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246화 (247/374)

246. 무단 침입(4)

후아아아앙!

솨아아아아!

가공할 기파는 파문을 일으키며 밀림을 뒤흔들었다. 맹렬히 휘몰아친 권환의 소용돌이에 엘프들은 마른침을 삼켜야 했다. 자신들이 당할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보자마자 처맞아서 굉장히 열 받았는데, 이제는 깨달았다.

저 인간이 손 속에 사정을 많이 두었다는 걸.

유사 인종에 대한 유사 인류애를 발휘하지 않았다면 자신들은 다크엘프와 처지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딜.”

무진은 어둠의 운집을 파악하고 있었다. 권능을 발동하여 어둠이 완전한 형태를 띠기 전을 노렸다.

어둠은 마지막까지 몸부림을 치며 저항했지만, 무의미한 짓이었다.

-……할 말이…… 망할!

칼리아론에게 권능을 준 어둠의 군주였다. 딱히 궁금하지도 않고, 혹시라도 있을 만약의 사태는 배제했다. 죽인 후에도 다시 보는 꼼꼼함은 던전 공략의 필수 옵션이었다.

대신 시험을 해 봤다.

권능이 어디까지 통하는지.

“이거나 먹어.”

무진은 대체재를 관통하여 어둠을 조종하는 군주의 심령을 타격했다.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로써 꽤 오랜 시간 요양을 해야 할 것이다.

어둠의 군주로선 이름조차 밝히지 못하고 당했으니 억울할 수도 있으나, 그나마 가까이 있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만약 눈앞에 있었으면 발칸 꼴이 되었을 것이다.

“아깝네.”

발칸2를 얻을 기회를 무진은 미련 없이 포기했다. 마무리까지 완벽을 기한 후 돌아섰다.

헐!

제인과 쉐도우 전사단은 물론 엘프들까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앞에서 봤음에도 믿어지지 않는 비현실적인 참상이었다.

특히 엘프들은 몸서리를 치듯 기겁했다. 칼리아론이 복수의 칼을 갈고 나타났을 때까지만 해도 희생은 불가피할 줄 알았다.

웬걸, 엘프 마을에 무단 침입한 인간은 칼리아론을 단 두 수 만에 흔적도 없이 날려 버렸다.

‘인간이 맞나?’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어!’

‘우린 어떻게 산 거야?’

‘살았다고 할 수 있나?’

처맞고 난 후에도 엘프로서 자존심은 지켜야 한다고 다짐했었다. 인간에게 최소한 굽히지는 않기로 마음을 먹었거늘.

두 번 다시 그런 삿된 마음은 갖지 않기로 했다. 저 무지막지한 인간을 상대로 자존심을 부리다간 개죽음은 필연이었다. 대화라도 통한다면 모를까, 칼리아론은 죽어서도 답답할 것이다. 하물며 다짜고짜 주먹부터 날리는 인간을 설득할 수나 있을까?

“너무 나댔지, 레벨을 올릴 기회라도 줄 걸 그랬나.”

“그럴 리가.”

제인은 단호히 부정했다. 다크엘프는 약하지 않았다. 풍기는 기세가 ss급 마물 이상이다. 무진이 선제적으로 나서지 않았다면 굉장히 어려운 싸움이 되었을 것이다. 막타를 치게 해 준다면 고맙겠지만, 변수가 발생할 수 있었다. 그럴 바엔 지금처럼 깔끔하게 끝내는 편이 이로웠다.

‘그래도 너무 깔끔하잖아.’

문제가 발생할 여지 자체를 없애 버렸다. 대체 어떤 삶을 살아야 저토록 깔끔하고 완벽한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것도 결벽증인가?

“그래도 75%네.”

“그 정도면 됐지, 어차피 100%가 아니더라도 괜찮잖아. 여기서 더 할 것도 없고.”

무진은 스토리 던전을 완벽히 클리어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보상의 상향과 공략 방법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겸.

“싹 다 죽이는 건 아닌가 보네.”

“어쩌면 오해를 풀고, 화해하기를 바란 건 아닐까?”

“일리가 있어. 그러니까 그 말은 없던 얘기로 하자.”

“엘프들이 알 필욘 없겠지.”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위험에서 구해 줬음에도 엘프 대장로의 표정이 긴가민가하다. 제인 누나의 말대로 칼리아론과 애증의 관계일 수도 있었다.

애인이었으면 좀 곤란한데.

“고문할 걸 그랬네.”

“그런 식은 아니지!”

정 안 되면 세뇌도 하나의 훌륭한 방법이었다. 굳이 진짜로 회개할 필요도 없다. 세뇌와 고독을 써서 엘프에게 충성하도록 하면 되지 않나.

완벽한 엘프 퐁퐁남을 만들 수 있었다.

애석하게도 너무 빨리 죽여 버린 듯하다. 성급한 판단으로 인해 부족한 미션 클리어가 되고 말았다.

등급 대비 전력에 비해 스토리 던전이 어려운 연유였다. 미션의 절반만 수행해도 공략은 되지만, 퍼펙트 클리어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스토리 던전은 공략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절반의 성공이기는 해도, 공략은 빨랐다. 무진이 워낙 맥락 없이 순삭을 하는 바람에 3일은 마을에 있어야 했다.

저벅, 저벅!

무진이 엘프들에게 걸어갔다.

엘프들이 움찔하며 경계했다. 하나, 대적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떨 거 없는데.

무진으로선 머무는 동안 대장로 헤르아네의 동의를 얻으려는 손님으로서의 예의였다.

“마을에 머물게 됐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환영하는 바입니다.”

헤르아네의 말투가 굉장히 떨떠름했다.

그도 그럴 것이 허락을 구한다고 하기에는 이미 들어와서 난장을 깠다. 무력시위까지 했으면서 이딴 식으로 나오다니. 뒤에서 듣고 있던 제인과 쉐도우 전사단도 어이가 없었다.

‘허락이야, 협박이야?’

난민을 받다가 망한 유럽과 유사한 사례였다. 온건주의로 받아들였더니, 집주인이 테러당하고 쫓겨나는 꼴이었다. 자기 일 아니라고 착한 척하는 것들의 문제였다.

“집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게 무슨?”

무진은 아공간에 넣어 둔 2층형 대형 농막을 꺼냈다. 어딜 가든 집은 있어야 하는 법. 언제 어떻게 조난할지 알 수 없으며, 행여나 차원 이동이라도 당하면 곤란하기 마련이다.

편의성에서 요즘 농막은 편하고 좋았다.

제인도 무진의 철저한 생존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전투력만으로도 어디 가서 죽지 않을 녀석이 생활 편의 수단까지 완벽했다.

“나도 나지만, 넌 진짜 상식을 파괴하는 데 천부적이구나!”

“평소에 생존력을 키워야 만약의 사태에도 당황하지 않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거야.”

“그걸 누가 몰라! 아공간에 대형 농막이 들어갈 정도면 어지간한 수준이 아니잖아.”

“삶은 각자의 형편에 맞추는 거지.”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무진의 배려는 기만에 가까웠다. 덮어 놓고 받아들이기엔 지금까지 해 온 과정이 이율배반적이다. 그럼에도 거리끼지 않는 걸 보면 안면에 철판을 제대로 깔았다.

생존 캠핑 전문가인 무진은 아공간에 저장해 놓은 숙성된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꺼냈다. 어마어마한 고기의 양에 채식주의자인 엘프들의 동공이 휘둥그레졌다.

“던전 공략 후 고기 파티는 국룰이잖아.”

“술 마시고 싶어서 작정했네!”

고기로 가려 놓은 소주, 와인, 위스키 짝에 제인은 골이 지끈거렸다. 쉐도우 전사단이야, 무진의 나이를 모르니까 어리둥절할 뿐이지. 미성년자 주제에 다른 차원이라고 자기 멋대로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대형 식탁, 의자, 접시, 수저, 가위, 집게 등등 완벽한 세팅이 되었다.

화르르르!

삼매진화로 타오른 숯불이 잠잠해진다. 과일, 채소, 고기를 꽂은 꼬치를 불판 위에 올렸다.

츠으으으!

손끝으로 소금을 통통! 튕기듯이 뿌리자, 허공섭물에 의해서 고기에 골고루 퍼지며 떨어진다. 서브로 김치찌개, 감자탕, 삼계탕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미친!

그 자체로도 맛있지만, 세계수 아래에 있었다. 한없이 청량하고 맑은 피톤치드를 마시면서 고기와 김치찌개라니, 맛이 없을 수가 없는 조합이었다.

“세계수가 후원하는 요리야. 다들 잡숴 봐.”

어느 누가 세계수 앞에서 고기를 구워 먹어 봤겠는가. 오늘 아니면 먹을 수 없다는 무진의 설득에 다들 홀라당 넘어갔다.

“자 자, 멍하니 보지 말고 같이 드십시다. 제가 그렇게 염치가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남의 집 앞에서 자기 멋대로 고기를 굽고 있는 인간이 염치를 논하고 있었다.

주인 된 도리로 따끔한 질책을 해야 마땅하나, 은혜를 입었단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수단이 조금 많이 과격해서 그렇지, 그가 아니었다면 마을에 커다란 우환이 올 뻔했다.

무진은 채식주의 엘프를 위해 샐러드를 꺼내 놓았다. 저들을 위한 건 아니지만 발효 과학 발사믹, 흑임자를 비롯한 천연 소스로 맛을 냈다.

처음에는 마지못하더니, 신문물에 넋이 나갔다. 특히 과일 마요네즈 샐러드에 엘프들은 혀를 내둘렀다. MSG의 맛을 보여 주고 싶은 강한 충동을 일으켰다.

“……이런 맛이!”

“이건 세계수께서 인정할 맛이야!”

“색깔이 검은데, 왜 맛있어?”

께름칙했지만 성의를 봐서 맛을 본 고티아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제까지 먹은 생과일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이런 다양한 맛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혀를 내둘렀다. 다시는 생과일만으론 만족하고 살지 못할 것 같았다. 이 다양하고, 새콤한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가르쳐 줄까?”

“진짜요?”

“발사믹과 흑임자는 종자를 기르면 되거든. 여긴 토질이 좋아서 잘 자랄 것 같다.”

포도, 검정깨 종자를 내어 주고, 만드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고티아와 엘프들은 세계수를 모시듯 정성을 다해 외웠다. 이 깊은 풍미를 저들이 돌아가면 다시는 맛볼 수 없다는 사실에 절박해졌다.

무진은 소주, 위스키, 와인을 제조하는 법도 알려 주었다. 다른 차원에 우리 세상의 문명을 알려 주는 계기였다.

“이런 게 바로 완벽한 사과지.”

“물량 공세는 인간이나 엘프나 공통이구나!”

“영업의 기본 마인드 아니겠어.”

“아주 그냥 가지고 노는구나.”

제인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일방적으로 처맞은 엘프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파티에 끼어 즐기고 있었다.

무진의 우쭐한 태도가 거슬리긴 해도, 상대의 심리를 정확히 꿰뚫었다. 물량 공세를 펼치더라도, 엘프가 좋아할 만한 걸 정확히 자극했다.

감정의 골이 깊을 줄 알았는데, 지나치게 간단히 풀려서 허탈할 지경이다. 엘프의 마음이 갈대라고 하기엔 무진의 수법이 악랄했다.

후르륵, 꿀꺽꿀꺽!

에이, 모르겠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우리 민족의 정서대로, 제인도 난장판에 끼었다. 엘프 대장로도 마을의 큰 행사나, 귀한 손님에게나 대접하는 엘프주를 가지고 왔다.

“……엘프주에 맥주를!! 폭탄주는 아니잖아!”

“더 맛있지?”

독일산 맥주와 엘프주는 환상의 궁합이었다. 무진이 즉석에서 만든 황금비율이 더해지자 최소 두 단계는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고티아, 허공섭물주라고 마셔 봤어?”

“……그게 대체 뭐예요?”

무진의 의지가 폭탄주에 닿자,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형태를 띤다. 딱 한 모금 마실 양이 허공을 두둥실 떠다니다가 고티아의 입속으로 쏙! 들어갔다.

카아아아~~~!

옥타브 높은 엘프의 시원한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보는 맛과 마시는 맛의 조화였다.

“이번에는 게틀링주야!”

“어서요!”

다들 미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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