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212화 (213/374)

212.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1)

꽈아아아아, 푸르르르!

생도들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존재는 단연 지수와 태수였다. 서로 치열한 개인전을 치러서인지 몰라도, 손발을 수십 년을 맞춘 팀플레이처럼 능수능란했다. 치고 빠지면서, 파워와 속도의 강약 조절이 기가 막혔다.

뿌드드득, 퍼억!

커어어억!

지수는 내지르는 류낙현의 혈파산(血破山)을 낀 듯 안 낀 듯 얇게 벗겨 낸 후, 파고 들어가 팔을 잡고서 비틀었다.

헉!

팔이 잡힌 채 와류경에 비틀어진 류낙현이 비명을 지르기도 전, 이때를 노렸다는 듯이 명치를 노린 태수의 권격은 공수합격의 정수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걸 넘어 사선을 넘었을 위력이나, 류낙현은 [폭멸] 스킬을 본인의 육신에 써서 동귀어진을 감행했다.

터억!

사생결단의 살의에 당황할 법도 하거늘, 태수는 명치를 친 후에 침착하게 류낙현의 턱을 가격했다.

휘릭!

동귀어진 수법을 일찌감치 감지한 지수도 류낙현의 스킬이 완성되기 전에 회전 회오리킥을 선사해 주었다.

뻐어어억!

턱이 젖히며 들린 류낙현의 관자놀이가 무방비로 노출되었다. 발등을 타고 들어간 신화천력의 내기가 류낙현의 의식을 끊었다.

회전력을 갈무리하고, 착지한 지수는 차 교관을 일깨웠다.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요.”

“……그렇구나.”

차 교관은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한편으로 이 모든 사태를 예견하고, 막아 낸 생도들이 대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조차 류낙현의 배신에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른다.

한편으로 섬뜩한 감정이 뇌리를 스쳤다.

‘교관들 전부가 배신자였다니.’

한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에도 암중 세력이 암약하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세력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작금의 공조가 지나치게 공교로웠다. 마치 지금까지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서 극단적인 수를 쓴 것 같았다.

‘이놈들 대체 뭐지?’

빌런으로 구성된 조직이 있다고는 하나, 오늘의 일들은 그런 차원을 넘어선다. 아카데미가 비록 생도들을 육성하는 장소긴 하나, 국가의 지원이 막대했다. 검증도 되지 않은 자들을 아카데미의 교관으로 뽑진 않는다.

‘각국 정부의 요직에도 영향을 줄 만큼 대단한 건가?’

너무 나간 생각일 수도 있겠으나, 예상만으로도 골이 지끈거릴 만큼 아찔했다. 함부로 입을 열어서도 안 되는 데다가 누구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퍼퍼퍼펑.

타아앙!

차 교관은 상념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님을 직시했다.

교관은 생도들로선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속성과 스킬의 조합과 전투에 녹아든 경험은 생도들이 따르기 힘든 격차를 자아냈다. 비록 3명에 불과함에도 제압하는 데 곤란을 겪고 있었다.

“전위를 맡을 테니, 후위를 부탁하마.”

철혈육좌 차성진의 별호는 수성의검(守城義劍)으로, 방어검에 관해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검의 철벽으로 불린다. 또한, 옳은 일을 행하며, 시민을 지켜야 할 때 더욱 강해진다고 하여 의검이라 칭했다.

그는 사람을 구하는 일에 보람을 느꼈으나, 세월을 무시할 순 없었다. 나이가 들어 감에 따라서 자신의 뒤를 이을 후인 양성에 사명감을 불태웠다.

채채채챙!

수성검류의 의정검벽(義正劍壁)을 펼치며 속성인 강화와 중첩을 사용했다. 강력한 검의 막이 정면을 막아서자, 진효명과 사카모토의 기세가 한풀 꺾인다. 기회를 잡은 생도들이 모든 전력을 집중하여 사방에서 몰아치기 시작했다.

으득!

시마타는 돌아가는 사태가 불리해지자 이를 악물었다. 도움을 바라기에는 반전의 기회를 노리기도 어려웠다. 이미 전세는 기울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망할!’

미츠키에게 기습적인 일격을 허용하는 바람에 전력의 반이 숭덩! 날아가 버린 상태였다. 전신류로 발동되는 극신의 파동권은 예상을 훨씬 넘어선 파괴력이었다. 그것만 아니라면 협공이라고 해도 애송이들에게 당하진 않았다.

“지금이라도 죄를 용서받고 싶다면 순순히 항복해라.”

“계집이 공주라고 떠받들어 주니까, 진짜로 공주처럼 행동하는구나. 이런다고 결과가 달라질 것 같으냐!”

“누가 달라진데. 씨발, 존나 처맞자!”

“잘난 체하는 것도 곧 끝이다!”

시마타로선 내력을 어떻게든 온전한 상태로 돌려야 했다. 그래서 공주의 욕설에도 어떻게든 말을 붙여 심리전을 거는 것이다.

하나 그걸 두고 볼 무진이 아니다.

“또 누가 오려나? 말 들어 보니 누가 또 있나 보네. 하긴, 이런 병신 같은 새끼들 믿고 과업을 치르기가 어렵기는 하지.”

“……뭐, 이 새끼야!”

듣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무진은 시마타의 귀를 강제로 트이게 해 주었다. 들리지 않는다고, 안 들을 수 없는, 시청을 강요했다. 문제는 내용에 있었다. 그것도 네 말을 통해서 뭔가 알게 됐다는 뉘앙스였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구나.”

“방금 문장 사이의 텀이 길었어. 말투도 0.01데시벨가량 흔들렸고.”

왜 갑자기 이렇게 이성적이고, 과학적이야!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애들아, 빨리 처리해라. 뭔가 온단다.”

“오긴 뭐가 와!”

“시간 없다. 알지.”

일룡과 미츠키를 비롯한 일·중 생도들은 무진의 명령을 듣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하는 말이 틀린 것 같지 않아서 무시하지 못했다.

좀 전까지는 몰랐지만, 확실히 시마타의 언행이 수상한 것도 있었다. 이 사태를 시마타와 교관들의 단독 범행이라고 보기엔 스케일이 너무 컸다.

“태수 선배, 지수야! 어서 다구리를 쳐!”

“지는?”

“원래 커맨드는 지휘만 하는 거야.”

“닥쳐!”

이 와중에 한가로운 무진이었다. 다들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기에 손을 거들지 않아도 되었다.

마치 남의 일처럼 방관자적 행태를 보여 적아를 막론하고 속을 태웠다. 그러나 한·중·일 생도 누구도 무진을 탓하진 못했다.

‘쟤가 아니었으면 어림도 없었어.’

‘차라리 달마 조사님의 시련을 받는 편이 낫겠군. 아미타불!’

‘빌어먹을, 하필이면 도움을 받아도!’

‘개방 거지들의 하나 남은 밥그릇도 뺏을 놈!’

얄밉기는 최악인데, 구명지은을 입었다. 사람이라면 최소한 목숨을 구해 준 이상, 보답해야 마땅했다. 단지, 그 보답이 지나치게 계산적이라 엄두가 나지 않을 뿐이다.

한마디로 고마운데, 고맙지 않은 놈이었다.

본인을 숨기기 위한 컨셉으로 본다면 지나친 과몰입으로 본질마저 사라진 케이스라고 봐야 했다. 다 떠나서 저게 연기라면? 한국 드라마가 어째서 세계로 잘 퍼져 나가는지 이해가 된다.

쿠다당!

철퍼덕!

크어억!

시마타, 사카모토, 진효명이 핏물을 흘리며 쓰러졌다. 선혈이 낭자한 가운데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파리해진 혈색만큼이나, 더는 버티기 힘든 충격을 받았다.

파파파팟!

일룡과 미츠키가 서둘러 교관들을 점혈했다. 반격할 여지는 없어 보이나,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하아아!

그런 후에야 생도들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어찌나 긴박했던지, 숨 돌릴 틈도 없이 지나간 시간이었다. 그들이 살아오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지독한 악몽과도 같았다.

“……이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어차피 결과는 변하지 않아!”

제압되고서도 교관들은 살려달라기 보단, 핏발을 세우며 생도들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그 포악한 살의와 악의에 생도들은 소름이 돋았다. 자신들이 겪어 봤던 세상이 온실 속의 화초라는 걸 깨닫게 해 주었다. 빌런이 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더욱이 빠져나갈 방도가 없음에도 명령에 충실했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본인의 목숨조차 서슴없이 버리는 자들이었다. 그도 아니면 단체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고 봐야 했다.

찌릿!

미츠키는 미간을 찌푸리며 시마타를 노려보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알아내야 했다.

시마타는 시게노의 추천으로 황실의 보증을 받은 자였다. 그런 인물이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다니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면 교관은 물론, 황실까지도 신뢰하기 어렵다는 의미가 되었다. 그도 아니라면, 황실의 무능일 테지.

“누가 시킨 거지, 당신들 정체가 뭐…… 욱!”

“거기까지.”

전투 중엔 신속히 빠져 있었던 무진이 어느새 미츠키 공주의 뒤로 다가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쯧, 안일하기는.’

다 이겼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지금부터가 중요했다. 제압한 교관은 차후 명분과 정보를 제공할 도구였다. 고문, 진술 전문가가 아닌 초보 생도의 질문은 위험했다.

킁킁!

콧구멍으로 숨을 쉬어야 했던 미츠키는 당황한 채 망부석이 되었다. 입이 막혀서 왜냐고 물어보지도 못했다.

무진의 손가락이 벌어지며, 간신히 숨이 트인 공주가 언성을 높였다. 이렇게 입틀막을 당한 건 처음이라, 기분도 묘하다.

“……뭐 하는 짓이야?”

“이 자식, 당장 공주님한테서 그 더러운 손을 떼지 못해!”

“감히 공주님의 매력적인 입술을 손대다니!”

일본 생도들의 반발이 상당했다.

특히 하야토는 굉장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무진으로선 선뜻 납득이 되지 않았다. 일본의 지나치게 개방적인 성향과는 반대였다. 확실히 방구석 동영상으로 배우면 현실과는 괴리감이 컸다.

한데, 노재팬을 하려면 일본을 가면 안 되잖아. 그러면서 일본 제일의 관광 손님이 한국이라니.

여하튼.

지금 그런 사소한 걸 따질 땐가? 명분과 정보 제공 도구가 손상될 뻔했다. 자기들이 수리해 줄 것도 아니면서.

막말로 입술이야 대인전 때 언제든지 주먹으로 터뜨릴 수 있었다. 그때도 신체 접촉했다고 야단법석을 떨 건가.

“손 좀 닿았다고 입술이 닳나.”

“공주님의 입술은 그 누구도 함부로 손을 대선 안 된다!”

“손도 못 대면 키스는? 평생 키스도 못 하고 노처녀로 뒤지라는 거야? 그거 저준데. 혹시, 너만 탐하려고?”

“불경한 놈, 나는 그저 공주님을 수호할 뿐이다!”

“그래, 너는 평생 혼자 해라.”

“……나를 모욕하지 마라!”

정작 공주는 가만히 있었다.

자연스럽게 오버하는 하야토에게 시선이 집중되었다. 누가 봐도 질투처럼 보였다. 모두의 부담스러운 눈빛에 하야토는 자신의 실태를 깨달았다.

‘……이런 젠장!’

재밌는 반응이라 좀 더 골려 주려고 했지만, 무진은 섬뜩한 기운을 느끼고 즉시 물러섰다. 지수에게서 검은 아우라가 스멀스멀 번지는 건, 착각이겠지.

무진은 못 알아듣는 생도들을 위해서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척 하면 척 해야지, 의외로 센스들이 없다.

“목적을 위해선 죽음조차 불사하는 자들에게 섣부른 질문은 그 자체로 독이야. 그러려면 최소한 암중의 세력에 대한 충성과 공포가 없이는 불가능해. 함부로 정체를 물었다간 금제나 저주가 발동해서 증거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어.”

“……아!”

“이럴 때일수록 냉정을 유지하고, 고문과 진술은 전문가에게 맡겨야지. 더욱이 이 자리에서 죽어 버리면 우리만 손해잖아.”

“그렇구나!”

“내가 하는 걸 잘 보고 나중에 써먹도록 해. 이런 지독한 놈들은 일단 이빨부터 몽땅 빼 버려야 뒤탈이 없어. 독단을 물고 있을 수도 있거든.”

“맞아, 영화에서 봤어.”

공주의 신체를 함부로 만지는 불경한 놈으로 치부했지만, 무진의 말을 듣다 보니 다들 설득이 되었다.

영화나 소설에서 흔한 설정이기에 따지고 보면 공주의 경솔한 행동이었다. 다 잡은 도구를 눈앞에서 잃어버릴 뻔한 것이다.

스윽!

무진은 아공간에서 집게를 하나 뺐다.

원래 치아 발치용은 아니고, 고기를 잡고 자르기 위한 용도지만 어쩌겠는가. 오늘만은 일회용 독단 제거용 집게였다.

“자, 아.”

“……독단은 없…… 크악!”

독단이 없든 말든, 무진은 상관하지 않았다. 자고로 내뱉은 말은 주워 담지 못한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전문가를 자처했는데, 없으면 곤란했다. 괜한 말을 지껄이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점혈을 더욱 꼼꼼히 하여 불미스러운 사태를 예방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