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3)
슈웅, 퍼엉!
정신이 팔린 틈에 등을 노린 기습적인 권풍이었다. 돌아서려던 마이트는 멈칫하고 말았다. 그 순간 정면을 장악하는 무형지기에 전율이 일었다.
슈웅, 퍼엉!
당황한 마이트를 또다시 권풍으로 기습하는 무진이었다. 피스트킹과 대치하느라, 반격하지 못하는 마이트를 노린 것이다.
“……이놈이!”
“앞을 봐야지.”
자동 방어 스킬인 [파워실드]를 발동하여 권풍을 막아 내긴 했다. 사실 마이트 디펜스가 있는 이상, 생도 따위의 권풍에 심각한 대미지를 입진 않는다.
그러나 권왕에게 정신을 집중하는 사이에 얌생이처럼 빈틈을 노리니 분노가 치밀었다. 무시하고 이 얄미운 놈을 처리할 수도 없기에 더더욱 열이 뻗쳤다.
“갈가리 찢어 준다는 사람 어디 갔나? 왜 오지를 못해?”
“……이놈! 사부나 제자나 비겁하기 짝이 없구나!”
“내 사부님은 권왕이시고, 저분은 피스트킹이라잖아. 다른 사람을 왜 내 사부라고 하는 거야?”
“뻔뻔한 놈들!”
“초면이지만 감사합니다, 피스트킹!”
끄덕!
본인 피셜 피스트킹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트는 물론 모두는 어이를 상실했다. 누가 봐도 사제지간이 분명해 보였기에 더더욱 기가 막혔다. 저런 정신 나간 짓거리를 대놓고 한다는 것부터가 그 사부에 그 제자였다.
정체를 숨기려고 노력이라도 했으면 또 몰라, 이건 숫제 일부러 농락하고 있는 것이다.
“이 빌어먹을 놈이, 죽여 버리겠어!”
“그대는 본투비 피스트킹을 외면할 수 없다.”
피스트킹이 본격적으로 쇄도해 들어오자, 거리가 단숨에 좁혀졌다. 마이트는 지척에 도달한 피스트킹의 주먹을 마주해야 했다.
이게 주먹인지, 절벽인지 모르겠다.
퍼어엉, 투아아아아!
주먹과 주먹이 충돌했다.
기의 파문이 사방으로 번지며 너울을 일으켰다. 내외력의 집중된 정강의 정권은, 초월권격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일기권투의 격돌로 번지는 기파가 천지개벽을 이룬다.
파파파파파팟!
첫 충돌은 시작에 불과했다.
근접 거리에서 주먹과 발이 번개처럼 교차하며 물러서지 않는다. 거구와 거구의 대결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초스피드의 향연.
파아앙, 파앗!
막고, 피하고, 공격하는. 삼박자가 한 호흡에 이어졌다. 충돌의 여파로 발생한 폭풍적인 기파에 신형이 보이지 않는다.
쐐애애애앵!
휘몰아치는 와류는 날카롭고 강력한 흉기였다. 파편처럼 부서진 편린에 닿기만 해도 지면의 거죽이 벙커버스터처럼 터져 나갔다.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는 강자의 대결이었다.
휘이이잉!
퍼엉, 퍼엉!
치열한 공방전 속, 거리를 벌리면서도 간간이 권풍을 날려 주는 무진의 짤짤이는 기행 그 자체였다. 실제로 무진의 권풍은 충격파에 의해 제 위력을 내지도 못했다. 거의 타격 없는 맹탕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완전히 쓸모가 없지는 않았다.
닿기는 닿는다.
살짝이라도.
저 무지막지한 기파를 뚫고 들어간 것만 해도 대단하나, 실제적인 타격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빠드드득!
그저 마이트의 분노에 기름을 부어 주기는 했다.
피스트킹과의 대결에서 우위를 접하기는커녕 백중세가 이어지고 있었다. 경각의 빈틈도 허락하지 않는 대치 국면이었다. 그러니 이 간지럽지도 않은 권풍조차도 다른 때와 달리 무척이나 거슬릴 수밖에.
용호상박 속 미세한 차이는 승부를 가르는 변곡점이었다. 명색이 한국을 대표하는 가문의 주인이 이따위 치졸한 수를 쓰니, 마이트는 울화가 치밀었다.
“네놈이 그러고도 권왕이더냐!”
“본좌는 피스트킹이다.”
“어이, 덩치! 오해하지 말고 들어, 그분은 내 사부님이 아니셔.”
사제가 쌍으로 환장할 조합이었다.
일룡과 미츠키를 비롯한 한·중·일 생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제의 조합은 그렇다 쳐도, 권왕의 무위는 그들이 아는 범주를 넘어섰다. 왜 그토록 권왕의 악명이 자자한지를 체감하게 해 주었다. 그런 권왕과 박빙의 공수를 주고받는 자도 범상치 않았다.
‘장로가 아니라 문파 최고수를 넘어선다.’
‘검가의 가주가 아니라면 어림도 없을 거야.’
‘이 와중에 꼽사리는 잘 끼네!’
권왕와 마이트의 공전절후한 대결의 승패를 좌지우지하는 건 공교롭게도 무진이었다. 타이밍을 노렸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어쨌든 마이트의 심기를 절묘하게 흔들어 놓았다.
투웅!
뻐억, 푸아아아앙!
무진의 권풍이 마이트의 뒤통수를 건드렸고, 방어가 흔들린 마이트는 빈틈을 드러내며 피스트킹의 권경에 강타당했다.
우웅!
일격을 허용한 마이트는 디펜스와 [파워실드]로 손실을 최소화하려고 했으나 어림도 없었다. 권격에 담긴 파산결과 와류의 극에 이른 전사경이 내부를 휘저었다.
크윽!
투웅!
격전의 전장 속 무진의 권풍은 마이트의 대가리를 착실하게 톡톡 건드렸다. 어지간하면 무시할 텐데, 그러기도 어려웠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고, 무진의 권풍에 담긴 경력이 마이트의 내부에 차곡차곡 쌓였다. 물방울에 바위가 뚫리는 자연의 이치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가속도가 붙었다.
“……이놈!”
“나한테 정신 팔 때가 아닌데.”
피스트킹은 흔들리는 마이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마이트는 무진에게 신경을 쓰기는커녕 방어하기도 급급했다.
“날파리 같은 놈이!”
화가 머리끝까지 폭발한 마이트는 [야수화] 속성을 개방했다. 그의 육체를 구성하는 웨어울프의 DNA가 각성을 통해서 실체를 이루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야수화]를 3단계까지 끌어 올렸다.
투드드득, 크어어어어엉!
[야수화]가 3단계에 도달하면 원래대로 돌아오는 데도 시간이 걸리고, 그 후폭풍으로 인한 마나 고갈로 최소 반년을 요양해야 했다. 무인이 선천진기를 소모하는 방식과 같았다. 그야말로 마지막 비장의 수였다.
우우우우웅!
찌리리리릿!
가뜩이나 거구인 마이트의 육신이 거의 2배 이상 부풀어 오르고, 웨어울프처럼 전신에 털이 돋아나 수북하게 덮었다. 전 세계 탈모인들이 광기를 발산할 광경이었다.
크르르릉!
웨어울프로 각성한 마이트는 피스트킹을 향해 포효했다. 마치 사자후를 발산하듯, 일대를 쩌렁쩌렁 울렸다.
찌릿, 찌릿!
사나운 포효에 실린 야수의 흉포함은 이제껏 겪어 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이었다. 인간이 왜 맹수의 포효에 꼼짝을 하지 못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였다. 생도들은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고 몸이 굳었다.
“이 모습을 한 이상, 네놈이 설령 권왕이라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피스트킹 레전드 2단 가동.”
“그딴 유치한 속임수가 통할 것…… 어?”
“피스트킹 레전드 3단 가동.”
“……웃기지 마라, 허세 따윈 통하지…… 헉!”
마이트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이었다. 3배로 강화된 디펜스와 [파워실드]가 종잇장처럼 찢기며 안면을 강타했다.
크아아아악!
얼굴 한쪽이 움푹 들어갔다. 이빨이 빠지는 걸 너머 가루가 되어 부서진다. 턱뼈가 아작 나며 핏물이 바닥으로 줄줄 새어 나왔다. 초속 재생과 야수의 회복력이 아니었다면 즉사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괴력난신의 파괴력이다.
퍼억, 퍼퍼퍽!
크어억!
피스트킹의 정련된 주먹이 두들길 때마다 가죽 공이 터지듯 마이트는 거칠게 들썩였다. 방어는커녕 회피조차 못 하고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았다.
주르르르!
권흔에 피부가 찢어지면서 선혈이 흘렀다. 내부를 흔들어 놓는 경력은 운신을 무디게 했다. 한 방, 한 방의 위력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야수화]로 강해진 그 이상으로 괴랄했다.
“……나를 가지고…… 놀아…… 개 같은…… 놈들…… 크억!”
속성과 스킬이 아닌 본신의 능력이라면 지금까지의 팽팽함은 간만의 여흥에 지나지 않았다.
철저한 농락이었다.
쐐애애액!
극한의 분노로 이성을 잃은 마이트는 무작정 달려들었다. 속도에서 상대가 되지 않으니, 살을 내어 주고 뼈를 취하는 사생결단이었다.
뻐어어억!
털썩!
다만, 상대가 너무 나빴다. 피스트킹은 더할 나위 없이 냉정했다. 기세에 밀려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자들과는 애초에 차원이 달랐다.
퍼억!
마이트가 바닥에 무릎을 꿇듯이 쓰러지자, 피스트킹은 발로 턱을 올려쳤다. 창공을 날아오른 마이트를 쫓아가서 잡아챈 후, 바닥으로 내리찍는다.
퍼퍼퍼퍼퍼퍼펑!
허공을 대지처럼 밟고선 피스트킹이 권환을 폭우처럼 쏟아 냈다. 권환이 떨어져 내리며 대지를 붕괴시킨다. 버섯구름이 겹겹이 층층으로 치솟아 오른다.
솨아아아아, 후아아아앙!
사방으로 퍼지는 신화천력의 가공할 기운이 인공 던전 전체를 흔들어 놓는다. 접근하는 즉시 뼛조각도 남지 않을 신위였다.
쩌저저저적!
점점 바닥이 거대한 크레이터를 형성하며 아래로 파고들고 있었다. 내리찍는 권환은 소용돌이를 일으켜 천지만물을 빨아들였다. 근처에 있다가는 권환과 같이 휘말려 생사불명의 마이트가 되는 수가 있었다.
헐!
일본과 중국 생도들은 넋을 잃고 보았다. 거리를 벌렸는데도 피부를 찢어발기는 가공할 기파였다. 끝을 모르고 강해지는 권왕의 신위에 혀를 내둘렀다. 괴인이 괴물로 변했을 때만 해도 천하의 권왕이라도 위기에 몰릴 줄 알았거늘.
‘무신의 강림인가?’
‘권왕이 이렇게나 강했다고?’
‘난장을 까도 이해가 되잖아!’
‘저걸 대체 어떻게 이기라는 거야!’
중국, 일본의 숙원이 권왕에게 당한 자존심의 회복이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전성기를 지났다는 말도 돌았거늘, 저게 어떻게 전성기를 지난 거냐고? 과거를 겪어 보진 않았지만, 그때보다 훨씬 강해진 게 분명했다.
“아차, 그 녀석은?”
“여기.”
다들 무진이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진 줄 알았다. 웬걸, 대결의 여파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위험을 알아차리고 제일 먼저 튄 것이다.
여자 친구와 동기들보다 뒤에 서 있는 인성은 대체 무엇?
“실드 좀 똑바로들 해라. 돌 파편 튀잖아.”
“언제 여기 온 거야?”
“누군 힘겹게 싸우는데 구경만 하고선 이리 조심성이 없어서야. 다들 정신 똑바로 안 차려.”
“……힘겹게 싸우다니 누가?”
“당연히 나지. 합세하기는커녕 구경이나 한 주제에 넋 놓고 멍 때리진 말아야지.”
무진의 통렬한 훈계에 한·중·일 생도들 전부 어이가 없었다. 저게 진심으로 할 소린가? 자신들의 귓구멍부터 의심하게 했다.
‘개자식이 맞는 소릴!’
‘왜 맞는 소리냐고?’
‘빌어먹을, 반박할 수가 없잖아!’
아니라고 부정하기에는 무진이 활약하고는 있었다. 피트스킹과 연계하여 합공을 펼치고는 있으니 말이다.
그에 반해 자신들은 손 놓고 멍하니 지켜본 것도 사실이고.
“너희들, 나 없었으면 어찌 됐을지 알 거야. 그러니까 좀 잘들 하자.”
지극히 타당한 말인데, 듣기 싫게 하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같은 말을 하지만, 와닿는 바가 이렇게나 달랐다.
그나저나.
퍼퍼퍼퍼펑!
강환을 언제까지 쏘는 거야?
아주 그냥 지구를 부술 작정인가. 피스트킹의 내력은 무한대처럼 보였다. 저처럼 무식하게 연사를 하면 지치거나, 내력 고갈의 증상이라도 있어야 하거늘. 피스트킹은 흔들리기는커녕 편안하게 쏘아 대고 있었다.
스윽!
무진에게 지수가 달라붙었다. 여사친으로서 당당히 옆구리를 차지하며 물었다. 의도치 않게 가슴이 닿는 건 포인트였다.
‘혼자서 아주 신나셨어.’
‘노는 맛이 있지.’
‘할아버지가 알면 경기를 일으키는 거 아냐?’
‘깜짝 선물이라고 생각하자.’
‘어떻게 된 녀석이야, 너는?’
‘뭐가?’
‘이게 어떻게 딱딱 맞아. 처음부터 안 것도 아니잖아.’
‘만사불여튼튼이니까.’
지수에겐 작금의 맞아떨어지고 있는 상황이 현실성 없게 다가왔다. 여태까지는 계획한 선에서 대비했기에 별 탈 없이 지나갔었다. 그에 반해 이번 사태는 계획은커녕 놈들에게 허를 제대로 찔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진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