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2)
“무진아, 왜 앞니부터 뽑아? 원래 독단은 어금니에 있는 거 아냐?”
“태수 선배, 그런 고정관념은 버려.”
다들 어이없어하는 표정들이었다.
고정관념으로 치부하기에는 독단은 어금니에 심는 이유가 분명했다. 앞니에는 설치할 공간도 부족하고, 입을 다물지 않는 이상 드러나 있었다. 살수나 암중인도 노출과 공간의 협소함을 알기에 어금니에 독단을 심는 것이다.
“이런, 생니네. 아무렴 어때. 32개 중에는 나오겠지?”
“……이놈…… 크아아악!”
마취도 하지 않고 생니를 뽑고 있었다. 생니를 뽑을 때마다 실핏줄이 달려 나오는 고어틱한 광경에 다들 기겁했다.
흐억!
움찔!
우리가 다 아프네.
일본과 중국의 생도들도 이제는 무진을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상으로 미친놈이었다.
빙산의 일각, 윗부분만 미친놈인 줄 알았더니 그 아래에 더한 미친놈이 남아 있었다.
‘저런 끔찍한 짓을!’
‘뭐 하는 새끼야, 진짜!’
‘내가 아니길 천만다행이다!’
‘절대 건드리지 말자!’
돈독이 오른 모습을 보일 때부터 정상은 아닌 줄 알았지만, 매번 상상력을 갱신해 주었다. 그냥 미친놈이면 제압해서 정신병동에 처넣으면 그만이나, 얄미운 걸 떠나서 실력과 심계가 만만치 않았다.
지금도 봐라.
일개 생도가 저딴 걸 생각하고 있다는 것부터가 남다르다. 그리고 말로만 떠들지 않는다. 그걸 실제로 하는 것도 일반적이지 않았다. 아는 것과 실제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었다.
비록 배신자긴 해도 교관의 생니를 아무렇지 않게 뽑고선, 나폴레옹처럼 심드렁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 이빨이 아닌가벼?
“……없다고 했잖아!!”
“충성심 쩌네, 세뇌가 잘됐구나.”
“……미친놈! 지옥에나 가라!”
“혓바닥에 독단이 있나?”
“……너 설마!”
“독설이 장난 아니잖아. 방금 상처 엄청 받았어.”
무진의 해맑은 미소에 교관들은 소름이 돋았다. 그들도 진짜 광기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방금까지 생도를 향해 저주를 퍼붓던 교관들은 거짓말처럼 벌벌 떨며 입을 닫았다.
헐!
사로잡히고도 발악하던 교관들이 두려움에 벌벌 떠는 모습을 보자, 한·중·일 생도들은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레알, 광기 그 자체!’
‘찐 광기 앞에서는 가짜 광기일 뿐이구나!’
‘이놈, 설마 천살성 아냐?!’
그제야 생도들은 느꼈다. 독단이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괴롭히고 싶어서 명분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재미로 잠자리의 날개를 뜯고, 메뚜기의 다리를 떼어 내는 어린아이의 천진함처럼 섬뜩했다.
다급해진 교관들은 간절히 외쳤다.
“……차라리 물어보라고! 말할게!”
“이런, 아혈을 짚는다는 게.”
거짓말이 분명했다. 생니를 뽑기 전부터 턱관절의 힘을 빼 놓았다. 자살하고 싶어도 혀를 깨물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지독함과 철저함에 교관들은 지옥에 왔음을 실감했다.
더는 보기 힘들어진 미츠키와 일룡이 나섰다.
“이 정도면 금제가 아니더라도 죽어!”
“괜찮아. 죽어도.”
“그래, 죽을……. 괜찮다고? 그러면 아까는 왜?”
“사소한 건 넘어가고.”
“그게 어떻게 사소해?”
“어차피 이놈들은 따까리밖에 안 돼.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별로 없을 거야.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아. 내가 알아서 뭐 하겠어?”
“……미친!”
일룡과 미츠키도 질린 기색이 완연했다. 눈을 보면 생각이 조금이라도 읽혀야 하는데, 그냥 해맑은 눈빛이었다. 저런 끔찍한 짓을 하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말이 안 되잖아.
도통 알 수 없는 눈까리였다.
생도들은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쉬었다. 더는 물어보기도 지친 기색이 완연했다.
그렇게 정리가 끝나 가는 중.
저벅, 저벅!
부스럭거리는 발소리가 들렸다.
신경을 곤두세우진 않았다.
인공 던전에 문제가 생긴 이상, 사태 수습을 위해 한·중·일의 교관이 찾아오는 건 당연했다.
스스슥!
뒤로 빛이 번지면서 그림자의 검은 윤곽이 서서히 본래 모습을 찾아갔다. 하나, 나타난 자들은 기다리고 있던 교관이 아니었다.
두둥!
키가 큰 호리호리한 체격의 사내와 강철 같은 근육이 복장을 뚫고 나오는 거구의 사내였다.
낯설고 강인한 인상에 권태로움이 묻어 나왔다. 작금의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심드렁한 분위기였으나, 선뜻 다가가지 못할 위화감이 있었다.
“시간이 걸리기에 문제가 있나 싶었거늘, 이런 식은 예상 밖인걸. 좀 어처구니가 없네.”
“고작 생도한테 제압당하다니, 꼴이 말이 아니군.”
그들의 등장에 제압되었던 교관들은 안도와 체념이 교차했다. 어차피 살 수 있다는 희망은 물 건너갔다. 그렇다면 복수라도 시원하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저들이라면 저 건방진 애새끼에게 지옥을 선사해 주리라.
왕우와 시마타가 무진을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이제 네놈도 끝이다.”
“그래 봤자지, 저들로 되겠어?”
“크크크크, 사태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구나! 저분들을 우리랑 비교하지 마라!”
“피 튀잖아, 더럽게 뭐 하는 짓이야. 부모가 그리 가르치디? 쯧쯧, 가정교육이 그 모양이니, 그 꼴이 나지.”
“……건방을 떠는 것도 얼마 안 남았다!”
“그렇게 자신한다면, 누가 건방을 떠는지 한번 볼까.”
무진의 여유 만만함을 시마타는 비웃었다. 작금의 작은 승리에 도취하여 사태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따지고 보면 그마저도 전략적인 패배에 지나지 않았다.
저들은 자신들과는 아예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놈의 심계가 대단하긴 해도, 압도적인 역량의 차이를 극복하진 못한다. 넘을 수 없는 절망과 한계를 체감하게 되리라.
낯선 사내는 기꺼운 듯 웃었다.
“후후후후. 주둥이를 제법 잘 터는 놈이 있었군.”
“들었어. 귀는 밝네.”
강철 근육의 사내는 가공할 기세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솨아아아!
오싹, 부르르!
한·중·일 생도들은 육신을 짓누르고, 폐부를 깊숙이 찌르는 경천의 기도에 마른침을 삼켰다. 교관들을 제압하면서 생겼던 자신감만으론 도저히 어찌하기 힘든 격을 체감했다.
꿀꺽!
생도들도 바보는 아니다. 이런 기도는 각 문파나 세가의 장로급 이상이었다. 단 2명에 불과하지만, 어둠으로 물든 거대한 산악이 일대를 뒤덮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저들이 작정하면 자신들은 사라져 버릴 제물에 불과할 것이다.
히익!
기겁하는 생도들. 가장 먼저 발을 빼려던 장위는 몸이 굳어 버렸다. 바닥에 본드를 붙여 놨는지, 발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공포에 육신이 잠식되어 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저런 괴물을 어떻게 이겨!’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나 다름이 없다.
기세를 잃은 생도들의 앞을 차 교관이 막아섰다. 하나, 그조차도 저 둘을 상대로 버텨 낼 수 있다고 자신하지 못했다.
‘어디서 이런 자들이!’
간극의 차이를 체감한 차 교관은 목숨을 버릴 각오를 다졌다. 그럴수록 회의감이 드는 건 인간의 본능이었다. 목숨을 건다고 해도, 생도들을 살리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솨아아아!
일대에 공포가 드리운다.
철탑 거인, 일명 마이트라 불린 사내가 무진을 향해 히죽였다.
“어디 다시 한번 주둥이를 놀려 보거라.”
“혓바닥이 긴 게 누군데 그래.”
“뚝심이 있군. 좋아, 내 친히 네놈의 숨통만 남기고 갈기갈기 찢어 주마.”
“그럴 기회가 있으려나? 생긴 대로 상황 파악이 느린 것 같아.”
마이트의 기세가 점점 더 심상치 않게 변하고 있었다. 단순한 엄포가 아님을 모두는 느끼고 있었다. 교관들의 살의와는 비교도 안 되는 진짜 살의였다.
사람을 얼마나 죽여야 저토록 사악한 기세를 뿜어낼 수 있는지 의구심이 들 지경이다. 그런 자들을 계속 도발하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이 새끼는 호랑이 간을 삶아 먹었나!’
‘저 말도 안 되는 악의를 못 느끼는 거야?’
‘정신 나간 놈인 줄은 알았지만, 죽으려면 혼자 죽어!’
‘용기라고 하기엔 만용이잖아!’
이제는 안다.
미친놈 옆에 있으면 자신들도 횡액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하필이면 미쳐도 단단히 미친놈이 자신들을 컨트롤하고 있었다.
이전까지야 심계를 발휘하여 기습이라도 했지, 저런 괴물 같은 자들을 상대로는 어림도 없었다. 기습은커녕 근처에 다가서기도 힘들었다.
“네놈은 마지막까지 살려 주마.”
마이트는 아무도 살려 줄 마음이 없었다. 그동안의 실패를 만회할 완벽한 기회라고 여겼다. 한데, 직접 나선 계획에서도 실패할 뻔했다.
그리드4가 이 사실을 안다면 자신들도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계획을 어그러뜨린 놈만큼은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여야 했다.
‘이따위 애송이 놈한테!’
물론, 실패한 머저리들도 처리해야 했다. 고작 생도에게 제압되는 쓰레기는 조직에 쓸모가 없었다. 또한, 대계를 위한 초석의 근간을 다시 세울 필요가 있었다.
생도들을 처리하려는 찰나.
찌릿!
마이트의 감각을 부지불식간 비집고 들어온 한 줄기 위화감이 있었다. 비록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애송이들이긴 하나, 교관을 제압했다면 한 수 재간은 있으리라 보았다. 그렇다고 해도 위화감을 줄 상대는 아니었다.
무시하진 못했다.
급히 방향을 틀었으나.
스윽!
꽈아아아앙!
배후의 위화감에 돌아선 마이트는 천지를 거세게 흔드는 가공할 파괴력에 튕겨 나가고 말았다.
처저저적!
허공을 몇 바퀴나 돌다가 신형을 유지하여 바닥에 착지한 마이트는 믿기 힘든 광경과 마주했다.
푸스스스스!
경천의 권파가 스치고 지나간 공간, 원래 있어야 할 마이트의 동료 그리드9 썬더가 먼지처럼 흩어지며 사라졌다.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장면에 다들 얼어붙었다.
두둥!
상대는 키가 2m를 넘어서는 거구에 머리까지 전신 슈트를 착용하고 있었다. 흡사 영화에서 나오는 철의 전사를 연상케 하는 갑옷 슈트였다.
헉!
마이트는 작금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썬더가 비록 서열 말단이긴 해도, 저처럼 허무하게 먼지가 될 만큼 약하지 않았다.
‘이럴 수가!’
그렇다면 회피조차 못 하고 일격에 소멸했다는 건데, 인공 던전에 그런 자가 있다는 정보는 없었다.
“……네놈은 뭐냐?”
철갑 슈트를 착용한 거구의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무심히 서 있을 뿐, 방금 썬더를 가루로 흩어 냈음에도 대수롭지 않은 듯 평온하다. 마치 감정을 지니지 않은 로봇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번쩍!
투구 사이로 붉은 광체가 번뜩이며 마이트를 가리켰다. 아무런 기세나 기도가 전해지지 않았음에도 마이트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썬더를 일격에 죽일 수 있는 강자는 한국 전체를 따져도 손가락에 꼽힐 것이다.
“넌 설마…… 권왕?”
“권왕 아니고, 피스트킹이다.”
……?
변조된 인공적인 기계음에 다들 고개를 갸웃하다 말문이 막혔다. 권왕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거구의 육체와 방금 보여 준 개세적인 권공이 딱 들어맞는다.
더욱이 피스트킹(Fist-King)을 직역하면 권왕이 된다. 차라리 다른 이름을 댈 것이지, 저렇게나 성의가 없는데도 뻔뻔하게 잡아떼고 있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초인이 비겁하게 암습을 가하다니, 네가 이러고도 권왕이라 할 수 있느냐!”
“노노, 피스트킹이다.”
“뻔뻔한, 죽여 버리겠다!”
“본 피스트킹에게 도전은 죽음이다.”
이쯤 됐으면 그만 가면을 벗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도들은 안도하면서도 권왕의 뻔뻔함에 혀를 내둘렀다. 그럴수록 더더욱 권왕임을 실감하고 있었다.
한·중·일 모두에게 권왕은 그런 존재였다.
국적을 막론하고 제멋대로 괴행을 일삼는 무지막지한 폭군 그 자체다. 저 정도의 뻔뻔함과 창피함쯤은 권왕의 악명과 비교하면 조족지혈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