 위세가 커질수록, 반성운맹의 체제도 강해졌다.

아카데미에 들어온 신입생은 생폭에서 자유로워졌지만, 반대로 답답해하는 생도도 늘었다. 자신들을 억압하고, 맘대로 하지 못하게 할수록 반발 심리가 생겼다.

성인이 되지 못한 생도에게 이성적인 판단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성운맹의 강력한 제재력을 개개인으로 대응하긴 불가능했다. 생도도 사람인 만큼, 강자 앞에서는 분노 조절을 잘할 수밖에 없다. 혼자서는 어렵다는 심리적 빈틈을 반성운맹이 파고들었다.

중학생 때만 해도 거침없었던 생도들은 성운맹으로 인해 눈 착하게 뜨고 다녔었다. 조금이라도 장난을 치거나, 우호를 맺으려고 하면 생폭을 명분 삼아 가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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