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244화 (245/374)

244. 무단 침입(2)

제인과 쉐도우 전사단은 흐름의 변화는커녕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더욱이 고속으로 질주하면서 주변의 미세한 변화까지 알아채다니, 날이 갈수록 사람 같지 않았다.

“부순다.”

멈추지 않고, 추진력을 주먹에 실었다. 권심에 의지와 맞물린 내력이 집중되어 발출된다.

꽈아아앙!

쩌저저적!

멀쩡했던 공간이 깨진 유리창처럼 떨어져 내리는 건 착각이 아니었다. 시발점이 된 공간의 울림이 사방으로 너울처럼 퍼지며 제인과 쉐도우 전사단을 놀라게 했다. 파편의 흐름만으로도 강력한 결계임을 체감할 수 있었다.

‘최상의 방탄 결계 같은데, 그냥 두부처럼 부수네!’

대수롭지 않은 순조로움이라, 쉬워 보일 뿐. 실제로는 결계를 해체하는 데만도 오래 걸렸을 작업이었다.

세계수에 다가설수록 청량감은 짙어지지만, 감각을 조여 오는 무리가 있었다.

찌릿, 찌릿!

정체는 자다가 봉창 두들겨 맞은 집주인들이었다.

사사삭!

은밀하고 날랜 데다가 적지 않은 수에도 인기척을 느끼기 힘들었다. 무진이 기감 영역을 확대하여 감각을 공유하지 않았다면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엘프겠지?”

“세계수와 엘프는 세트잖아.”

엘프의 존재는 흔하진 않아도 공식화되어 있었다. 간혹 던전에서 낙오된 엘프가 사회에 안착했었다. 그러나 극소수에 불과할 뿐, 이처럼 공동체를 띠는 예는 없었다.

기감에 잡힌 수만 해도 족히 수백은 되었다. 인류 인구와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할지 몰라도, 특이성의 유사 인종이기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해야 마땅했다.

엘프는 능히 두루미와 같았다.

제인은 접근하는 흐름에서 명백한 적의를 느꼈다. 억울하기는커녕, 그 심정이 이해돼서 짜증이 치민다.

“꼴을 보니 대화는 물 건너간 것 같은데!”

“자기 집 담벼락을 부쉈으니 당연하지. 나 같아도 몹시 화가 났을 거야. 역지사지를 당해 봐야 그 심정을 아는 거지만.”

“그렇게 잘 알면서 왜 부쉈어?”

그것도 모르냐는 듯 무진이 혀를 찼다.

제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누나가 엘프라면 생전 처음 본 인간이 자기 집 보안1호인 결계 좀 치워 달라고 하면 순순히 열어 줄 거야?”

“절대 아니지!”

“그래서야.”

“그러면 대화고 나발이고, 싸우잔 거잖아.”

“스토리 미션의 내용을 봐 봐, 자기들의 미션을 해결해 달라는 거잖아. 누나는 걱정하지 말고 있어.”

무진의 호언장담에도 제인은 미심쩍었다. 수백의 엘프가 단체로 달려와서 호호, 하하 화해의 악수를 하며 끝낼 리 만무했다.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나설 애는 아니지.’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고, 무진은 언제나 목적했던 방향으로 흐름을 이끌었다. 그런 애가 이런 식으로 나왔다면 확실한 카드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중력 아이템을 사용할 줄 누가 알았겠어.

촤자자자작!

사방을 포위하는 엘프들, 숲을 방패막이로 하는 코볼트와 비슷하긴 해도 전력은 전혀 다르다. 옥죄는 기운과 일대를 장악하는 흐름은 절대 만만히 볼 수 없었다. 어째서 ss급으로 상향이 되었는지를 입증했다.

쐐애액, 꽈아앙!

화살이 날아온 후, 숲에서 적의가 담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엘프라서 그런가, 목청에 메아리를 담았다. 공기 반, 소리 반을 넘는 확장성이다.

“데브러비스트로 가드로스 인타미드로나?”

인간의 언어와는 다른 엘프의 언어였다. 인류와 만난 엘프와 같은 종인지는 알기 어렵다. 종이 비슷하다고 해서 같은 종이라는 확신은 금물이었다. 그러나 모르는 언어일 뿐, 의미는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더 이상 다가오면 죽이겠다.

이 뜻이 아니라면 다짜고짜 화살부터 날리진 않았겠지.

‘뭔 놈의 화살이.’

발리스타에 고폭탄을 압축해서 달아 놓은 파괴력이었다. 남의 집 담벼락을 부순 이유치곤, 1방만 날린 건 그나마 신사적으로 비쳤다. 저걸 수백이 동시에 날린다고 상상해 봐라, 융단폭격은 기정사실이었다.

“번역 스킬 가지고 있으니까, 내가 설득해 볼게.”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잖아.”

“말도 안 통하면서 어떻게?”

“혹시 모르니까, 디펜스 진형이나 갖추고 있어.”

제인은 무진의 답을 듣지 못했다.

어느새 무진은 숲으로 들어갔다. 다음 상황이 뇌리에 시뮬레이션처럼 펼쳐졌다. 제인은 즉시 쉐도우 전사단과 방어 진형으로 대오를 구성했다.

크어어어억!

까아아악!

꺼어어어억!

이번에도 번역은 필요하지 않았다. 차원이 다르고, 종이 달라도 비명은 차원 공통이었다.

곧 쥐 죽은 듯이 고요해진다.

“대화는 개뿔!”

지가 데몰리션맨도 아니고, 평화로운 일상의 파괴자였다. 조용히 잘 살고 있는 엘프들에겐 재앙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게 문을 부수고 들어왔을 때 친절하게 답을 했어야지.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평화롭게는 아니더라도, 적반하장은 너무하잖아.

제인은 설마 하는 심정으로 엘프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예상을 훨씬 상회하는 광경에 헛바람을 삼켜야 했다.

코피를 흘리고, 목이 삐끗하고, 팔이 꺾이고.

죽지만 않았지, 꼴불견으로 넝마처럼 쓰러진 채 기절했다. 나뭇가지 위에 빨래처럼 널려 있는 위태로움이란.

“왔어.”

“……해맑을 때가 아닌데.”

엘프의 머리끄덩이를 잡은 무진이었다. 강제로 사로잡힌 엘프는 누가 봐도 제일 중요하고 고귀한 엘프처럼 보였다.

딱, 하이엘프같이 생겼다.

그런 엘프가 무진에게 머리끄덩이를 잡힌 채, 코피를 질질 싸고 있었다. 그나마 피똥을 싸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하기에는 상황이 정말 최악이다.

-으아아아아아앙!

한쪽에선 정령들이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그런데도 감히 덤빌 생각도 못 하고 눈치를 보는 현실이었다. 짧은 순간 얼마나 모질게 다뤘을지 눈앞에서 펼쳐진 광경처럼 생생하게 전해진다.

“정령력을 빼앗아서 요나한테 주면 좋지 않을까?”

“무슨 말을 하는지 쟤들이 몰라야 하는데, 알 거 같은 이 느낌은 뭘까?”

정령이 정령의 힘을 빼앗으면 좋다고 할 리 없잖아. 그걸 당연하게 말하는 것부터가 제정신처럼 보이진 않는다.

하물며 정령들이 다 듣고 있었다. 그 앞에서 소멸을 얘기하는데, 떨지 않을 정령이 있을까.

“농담이거든.”

“다 패고 나서 그러면 누가 농담으로 받아들이겠어.”

“말이 안 통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바빠 죽겠는데.”

실랑이가 귀찮아진 무진의 본심이었다.

제인도 입을 닫았다.

귀찮다고 초면에 주먹부터 날리는 녀석에게 설득은 불가능했다. 그냥 엘프의 일진이 사나운 날이었다. 그런 날 있잖아, 한강에서 뺨 맞고, 낙동강에서 또 처맞는.

“그렇다 치고, 언제까지 잡고 있을 거야.”

“어이쿠, 실례.”

실례는 개뿔!

무진은 엘프의 머리끄덩이를 정중히 풀고, 나무 기둥 앞으로 앉혔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엘프는 마냥 착하다는 엘프 성선설을 주장하곤 했지만, 외형만으로 판단하는 외모 지상주의의 패착이었다.

무진은 외모가 아닌 마음을 보았다.

엘프도 인간처럼 성격이 다양하다. 마냥 좋게만 봐도, 나쁘게만 보는 것도 옳지 않았다. 더욱이 남의 집 담벼락을 부수었는데도, 호인인 경우는 흔치 않았다.

-절대 치료.

9계식의 마도를 개방했다.

일대가 힐링의 물결로 휘몰아쳤다. 닿기만 해도 내외상이 치료가 되며 원래대로 돌아오는 이적이 펼쳐졌다.

헐!

제인과 쉐도우 전사단은 기겁했다. 마도를 펼칠 수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절대마도에 도달했을 줄이야.

권왕과 마제가 도대체 어떤 괴물을 키운 건지 도무지 한계를 측정할 수 없었다.

“지수가 인조인간미라고 한 게 이해가 돼.”

“나도 사람이야.”

“사람 같은 짓을 좀 하고서나 그래라!”

“치료해 주잖아.”

병 주고 약 주는 거지.

이건 누가 봐도 협박이었다.

치료해 줬으니까, 감사하라고?

무진은 깨어날 때를 위해서 통역 마법부터 펼쳤다. 시작부터 외계어를 듣고 싶진 않았다. 시간 낭비를 차단하고, 엘프의 의식을 깨웠다.

툭툭!

일어나 보라고 머리와 귀를 마사지해 줬다.

하아.

제인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얜 엘프든 뭐든 가리지를 않는구나. 여자가 봐도 엘프는 초월적인 미를 가지고 있거늘. 지수의 삶이 그리 녹록지 않을 것 같았다.

끄응!

의식을 회복한 엘프는 악몽을 꾼 얼굴이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무진을 올려다보며 적의를 드러냈다. 다짜고짜 쳐들어온 것도 부족해 무차별로 공격했으니 당연했다.

주변엔 동족이 쓰레기처럼……은 아니고 반듯하게 엎어져 있었다. 각을 똑바로 쟀는지, 일절 흐트러짐도 없었다.

억울하고 분하다. 엘프는 화가 치밀었다. 자신들이 뭘 잘못했다고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가.

뚜둑, 뚜두득!

무진은 주먹을 쥐며 화음을 냈다. 편하게 말하라는데, 곱게 나오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것 같았다.

엘프는 분노하면서도, 주먹 앞에서 함부로 대들진 못했다. 솔직히 어떻게 당했는지도 모르겠다. 한 줄기 질풍처럼 쇄도한 후, 사방을 폭격했었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폭력, 대응조차 못 하고 두들겨 맞았다.

그런 괴물이 지금은 맘 편히 말을 하란다!

우릴 너무 병신으로 보는 거 아닌가.

순진하게 진짜로 편하게 대할 만큼 엘프가 눈치가 없진 않았다.

억지로 감정을 절제한 후.

“이런 짓을 하는 연유가 뭔가요?”

“곧 습격이 있을 거야. 대비를 해야 해.”

울컥한 엘프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누가 봐도 자신들을 기만하는 행위였다.

“당신이 습격했잖아!”

“내가 아니라, 너희한테서 파생된 다른 종족이야.”

그제야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챘다. 나름 고위 엘프로서, 돌아가는 사정을 모를 만큼 멍청하진 않았다. 그렇다고 쳐도 당신의 무단 침입과 폭력 행사가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결계를 부수지만 않았어도 되었잖아요!”

“어차피 버티지 못할 결계야, 알면서 왜 그러는 거지?”

“인간이 뭘 안다고! 더욱이 협조를 바랄 거면 말로 해도 되는 문제였어요!”

“대화할 생각도 없었으면서, 이성적인 척은.”

“절대 아니거든요!”

“세계수를 걸고서 맹세해 봐.”

“……젠장!”

이 인간이 선 넘네.

엘프에게 세계수는 탄생의 어머니이자, 존재의 인식을 가져다준 신이었다.

세계수를 걸고 거짓말을 하진 못한다.

본성을 일부 드러낸 엘프는 본인을 고티아라고 했다. 그 뒤로 꽤 긴 이름이 있지만, 시간 관계상 짧게 줄였다.

“엘프도 욕을 잘하는구나.”

“이건 누가 봐도 욕할 만한 상황이잖아요!”

“인정.”

“그런다고 풀리진 않아요!”

“맘대로.”

무진의 시큰둥한 반응에 고티아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 인간으로 인해 엘프의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어쩔 수가 없는 현실이다.

상식을 불허하는 엄청난 폭력을 겪었더니, 감히 덤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시 덤빈다 한들, 이기기는커녕 더 처맞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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