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235화 (236/374)

235. 할 건 해야지(2)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영화 촬영을 온 배우로 착각할 만큼 조각 같은 외모와 천상의 아름다움이었다.

레퀴엠의 성향은 집요하고, 잔인하며, 창부처럼 저급했다. 그녀는 그러한 성격을 숨기지 않고, 고스란히 드러낸다.

레퀴엠과 달리 품격에 얽매이는 라이언킹의 분위기는 대조적이었다.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도 묘하게 잘 어울려서 섬뜩함을 자아낸다.

“내가 이년! 죽을 줄 알았어. 별것도 아닌 년이 존나 있는 척하더니 꼴좋다.”

“지금은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다. 실패한 원인을 파악하고, 본래의 목적을 이루어야 한다. 일단 들어 볼까?”

3명의 조직원은 마른침을 삼켰다.

로즈를 따랐던, 그 이전에는 조던 때부터 한국 내 정보를 수집, 분석, 검토했던 자들이다. 지금이 자신들에게는 생사의 갈림길임을 직시했다.

흠.

라이언킹은 사전에 조사한 토대와 별다른 특이점이 없자, 심드렁해졌다. 사실 믿기 힘든 내용들의 연속이었다. 이걸 조사라고 했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허무맹랑한 데다가 이미 알고 있는 것 외엔 없군.”

“원하시는 정보를 말씀해 주시면 곧 알아…… 크아아아악!”

쓸모가 없다고 판단이 내려지자, 레퀴엠은 시간을 끌지 않았다. 그저 손짓에 불과하거늘, 그들은 한 줌의 혈수가 되었다. 가늘고 긴 매끈한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죽은 자들을 위한 섬뜩한 장송곡이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흉물스러운 참상에 라이언킹은 미간을 찌푸렸다.

“들어 볼 필요도 없는 내용이었잖아.”

“그렇긴 하지.”

한국에서의 계획은 전부 실패로 돌아갔다.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체계는 남아 있어도, 당장 사용하기는 불가능하다.

한편으로 어이가 없다.

그리드 내에서 상위 서열에 있는 로즈가 실패했고, 목숨을 잃었다. 그 내막조차 자세하게 알지 못했다. 시일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정보망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로즈를 신뢰하지 않는 것과는 별개로, 연이은 실패는 의외였다.

한국이 그리 대단한 나라인가? 약소국이라고 할 순 없어도, 일본이나 중국보다는 약하다. 미국의 속국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 나라에서 그리드 넘버가 벌써 4명이나 죽었다.

한국이 그리드에겐 무덤이 되었다.

위기감을 느낄 법도도 한데, 레퀴엠은 대수롭지 않아 했다. 로즈가 자기 바로 아래 서열임에도.

물론, 말로만 떠들진 않았다. 실제로 상위 서열과 하위 서열의 단계 차이는 컸다.

“방해되는 것들 전부 죽이면 되잖아.”

“그건 그리드1의 명령이 아니다.”

“일을 어렵게 빙빙 돌리니까, 꼬이는 거야. 우리가 굳이 머릴 쓸 필요가 있어?”

“로즈의 죽음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일단은 실패의 원인부터 찾아내야 해.”

유니크스의 정보력이 이처럼 답답해진 예는 없었다. 한국이 그만큼 특수했다. 어쩌면 중국이나 일본보다 신중히 움직여야 할지도 모른다.

“찾으면?”

“그땐 맘대로 해라.”

레퀴엠의 의미심장한 눈빛이 소름 돋게 했다. 그녀의 잔혹성을 아는 라이온킹도 웃었다. 자신들이 온 이상, 실패의 원흉은 물론 연관된 모든 자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그 전에 뜨밤?”

“항상 뜨겁지 않았나.”

***

지긋지긋하다. 당장 출국하고 싶은데, 감당 못 할 현실이 답답했다. 그 집요한 놈이 계속 협박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마지못해 아버지한테 얘기했다가 날벼락이 떨어졌었다.

자칫했으면 아버지의 목에 칼을 대는 불효막심한 패륜아로 전락할 뻔했다. 다행히 아버지의 주변에 전용 치료사가 있어 최악은 면할 수 있었다.

첩첩산중을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막막했다. 하도 짜증이 나서 술 한잔 걸쳤다.

돌아가도 문제고, 돌아가지 않아도 문제였다.

사면초가라서 며칠 동안 잠을 설쳤다. 술도 걸쳤겠다, 피곤함이 몰려와 침대에 누웠다.

곯아떨어지고, 얼마나 지났을까? 의식이 흐릿했었다. 이상한 감각과 위화감이 들었다.

오싹, 부르르!

침대인데, 딱딱하다. 마치 맨바닥에 누운 듯. 이런 데서 자면 입이 돌아갈 것 같았지만, 너무 피곤해서 일어나고 싶진 않았다.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응?

악몽이라도 꾼 줄 알았더니, 차가움이 가시지 않는다. 이대로 계속 자고 있으면 진짜로 입이 돌아갈 것 같았다.

장위는 보일러를 껐는지 알아보려고 눈을 떴다. 그런데 푹신했던 침대가 아닌 진짜로 맨바닥이었다. 주변을 돌아봐도 초호화 호텔과는 거리가 있었다.

낯선 장소였다. 이제는 한기가 아니라 섬뜩한 소름이 돋았다. 누군가 곱게 얌전히 자고 있던 자신을 납치한 것이다.

‘또, 습격을 당한 거야?’

단체전에서도, 시상식에서도 2번이나 습격당했다. 그것만으로도 흔하지 않은 벼락 맞을 악운이거늘. 3번이나 습격을 당하는 게 말이 되느냐 말이다.

요즘은 습격도 삼세번인가?

‘젠장, 괜히 호텔로 왔잖아!’

다른 생도들은 아카데미에 있었다. 장위는 설마 3번이나 습격하지는 않으리라 판단해 호텔로 왔다. 아카데미에 있어 봤자 눈치나 봐야 할 테고, 호텔에서 휴식을 취한 후에 본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렇다고 마냥 쫄아 있을 순 없다. 납치범이 누군지 알아야 하고, 나를 제대로 어필해야 한다.

당장은 강하게 나가 봤다.

“내가 누군지 알아?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납치된 주제에 입은 살았구나.”

빛이 흐릿한 창고의 반대편이었다. 음영이 겹쳐서 그런지, 실체 없이 변조된 목소리가 들렸다. 빈정거리는 투지만, 감정이 실리진 않았다. 그것이 장위의 심장을 차갑게 식히며, 마른침을 삼키게 했다.

대답이 없자.

“갑자기 입도 죽었네.”

“……내 몸엔 GPS 추적기가 있어!”

“그래서 방해전파를 켜 놨지. 알다시피 전파 따윈 마나파동만으로도 끊어지니까 괜한 기대는 하지 마.”

연구 개발은 하고 있으나, 전파 수신은 던전 오픈, 마나파동에 굉장히 취약했다. GPS를 비롯한 통신 장치가 먹통인 연유였다.

“돈을 원해? 돈이라면 얼마든지 줄게!”

“아버지한테 돈 달라고 하다가 욕만 처먹었으면서 잘도 지껄이네. 그래, 좋아. 얼마 줄 건데?”

도청당한 걸 인지한 장위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돈을 달라고 한 걸 안 이상, 얼마를 빚졌는지도 들었을 것이다. 자신이 줄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날 수도 있었다.

여기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상대도 혼자였다. 몸 상태를 보니 강제한 흔적이 없다.

어쩌면?

“싸우게? 그러면 뒤지게 맞을 텐데. 참고로 난 곱게 패는 법을 몰라. 어디 한 군데 찢고, 부숴야 분이 풀리거든.”

“아냐, 누가 그렇대! 얼마 줄지 고민해 본 거야. 100억이면 될까?”

“고작? 명색이 주석의 아들인데, 목숨값이 그것밖에 안 돼?”

“더는 힘들다고, 100억이면 적은 돈이 아니잖아! 땅을 파 봐, 나오나?”

“맞는 말이야, 요즘은 돈 귀한 줄 모르는 애송이들이 많거든. 자기가 벌어 본 적이 없으니 그렇지. 피땀 흘린 노동을 안다니, 보내 줄게.”

“진짜?”

“팔 하나만. 남은 몸뚱이는 여기 놓고.”

태연히 팔을 잘라 버리겠다는 말에 장위는 파랗게 질려 버렸다. 말 안 듣는 연놈들에게 항상 인체의 신비를 언급하며 겁을 줬던 지난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때는 눈물, 콧물, 오줌을 질질 싸며 살려 달라고 비는 겁쟁이들을 조소했었다.

“1,000억 줄게, 제발 살려 줘!”

“아직 협박은 시작도 안 했는데? 재롱이라도 떨어 봐. 혹시 알아, 아킬레스건 하나로 퉁 쳐 줄지.”

“안 돼, 그럼 나 죽어!”

“네가 무슨 그리스 신화 속 영웅이냐, 아킬레스건 끊는다고 죽게. 내가 많이 잘라 봐서 아는데, 다들 팔다리 없어도 잘 살더라고.”

“절대 안 덤벼, 얌전히 있을게!”

“얌전히 있는다고 자르지 않는 거 아닌데.”

덤비기를 바라는 뉘앙스에 장위는 철저하게 굽혔다. 이제부터 말 잘못하면 사지가 무사치 못하리란 공포가 밀려왔다.

겁쟁이, 비겁자라고 욕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몸성히 건사하고 싶었다.

“1,000억이면 되잖아. 알았어! 3,000억? 더는 진짜 안 돼!”

“와, 너 정말 돈 많구나. 중국의 황태자답다. 그런데 어째서 한국의 순진하고 착한 생도의 돈도 갚지 않고 모른 체했을까? 애초에 갚을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고?”

한국에서 빚질 사람은 1명뿐이다.

장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새끼가 어디가 순진하단 거야? 순 악질이었다고!”

“원래 돈 안 갚으면 깡패가 되는 거 아닌가?”

“나도 갚으려고 했어. 그러니까 제발! 날 풀어 줘! 아버지한테 말해. 달라는 대로 다 주실 거야!”

누가 차이나 아니랄까 봐 공수표를 막 던지고 있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나은지, 살려는 의지만큼은 확실했다. 눈치도 제법 빨라서, 자신의 처지를 외면하진 않았다.

“이제부터 시키는 대로 할 수 있지?”

“할게, 뭐든 시켜 줘!”

“일단, 대가리부터 박자.”

“……뭐?”

“영상하고 사진 좀 찍어야 하거든. 많이 민망할 것 같으면 사지 하나 잘라 주고.”

이런 미친!

그러고 보니 왜 이렇게 춥나 했다. 팬티 한 장 달랑 입고 있었다. 욕이 나오려다 쏙 들어갔다. 잘 때 뭔가를 입고 자면 잠이 오지 않았다. 팬티라도 입고 있어서 그나마 덜렁거리진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대가리를 왜 박는 거냐고!

스르렁!

농담인 줄 알았지만, 어둠 속에서 금속성의 경쾌하고 소름 돋는 마찰음이 들렸다. 칼집에서 칼이 나올 때라는 걸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장난하는 것 같냐고 물어보는 듯 오싹했다. 장위는 그 즉시 대가리를 바닥에 박았다.

해 본 적도 없을 텐데, 한류의 힘인가? 완벽한 원산폭격의 자세였다.

“혹시, 초상권이 있냐?”

“그런 거 없어!”

“그런데 왜 아까부터 말을 까냐? 되게 기분 나쁘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자, 하나에 병신, 둘에도 병신. 알지? 모르겠으면 평생 외팔이로 살아야 할 거야.”

“압니다, 저는 병신입니다!”

장위는 수치심과 모멸감에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이놈을 절대 가만두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선 건 살고 싶은 본능이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 나가기만 한다면, 하루를 소중히 여길 것이다.

“하는 김에 가족 욕도 섞자. 너는 이미 완성된 호래자식이니까 이 정도는 괜찮을 거야.”

“……그건 좀!”

“대가리가 없으면 대가리를 박을 필요가 없지.”

“……할게요! 하겠습니다!”

“그래, 이렇게 적극적이면 얼마나 좋아.”

장위는 졸지에 대가리 굽혀 펴기를 해야 했다.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은 생명의 위협 앞에서는 무의미했다. 누구나 경각지경에서는 본인도 알지 못하는 잠재력을 격발한다.

충분한 자료를 확보한 그림자는.

라이트.

마법이 발동하면서 어스름했던 불빛이 사라지고, 공간이 바뀌었다. 맨바닥은 사라지고, 잘 깔린 카펫이 자리를 대신했다.

“일어나.”

벌떡!

장위는 얼떨결에 일어난 후 주변을 돌아보다 기겁했다. 자고 있었던 호텔의 스위트룸이었다.

그 앞에 흐릿했던 암영의 실루엣이 정체를 드러냈다.

“너……너 이 새끼, 이게 무슨 짓이야?”

“그러게, 좋게 말할 때 돈을 갚았어야지. 아니면 100억이라도 입금하는 성의를 보이든가. 이게 무슨 꼴이야? 우리 사이에 너무 맘이 아프다.”

“……이 씨발! 그걸 말이라고 해! 이딴 짓을 하고 무사할 것 같아!”

“무사하겠지, 본인이 한 일들이 떠오르지 않아?”

무진의 무지막지한 협박에 장위는 기겁했다. 방금까지 있었던 일들이 고스란히 영화 필름처럼 재생되었다. 외부에 퍼지는 순간 자신은 매장당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러는 네놈은 폭행, 협박, 무단 침입으로 감옥 갈걸!”

“증거 있어?”

유리한 상황만 만들어 놓았다. 목소리는 변조했고, 협박은 녹화하지 않았다. 폭력을 썼다고 하기엔 장위는 말끔했다. 혼자 겁먹어서 시키는 대로 한 것이다.

현실을 파악한 장위는 울먹이듯 소리쳤다.

“이 자식, 나한테 대체 왜 이래?”

“복수하겠다고 별렀으면서 억울한 척하기는. 천극단이라고 했지? 그거 굉장히 위험하지 않아?”

“……그걸 어떻게?”

“알려지면 참 재밌겠다. 혹시 알아? 흑막과 한패가 될지?”

장위는 울화가 치밀었다.

천극단을 제대로 써먹기라도 했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써 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끝이 났다. 여하튼 천극단이 알려지면 위험했다. 교류전에서 도핑했다고 시인하는 셈이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사태를 봤을 때 이놈이 도청하지 않았다고 장담하기도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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