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207화 (208/374)

207. 단체전(1)

교류전의 꽃이 개인전이기는 하나, 단체전이야말로 헌터로서 가치를 증명하는 기회의 장이다. 각성자의 존재 의의는 마물을 공략하고, 던전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것에 있다. 개인전은 말 그대로 개인의 공명을 과시하는 자리일 뿐, 헌터로서 존재 가치를 증명하진 않는다.

단체전은 무인과 길드가 실제로 던전을 공략하는 방식을 따랐다. 혼자서 잘났다고 나대는 개인전과는 구분되었다.

또한 한·중·일 아카데미의 교육열을 점검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생도 개개인의 무력은 대부분 소속 문파나 가문에서 배우는 편이다. 반면, 마물 사냥과 던전 공략은 아카데미의 교육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단체전 역량이 뛰어날수록 각국 아카데미의 교육 수준에 대한 평가가 갈린다. 한·중·일 아카데미의 자존심이 걸려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다가왔구나. 어제 설레서 잠도 못 잤다고.

-설레발은 치지 말자, 그러다 다 된 밥에 부정 탄다.

-언제부터 교류전에 관심을 가졌다고 그러냐. 평소에 후원이나 좀 해라.

-후원이나 기부는 강요하지 말자. 돈 벌면 무조건 기부해야 하는 거냐?

-우리나라 시스템을 사용해서 돈을 벌었으면 기부해야 마땅하지. 아프리카나 중동에서 태어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

-유전무죄, 무전유죄!

-솔직히 우리나라 역사상 지금보다 서민이 잘사는 시절이 있기나 하나. 맨날 정부나 까지 말고 본인 일이나 잘해!

단체전이 시작되기 전부터 여러 말들이 오고 가고 있었다. 쓸데없이 정치적으로 몰아가거나, 남의 개인사를 뒤지는 경우도 종종 보였다.

전체적으로 댓글의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개인전 성적이 교류전 역사상 최고점인 데다 우승 가뭄마저 해결했으니 긍정적 일 수밖에. 이 정도면 단체로 필드에 똥을 싸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1학년의 선전이 눈부셨다. 차후의 교류전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리란 기대감이 커졌다.

-이기겠지, 설마 지겠어.

-적당히 전술적인 협업만 잘 보여 줘도 우승이야. 여기서 우승 못 하면 그것도 기네스다.

-20명 중 1명만 남아도 우승인데, 말 그대로 우승 못 하면 교류전 우승과는 인연이 없는 거지.

-난 그것보다 교류전 MVP를 누가 받는지가 더 궁금하다.

-알면서 왜 그러냐, 다들 알잖아. 왜 말을 못 해?

-말을 못 하는 게 아니라고. 하고 싶지 않은 거야.

-무진 장군님은 전생에 나라를 최소 3번은 구하셨을 거다.

-예전에는 전생 드립이 식상했는데, 이젠 그럴 수도 있다고 봐.

교류전의 우승은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교류전 MVP에 대해서는 시끄러운 편이다. 보통 개인전의 우승자에게 MVP를 주게 되는데, 그 대상이 무진이라서 반응이 모호했다.

주기도 안 주기도, 요상하다.

차라리 악마의 재능이면 상을 주지 않을 명분이라도 있지, 또 그렇지 않았다. 댓글만 봐선 나쁜 놈인데, 실상은 또 착한 놈이다. 답이 명쾌하지 않지만, 그나마 정답에 가까운 말은 그냥 재수가 없다였다.

-댓글 봐라, 무진이 많이 컸네. 이 정도면 개과천선이지.

-맞아, 맞아. 전처럼 욕으로 도배만 안 되면 된 거야.

-이게 좋아진 거면, 얘는 대체 무슨 인생을 산 거냐?

-인생은 나이가 전부가 아냐, 우리 무진이가 한 일을 나열하면 파란만장 그 자체라고.

-반박하고 싶은데, 맞는 말이라 짜증 나네!

-욕하고 싶지만, 욕하지 못하는 너희들은 홍길동!

불과 1년 사이에 무진은 평범한 사람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사건의 중심에 서 있었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1년 만에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사건을 나열할수록, 나락에서 국위 선양에 이르기까지의 인생 역전이 스펙터클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과연 무너지지 않고 저 자리까지 올 수 있을까?

상기할수록 무진이 자신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그래서 더더욱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다. 한 사람을 죽일 정도로 까고선 반성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본인의 도덕성에 상처를 입기 때문이다.

찌질한 본성을 감추려고 어떻게든 약점을 잡으려는.

-며칠 전에 장위의 변명 봤냐? 가관이던데.

-왜곡해도 적당히 해야지, 우리와는 아예 다른 장면을 본 것 같아.

-넌 이미 죽어 있다는 것도 아니고. 무형권풍을 대체 언제 쐈데.

-80년 후에 발동하나 봄. 그 전까지는 되레 생생해져서 개인전 우승도 하고 그러겠지.

-100억은 꼭 받아서, 외화벌이하자.

-천조뱅크 345-2588-64-XXX, 김X랑. 조실부모해서 제가 지금 어려워요. 평생의 은인으로 알고 잘되면 꼭 갚을게요.

-이 새끼야, 도배 좀 그만해! 구걸충들 싹 다 뒈졌으면 좋겠다.

-진짜로 어려울 수도 있지, 사람들이 매정하네.

-10,000원 보내고 보이스 피싱 당했다고 신고해서 계좌 정지시켜 버려!

한·중·일 생도들이 대연무장에 입장했다.

단체전은 인공 던전에서 치러지며, 대연무장의 스크린을 통해서 관람하게 된다.

불미스러운 사태를 대비하고, 뜻하지 않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한·중·일의 선별된 6명의 교관이 서로 다른 국가의 생도를 관리한다.

인공 던전과 거리를 둔 연유는 각국의 고위급 무인과 길드원이 단체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최대한 공정을 기하기 위한 교류전의 규칙이었다.

유난을 떤다고 보는 경향도 있으나, 실제로 부정한 사건이 벌어졌었다. 사고는 무사안일주의를 기반으로 하며, 대처는 언제나 뒷북이었다. 희생자가 나오고 나서야 대비하는 건 어느 국가를 막론했다.

교장이 단상에 올랐다.

교류전을 시작할 때와 다르지 않지만, 바라보는 시선은 판이하다. 과거 풍신의 위명을 높게 평가하기는 했어도, 가르치는 영역은 다르다고 보는 이들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람들, 매달리기는!’

정부에선 교류전 전까지만 해도 다음 대 교장 후보를 찾고 있있었다. 공으로 과를 덮기는 했지만, 사건 사고가 잦았던 것도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정부로선 여론의 도마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교장이 탐탁지 않았다. 그래서 성적을 내더라도 교체할 심산이었다.

웬걸, 막상 뚜껑을 열자 일본과 중국을 압도했다. 역대 누구도 이루지 못한 성적을 냈다.

솔직히 믿기 어려운 성적이라, 일본과 중국에선 도핑을 의심하기도 했었다. 하나, 개인전에 들어가기 전에 피검사를 통해서 확인된 사안이었다.

성적도 대단했지만, 생도의 평균 역량이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되게 높아졌다. 성좌의 선택도 없이 고학년에 필적했다.

그렇다고 생도의 재능으로만 치부하기도 힘들었다. 교장은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고, 생폭을 근절하였으며, 간자를 색출했다. 바탕을 깔아 줬다는 사실이 공개된 지 오래다.

발밑에 독버섯이 자라고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교장의 무능을 탓했던 여론을 반전시켰다. 이젠 교장이 그만두겠다고 해도 정부로선 문제가 되었다.

-그만두다니요, 절대로 안 됩니다. 원하시는 조건을 전부 들어 드리겠습니다. 제발 그만둔다는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개인전이 끝나고 교장은 그만둔다는 식의 뉘앙스만 풍겼었다. 정부 인사로선 교장의 퇴직을 말려야 했다. 이대로 그만두면 정부의 압력에 의한 퇴진으로 보이게 된다. 능력이 있어도, 정부에 반감을 사면 자리를 보존할 수 없다는 여론이 형성될 것이다.

가뜩이나 총선, 대선을 남겨 둔 정부로선 먹잇감이 되기 딱 좋은 소재였다.

‘하여간 이놈은 협상에 도가 텄다니까.’

단상에 오른 교장이 무진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번 교류전에서 무진은 수제자나 다름이 없다고 소문이 났다. 무척이나 탐탁지는 않지만, 이제는 무를 수도 없는 처지다.

‘사람 엿 먹이는 데도 일가견이 있단 말이야.’

교장과 무진이 잠시 스치듯이 시선을 주고받았음에도 남궁천과 시게노는 정색했다.

‘능구렁이 같은 인간, 이번에는 속지 않는다!’

‘제아무리 교장이라도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을 것이오!’

교장은 그들의 속내를 모르지 않았다. 분노로 이성을 잃지 않고 달려든 것만 해도 칭찬받아야 마땅했다. 하지만 어떤 수를 써도 무진의 손바닥에 있었다.

‘애초에 그릇이 다르지.’

자신조차도 무진의 농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어린 생도들이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

“교류전은 각국 생도들의 순수한 역량을 겨루고, 우호를 다지기 위한 화합의 장입니다. 마지막까지 페어플레이하여 공정한 교류전이 되었으면 합니다.”

말로는 무슨 말을 못 하겠는가. 교장은 우승이 아닌 교류전 자체에 의의를 두겠다고 포장했다.

맘 같아서는 사실대로 말해 주고 싶기도 하다.

너희들은 뭘 해도 안 된다는.

“대표는 나와서 번호표를 뽑도록.”

인공 던전은 북남동으로 3문을 개방했다. 어떤 문을 선택할지는 랜덤으로 정해진다. 3방향으로 던전의 마물을 사냥하고, 주어진 미션을 클리어해야 했다. 점수는 던전 공략, 마물 등급, 시간, 인원을 따져서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우리는 지수가 나갔고, 일본은 미츠키, 중국은 일룡이 대표로 나섰다.

지수는 그들의 뒤로 서서.

“먼저 해요.”

순서부터 정하자고 하려던 일룡과 미츠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개인전 때부터 한국에 밀리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조급한 자신들과 다른 여유가 거슬렸다. 승자로서 패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잘난 체하는 것도 지금뿐이다.’

‘이번에는 다를 거야.’

일룡과 미츠키는 지수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었다. 둘 다 지수에게 패배했다. 그래도 선전한 줄 알았지만, 실체를 알아 갈수록 편치 않았다.

지수와 태수의 준결승은 그들에게도 충격적이었다. 자국 생도의 개인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혈투였다. 더욱이 일격일로에 전해지는 투지는 소름을 돋게 했다.

지수의 강함이 일룡과 미츠키에게 투쟁심을 불러일으켰다.

서로의 목적이 일치해서일까?

일룡과 미츠키는 서로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걸 느꼈다.

‘우릴 한 수 아래로 보는 건가?’

‘재밌네, 아주 재밌어. 내가 더 재밌게 해 줄게.’

한국 생도의 대표는 진태수였다. 4강에서 꺾은 지수를 내보냈단 사실이 남궁천과 시게노의 심기를 건드렸다. 10년에 걸쳐 망신당했으면서 고작 한 번 이득을 챙겼다고 깔보고 있다니.

일본-남문.

중국-동문.

한국-북문.

문이 정해지자, 셋은 미련을 두지 않고 돌아섰다.

우린 지수가 곁으로 오자, 북문으로 출발했다.

지수가 피식 웃으며 말한다.

주변으로 태수, 예슬, 유정, 혜진, 상원, 4인방이 있었다. 마치 주인을 보호하는 결계처럼, 소리마저 새어 나가지 않을 듯 견고하다. 물론, 말이 그렇단 거다. 딱히 결계를 치진 않았다.

“살기등등하던데.”

“애들이야, 적당히 해.”

“적당히 했으니까, 대표로 나올 수도 있는 거야.”

“두 번 적당히 했다간 오늘이 제삿날이겠는걸.”

“오래 살아서 뭐 해, 더러운 꼴만 보지.”

“이거 공공의 적이 된 것 같은데.”

지수와 무진은 긴장을 푼다는 식으로 가벼운 조크를 섞었지만, 다들 헛바람을 삼켰다. 가벼운 말투와 달리 내용은 무겁다 못해 살벌했다.

‘걔들 3학년이잖아.’

‘1학년이 뭐 이래!’

‘안중에도 없구나!’

‘공공의 적이라고?’

‘그건 문제가 있는데, 설마!’

태수 선배와 동기들은 평소대로 그런가 보다 했겠지만, 3학년들은 혀를 내둘렀다. 자신감이 지나쳐 건방져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국제전이었다. 아카데미 후배일 때는 그렇게 얄미울 수 없는 것들이 오늘은 아주 든든하다 못해 자신감을 주었다.

‘썩을, 내로남불이네.’

‘그래! 잘났다, 이 새끼들아!’

‘최선을 다해 서포트하마.’

‘협공이든, 뭐든 얘들이 있으면 상관없겠지.’

‘맘대로 사용하고, 우승이나 시켜 줘!’

귀엽기는커녕 맘에 드는 구석이라고는 찾으래야 찾을 수 없는 후배지만, 배포와 강단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개인전의 기세를 단체전으로 계승하려면 기선 제압이 중요했다. 선봉의 역할을 누가 할지는 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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