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 MVP(5)
-상을 받아도 문제야, 이후에 얼마나 또 나댈까?
-홍보하는 처지에서 천국과 지옥이 하루, 아니 1시간마다 바뀌는 기분일걸.
-국제적으로 얼굴을 알릴 거면 권후가 훨씬 낫지.
-동문이면 양보해라.
-이러다 둘이 결혼하는 거 아냐? 그럼 대박인데.
-권후가 뭐가 부족해서!
-무진좌도 부족한 건 없다.
댓글은 누가 될지 긴가민가했다. 그래서일까? 따 놓은 당상이어야 함에도 고민하게 만드는 무진이 더 대단해 보였다. MVP와는 별개로 국가적 위상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부류도 적지 않았다.
-우리야 이해한다고 쳐도, 중국과 일본은 다르잖아.
-색안경을 안 끼고 봐도 이상한 놈이긴 해.
-이제 고작 열일곱 살, 한 해 지나면 열여덟 살이야. 한데, 인생의 희로애락이 롤러코스터의 연속이잖아.
-우리도 조마조마한데, 아카데미나 국가의 얼굴마담으로 쓰기는 굉장히 위험하지.
-스트레스의 시대야. 이런 때일수록 안전하게 가는 편이 나아.
-인생은 원래 도박이야, 안전 지향은 천천히 망하는 지름길 루트라고.
재미를 택하느냐, 안전을 택하느냐.
인터넷은 무진, 지수, 태수를 놓고 투표를 진행하고 있었다. 아카데미에선 성운맹주로 활약하지만, 인지도로 놓고 보면 가장 떨어졌다. 무진과 지수가 팽팽하고, 그 뒤로 태수가 따르고 있었다.
파파파파팡!
푸우우웅, 퍼어엉!
길지 않은 시상식이지만, 불꽃놀이처럼 화려하고 성대했다. 모처럼의 승리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테러로 인한 불안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였다.
한·중·일 교관이 흑막의 조직원이란 사실은 심각한 문제긴 했다. 교관이 흑막인데, 어떤 학부모가 아카데미에 생도를 맡기겠나.
1위부터 10위.
2명을 빼고 전부 한국 생도로 채워져 있었다. 점수판은 원래 비공개였지만, 중국과 일본이 교류전을 매번 이기면서 공개로 바뀌었다. 매번 점수판을 볼 때마다 한국은 속이 썩어 문드러졌었다. 성좌의 선택이 남아 있다곤 하지만, 갭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와아아아아!
60명의 점수판이 공개되자, 대연무장은 환호성과 박수로 들어찼다. 특히 생도의 학부모는 덩실덩실 춤까지 추며 자식들을 연호했다.
-점수판 화려한 거 봐라!
-좋은 줄은 알았지만, 기대 그 이상이다!
-진작 이렇게 잘하지 그랬어!
-이전의 교류전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알 수 있는 거지.
-일본과 중국의 표정들 봐라. 존나 행복하다!
-한국의 선전을 축하한다.
-쿨한 척하기는, 속에서 천불이 터지는 거 알거든.
10위까지 상장과 더불어 부상이 있었다.
순서대로 빠르게 진행했고, 교류전의 피날레인 MVP만 남았다.
-MVP는 강무진 생도입니다. 진심 어린 성원과 박수를 부탁드립니다.
와아아아아아아!
짝짝짝짝!
막판 지수와 태수로 의견이 분분했으나, 교장은 확실하게 못을 박았다. 실력만 있으면 된다는 식은 아니긴 해도, 주관적인 사견은 배제되었음을 공인했다.
저벅, 저벅!
호명받은 무진은 박수갈채를 받으며 단상 위로 올라갔다. 교장이 접대용의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반겼다. 평소라면 식은 죽상이셨을 텐데. 이제는 연기력도 많이 느셨다.
“장하다! 정말 잘해 주었어!”
“이게 다 선생님의 아낌없는 가르침 덕분입니다.”
아름답고 훈훈한 사제 관계였다. 사부는 제자를 칭찬하고, 제자는 사부를 공경하는.
-개차반인 줄 알았는데, 정신머리는 박혀 있네.
-교장이 편애한 거 아냐?
-편애한다고 교류전에서 MVP를 받냐?
-교장은 은퇴하고, 과외만 해도 대박이겠다!
-강남 사모님들이 가만두지 않을걸.
-교장이면 돈다발로 싸대기를 수백 대는 맞겠지. 5만 원권이면, 그게 다 얼마야.
-나도 돈다발로 뺨 맞고 싶다.
-넌 천 원 다발이겠지!
-그거라도 좋아!
교장은 MVP를 받은 무진을 치하한 후, 부상으로 나온 마나정수를 내어 주었다. MVP가 받을 마나정수가 전광판에 뜨자, 환호성이 터졌다. 수백억 가치의 마나정수를 받았으니, 외화를 벌어들인 애국이었다.
“와, 저게 뭐야?”
“이번 교류전은 장난 아니네!”
“전부 s급 이상의 마나정수잖아!”
“저걸 다 준다고?”
어째서 일본과 중국 교관과 생도의 표정이 썩어 가는지 이해가 되었다. 저 중에 하나만 먹어도 최소 한 단계는 등급 상향을 맛볼 수 있었다. 교류전의 MVP가 역대로 최상급 각성자로 위명이 자자한지 새삼 실감하게 했다.
“감사합니다.”
무진의 인사에 남궁천과 시게노는 간신히 분기를 다독했다. 인상이 구겨지려고 했지만, 웃어야 했기에 경련이 일어날 것 같았다. 어제 교장이 한 말도 있어서 조심스러웠다.
“교류전 MVP에 부끄럽지 않을 훌륭한 생도가 되어 주길 바란다.”
“한·중·일 최강의 무인이 되겠습니다.”
“기대하마.”
“오래 안 걸립니다.”
원치 않은 덕담 후, 마나정수를 내어 주었다. 손끝에 힘이 가해지는 건 기분 탓일 것이다. 이 망할 놈이 한·중·일 최강의 무인이 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
‘내가 그 디딤돌이 되는 건가?’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
남궁천과 시게노는 강하게 부정했다.
마나정수를 받은 무진은 병뚜껑을 땄다. 아니길 바라지만, 좀 있으면 정신이 없을 수도 있었다.
뽕!
예기지 못한 돌발 행동에 남궁천과 시게노는 물론 관중과 시청자들까지 갸우뚱했다.
-설마 마시려고?
-저걸 왜 여기서 마셔!
-마나정수는 폐관 수련장에서 마시는 거 아니었어?
-누가 뺏어 먹나?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퍼포먼스면 죽이네.
-내 이럴 줄 알았지, 쟨 관종이라고!
열었다 닫는 정신 나간 짓거리는 하지 않을 테고, 일단 땄으니 향이라도 맞으려는 줄 알았다.
마시잖아!
꿀꺽, 꿀꺽!
뽕!
1병은 그렇다 치자고, 왜 하나를 더 까는데?
무진은 불사가호의 정수를 해장을 위한 숙취 해소 음료처럼 마셨다. 다들 이쯤에서 끝날 줄 알았지만, 절대신력의 정수마저 입안에 털어 넣었다. s급 정수가 부작용이 적기는 해도, 연달아 마시면 탈이 날지도 몰랐다.
-저렇게 마셔도 되는 거야?
-안 되겠지.
-안 되긴 뭘 안 돼. 마시지 말라는 말도 없잖아.
-너 같으면 s급 정수를 쟤처럼 물 마시듯 연거푸 마시겠냐?
-아니겠지.
마시지 말란 경고문은 없지만, 상식적으로 섞어 먹진 않는다. 그런 기본적인 복용법을 무시하고 무진은 시원하게 들이켰다.
‘이런 미친!’
‘제정신인가?’
마나정수를 온전히 흡수하려면 옆에 사부나 교관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 만약을 대비하고, 흡수율을 높일 수 있었다. 하급 물약도 아니고, 이따위로 복용하다니.
남궁천과 시게노는 이러려고 부상을 준비했나 자괴감이 밀려왔다.
‘a급 정수로 가져왔어야 했어!’
‘우리가 우승할 줄 알았거늘.’
일본과 중국은 모두 자국이 우승하리란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이번 교류전의 부상 등급을 올렸다. 자신들이 등급을 올린 이상, 한국도 동급의 부상을 내와야 했다.
한국의 안방에서 망신을 주고, 승리를 자축하는 퍼포먼스를 노렸거늘. 되레 한국만 좋은 일을 하고 말았다.
대연무장의 방송 카메라가 전부 무진에게 집중되었다. s급 마나정수를 마신 효과가 궁금하기는 했다.
카아.
술 마시냐.
부작용이 아니더라도, 지나치게 잠잠하다. 최소한 경련을 일으키거나, 마나풍이라도 일으켰다면 모를까. 아무런 반응도 일으키지 않았다.
“만년삼왕이나 드래곤하트가 아니라서 그런지 별 반응이 없네요. 그땐 어마어마한 마나풍이 일었는데, 쩝.”
……?
무진의 아쉬워하는 기색에 대연무장은 정적이 흘렀다. s급 마나정수를 홀라당 처먹고 한다는 소리가 간에 기별도 안 간단다. 대체 흡수율이 얼마나 폐급이면 저러냐고. 이 정도면 사하라 사막에 안개비만 내려도 홍수가 날 판이다.
“아예 안 오른 건 아니니까, 너무 심려하지 마세요.”
심려하긴 누가?
관중과 시청자도 아까워서 속이 쓰리거늘. 깨진 독에 물을 부은 일본과 중국은 말해 뭐 하겠나. 남궁천과 시겐노뿐만 아니라 생도들도 기가 차서 말문이 막혔다.
‘이럴 거면 왜 마셔!’
‘차라리 아끼다 똥이 되고 말지!’
‘흡수율이 얼마나 똥망인 거야?’
조용하던 댓글창도 시끄러워졌다. 일본과 중국의 네티즌이 아우성을 치며 난장판을 만들었다. 교류전을 통해서 못 볼꼴을 참 많이도 보여 주고 있었다.
-어떠냐, 이게 무진좌의 맛이다!
-존맛탱이지 않냐! 크크크크!
-낭비는 맞는데, 왜 이렇게 통쾌하냐!
-쟤들 부들거리는 걸 보니 행복하다!
-이번엔 무진이가 심했어!
-그러게 만년삼왕이나 드래곤하트 정도는 줬어야지!
-같은 거 먹으면 효과 없어!
-그러니까.
-무진이라면 또 하고도 남지.
무진의 대환장 생쇼에 중국과 일본의 교관, 생도, 여론은 패닉에 빠졌다. 복용해도 효과가 없으면 최소한 동기들에게 양보했어야 했다. 욕심은 또 많아서 자기가 마셔 버리고선, 저딴 소리를 하니 더더욱 가관이었다.
헐!
무진을 알고 있는 지수, 태수, 유정, 혜진, 예슬, 상원, 4인방을 제외하면 우리 생도들도 어이가 없기는 매한가지였다. 모처럼 교류전 우승을 축하하러 온 선배 생도들마저 아연실색했다.
‘또라인 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실로 상종 못 할 녀석이다.’
‘아군은 못 만들어도, 적군은 만들지 말았어야지.’
‘저게 대체 얼마야?’
과욕을 부리는 바람에 우리 생도에게도 배척받았다. 스텟이라도 올렸으면 모를까, 교관들의 반응을 보니 글렀다. 마나정수를 흡수했을 시 마나풍은 당연한 현상으로 숨기기 어렵다. 그걸 지척에 있는 교관이 못 느낄 리 만무했다.
끄응!
죽 쒀서 개 준 남궁천과 시게노의 안색이 짜게 식었다. 본국으로 돌아가는 즉시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먹을 팔자였다.
‘만년삼왕과 드래곤하트를 먹었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어!’
‘그걸 복용하고도 2갑자라고 했을 때부터 이상하긴 했지.’
6갑자는 돼야 했을 내공이 2갑자에서 멈췄다. 2갑자가 적지는 않더라도, 6갑자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었다.
남궁천과 시게노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꾹꾹 눌렀다.
사전에 교장의 언질을 받은 것도 있고, 대비할 필요는 있었다. 다만, 교장의 억측일 가능성이 컸다.
‘맘에 들진 않지만, 따르는 수밖에.’
‘사실이면 공적을 쌓을 순 있겠지.’
하나, 교장이 너희들 생각해서 준 기회라는 듯한 언질은 자존심을 건드렸다. 마치 뭘 해도 소용없다는 듯한 뉘앙스까지 풍겼다.
무진은 제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지수와 친구들은 축하해 준 반면, 주변의 동기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MVP 수상이 끝나고 난 후에는 별거 없었다.
-교류전 시상식을 마치겠습니다.
시상식이 끝이 나자 생도와 관객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교류전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서 가족이 같이 왔었다. 끝나고 가족끼리 고기 파티는 국룰이었다.
일본과 중국 측 교관과 생도가 대연무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꽈아아아앙!
폭발이 일어나며 대연무장을 뒤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