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 남자의 로망(4)
비용도 비용이지만, 건강을 잃는다는 두려움도 크다. 한순간에 병약한 노인네가 되어 뒷방에 처박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게 10년의 건강함을 되돌려 준다는 게냐?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그런 식으로 약장사를 하는 놈들을 내가 얼마나 봤을 것 같으냐?”
“값은 복용한 후에 주셔도 됩니다.”
“널 어떻게 믿고?”
“지금까지 잘만 드셨으면서.”
이놈, 확실히 고단수다.
요리를 왜 내놓나 했다. 그러고 보니 아무런 의심도 없이 이놈이 꺼내 놓은 요리를 여태 처먹었다. 사람을 들었다 놨다, 요물이 틀림없다. 태수가 없었다면 양자로 들였을 수도 있었다.
쉐도우 길드에서 떠날 때 무진은 [신의 정화] 한 방울을 따로 담아서 가지고 왔다. [신의 정화]는 무결점의 치료제임과 동시에 모든 내성을 정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단어 그대로 정화가 주목적이었다.
내력으로 추궁과혈을 하는 것도 나쁘진 않으나, 무진은 그렇게까진 하고 싶지 않았다.
‘뭐든지 정화한다고 했으니, 한 번 정도는 막아 주겠지.’
태수 선배처럼 직접적인 세뇌를 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진 회장에게 접근해 오는 암중 세력이 눈치를 챌 수도 있었다.
효과는 확실했다.
‘마제 사부의 중독은 의외였어.’
실로 미약해서 눈치를 채기가 어려웠다. 본인조차도 인지하지 못했었다. 이해는 갔다. 알 수 없는 독이지만, 쌓인다고 해서 효과가 당장 나타나진 않는다.
어떤 식인지는 밝혀내지 못했지만, 저주나 술식이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마법사에게 술식은 잘 통하지 않아 저주 계열과 연계한 독일 가능성이 있었다.
‘시간이 걸리게 생겼네.’
중독된 줄 미리 알았다면 [신의 정화]를 사용하지 않았을 텐데. 마제 사부라면 굳이 해독하지 않았어도 버틸 수 있었다. 그걸 역으로 이용하여 상대를 끌어들이거나, 역추적했어야 했다. 혹시나를 염려한 지나친 과민 반응으로 인한 실수였다.
“그리 자신하면 100억을 걸어 보거라.”
“그건 곤란한데요.”
“자신이 없는 게냐?”
“회장님을 위한 제 성의잖아요. 성의를 이런 식으로 무시하면 저도 강요하진 않습니다.”
“요즘에는 성의를 돈으로 계산하는 모양이구나.”
“돈이 곧 성의죠.”
성의를 돈으로 계산하다니, 생도치고는 세파에 찌든 대답이었다. 보통은 훈계해야 마땅하나, 진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의가 없다는 말은 돈을 더 주지 않아서 발생하는 의견 다툼이었다. 1억이 부족하면 10억을, 그것도 부족하면 100억을, 성의도 돈의 액수에 따라서 달라지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겪어 왔다.
“부정할 수가 없구나. 오냐, 어디 얼마나 대단한지 마셔 보마.”
진 회장은 안심했다. 계약을 위해 어설프게 설득하려고 했다면, 이야기를 들어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율배반적으로 무진의 아쉬운 것 없는 당당한 태도가 신뢰를 주었다.
“이게 다냐?”
“양보다는 질이죠.”
스포이트로 한 방울도 안 되는 양이다. 마신다기보다는 혓바닥에 기름칠하기도 부족했다.
후륵!
질보다 양도 어느 정도여야 믿지, 간의 기별은커녕 아무 맛도 안 난다. 진 회장은 독도 이 정도로 소량이면 통하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세상이 변해서 질량보존의 법칙이 깨지긴 했어도 이따위를 주고 계약을 더…… 어?”
마제 사부를 통해서 검증이 끝난 상품이었다. 진 회장에게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걱정은 애초에 하지도 않았다.
허어어어!
수 초에 불과했다.
진 회장은 몸에서 흘러넘치는 활력과 청량한 개운함에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쫙! 폈다. 이제까지 느껴 보지 못한 활력. 젊었을 적에도 이토록 상쾌하진 않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다음 대를 걱정했지만, 이제는 손수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활력과 정력!
새로 얻은 마누라한테는 기쁨을.
첩들에겐 사랑을.
돈과 정력은, 남자의 로망 그 자체가 아니던가.
“이게 대체 뭐냐?”
“신의 정화예요. 더 없으니까, 달라고 하지 마세요. 제게는 소용이 없어서 비싸게 팔아먹으려고 가지고 온 거예요.”
던전에서 얻은 비약으로 포장했다. 만들었다고 하면 진 회장이 꼬치꼬치 캐물을 게 분명하다. 지금도 더 없나, 눈을 희번덕거리는 걸 보면 욕심 하나는 타고났다.
“양이 부족한가? 기력이 금방 떨어지는구나.”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과는 구두 약속을 하지 말라 한 건가?”
“예끼! 어른한테 할 소리가 따로 있지!”
“혼잣말입니다.”
“다 들린다고!”
“귀가 밝아지셨네요.”
진 회장은 재차 한숨을 쉬었다. 효과를 부정하기에는 너무나 확실했다.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 보지 않아도 느낄 정도면 [신의 정화]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그래서 얼만데?”
“분당 억이라고 했죠? 10년이면 대체 얼마야? 우수리로 6천억 떼고 525조네요. 와, 이 계산이 맞나?”
“……이 미친놈이,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러게, 말조심했어야죠.”
맞는 말이라 진 회장은 반박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525조라니! 듣고서도 아찔아찔한데, 그걸 또 입 밖으로 꺼내는 이놈의 배포는 대체 뭔지 모르겠다. 1조만 해도 평범한 사람은 투자 실패가 아닌 이상, 쓰고 또 써도 되레 더 늘어난다.
“1년 치만 하죠. 아시는 분이라 9년이나 깎아 드렸습니다. 우수리도 떼고요.”
“고양이 쥐 생각 해 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진짜로 줄 거 같아!”
그래도 52조다.
진 회장은 10년 치의 활력을 얻었음에도, 혈압이 오르는지 뒷골이 당겨 왔다.
“인터넷에 올려야겠다.”
“……야, 이 시키야!”
***
-대중화의 수치, 돌아올 생각일랑 하지도 마라!
-빵즈들 설치는 걸 언제까지 봐야 하냐고!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새고 지랄이야!
-한국 돈으로 100억이면 5천 위안이 넘잖아!
-국고 유출하기만 해 봐, 절대 가만 안 둬!
-말조심해, 다들! 인체의 신비로운 각성을 당하고 싶어!
교류전에 참가한 중국팀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믿고 있었던 구대문파와 팔대세가의 생도들이 1회전에서 대거 탈락했고, 결승은커녕 4강도 못 갔다. 교류전 역사에 회자하고도 남을 최악의 참사였다.
그뿐인가, 대회 밖에서 소란이 번져 개인전 내내 시끄러웠다. 특히 장위의 행적은 사사건건 한국에 빌미를 주어, 대중화의 자존심을 깔아뭉갰다.
-그날따라 황사 때문에 내력 운용이 좋지 않았고, 아침에 먹은 음식으로 인해 탈이 났었다. 그래도 놈은 무형권풍으로 인해 내상을 크게 입었을 것이 분명하다. 다만, 그 효과가 나타나는 데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나중에 병원비나 하라고 100억을 주기로 한 거지, 온전했다면 승부는 달라졌다.
장위의 대응도 한몫했다.
한국산 황사로 호흡이 깨지고, 늙어서 골병드는 무형권풍을 날렸다니. 이걸 믿으라고 지껄인 건지 의구심이 들었다. 다행이라면 절반은 믿는다는 점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변명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교관들의 통보를 받은 생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독방에 처박혀 면벽해도 시원치 않거늘, 그 와중에 사리 분별 안 하는 장위가 있었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들고도 본인 잘못은 전혀 없다는 표정은 사람을 황(皇)받게 했다.
하나, 곤란한 처지에 있을수록 대범하게 보여야 한다. 그것이 대국의 정서였다.
장위가 맘에 안 들지만, 탓하지는 못했다. 주석의 아들인 데다가, 자신들도 한국에 처참히 깨졌기에 탓해 봤자 제 얼굴에 침 뱉는 격이었다.
실제로 생도들은 자존심이 많이 상해 있었다. 한국에 그처럼 처참하게 패할 줄은 미처 몰랐다. 패배를 만회하려면 교류전에서 반드시 우승해야 했다.
“교류전의 승리가 중요하긴 해도, 일본과의 협조는 후일 문제가 될 무리수가 아닐는지요.”
“협조하지 않으면 이길 수나 있고?”
소림의 승려답지 않게 일룡은 꽤 공격적인 언사를 보였다. 한국 생도에게 당한 상처가 계인처럼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이의를 제기했던 일반 문파 생도인 류국룡이 식겁하여 입을 닫았다.
“지금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할 때가 아니야. 또다시 패한다면 후일은커녕 당장 오늘도 감당하기 힘들 거다.”
“하면, 일본이 먼저 손을 내민 겁니까?”
“그렇다.”
“다행이군요.”
이 와중에도 누가 먼저 요청했는지를 따지고 있었다. 어차피 둘 중 하나라도 합의가 되지 않았다면 의미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각오를 다지는 데는 중요했다. 체면을 중시하는 대국의 성향상 어떻게든 우위에 있어야 한다.
일룡은 굳이 사실을 말하진 않았다. 합의는 남궁천과 시게노가 동시에 했다. 개인전을 보고 도저히 지금의 전력으론 한국을 이길 수 없다고 시인한 것이다.
‘하아, 하늘이 원망스럽구나.’
한국에 패한 것도 자존심이 상하지만, 일본과 협력해야 하는 현실이 일룡의 자긍심을 무너뜨렸다.
일룡만 느끼는 것은 아니다. 이 자리에 모인 생도들은 체감하고 있었다. 다시 싸운들 한국 생도를 압도하지 못한다는 것을. 한국이 단체전에서 최하점을 받더라도 역전하기 힘든데, 정석적인 대결 양상이 된다면 결과는 뻔했다.
“대중화의 명예 회복을 위해 사적인 공명심은 배제하고, 오욕을 딛고 일어서야만 한다.”
“이제부터는 전략적인 부분을 의논할 때입니다.”
제갈비가 나서서 단체전을 위한 작전을 설명해 나갔다. 개인전과 달리 전술적인 선택이 필요했다. 더욱이 기존의 전술을 보완해야 한다.
생도들은 대의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누구라도 오늘과 같은 선택을 하리라는 동조론에 협의를 눈감았다.
‘같잖은 것들이 존심 부리기는, 그런다고 안 할 거냐!’
장위는 일룡을 비롯한 구대문파와 팔대세가의 허례허식과 위선을 비웃었다. 그렇게 자존심을 부리고 무게를 잡을 거였으면 애초에 이겼어야 했다.
그도 아니면 모아 놓고 협의를 팔지 말았어야지. 모두가 듣는 자리에서 얘기한 건, 너희들도 공범이라는 의미가 되었다. 자기들이 책임을 지기 싫으니까, 미리 밝히는 것에 불과했다.
‘똑같은 것들이 어디서 고고한 척 위선을 떨어!’
이제는 사라진 마도와 다르지 않았다. 과거 당 차원에서 제로코로나 정책을 따와 마도를 척살한 적이 있었다. 이후로 당정과 연계한 정도와 삼합회로 구성된 사도가 있었다. 국제전에 사도를 내세울 수는 없기에 정도로만 구성되었음에도, 하는 짓은 사도나 정도나 매한가지였다.
“자자, 단체전의 승리만 생각하자고. 나도 체신을 세워야 할 필요가 있거든. 할 수 있겠지, 암! 할 수 있고말고.”
크흠.
정신 산만한 장위가 끝까지 회의에 남아 있는 연유였다. 이제까지 당한 걸 갚아 주려면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나를 따라 줬으면 좋겠어.”
“무슨 말씀입니까?”
“한국만 끝장내면 끝나는 거 아니잖아.”
“설마?”
“이기면 그만이야.”
이로써 한 가지는 배웠다. 협동해야 한다는 걸. 이대로 묻어 두기에는 체면과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개자식! 대장부의 복수가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게 해 주마!’
다른 놈은 몰라도, 이 새끼만큼은 절대 용서하지 못한다. 개인전은 황사로 인한 컨디션 난조였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인구빨’의 무서움을 보여 줄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