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243화 (244/374)

243. 무단 침입(1)

덜덜덜!

떨려 오는 육신을 간신히 부여잡을 뿐,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듯 위태로웠다. 주변의 도움을 기대하진 못한다. 이미 머리 없는 주검이 되어 황천길로 직행한 지 오래였다. 자신도 이제 곧 뒤를 따를 형편이었다.

허망하고, 또 허망했다. 자신은 이렇게 죽을 사람이 아니다. 찬란한 욕망이 한낮의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그렇기에 의문이었다.

제인 따위가 저런 괴물의 주인이라고? 간혹, 수하가 주인보다 강할 순 있어도 정도가 있었다.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강함이다. 그런 놈이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졌다.

“……넌 도대체 누구냐?”

“곧 죽을 놈이 알아서 뭐 하게.”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연준이었다. 자신이 언제 이런 대접을 받아 보았던가. 던전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블랙마켓의 제왕으로 군림하리라 자신했었다.

“……이럴 순 없다고!”

일대일 전투에서 [광속]은 천하무적이었다. 한데, 속도에서 압도하는 것으로도 부족해 모든 공격을 카운트했다.

“너로구나!”

“이제 와서 알면 뭐, 달라지나.”

나연준은 쉐도우 길드를 무너뜨리지 못한 연유를 깨달았다. 단순히 무력만 강하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그간의 사태를 돌이켜 보면 섬뜩한 심계가 있었다.

저벅.

움찔!

무진이 일보를 내디딘다.

나연준은 주춤했다. 더는 [광속]을 유지하기도 힘들었다. [광속]과 함께 스피드 스킬을 사용했기에 마나와 체력의 소모가 한계에 달했다. 더욱이 회심의 일격이 전부 빗나가며 카운트를 당해 불과 1분 남짓의 공방에 만신창이가 되었다.

“멈춰, 날 죽이면 쉐도우 길드의 본진이 무사하지 못할 거다!”

“그래, 잘 가.”

“우릴 죽인 게 알려지면 쉐도우 길드는 공적이 되어……!”

퍼억!

아토믹 캐논.

전과 같은 속도임에도, 이번에는 피하지 못했다. 빛살처럼 쏘아진 아토믹 캐논이 나연준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퍽! 소리와 함께 두개골, 뇌수, 선혈이 사방으로 터져 나가는 광경은 섬뜩함을 자아냈다.

털썩!

철퍼덕!

테라 길드장과 다르지 않은 최후를 선사했다.

이제부터는 매너를 실천할 때다. 신사는 앉은 자리도 깨끗하다고 했던가.

무진은 권능을 발휘하여 주검을 한자리로 모은 후, 삼매진화를 일으켰다.

화르르르르!

완전한 멸살.

꺼진 숨통도 다시 보는 철저함이다. 각성의 시대가 되면서 죽은 사람도 다시 사는 망상이 현실이 되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방심하지 않고, 꼼꼼한 뒤처리는 기본이었다. 주변을 뒤덮는 뜨거운 화마와 상서로운 기운이 언데드가 될 가능성마저 지워 버렸다.

합장으로.

“성불하시구려.”

“……이건 소멸이잖아!”

제인은 말문이 막히는 광경에 혀를 내둘렀다. 방금 뭔가 대단한 수를 쓴 게 분명했다. 잘 모르지만, 저걸 당하면 환생이나 전생도 못 할 것 같았다. 그냥 흔적 자체가 완전히 사라져 버리는 오싹한 느낌이었다.

불교의 윤회 따윈 깡그리 무시해 버리는 무진의 소거법에 소름이 돋는다.

“역시 제인 누나야.”

“……진짜구나!”

권능의 영역이기는 했다. 죽은 자, 영혼을 들여다보는 경우까지도 계산에 넣었다.

제인은 무진의 강함을 알면서도 놀랐다. 이는 쉐도우 전사단도 마찬가지였다. 무진의 본질을 몰랐을 때 자존심이 상했지만, 사실은 특급 칭찬이었다.

‘우리와는 애초에 격이 다르셔.’

‘이분이었구나!’

쉐도우 전사단은 자존심이 강한 편이지만, 개죽음은 사양이었다. 확실히 길드의 간부가 되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이게 임원과 사원의 차이란 말인가?

“이제부터 던전을 공략해 보자고.”

“저희한테 맡겨 주십시오, 강 부장님!”

“부담은 주기 싫은데.”

“우리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입니다!”

쉐도우 전사단의 의욕적인 태도에 제인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제법 심지가 굳은 녀석들로 구성했는데도, 사람은 다 똑같았다. 자신도 여전히 심장이 벌렁벌렁한데, 저걸 보고도 대들 수 있으면 살고 싶지 않단 뜻이지.

환생이라도 하고 싶으면 말 잘 들어야 했다. 소설에서 보면 차원 간 영혼력의 개수를 유지하는 영혼 보존의 법칙이 있다고 하던데. 무진에겐 씨알도 안 먹힌다.

“실력도 괜찮고, 좋은 사람들이구나.”

“우리 개는 안 문다는 말 같네.”

세상에 안 무는 개가 없듯이 개소리가 분명했다. 하지만 개떡같이 말해도 쉐도우 전사단은 찰떡같이 알아듣고 정글 코볼트를 정리해 나갔다.

피 냄새를 맡았는지, 정글 코볼트가 겁도 없이 흥분해서 달려들고 있었다. 그러다 정신 차리고 도망치지만, 쉐도우 전사단은 최선을 다했다.

서걱, 서걱!

공략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하급 던전의 마물을 상대로 쉐도우 전사단은 과했다. 원래의 목적은 총통, 테라 길드를 속이기 위해서였다. 과한 전력으로 우리가 안심하고 있을 때를 노리도록 한 것이다.

쿠오오오오오!

보스 지역에 들어섰다.

숲의 북쪽에 치우친 수림 지역으로 절벽에서 떨어져 내리는 폭포수가 장관을 이룬다.

먹빛의 배경을 앞으로 두고 배수의 진을 친 정글 코볼트 전사가 있었다. 더는 도망칠 수 없는 외통수임을 직감한 것이다.

“지수 걱정은 안 돼?”

“이 정도는 얼마든지 헤쳐 나갈 수 있어.”

“대단한 믿음이네. 부럽다.”

“실수하면 오붓하게 대련하기로 했거든.”

“……협박이잖아!”

무진의 인간관계를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제인이었다. 친구에게도 무지막지한 횡포를 저지르는 폭군이거늘.

왜 인간관계가 늘어나기만 하는 거지?

‘나도, 뭐.’

따지고 보면 다들 마조히스트 변태들이었다. 맞기 싫으면 떨어져 지내야 하는데, 무진의 어항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그걸 매력으로 포장한다면 무진 맛을 꼭 봐야 했다.

-던전 공략.

-던전 각성.

공략과 동시에 각성한다.

던전이 뒤틀리며 변형을 일으켰다. 이런 식으로 전체 변형을 일으키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하나, 던전의 상향된 등급을 보면 충분히 이해된다.

“ss급이라고?”

“놀랍네.”

“스토리 던전은 또 뭐야?”

“그러게.”

건망증 심한 지수가 기억하는 특이점이었다.

각성했다고 해도 던전의 등급 상향이 지나치게 높았다. 또한, 수많은 던전 중에서도 처음으로 등장한 스토리 던전이었다. 다른 차원의 이야기, 누군가의 기억인지는 알 수 없다. 던전 내에서 스토리는 진행이 되고, 선택을 해야 했다.

무진도 지수에게 들어서 안 이야기였다.

윽!

각성이 끝나자 제인과 쉐도우 전사단은 짧게 비명을 질렀다. 일대를 지배하는 공기의 질이 달라지면서 내리누르는 중력도 바뀌었다. 순식간에 최소 10배에 달하는 중력이 육신을 내리누른다. 일반인이었다면 억! 하는 찰나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으스러져 버렸을 것이다.

하!

곧 정상적으로 움직이자, 제인은 말문이 막혔다. 마나와 체력을 이용하여 버티지 않고, 중력 아이템인 만월의 링을 사용했다.

일정 중력을 자체적으로 제어하여 운신을 자유롭게 해 주는 아이템이다. 말만 들어서는 대단하지만, 중력 한정이라 일반적인 상태에서는 별 효과가 없다.

“운 좋네.”

“이걸 운이라고 할 수 있는 거야?”

“매사에 만반의 준비를 하는 거지. 내가 [신의 정화]를 가지고 있을 때 치명적인 독을 쓸 줄 누가 알았겠어.”

“……그러네.”

던전 각성으로 인한 변화를 예측하기란 불가능했다. 그걸 알고서 던전에 들어왔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정말로 운이 좋아서 맞아떨어졌다고 봐야 하는데, 이 꺼림칙한 느낌은 뭐지?

‘괴물 같은 녀석이 머리도 좋고, 운도 좋으면 우리 같은 평범한 소시민은 대체 어쩌라는 거야?’

운칠기삼을 무진에게 적용하면 불합리함의 끝판왕이었다. 상대적 박탈감 해소를 위해서라도 최소한 운이라도 없어야 했다.

응?

무진에게 불운이 겹치면 우리는?

운이 없다고 해도 무진에게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못해 전무하다. 잘못되었을 때의 후폭풍은 전적으로 자신들이 뒤집어쓸 게 분명했다. 운이 좋으면 그저 부러울 따름이지만, 운 나쁘면 줄초상이었다.

‘뭐가 이렇게 불합리하냐!’

어떤 선택을 해도 무진이 위험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무진과 엮인 걸 불행하다고 탓할 수도 없다. 살아남아 블랙마켓을 장악할 기회가 생긴 것은 무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솨아아!

던전 전체가 중력장의 영향에 있기는 해도, 공기의 질이 굉장히 청량하다. 무지막지한 피톤치드의 향연으로 인해 도심의 탁한 미세먼지로 오염됐던 육신이 정상화되는 착각을 일으켰다.

실제로는 기분 탓일 뿐, 건강해지진 않는다. 이는 마치 외식과 같다. 한 달에 한두 번 하는 외식에서 건강식을 찾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도 없듯. 그럴 거면 평소에 건강하게 먹고, 외식 때는 먹고 싶은 거 먹는 게 낫다. 맘이라도 편하면 플라시보 효과라도 있지.

“저기로 가면 될 것 같지?”

“누가 봐도 그렇잖아.”

각성으로 던전이 변화했지만, 밀림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이전처럼 음산한 어둠이 아니라 밝은 수채화 톤의 하늘에 기둥을 새겨 넣은 듯한 거대한 수목을 빼면.

제인이 물었다.

“저 거대한 나무 비슷한 건 대체 뭐냐?”

“세계수겠지.”

“처음 보자마자 단정 짓는 건 섣부른 판단 같지 않아?”

“아니면 누나가 보기에 저게 뭘 것 같은데?”

“음~~~~! 아~~~~! 세계수겠지.”

소설과 만화에서나 볼 법한 거대한 수목. 저게 나무인지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세계 최고 고층 빌딩도 눈앞을 장악한 나무와 비교하면 투자하기 좋은 꼬마 빌딩이었다.

“나무야 세월이 흐를수록 큰다고 해도 저건 지나치잖아. 대체 몇 년을 살아야 저렇게 되지? 최소 100억 년쯤!”

“크기야 조절할 수도 있는 거고. 일단 가 보자.”

“조절은 우리 도후도 잘하지.”

“……뭐?”

“애들은 몰라도 돼.”

세계수의 존재감만큼이나, 수림도 수십 배로 넓어진 것 같았다. 밀림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세계수란 이정표가 있기에 망정이지. 통상적인 거목보다 훨씬 큰 수목 안에선 빠져나오기도 어려웠다. 마치 강원도 GOP에서 탈영하다 산에서 아사당하는 기분일 것이다.

쌔앵!

목적지를 정한 무진 일행은 속도를 냈다.

세계수가 워낙 크다 보니 가까이 있는 듯 느껴지지만, 원근감의 착시일 뿐. 차를 타고 가도 족히 1시간은 걸린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세계수의 전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나무 기둥만 보였다.

앞장선 무진은 일대를 확인했다.

“앞에 결계.”

“보여, 저게?”

“흐름이 다르잖아.”

“미친!”

전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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