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204화 (205/374)

204. 남자의 로망(2)

‘내력이 무한이더냐!’

유경중은 놀람을 완전히 지우고, 거드름을 피웠다. 어차피 먹지도 못할 것, 이럴 때는 대인배가 되어야 했다.

“어떠냐, 이래도 선물이 맘에 안 들어? 그렇다면 다른 선물로 교환해 주마.”

“못 먹을 거 줬으면서 인제 와서 욕심이 나는 겁니까?”

“나는 분명 진화형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너 정도 되니까 줬지, 아무한테나 줬겠어.”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잘 얹으시네요.”

“그게 바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란다. 실제로도 쓸모없는 걸 준 것도 아니지 않느냐.”

맞는 말이긴 했다.

숨겨진 기능을 몰랐다고 해도 반지, 이제는 육신의 일부처럼 스며든 변형 아이템의 가치가 사라지진 않는다.

“테스트를 해 봐도 될까요?”

“아무렴, 어서 해 보거라. 나도 궁금하다.”

유경중은 3갑자를 집어넣은 후, 이거저거 여러 가지로 변형을 해 보았다. 아내가 놀라서 얼굴을 붉히며 방으로 들어간 걸 상기하면, 순간 잘못 만들었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어쨌든 변형 아이템은 남자들의 로망이었다. 어린 시절 보았던 변신 로봇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메카닉을 싫어하는 남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그렌다이칸을 만들어 보죠.”

“너, 나이가 대체 몇 살이야?”

인조인간태권제트 그렌다이칸을 알다니, 최소 쉰 살은 되어야 했다. 그 시절의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르는 유경중이었다. 나중에야 일본 표절인 걸 알고 얼마나 욕을 했던가. 다이칸조차 사실은 일본어였다.

다만, 추억이기에 애증의 관계로 치부했다.

“다이칸 소환!”

무진도 기대가 되었다. 추억의 애니로 유튜브를 통해 봤던 기억이 있었다. 우리나라 만화치고는 정말 센세이션하긴 했었다.

추억 소환을 기대하던 유경중의 안색이 변하면서 다급해졌다.

“……그만!”

인조인간태권제트 다이칸의 실제 규격은 70m였다. 무한 변형기는 안타깝게도 질량보존의 법칙을 깡그리 무시했다.

우우웅!

***

“오자마자 사고를 거하게 쳤더구나.”

“아이템이 하도 신기해서 저도 모르게 신이 났나 봅니다.”

“신난다고 남의 가주실에 구멍을 내면 되겠느냐.”

“사소한 실수는 넘어가죠.”

사소한 실수라고 하기에는 가주실이 거의 반파되었다. 집사장과 무인들도 굉음을 듣고 달려왔다, 다들 소환된 추억에 황망한 표정을 지었었다.

가주께선 인간의 상상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친히 목도하는 영광을 얻었다. 그 대가로 건물이 반파되긴 했으나, 아무 곳에서나 상상력을 발휘하지 말라는 교훈도 얻었다.

인간은 실수를 통해 배운다고 했으니 지수 아버님도 속 좁게 행동하진 않으리라 믿는다.

“우리 지수 우승시켜 준다면서 네가 홀라당 처먹냐?”

“토너먼트 대진표를 제 맘대로 할 순 없잖아요. 그래도 아름답게 퇴장하도록 명분까지 챙겨 줬으면 된 거 아닌가요?”

“맞아, 나도 별로 우승하고 싶진 않았어.”

지수도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나중에 태수 선배에게 꼬장 부릴 걸 상기하면 불쌍하긴 했다. 지금 당장 넘어갔다고 해서 안심하다간 큰코다친다. 지수의 복수심은 회귀하고서도 변하지 않았으니까. 속된 말로 아주 독한 골드미스시다.

“가문 내의 동태는 어때요?”

“별다른 움직임은 없더구나.”

“강화도도 그런가요?”

“그렇단다.”

강화도에 최근 권왕가의 지부를 만들었다. 소규모 장원으로 50명 이상 수용하기는 어렵다. 지부장은 가문을 배신하고 패륜을 저질렀던 유경운이었다. 유지호는 아직 훈화가 덜 되어서 교육 중이었다. 대외적으론 권왕이 차마 손을 쓰지 못하고 유경운에게 속죄할 기회를 줬다고 알려졌다.

다만, 유경운 지부장의 아내와 둘째, 셋째는 본가에 머물도록 했다. 따로 만나는 걸 허락하지 않았고, 감시자를 붙였다. 일종의 인질이었다.

물론, 이조차도 주변을 의식한 요식행위였다. 패륜아긴 해도 자식이란 이미지가 필요했고, 만약을 대비하는 모습도 보여야 했다.

“교류전에 집중하고 있을 때 접촉을 해 올 줄 알았는데, 쩝.”

“창황가는 어떻더냐?”

“비슷해요. 그래서일까, 좀 이상하네요.”

“어디가?”

“순탄한 것 같아서요.”

아카데미 내 세작을 소탕한 이후로 암중 세력은 은인자중하고 있었다. 여론이 주시하는 이때 굳이 문제를 일으키진 않겠지만, 다음을 위한 포석은 있어야 했다. 그래서 놈들의 취향에 맞추어서 미끼를 던져 놨거늘, 세상일이 그렇듯 순탄하진 않았다.

“이제까지 손바닥 안에서 가지고 놀았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런다는 법은 없단다. 오히려 과한 자신감이 화를 불러오곤 하지.”

“헐, 내 할아버지 맞아!”

“제 사부님이 맞습니까?”

우문현답에 무진과 지수는 화들짝 놀랐다. 자신들의 할아버지이자, 사부님답지 않게 관록과 연륜이 느껴졌다.

그동안 싸움에 미치신 분으로 오해했었나?

그럴 리가.

광인도 가끔가다 정신이 돌아올 때가 있었다.

“소 뒷걸음질이군요.”

“확실히 그쪽이 타당성이 있어.”

무진과 지수의 짝짜꿍에 권왕은 헛바람을 삼켰다. 둘이 어울려 다니더니 아주 그냥 똑같은 녀석들이 되었다.

“이래서 손녀나 제자는 키워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니까!”

“할아버지,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하세요. 저는 혼자 컸어요. 무진이도 마찬가지고요.”

“제 사부님이시지만, 아주 뻔뻔하시네요.”

부창부수가 따로 없다. 둘이 동시에 갈구자, 천하의 권왕도 할 말이 없는지 입이 댓 발은 나왔다.

“크흠, 첫째가 준 아이템이나 꺼내 봐라.”

“말 돌리시는 것 같지만, 모른 척해 드리죠. 사부님도 보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무한 변형기는 나노머신처럼 무진과 동기화가 되어 있었다. 천년 공력을 주입한 소유권 이전 효과였다.

시험해 보고 싶은 것도 있고 하니.

“갑자기 결계는 왜 강화하는 게냐?”

“그냥 하면 재미가 없죠.”

무진은 무한 변형기를 소환했다. 아이템의 완성된 형태를 본 사부님과 지수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말도 안 돼!”

“이건 재앙 아니냐!”

***

제작이 완료됐다는 전화를 받은 무진은 쉐도우 길드를 찾았다. 지수는 아직 치료가 더 필요한 상태로 알려져 같이 움직이진 않았다. 공간 이동하면 문제없다고 매달렸지만, 지수를 굳이 데리고 다닐 필요성도 못 느꼈다.

그리고 제인 누나를 만날 계획은 없었다. 정보 전달은 길드원을 통하면 그만이었다.

“어떻게 된 애가 길드에 왔으면서 나를 찾지도 않냐? 우리 이런 사이였어?”

“공적인 일 외엔 자기 일에 관심 두지 말라고 했던 사람이 누군데?”

“말이 그렇다는 거지.”

“복수는 원래 혼자 하는 거라지 않았나?”

“그렇다고 자기 일만 하고 그냥 가냐!”

무진은 길드를 위한 일이라면 나서겠다고 했다. 권왕가, 쉐도우 길드, 성운 그룹은 필요한 조직인데 관심을 두지 않다니 명백한 오해였다. 더욱이 블랙마켓을 통합하려면 나머지 길드와의 마찰은 불가피했다.

쉐도우 길드는 현재 총통 길드와 손을 잡았다. 다만, 호박씨를 깔 줄 알았던 총통 길드가 협조적인 태도를 보여 의아했다. 일례로 보부상 길드와 테라 길드에선 모르고 있었다.

“누나가 보기엔 어떤데?”

“보부상 길드와 테라 길드에서 별다른 말이 없다면 꿍꿍이가 있다고 봐야겠지.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 총통 길드가 야심을 드러내리라 보고 있어.”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럼 됐지?”

“되긴 뭐가 돼? 얘가 정말 매정하네. 사람 관계라는 게 일만으로 끝인 게 아니에요.”

“되게 예민해졌네. 혹시, 도후 형하고 잘 안 돼?”

“그 인간 얘기는 꺼내지도 마!”

꺼내지 말란 것치곤, 결국 이거였군.

숙맥인 도후 형 혼자만의 사랑인 줄 알았더니. 그새 어떻게 제인 누나를 꼬셨는지, 원. 그럼에도 의외인 것은 제인 누나가 성질을 내고 있다는 점이다. 어쩐지, 연구실로 가기 전 길목에서부터 막더라.

‘도후 형한테 남다른 매력이 있었나?’

남녀 사이에 사랑이 가장 중요하나, 궁합을 무시하긴 힘들다. 플라토닉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런 사랑이 가능하다면 진심으로 박수를 받아야 했다. 인간은 사회성을 배운 동물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참는 데도 한계가 있고.

“머나먼 복수보다 가까운 사랑이 중요하긴 해.”

“뭔 소리야, 난 복수를 위해서라면 도후 따윈 언제든 버릴 수 있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이 담겼다. 사랑도 중요하나, 복수보다는 중요하지 않았다. 달리 해석하면 잡아 놓은 물고기라는 건가. 하긴, 미끼는 어장 밖에서나 사용하는 거지.

“누나 없이 하루도 못 사는 도후 형이 이 말을 들었으면 충격 좀 받겠네.”

“그 자식은 당해도 싸. 감히 내 앞에서 새로운 들어온 길드원한테 수작을 부렸다고!”

“그럴 리가.”

도후 형이 간이 배 밖으로 나오지 않은 이상, 그럴 사람이 절대 아니다. 그럴 강단도 없고, 누가 봐도 잡혀 사는 훗날 퐁퐁남 기대주였다. 사실 퐁퐁이라고 하기엔 제인 누나가 더 잘나가긴 했다. 퐁퐁이도 일단 본인이 잘나가고 난 후에야 가능한 영역이었다.

“그러니까, 새로 들어온 여길드원이 젓가락질하는데 깻잎을 잡아 줬다는 거잖아.”

“맞아, 감히 나를 두고!”

패딩 논쟁과 비슷한 건가?

무진은 사족 대신 묵묵히 들었다. 어디까지나 제인 누나와 도후 형의 사적인 영역이었다. 남의 연애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자격은 없었다. 어느 편을 들어도 좋은 소리 듣기도 힘들고.

무진의 담담한 호응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제인은 확인차 되물었다.

“너라면 어떻게 할 거야?”

“허공섭물을 사용했겠지.”

“……?”

젓가락이 닿지도 않을 테고, 침을 공유하지도 않으니, 아주 합리적인 대안이었다.

그래서일까, 제인 누나는 입도 뻥긋 못 했다.

‘완벽한 정답이군.’

무진은 망부석이 된 제인 누나를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블랙마켓 내 경쟁이 과열되었다면 심사숙고를 해 볼 일이나, 직접 손을 쓰기엔 조용했다.

‘낌새가 있었다면 제인 누나가 알아챘겠지.’

권왕가와 창황가에 이어 블랙마켓도 당분간은 큰 파도가 오기 전의 잔잔한 물결처럼 조용히 관망하고 있었다. 교류전에 쏠려 있는 세간의 이목을 피해서 물밑 작업을 할 줄 알았다.

‘너무 몸을 사리는데.’

좀 더 살펴보기는 해야 했다. 암중 세력은 단기적인 계획이 아닌, 긴 안목으로 장기 플랜을 세워서 움직였었다. 이번에도 눈앞의 이득이 아닌, 좀 더 먼 미래를 위한 계획을 실행 중일 수도 있었다.

연구실에서 도후, 장훈, 태천은 무진이 오기를 기다렸었다. 이제는 체계가 잡혀서 서열이 고정되었다. 넘어서기엔 스타트 지점이 다른 걸 인정했다.

도후 형이 포션 병을 건네주었다. 진득한 액체는 검은색의 오묘한 빛을 띠어 마시기 불편해 보인다.

“엘릭서처럼 신비로운 자줏빛도 아니고, 색깔이 좀 그런데.”

“색이야 아무려면 어때, 효과만 확실하면 됐지.”

“그렇긴 해, 대량생산이 가능할까?”

“대천사의 눈물을 대신할 성분을 찾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거야.”

예전에 지수는 대천사의 눈물을 보고에서 찾아내고 뛸 듯이 기뻐했었다. 이걸 대악마의 피와 결합하면 내외상, 독 상관하지 않은 무결점의 치료제인 [신의 정화]가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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