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5. 집들이(3)
이사는 손 없는 날을 택했다.
공간이동과 아공간이 있기에 이삿짐센터는 따로 부르지 않았다. 아버지를 위한 안방과 서재는 원래 형태를 유지했다.
집들이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불렀다. 아버지의 인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으나, 안타깝게도 진 회장만 찾았다.
평범한 집들이가 되진 않았다.
집을 찾은 사람들의 면면이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성운 그룹의 총수 진 회장 정도면 어딜 가도 거물급 대접을 받겠지만, 무진의 집에서는 평범한 축에 속했다.
권왕, 마제, 교장.
이 셋이 한자리에 모이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교류전은 특수한 상황이었을 뿐이고. 어지간한 인맥으론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집들이였다.
단독주택을 구경하던 진 회장이 툴툴! 거렸다.
성운 그룹 내에 건설도 있고, 때에 따라서 단독주택을 시공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룹의 이사란 인간이 문의조차 하지 않았다. 최소한 상의라도 해야 하지 않았나. 일반 가정집이면 몰라, 이만한 규모라면 족히 100억은 우스웠다.
일전에 아들놈이 약을 팔아 천억을 뺏어 갔으면 10분지 1이라도 뱉어 내야지. 그렇게 안 봤는데, 강 이사가 양심이 없었다.
진 회장의 오고 가는 말투에 가시가 있었다.
“솜씨 좋은 시공사를 선택했나 보군. 우리 집보다 나아.”
“그럴 리가요, 회장님 집은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넓은 저택이 아닙니까?”
“집이 크다고 다가 아냐. 이 세밀하게 이어지는 매끄러운 곡선을 보게. 대체 어떤 공법을 사용한 거지?”
“공법이랄 게 있을까요? 제가 집은 잘 몰라서.”
진 회장은 일언반구도 없었던 강 이사가 괘씸했지만, 주택의 건축술에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만한 수준의 건축사라면 그룹으로 데리고 와야 했다.
“누군지 알 수 있나?”
“제 아들입니다.”
“그 녀석이 건축에도 일가견이 있었어?”
“전체적인 외형을 그려 놓고, 세밀한 부분은 시공사에 의뢰했습니다.”
“아주 제법이야.”
집주인이 전체적인 윤곽과 방향은 얘기할 수 있지만, 실제 집을 지으려면 기술 공학적인 설계가 필요했다. 건축사와 건축공학 기술자로 나뉘는 이유였다.
그렇더라도 이 영악한 녀석이 건축술에도 안목이 있을 줄은 몰랐다. 강 이사가 없는 말을 지어낼 위인도 아니고. 다방면으로 재주가 좋다 못해 차고 넘쳤다.
‘아들이 다 했다고 하면 놀라시겠군.’
산하는 아들이 본격적으로 건축에 뛰어드는 순간 대량의 실업자가 생기리라 확신했다. 심상 구현이라는 말도 안 되는 능력으로 하루 만에 지어 버리는데, 노동의 가치가 의미가 있을까.
차후 로봇세처럼 권능세를 따로 내야 할지도.
‘생각해 보니 구미가 당기기는 하네.’
화성이나 달에 전진기지를 지을 때 무진이 따라가면 시간과 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다만, 각성의 시대가 되면서 우주개발에 관한 관심이 줄어들기는 했다.
달이나 화성에 기지를 지어서 살 바에는 다른 차원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굳이 공기도 희박하고, 태양광도 심한 달과 화성을 개발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손도 넓군.”
진 회장이 집들이에 온 연유였다.
새삼스럽지만, 무진의 인맥이 상당하다. 권왕만 해도 차고 넘치거늘, 마제와 교장도 무진의 뒤를 봐 주었다.
한국 내 가장 영향력이 강한 실세들이다. 그런 위인들을 뒷배로 둔 이상, 무진의 장래는 탄탄대로였다.
세간에는 운이 좋다고 비아냥거리나, 일개 생도가 천억을 우습게 여기는 걸 보면 수완이 상당했다.
또각, 또각.
높은 하이힐에 각선미를 자랑하는 늘씬한 미녀가 다가왔다. 사내라면 눈이 가는 세련된 외형이었다.
진 회장은 그녀를 알아봤다.
치료 회복 포션과 마나 정수 사업의 동맹 관계를 맺은 파트너였다.
“요새 시장이 시끄럽던데, 돌아가는 사정을 알려 줄 수 있겠나?”
“어머, 저는 그런 위험한 일은 잘 몰라요. 조용히 사업이나 하는 거죠.”
“그러시겠지, 아주 조용하구먼.”
“빨리 안정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너무 무섭거든요.”
누가 누굴 무섭다고 하는 건지 원.
진 회장도 블랙마켓의 돌아가는 정황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동맹인 쉐도우 길드에서 내놓은 포션과 정수는 사업성이 상당히 우수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중국과 일본에서 벌써부터 아우성이다.
‘이 녀석은 운도 타고났군.’
중국의 총리가 밀어주고, 일본의 공주가 홍보에 적극적이었다.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아오르고 있는데도, 당장은 물량이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다.
이러니 쉐도우 길드의 향방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대외적으로 성운 그룹이 유통과 판매를 맡고는 있지만, 결국은 쉐도우 길드의 생산력이 중요했다.
‘4개의 길드가 연합하고도 멀쩡하다면 답은 나왔군.’
쉐도우 길드장이 버젓이 자신과 대면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진 회장은 그녀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대등한 관계로 대접하지 않으면 곤란한 인사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녀를 조사할 필요는 있었다.
‘그놈은 또 어떻게 안 건지, 원.’
나이가 들수록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이전에 그룹의 미래를 걱정해야 했었다. 생로병사의 순리를 부정할 순 없으나, 아직은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런 고민을 무진이 준 약으로 인해 덜 수 있었다. 조급해진 마음을 내려놓고, 젊은 시절의 자신감을 찾으니 세상이 달리 보였다.
‘확실히 보통이 아니야.’
권왕가, 무극 길드, 쉐도우 길드에 성운 그룹까지. 무진과 연관된 인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더욱이 이번 교류전에서 우승하고, MVP를 손에 넣었다.
과연 운만으로 가능한 일일까?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음이 분명했다.
‘그걸 태수도 느꼈을 테지.’
진 회장은 무진과 어울리는 손자의 감을 믿었다. 알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무진과 만난 후 손자도 운이 따르고 있었다. 성좌의 선택을 통해 더욱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그래, 그렇게만 자라다…… 응?’
잘못 봤나.
정원의 한편에서 무진과 대화하는 손자의 모양새가 어딘지 모르게 굽실거리는 느낌이 강하다.
진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후배와 허물없이 지낼 필요는 있었다. 기업을 이끌어 가려면 주인으로서 머슴을 인정해 줄 줄도 알아야 했다. 머슴은 자기를 인정해 준 사람을 목숨으로 따른다고 하지 않던가.
‘천하의 진 회장도 무진이 앞에선 어쩔 수 없네.’
제인은 진 회장의 오해를 풀어 주진 않았다. 무진이 먼저 말을 해 주지 않은 이상, 아직은 사업 파트너에 지나지 않는다.
‘권왕, 마제, 교장, 창황에 이어 진 회장까지. 대단하다, 정말.’
블랙마켓을 장악한 이상 무진은 우리나라의 음과 양으로 3분지 1이 넘는 시장을 확보한 것이다. 영향력만 따지면 절반은 넘을 테고. 무진이 구축한 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하는 제인이었다.
‘이탈하지 말아야겠다.’
일개 생도의 빌드업이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지금도 이런데 시간이 지나면 얼마나 대단해질지. 조금만 지나면 무진이 전부 다 먹어 치운다고 봐도 무방하다.
‘조만간 대놓고 깽판을 치겠지.’
제인은 진 회장과 사업 얘기를 하면서 은연중 남 실장을 거론했다. 그가 다른 의도가 있다고는 하지 않았지만, 성운 길드 내 분란의 씨앗으로 몰아갔다.
“내가 부하조차 관리 못 하는 무능력한 인간처럼 들리는군.”
“제가 감히 그러겠어요. 다만, 성운 그룹이 잘되어야 저도 득을 보죠.”
“사업에 지장을 주진 않을 테니 염려하지 말게.”
“아무렴요. 미녀의 속 좁은 노파심일 뿐이니, 제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
진 회장으로서도 남 실장의 행보가 요즘 들어서 의심스럽긴 했다. 강 이사와 경쟁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바랐는데, 조만간 결정을 내려야 할 듯싶었다.
‘쯧, 맘에 들진 않는군.’
진 회장으로선 제인 길드장에게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격이 되었다. 남의 길드를 신경 쓰기 전에 자기 그룹이나 잘 관리하라는 뜻으로 비쳤다.
두드드드!
진 회장의 상념은 남의 집들이에 와서 으르렁거리는 권왕과 마제의 신경전으로 인해서 깨졌다.
“심득을 봤으면 맞짱을 떠야지.”
“심득이 무슨 산삼이냐. 그리고 내가 심득을 봤는데, 너하고 맞짱을 왜 떠!”
“겁나냐?”
“이놈이 못 하는 말이 없구나!”
다툼으로 진화하진 않았지만, 권왕과 마제의 경지를 가늠하게 해 주었다. 일반적인 상리를 초월했기에 의지가 깃들자 주변에 풍파를 일으킨다.
마제는 골이 지끈거렸다.
심득을 얻게 해 주었으니, 그 보답으로 맞짱을 뜨잔다. 참으로 권왕다운 언행이었다. 한편으로 9계식 초월을 펼쳐 보고 싶기도 했다.
‘싸우고 싶으면 지하 훈련장으로 가세요. 누가 이길지 참 궁금하네요. 저는 권왕 사부님한테 걸겠습니다.’
권왕과 마제의 뇌리를 울리는 무진의 심어였다. 말리지는 못할망정, 누가 이길지 궁금하단다. 이건 자기 훈련장의 성능을 점검해 보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싸우고 싶으면 이 자리에서도 상관없다만. 9계식의 지진 브레이크면 적당하겠구나.”
“호오, 같이 죽자 이건가.”
“그거야 해 보면 알겠지.”
“끄응, 이래서 마법사하곤 상종하면 안 된다니까.”
“네놈도 마법사라며!”
언제는 마도사로 부르라더니, 코에 걸면 코걸이였다.
마제는 권왕과 무진의 계략에 놀아 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만약 계속 도발하면 새로 지은 집이 무사하지 못할 거라고 협박했다. 집을 인질로 잡은 것이다.
“나중에 무극 길드로 가마.”
“문 안 열어 줄 거다.”
“부수고 들어간다.”
“부수기만 해 봐, 너희 집에 메테오를 날릴 거다.”
……!!
저게 지금 명색이 대가문과 대형 길드의 수장이 할 소린지 심히 의구심이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어려진다고 하지만, 다들 혈색이 퍼렇게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