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 강태공(1)
인공 던전 습격 사건으로 아카데미가 발칵 뒤집혔다.
혼란을 피하고자 사건 자체를 숨기는 것도 한 방법이나, 그러기에는 내막이 밝혀졌을 때의 파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인공 던전에서 사망자가 나온 데다가 생도를 습격한 대상이 한·중·일 교관이었다.
그나마 생도들이 무사해서 불행 중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생도들 사이에 피해자가 나왔다면 걷잡기 어려운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
인공 던전에서 막 생도들이 나왔을 때의 반응도 이상했었다. 2차 각성 후 영상의 끊어짐이 있었지만, 이후에는 정상적으로 송출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든 영상을 차단하기는 불가능했다.
현장에서 비친 생도들과 이를 맞이하는 각국 교관들의 행동이 의혹을 부추겼다. 아카데미 교장을 향해 언성을 높인 남궁천, 시게노 교관이 비쳤기 때문이다. 예기치 않은 단체전 중단의 책임을 묻는 것 같았다.
그런데 생도들을 마지막으로 이끈 차성진 교관이 나선 이후, 남궁천과 시게노의 안색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사태 파악을 할수록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인공 던전에서 벌어진 일을 보고받은 교장이 단상으로 나서려고 하자, 시게노와 남궁천이 급히 만류했다. 서로 간에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몰라도, 두 교관이 사정하는 모양새였다.
교관과 합의를 봤는지 교장은 생도들의 상태와 안정이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단체전의 중단을 밝혔다. 차후, 자세한 내막을 밝혀 공표하겠다고 약속했다.
영상이 나갔음에도, 어떤 사태가 벌어졌는지 알 수가 없기에 인터넷에 논쟁의 향연이 벌어졌다. 한·중·일의 해묵은 감정이 토해지며 난장판이 되었다.
-대지진 때 독을 탔던, 야비한 조센징의 사악한 음모가 확실해!
-소국의 빵즈들이 암수를 쓰지 않는 이상, 개인전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됐지!
-이때다 싶나 보네. 지네들 교관이 교장한테 사정하는 것 못 봤냐. 아주 살려 달라고 발악하던데.
-이번에도 독을 썼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 대중화의 생도가 절대 질 리 없지!
-언제부터 짱개와 쪽발이가 이렇게 단합이 잘됐냐!
-조센징은 국제적으로 왕따야, 고립된 거 자기들만 몰라.
-이것들이 세계가 인정하는 한국을 적대하다니, 곧 벌벌 떨며 오줌을 지리게 될 거야!
잘잘못은 중요하지 않았다.
일본과 중국은 합작하여 한국의 음모론을 거론했다. 교류전이 중단되기는 했어도, 확정된 상태였다. 이렇게 된 바에는 이번 교류전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편이 중국과 일본으로선 이득이었다.
누가 수를 썼는지보다,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이기에 몰아가기도 수월했다. 어지간해서는 한국은 책임 소재에서 벗어나긴 어려웠다.
이 기회에 한국의 기를 눌러 줄 필요가 있었다. 이번 한국 생도의 기량이 그들이 보기에도 위협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한국이 그렇지 뭐, 이 사태를 어떻게 책임질 거야.
-교류전을 한국에서 열 때부터 불안했었어!
-설령 습격자가 나왔다고 해도, 국제 교류전인데 대비했어야지.
-다음에도 한국에서 열리면 출전하지 않는 게 이로워.
-대회 준비를 얼마나 허술하게 했으면 던전에서 문제가 발생하냐고.
-한국은 다음 대회부터 참가하지 못하게 해야 해.
-그건 아님, 한국은 바닥에 깔아야 제맛이야.
-개인전 보고 쫄아서 저러는 거 아냐.
아카데미는 생도들을 집이나 호텔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사태를 파악하는 데 생도들의 증언이 필요하다 보았다.
실상, 생도 안에도 배신자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혹이 있었다. 아카데미 내 통신 시설을 차단한 건물에 분리해 놓았다.
그러는 동안 암중 세력에 동조한 교관에 대한 심문이 있었다. 심문은 각국에서 따로따로 이루어졌다.
아카데미에서 하겠다고 하자, 강하게 반발한 것이다. 자기들 교관은 자기들이 해야 마땅하다는 명분이었다.
의외는 교장이 흔쾌히 허락했다는 점이다. 물고 늘어질 줄 알았기에 다소 안도했다.
남궁천과 시게노가 각각의 방에서 배신자의 심문을 주도했었다. 한데, 시작과 동시에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사태 수습은커녕 시작부터 괴랄한 난이도였다.
“어째서 점혈이 안 풀리는 거야?”
“빌어먹을, 이빨은 다 어디 갔어?”
점혈을 풀기 위해 갖은 수단을 펼쳤지만, 요지부동으로 풀리지 않았다. 무시하고 잘못 풀었다가는 즉사할 수도 있었다. 해제 스킬을 동원했음에도, 역효과만 났다.
그럼에도 강제로 풀었다가 혹여 교관이 죽기라도 한다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자신들에게 쏠린다. 독박을 쓰고 싶지 않은 이상, 당분간이라도 배신자는 살아 있어야 했다.
하아.
이거저거 한참을 해 보다 결국은 두 손 들어야 했다. 가문이나 문파마다 독문의 점혈법이 있다고는 하나, 그 수법은 대동소이했다.
하물며 일개 생도의 점혈수법에 지나지 않았다. 권왕가의 가주나 장로가 아니라면 대수롭지 않다고 여겼거늘.
일이 꼬이려니, 계속 꼬인다.
참으로 난처해졌다.
빠드득!
교장에게 맡겨 달라고 자신 있게 말했었다. 자신들이 알아서 밝혀내겠다고. 그런데 고작 점혈을 풀지 못해서 손발이 묶였으니, 답답함에 짜증이 치밀었다.
하아!
101호, 102호 취조실에서 나온 남궁천과 시게노의 얼굴은 10년은 더 늙어 있었다. 특히 시마타를 추천했던 시게노는 안색이 파랗게 죽어 갔다.
그렇다고 내색하기도 힘들다. 무능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으니, 방향을 돌렸다.
“꼴이 말이 아니군.”
“독문점혈수법만 파고들었나 보구려.”
“그렇게 봐야 하는 건가?”
“어쩔 수 없지 않소.”
시게노와 남궁천은 다시 교장을 찾아가서 사정해야 했다. 그 사실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교장이 직접 처리한다는 걸 만류하고, 배신자를 데리고 왔었다. 당연히 책임을 지고 밝혀내야 했었다. 체면과 위신이 걸린 문제였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자존심을 내세울 순 없었다.
“암중 세력의 수작에 철저히 놀아나고 말았구려.”
“이 사실이 밝혀지면 우린 끝장이오.”
남궁천과 시게노가 안절부절못하는 연유였다. 애초에 한국을 합공하기로 모의했으니, 전말이 밝혀지는 순간 책임을 면하기 힘들었다.
자신들로만 끝나면 다행인데, 가문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었다. 마나를 잃고, 지하 감옥에 평생 수감될 수도 있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그래서 더더욱 분노했다.
아무리 수작에 넘어갔다지만, 암중 세력의 손발이 되어 움직인 꼴이었다. 자칫하면 이대로 암중 세력의 하수인이 될 판이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교관의 자백을 받고, 생도들의 입을 단속해야 했다. 자기들도 밝혀지면 좋지 않은 일이니, 이제부터라도 잘 처리하면 되었다.
“하필이면 그놈이라니.”
“그 덕에 살아나지 않았소.”
“이걸 살았다고 할 수 있나?”
“혹, 생도가 죽기를 바란 거요?”
“누가 그렇다는 거요!”
만약 생도들 전부 피를 토하고 죽었다면 다행이란 생각을 해서였을까? 남궁천과 시게노는 공조했음에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설령 사실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반대해야 했다. 어차피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이다. 어떻게든 암중 세력과 결탁했다고 몰리는 최악의 사태만은 피해야 했다.
저벅, 저벅!
교장실로 가는 내내 남궁천과 시게노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일본과 중국이 작당해서 협공했다는 사실이 밝혀져도 곤란하다. 무엇을 해도 좋지 않은 고립무원에서 아쉬운 소리를 또 해야 했다.
그것도 가장 하기 싫은 놈에게.
우뚝!
교장실을 앞에 둔 남궁천과 시게노는 망설였다.
한숨만 내쉰다고 사태가 해결되진 않는다. 어떻게든 심문해서 연관성을 부정해야 했다.
똑똑!
노크를 한 후 문을 열었다.
드륵!
헐~!
교장실에 들어온 남궁천과 시게노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부탁하려고 왔지만, 이게 대체 뭐 하는 짓거린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뭘 하고 계신 겁니까?”
“식사 중이었네만.”
“아니, 이 판국에 밥이 목구멍으로……! 됐고, 이게 다 뭡니까?”
“수제자가 직접 차려 준 음식이네만.”
탁자에는 100가지 사팔진의 육해공 만한전석이 차려졌다. 만주족, 한족, 산동, 광동 요리가 현대식으로 퓨전되어 화려함을 자랑한다. 중국 특유의 음식 문화를 여실히 보여 준다. 남는 건 참아도, 모자란 건 모독으로 치부하는.
“교장 사부님, 중식도 오랜만에 먹으니까 괜찮죠?”
“피를 얼마나 얇게 한 것이냐? 이게 돼?”
“내력 운용을 정교히 하면 얼마든지 가능해요.”
“입이 호강하는구나. 이러니 꼭 중국 황제라도 된 기분이야.”
“별로 대단치 않아요.”
시게노와 남궁천은 철저히 소외되었다. 지금 시점에서 저런 한가로운 대화를 하는 것부터가 상식적이지 않았다.
하물며 눈이 호강하고, 코가 황홀한 요리의 향연은 너무하지 않나. 누군 배후를 찾아내려고 똥줄이 타는데, 누군 여유롭게 요리를 음미하고 있다니.
“산서산 죽엽청이에요.”
“너도 한 잔? 아차, 몰래 하거라.”
“예, 몰래 마실게요.”
“그래야지.”
뭘 그래야지야!
교장이 생도한테 술을 권하는 게 말이 돼. 불량 생도를 꾸짖어도 시원찮을 판국에! 아카데미가 아주 잘도 돌아간다.
지나치게 자연스러운 상황이라, 남궁천과 시게노는 말문이 막혔다.
자유롭다 못해 아주 살판이 났다.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통제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지.
“이런, 손님을 세워 놓았군. 식사 전이면 와서 하시구려.”
“……음식이 지금 목구멍으로 넘어갑니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조급하게 군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지 않나.”
“그래도 그렇지. 만한전석은 심하지 않소!”
“개인전 땐 융통성이 있더니, 의외로 빡빡하게 구는군. 어디 얼마나 바쁜 일이기에 찾아온 것인지 말해 보게. 혹, 점혈이 풀리지 않았나?”
히익!
정곡을 제대로 찔린 남궁천과 시게노는 왈칵! 표정을 구겼다. 지금까지 교장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난 것만 같았다. 다급하게 찾아온 연유를 알고 있으면서 여태 태연하게 식사나 하고 자빠졌다니, 자신들을 농락하는 짓이었다.
“알고 있었으면서 어째서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이오?”
“나도 지금 무진이가 말해 줘서 알았네. 하물며 생도의 점혈을 교관이나 돼서 풀지 못할 줄 누가 알았겠나? 그리 자신하기에 난 또 알아서 잘할 줄 알았지.”
“그런!!”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남궁천과 시게노는 따지지 못했다. 믿고 있었다는데 그 앞에서 뭔 말을 하겠는가. 자신들 스스로 무능을 드러낸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예상 밖이긴 한데, 찾아온 연유가 해혈법 때문이라면 간단하군. 무진아, 요리가 식기 전에 어서 말해 주거라.”
“이래서 제가 말했잖아요. 권왕가의 점혈법을 배우지 않으면 풀지 못한다고. 한데, 안 된다고 했더니 뭐라고 했더라…….”
“이 녀석, 사람이란 실수할 수도 있는 거고. 나이 먹었다고 다 어른은 아니니라.”
“역시 교장 사부님은 배운 분이세요.”
이것들이 대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