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224화 (225/374)

224. 불장(佛掌)(1)

관중석에 앉아 시상식을 보는 사내. 평범한 인상으로 슈트 핏이 잘 어울린다. 몸을 관리한 듯, 안 한 듯 희미한 존재감이 인상적이다. 아무도 그를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퍼스트나이트 2호.

시상식을 관람하고 있던 그가 신호를 보냈다. 시상식이 끝나고 관객과 생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때를 기다렸다.

우웅!

교류전에 열리기 전 설치한 고성능 마력탄을 작동시켰다. 관중과 섞여 있던 대원들, 퍼스트나이트가 일제히 움직인다.

꽈아아아앙!

귀를 찢어발기는 굉음이 기폭제였다. 대연무장 장막처럼 뒤덮은 검은 연기가 시야를 가린다.

까아아악!

인파 속에서 비명이 터진다.

폭발, 소리, 연기에 놀란 관객이 허둥지둥하며 우왕좌왕했다. 혼란한 틈에 퍼스트나이트가 목표물을 향해 쇄도했다.

‘로즈 님의 영광을 위하여!’

퍼스트나이트는 로즈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전략 병기였다. 교류전이 실패로 돌아간 후, 안심하여 긴장이 풀린 이 순간을 기다렸다.

‘모두 죽어라!’

로즈 님의 계획대로.

방해되는 존재는 제거한다.

쐐애액!

뻐억, 뿌가가각!

파아아, 푸어엉!

흑연(黑煙)으로 가려진 시야 속에서 일격일살의 폭력이 난무한다. 거대한 규격에 어울리지 않은 신속하고 과감한 권격이 목표물을 정확히 노렸다.

권공의 정수를 담은 일권. 권격에 닿은 생명체는 머리통이 박살 나며 뇌수와 선혈을 사방으로 뿌렸다.

“……아니!”

퍼스트나이트 2호의 입에서 다급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폭발이 일어날 때까지만 해도 로즈 님의 계획대로 진행이 되었다. 한데, 퍼스트나이트가 쇄도하기가 무섭게 예상치 못한 변수가 난입했다.

아카데미의 교관이나 생도였다면 이렇게까지 놀라진 않는다. 허용된 범주를 아득히 초월한 변수였다.

“……권왕!!”

여기서 권왕이 왜 나오냔 말이다.

권왕이 미리 와 있었다면 대비라도 했을 텐데, 관중석에서 부지불식간 등장했다. 그 말은 관중 속에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손녀와 제자를 축하하러 왔다면 정체를 숨길 필요가 없다.

자신들이 습격할 때를 노리지 않고서야.

“어떻게 알았지?”

“네놈들이 뛰어 봤자 이 몸의 손바닥 안이니라. 크하하하하하!”

뭐라!

퍼스트나이트 2호는 부들부들했다.

권왕의 손바닥 안이라니, 치밀어 오르는 수치심을 참기 힘들었다. 다른 이도 아니고, 권왕에게 심기 싸움에서 패배하다니!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무력이라면 또 모를까.

퍼어엉!

권왕은 관중 사이로 퍼스트나이트만 노려서 요격했다. 권풍이 마치 유도미사일 같았다.

그래도 그렇지, 저게 말이 되는 건가?

권왕의 무위는 알고 있던 정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햇살에 산책을 나온 듯한 여유가 현실감각을 무디게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퍼스트나이트 2호는 망설이지 않았다. 로즈 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데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

“공멸전을 펼친다.”

움직이는 족족 머리통을 부쉈다. 권왕의 자신감이 하늘에 닿아 있었다. 저 괴물을 상대로 정면 대결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퍼스트나이트의 공멸전은 자폭 공격이었다. 이리되면 관객이 입는 피해까지 모두 막기는 불가능하다.

“권왕, 애꿎은 사람들의 죽음은 전적으로 네 탓이…… 어?”

퍼스트나이트 2호는 대원들의 희생을 틈타 중국 생도를 노리려고 했었다. 하지만 채 한 발자국을 가기도 전에 가공할 마력이 일대를 휩쓸었다.

-앱설루트 홀드.

-마나실드 디펜스.

-마나동결.

3연창이 텀 없이 시전되는 절대급의 마도.

퍼스트나이트의 행동반경을 좁히고, 속성인 [등가교환]의 개방으로 자폭을 제한했다.

마제의 궁극기.

부르르르르르!

파국의 공멸을 노렸던 퍼스트나이트의 내부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발산하지 못한 마나가 역류하여 칠공에서 피를 토한다. 차라리 정면 대결을 벌였다면 지금처럼 허망하게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마제가 어째서?”

마제도 관중 사이에 숨어 있었다. 퍼스트나이트 2호는 계획이 완전히 어긋나 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이번에는 권왕과는 달리 이해되었다. 진리를 탐구하는 대마법사의 심기라면 예단하기도 어려울 테니 말이다.

어?

퍼스트나이트 2호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실패의 연속이지만, 그보다 놀란 건 고성능 마력탄에 의한 중국과 일본의 피해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은 대회장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 주변은 아카데미의 철혈구좌가 지켰다. 일본과 중국 측 교관은 남궁천과 시게노의 지시대로 움직였다.

‘마력탄이 아니었어?’

마력탄은 교류전이 있기 전 은밀히 심어 놓았었다. 한데, 누군가 고성능 마력탄을 가짜로 바꾸어 놓았다. 계획을 사전에 알아채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이변의 연속이었다.

허!

하나같이 일사불란하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걸 넘어 전무한 사태로 만들어 냈다. 퍼스트나이트 2호는 하도 어이가 없다 보니 실소가 터져 나왔다. 퍼스트나이트를 50명이나 동원했다. 이만한 전력이면 어지간한 수준의 길드와 문파는 단숨에 박살 낼 수 있었다.

‘완전히 읽혔다!’

권왕과 마제가 기다렸고, 마력탄은 소리만 큰 공갈탄으로 바뀌었다. 더욱이 정보가 샐 가능성을 대비해 아는 사람을 최소한으로 제한했다. 확실히 검증된 인원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선 이토록 완벽하게 걸려들기도 어려웠다.

‘우릴 기다렸구나!’

퍼스트나이트 2호는 소름이 돋았다.

이제야 보인다. 생도와 관객의 위치마저 계산이 된 것이다. 자신들이 움직일 동선과 교차하지 않도록 하고, 낌새를 알아차렸을 때까지 고려했다.

“권왕, 마제, 네놈들이었나?”

“우리가 네놈들의 뻔한 수작에 넘어갈 것 같았느냐!”

권왕의 당당한 외침에 마제는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헛바람을 삼켰다.

‘뻔뻔하기는.’

마제는 이번 사태를 예상하지 못했다. 교류전에서 사고가 발생했고, 무사히 소요가 마무리되어 긴장이 풀리는 이때를 노릴 줄 누가 알았으랴.

그런데도 권왕은 양심의 가책도 없이 우쭐대고 있었다. 제자의 공을 뺏어 먹고서도 당당하다.

‘이게 또 먹히는군!’

권왕에게 전략전술과 심리전에서 완패를 당하자, 습격자는 분노로 냉철함을 잃었다.

‘나 같아도 열 받지. 이걸 어떻게 참아!’

마제는 놈들의 심정을 십분 이해했다. 다른 이도 아니고 권왕에게 두뇌 플레이에서 졌으니 오죽하겠는가.

결국, 놈들의 분노는 마제에게 쏠렸다. 작금의 전략을 모두 마제가 했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 설령 진실이 아니라도, 퍼스트나이트에겐 마제여야 했다.

“마제여, 이겼다고 착각하지 마라!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놈들이 어디 보고 얘기하는 거야? 이 모든 작전은 바로 나 권왕에게서 나온 것이다!”

마제는 권왕의 개수작에 한숨이 흘렀다. 자기가 했다고 해 봤자, 상대가 인정을 안 하면 그만이었다. 평소 쌓아 놓은 행실이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그마저도 이용하는 권왕의 노림수를 고려할 때 방심해선 곤란했다.

‘하여간 보통이 아니라니까.’

상황이 의도한 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흘러갔다. 마제는 제자의 예측과 판단에 혀를 내둘렀다. 권왕도 제자의 장기짝에 불과했다. 머리를 쓰기보다는 난투극을 원하는 권왕의 성향을 고려한 맞춤 전략이었다.

한편으로 알면서도 이용당해 주는 권왕도 대단했다. 저러기도 쉽지 않을 텐데, 서로 죽이 잘 맞는 사제였다.

‘대체 어떻게 된 녀석이냐?’

처음 무진이 교류전의 시상식에서 환영 마법을 사용해 줄 수 있냐고 했을 때만 해도 생뚱맞았었다. 교류전에서 우승하기는 했어도 칠대 가문이나 대형 길드의 가주나 길드장이 시상식에 오진 않았다. 가문과 길드 간의 자존심 싸움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래 봤자 생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유를 묻자, 흑막의 노림수가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시상식은 일반인이 출입하기에 하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었다. 하나, 그리되면 흑막의 계획이 어긋날 테고, 피해 범위를 측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노린 대로 다 됐군.’

무진이 그린 그림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대연무장에서 시상식이 벌어질 테니, 사전에 조사했었다. 마력탄은 작동하기 전까지 흐름을 파악하긴 어려우나, 지점을 측정했다면 얘기가 달라졌다. 중국과 일본 생도가 앉을 자리를 살폈더니 고성능 마력탄이 설치되어 있었다.

마력탄이 터질 때를 노릴 테니, 최대한 비슷한 성질의 공갈탄으로 바꾸었다. 소리는 크고, 연기는 많이 발생하는. 보는 그대로 암중 세력은 우리의 허를 찌를 수단을 동원했다.

결과적으로 모두 막혔지만.

‘이게 예측만으로 알 수 있는 건가?’

미래 예지가 아니고서야.

하나, 그런 속성이 있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속성이 아니라면, 더욱 대단한 일이다. 모든 상황을 손바닥 안에 놓고 계산했다는 의미였다.

대마법사가 되면 일반인과는 다른 예지에 가까운 통찰력을 가지게 되지만, 그런 마제조차도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예측하진 못한다. 그걸 고작 열일곱 살 생도가 해낸 것이다. 눈앞에서 목격하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퍼퍼펑, 꽈아앙!

하하하하하!

물 만난 물고기처럼 마구잡이로 날뛰는 권왕을 보고 있자니, 마제는 입맛이 썼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제자로 할 걸 그랬다. 괜히 명예 제자로 받아들였다. 저딴 망나니보단 대마법사의 제자가 훨씬 어울리지 않는가.

‘복은 타고났구나!’

마제로서도 도움을 받은 처지라 무진의 요청을 거부하진 못했다. 실상, 무진이 [신의 정화]를 주지 않았다면 몸을 좀먹고 있던 독버섯을 알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흑막의 암수에 당한 것이다. 당장은 문제가 안 된다고 해도, 계기가 있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예측 불허였다.

‘이런 놈들이 활개 치고 다니는데도 몰랐었다니.’

간단히 제압당하고 있어서 대단치 않아 보일 뿐이다. 백작급의 등급에 자폭조차 서슴없이 자행했다. 미리 대처하지 않았다면 인명 피해를 막기는 어려웠다. 자신과 권왕, 교장과 철혈구좌의 신속, 정확한 대응이 아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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