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 불장(佛掌)(3)
“도망칠 줄 알았는데.”
“닥쳐, 씨발 년아!”
“어머, 공주가 입이 걸레였네. 하긴, 일본의 성문화가 문란하긴 하지. 언제 했어?”
“이 미친년이, 누굴 보고!”
로즈의 도발에도 미츠키는 나아가지 않았다. 전신류의 특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소극적인 자세지만, 그럴 만도 했다. 방금, 전신류의 극강격 광야포(狂野砲)에 직격당하고도 멀쩡한 모습이었다.
차작!
하야토와 카즈마가 황급히 공주의 앞을 막아섰다.
“공주님, 물러서십시오.”
“시끄러워, 너희들이 뒈지면 나라고 별수 있어! 그럴 바엔 같이 싸워야 할 거 아냐!”
합격한다고 희망이 있을까?
카즈마와 하야토는 좀 전의 과정을 되짚을수록 전율했다.
마녀의 신형은 너무 빨랐다.
후발제인의 검역을 발동하지 않았다면 쥐도 새도 모르게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더욱이 공주의 암격은 절묘했다. 카즈마를 노릴 때, 빈틈이 보였으니까. 하나, 그 찰나의 순간에도 여유롭게 막아 내고, 흘려버렸다.
“셋이 하게? 얘들이 참, 발랑 까졌네. 한데, 스릴 있고, 짜릿하긴 해.”
“뭐라는 거야, 늙지도 않는 괴물 같은 년이!”
“입이 아주 걸어. 속을 뒤집어 놓을 줄도 알고. 조금 교육이 필요하겠어. 몇 대 맞을래?”
“할 수 있으면 해 봐.”
“강단도 있네. 좋아. 네 앞에서 이 애들의 사지를 하나씩 찢어 줄게. 찢은 사지로 어디를 막아 줄까?”
위협적이라고 하기에는 장난스러운 말투였다.
변태적인 농담이라고 하기엔 미츠키는 느끼고 있었다. 저년이 하는 말이 절대 빈말이 아님을. 이런 일을 수도 없이 겪어 본 미친년이 분명했다.
“새하얗게 질린 채 헐떡이는 얼굴이 참 예쁘겠어.”
붉은 입술을 핥는 로즈의 갈망은 흡사 피에 굶주린 흡혈 마녀를 연상케 했다. 어려 보이는 외모와 달리, 세월이 전해지는 음험함은 변태적인 성향을 자아냈다.
어지간한 자극으로는 반응하지 않는.
‘짜증 난단 말이야.’
로즈는 한국에 올 때도 탐탁지 않았다. 조던이 처리하지 못한 찌꺼기를 분리수거하는 기분이었다.
한데, 그런 간단한 일마저 제대로 되지 않았다. 교류전은 엉망이 되고, 마이트와 썬더를 잃었다. 더욱이 안에서 벌어진 일조차 알아내지 못했다.
엉망 그 자체.
‘병신 같은 것들.’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하찮은 임무조차 처리하지 못하는 버러지는 사라지는 편이 나았다.
그렇다고 내버려 둘 수도 없고.
나선 이상 신속히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방해된다면 죽이고, 필요하면 세뇌하면 그만이었다.
퍼퍼퍼펑!
핑거붐이 작렬한다.
로즈의 손가락이 튕길 때마다 공간이 수축했다가 팽창하듯 폭발하고 있었다. 아까는 [죽음의 장미]를 이용한 가스라이팅이었다면 지금은 실제적인 파괴력을 갖추었다.
채채채챙!
가공할 무형폭이 연쇄적으로 터지며 하야토와 카즈마의 검역을 뒤흔들었다. 검기를 발출하여 핑거붐의 파괴력을 상쇄하지만, 격돌할 때마다 제공권이 무너졌다. 무형의 기폭, 기뢰에 의한 폭발은 중첩이 되어 위력을 더했다.
휘청!
합격에 의한 검기막이 붕괴했다. 검극, 검신, 검병을 타고 들어오는 무형의 폭경이 내부를 진탕시켰다. 검역합격이 무너지고, 빈틈이 생긴다.
슈아앙, 퍼어엉!
로즈는 이채를 띠었다. 방금 핑거붐이 방향을 잃었다. 폭발을 일으키려는 찰나, 핑거붐의 기폭선이 끊어졌다.
보이지 않을 뿐, 가느다란 무형의 마나가 심어 놓은 지뢰를 터뜨리는 역할을 했다. 폭발을 일으키기 전에 미리 던져 놓은 경로로 애송이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칫, 알아챘네.”
이 긴박함 속에서 공격 루트를 찾아내다니 놀랍도록 침착하다. 상부에서 공주를 주시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잠깐의 격돌 속에서도 전투의 흐름을 읽어 내고 반격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온실의 속의 화초와는 거리가 멀었다. 조금 더 냉혹하게 가다듬는다면 쓸 만한 병기가 될 자질을 갖추었다.
‘그년이 아니었으면 방금도 위험했어!’
미츠키로선 지수와의 대결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래서 짜증이 치민다. 대결은커녕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기만 했었다. 다시 도전했는데도, 격차를 줄일 수 없었다. 그 말은 여지를 둔 채로 가지고 놀았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생사지경에서 도움이 잘되고 있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따지고 보면 생명의 은인이었다.
‘미치겠네!’
인정하는 것과 별개로 위태롭기 짝이 없었다. 방어 후, 한 번의 빈틈에 전력을 쏟아 냈음에도 상대는 흠집도 나지 않았다. 일격에도 쓰러질 듯 연약해 보이는 외형과는 차원이 다른 격이었다.
‘날 가지고 놀려고!’
죽이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모골을 송연하게 만드는 섬뜩한 한기가 있었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 유린하려는 것이다.
“누가 오기를 기다리는 거면 헛수고야.”
버텨 봤자 소용없다는 로즈의 선언이었다.
미츠키, 하야토, 카즈마는 최대한 시간을 끌고 있었다. 폭발이 일어난 이상, 이쪽으로 사람이 올 때까지 버티려는 심산이었다.
마녀는 그마저도 알고 있었다. 미친년이 분명한데, 전투 감각은 귀신처럼 날카로웠다.
“저런, 정말이었나 보구나. 아유, 불쌍해라. 호호호호.”
“무슨 수작인지 몰라도, 네 뜻대로 되진 않아!”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정말 잘하는 줄 아나 봐. 그러면 보여 줘야지.”
“올 테면, 얼마든지 와 봐!”
로즈의 분위기가 더욱 싸늘하게 바뀌었다.
웬만하면 도발하지 않으려고 했던 미츠키는 사생결단의 의지를 불태웠다. 하야토와 카즈마를 위해서라도 벼랑에 몰린 인간의 한계초월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난 몰라도, 얘들은 죽어.’
미츠키는 마녀의 목적이 자신의 생포라는 걸 본능적으로 인지했다. 죽일 듯한 차가운 살기가 난무하지만, 공격에 허(虛)가 실려 있었다. 달리 해석하면 빈틈이 있었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경우엔 피하지 못할 수도 있었겠지만, 마치 자신의 전투력을 계산한 듯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다르다.
로즈의 심기가 변화했다. 맛있는 것도 계속 먹으면 질리는 것처럼, 반복되는 대치 국면에 지루함을 느꼈다.
미츠키는 전의를 극한으로 끌어 올리며 전신류의 극의를 발동했다. 전신의 장, 전신류를 펼치는 최적화된 공간이었다. 하야토의 천검기, 카즈마의 명화기와 융화하여 완벽한 벙커를 완성했다.
퍼퍼퍼퍼펑!
크윽!
빌어먹게도, 마녀의 핑거붐은 벙커버스터였다. 한 번의 폭발로 끝나지 않고, 연쇄적으로 폭발을 일으키며 내부를 휘젓는다. 동시에 로즈의 신형이 춤을 추며 곳곳에 잔상을 남긴다.
장미의 댄스.
실과 허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 이형환위의 잔상은 그들에게 혼란을 주었다. 연속해서 터지는 핑거붐도 위험한데, 잔상이 휘두르는 날카로운 가시는 셋의 진형을 조각조각으로 잘라 낸다.
스왁, 서걱!
카즈마와 하야토의 검이 두부처럼 조각이 났다. 반 토막이 된 검에 검기를 씌우지만, 그 순간 일으키는 폭발에 충격을 받고 떨어져 나갔다.
푸아앙, 크어어어어억!
꽈다다당!
하야토와 카즈마는 바닥을 속절없이 구르다, 지면에 칼을 박아 멈춰 섰다. 육신의 떨림이 가시지 않았다. 오장육부가 진탕되며 더는 버티지 못할 붉은 용혈을 쏟아 낸다.
쿨럭!
주르르르!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 육신의 거력도 사용성이 떨어져 버렸다.
지루해진 로즈는 허점을 놓치지 않았다. 이번 수로 사지를 모조리 뜯어 줄 심산이다.
“죽어라.”
“안 돼~~~!”
시게노 교관과 친위대가 나설 때는 미처 손을 써 보지도 못했다. 그들의 허망한 죽음에도 미츠키는 무력하게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어차피 저 둘이 없이는 버티기도 어렵고, 혼자 살아남아 봤자 인질에 불과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같이 죽는 편이 나았다.
슈웅!
미츠키의 정권이 허공을 갈랐다.
“안 됐네.”
뒤에서 들린 마녀의 목소리, 미츠키는 소름이 돋았다. 뒤돌아서 반격하기에는 늦었다. 회륜을 발동하여 회전력을 극대화한다고 해도, 어림도 없다.
꽈득
로즈의 백야마수가 미츠키의 목을 잡았다. 아니? 실체가 느껴지지 않는다. 위화감을 느낀 로즈가 돌아설 때, 왼쪽에서 미츠키가 나타났다.
“분신 스킬!”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미츠키로선 최후의 승부수였다. 카즈마와 하야토가 위험할 수 있으나, 마녀를 속이려면 극약 처방이 필요했다. 전신류의 극의 전륜강기를 펼쳤다. 일순 모든 내력을 폭발적으로 돌려 증폭시킨 후, 일거에 발산하는 폭뢰기였다.
퍼어어어엉!
혼연일체의 혼신을 다한 일격, 이보다 더 완벽한 정권은 나오기 힘들었다.
내지른 지점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아~~!
미츠키에게서 안타까운 탄성이 전해졌다. 내지른 이상, 정권에 감각이 있어야 했다. 허공을 친 허무함 속 전륜강기가 방향을 잃고 폭발한다.
“……분신!”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지.”
잔영에 잔영.
속임수에 속임수. 상황에 따른 전투 감각은 놀라운 수준이나, 미츠키가 발전했을 때의 완성형이 로즈였다. 비슷한 잠재력을 갖추었다면 관록과 경험을 무시하기 어렵다.
그 차이가 지금의 대치 구도를 만들었다.
퍼억!
로즈의 일수가 미츠키의 목을 강타했다.
영화에서는 목을 쳐서 기절시키는 장면이 종종 나오지만, 실제로는 어렵다. 일격으로 기절하지 않아서 여러 번 치다가 혹여 힘이 강하면 목이 부러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로즈는 전문가다.
내부로 스며든 로즈의 기운이 미츠키의 운신을 장악한다. 기력이 가닥가닥 끊어지면서 육신의 통제력을 잃는다.
“……젠……장!”
“이제야 내 손에 들어왔네. 어디, 어디부터 막아 줄까? 호호호호.”
공주의 대가 세긴 하지만, 로즈는 오히려 반겼다.
독 오른 암고양이를 정복할 때의 쾌감이 짜릿하다. 그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절망에 몸부림치는 걸 볼 때마다 극한의 오르가슴을 느꼈다.
“이 맛에 살지.”
“……그만!”
“네가 그만하란다고 안 할 내가 아니란다.”
“이 미친 변태…… 년!”
“맞아, 난 그런 년이야. 한데, 이 맛을 보면 너도 어지간한 걸로는 못 느끼게 될 거야. 호호호.”
재미난 장난감을 손에 들고 천진하게 웃는 미친 변태.
조직 내에서도 광년으로 통하는 로즈였다. 그녀에게 사로잡힌 목표물은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했다.
붕괴하여 망가져 버리거나, 또 다른 광인이 탄생하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