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201화 (202/374)

201. 오차 범위 내(2)

“본인 앞에서도 그리 말할 수 있나요?”

마법을 가르치는 교관도 입을 다물었다. 결국, 정령사를 제외하면 진짜 스승이라고 하기엔 무진의 허들이 지나치게 높다.

그러고 보면 무진의 인맥이 보통이 아니다. 교관들은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단체전도 열심히 하자는 취지였네.”

“거, 말도 못 하나.”

“꼭 능력만 있다고 해서 스승이 아니지.”

“정신적인 성숙…… 크흠.”

무진은 이쯤에서 마무리했다.

하나라도 배움이 있다면 사제 관계라 할 순 있었다. 그러나 좀 더 명확한 관계를 맺고 싶다면 상응하는 기브 앤 테이크가 기본이다.

교관들도 그 정도의 상식은 있었다.

***

“전적으로 제 불찰입니다.”

“그래도 다행이네, 기가 꺾이지 않아서.”

“다음에는 오늘처럼 당하지 않을 겁니다.”

“부동심의 하야토를 이렇게까지 흔들어 놓다니, 걔도 정말 대단하네.”

하야토는 공주를 볼 면목이 없었다. 전력상 불리하긴 했어도, 패자는 유구무언이었다. 그럼에도 돌이켜 볼수록 분한 감정이 드는 건 사람인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기절하기 직전까지 철저하게 농락당한 대가를 되돌려 주어야 했다.

“어땠어?”

“강합니다. 온전했다고 해도 이긴다고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하긴, 그래. 이번에 한국은 정말로 강해. 솔직히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줄은 몰랐어.”

“단체전은 다를 겁니다.”

“장담할 수 있어?”

“그건, 아닙니다.”

하야토는 확신하지 못했다. 다시 붙는다면 천혜진조차도 경시할 수 없는 상대였다. 하물며 한국 생도들의 전반적인 실력이 과거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성장했다.

단체전에서 압도적인 점수를 내지 못한다면 개인전의 차이를 극복하기도 힘들었다.

“단체전은 한국을 배제하기로 했어.”

“중국과 합의를 한 겁니까?”

“내 취향은 아니지만 어쩌겠어. 교관이 그러라는데. 자기도 할 말이 필요한 거겠지.”

“공주님이 받은 모욕을 반드시 몇 배 이상으로 갚아 주겠습니다. 그러나 전략적 선택은 후일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말라던데.”

단체전은 던전 공략, 처리한 마물의 등급과 마릿수로 점수를 매긴다. 개인전에서 벌어진 점수를 극복하기엔 마물을 많이 죽인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그럴 바엔 한국을 떨어뜨리고, 중국과 순위를 겨루는 편이 나았다.

“인공 던전의 전파 방해를 이용할 심산입니까?”

“인공 던전이라도 던전이고, 탑의 마나를 쓰기에 언제 어떤 사고가 발생해도 이상하진 않잖아.”

아카데미에 세워진 탑은 퀘스트, 보상, 마나의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그렇기에 탑의 존재 자체가 중요했다. 일례로 탑이 있는 국가는 강력한 헌터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당연한 보상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탑의 마나를 이용해서 인공의 던전을 만들지만, 완벽하다고는 장담하기 어렵다. 때론, 불특정의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렇다고 아무 때나 일어나진 않는다.

인공 던전에서 매번 사고가 발생한다면 어떤 미친 학부모가 아카데미에 생도를 보내겠는가. 보통은 일어나지 않으며, 대형 사고로 번지지도 않았다. 한데, 교류전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

“여론도 배제할 계획이군요.”

“양국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야 좋겠지만, 국민 정서에 따라야지, 어쩌겠어.”

“미츠키 사마께선 구정물에 발을 담그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나만 빠질 순 없어.”

공주로서 온갖 혜택은 받고 더러운 일이라고 하여 빠진다? 미츠키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해야 한다면 자신이 직접 책임을 져야 했다.

‘그래도 받은 건 돌려줘야겠지.’

또래의 여생도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을 줄 누가 알았을까? 일본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현실이었다. 모처럼 투지가 불타올랐다.

***

단체전은 개인전이 끝나고 5일 뒤에 열린다.

개인전의 흥행을 이어 가고 싶은 방송국으로선 아쉬운 일이나, 만전의 상태에서 단체전을 치러야 했다. 개인전이야 기권이나 적당한 선에서 포기하면 그만이지만, 단체전은 던전에 휩쓸릴 수 있었다. 가능성을 거론한다면 0.1%도 되지 않을 위험이긴 하나, 생도의 목숨을 확률에 의지할 순 없다.

무진은 시상식 후 집으로 돌아왔다.

지수에겐 본가로 가라고 했다. 태수 선배와 혈전을 치르고 멀쩡하다면 그게 더 이상해 보일 수 있었다.

다만,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치료가 끝난 척해 주었다. 시선을 속이기엔 진실과 거짓을 적절히 섞는 수법이 최선이었다. 사실 안 속아도 그만이지만, 중국과 일본이 오해해 주면 땡큐였다.

-요나.

-크림이.

집의 문을 열자 요나와 크림이 반겼다.

요나와 크림은 하야토와의 대결 직후 돌아와 있었다. 소환 장소를 집으로 지정해 두었기에 자동 소환이 되었다.

요나와 크림은 하야토와의 대결에서 전력의 반도 보여 주지 않았다. 정령 등급과 마수 등급도 제한했었다. 그만큼 요나와 크림의 성장은 놀라웠다. 주인이 없어도 스스로 훈련장에 들어가 집의 모범이 되었다.

처음부터 요나와 크림이 부지런하진 않았다. 늘 그렇듯이 애완 정령과 마수에겐 가르침, 훈련, 보상의 삼박자가 있어야 했다. 특히 성과가 뚜렷할수록 보상이 크다는 걸 인식시켰다. 기브 앤 테이크는 사람, 정령, 마수를 가리지 않았다.

“집에선 편하게 말해.”

-숙녀를 부를 때는 신호라도 보내라고!

-주인님, 저는 어느 때든 괜찮습니다.

등급이 오르고 영성이 발달하면서 언어 문제가 해결되었다. 다만, 자유로운 언어 구사는 특이한 케이스라 당분간은 숨기기로 했다. 급격한 진화로 얻은 부작용 같지만, 긍정적인 방향이라 놔두었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돼?

-누나, 주인님이잖아.

-말대답도 하고, 세상 참 좋아졌네. 나 때는 안 그랬는데.

-잘못했어, 훈련장은 싫어!

-흥, 이번만이야.

-충성, 충성!

크림은 여전히 요나에게 붙잡혀 지내야 했다. 조금이라도 풀어지면 요나는 크림을 훈련장으로 끌고 가서 기강을 잡았다.

요나가 보기보다 츤데레인지 몰라도, 전혀 다른 종족임에도 잘 어울렸다.

저러다 정령과 마수가 눈이라도 맞으면?

‘너무 나갔구나.’

인종차별은 없어져야 마땅하지만, 종족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유사 인종도 아니고, 정령과 마수는 태생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금단의 영역이었다.

‘궁금하긴 하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는 게 사람의 심리이듯, 금단의 영역일수록 넘고 싶어 했다. 정령과 마수도 계속 붙어 있다 보면 예상치 못한 돌연변이가 나올지도.

‘올 때 같이 오면 좋았을걸.’

진 회장의 불편한 심기는 고스란히 갑질로 나타났다. 시상식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아버지를 회사로 데리고 돌아가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러면서 퇴근 시간이 되지 않았다는 둥 업무의 일환이었다면서 잘도 둘러댔다.

‘갑질을 호되게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리시려나.’

회사와 길드를 빼앗기고 뒷방 늙은이로 전락해 봐야 내가 그때 왜 갑질을 했을까 후회하게 되겠지.

아직은 선을 넘지 않아 경로사상으로 봐 드렸다. 노인은 공경해야 마땅하기에 노인공격 사태가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무진은 평소대로 12첩 반상을 차렸다. 따로 메뉴를 걱정하진 않는다. 모든 요리를 기억하며 계절에 어울리는 찬을 올렸다.

“요리사에게 능수능란한 내력의 운용은 기본이지.”

요즘은 손맛이라기보다는 마나의 운용 능력이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요리에 마나, 내력을 사용하면 색다른 맛을 낼 수도 있고, 효용성은 물론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일례로 내력이나 마력에 빙기(氷氣)를 실으면 북해에서 갓 잡은 회처럼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젠 요리사도 활검을 배워야 할 때지.”

높은 진입 장벽과 무력 낭비처럼 보이나, 요리사라면 모름지기 맛에 타협해선 안 되었다.

무진은 무공만큼이나 요리에도 진정성을 보였다. 요리사란 인간에게 궁극의 희로애락을 주는 구도자였다. 최고의 재료를 고르고, 맛을 내는 데 양보하지 않았다.

특히 신메뉴 개발을 할 땐 집중도가 극한에 이른다. 명경지수를 유지한 채 재료, 양념의 조합을 계산했다.

한가로울 때나 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그간 암중 세력과의 다툼으로 신메뉴 개발에 차질을 빚었었다.

“세상이 좋아지긴 했지.”

식량 부족을 던전의 부산물로 대체해 나가고 있는데, 기존 소와 돼지의 영역을 넘보게 되었다.

“도피는 맛의 혁명 그 자체긴 해.”

도피는 식용이 가능한 마물로, 돼지와 개를 반반씩 섞어 놓아 살짝 혐오감이 들기는 해도 육질이 끝내 주었다. 도입 초기에 반려동물협회에서 식용을 반대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렇진 않았다.

개와 조금 비슷할 뿐, 개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집에서 기르기엔 혐오스러워서 그런다는 말도 있었다.

실제로는 마물치고 굉장히 순하다.

“하긴, 이 맛을 보고 끊기는 어렵지.”

미국이 가장 먼저 이 시장을 선점하면서 국내 생산은 한우처럼 내부에서만 판로가 있었다. 웃기는 현실은 도피도 국산과 미국산의 가격 차이가 컸다는 점이다. 신선도 면에선 미국산보다 국산이 맛이 좋다곤 해도, 가성비를 논하면 비교 불가였다.

“던전 농사를 시도해 봐야겠다.”

일전에는 한번 고민을 해 보는 수준이었다면 권왕가와 성운 그룹을 연계한다면 가능할 듯도 싶었다. 이는 땅이 좁은 나라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현대에 전쟁을 일으켜서 영토를 넓히는 일은 어려웠다. 만일 그런 짓을 하면 전 세계가 합심해서 다구리를 친다.

저녁 7시, 아버지가 오셨다.

진 회장은 어떻게든 야근시키려고 했겠지만, 아버지도 이젠 어엿한 회사의 중진이었다. 비록 진 회장이 준 권력이기는 해도, 근래 성운 길드의 활약을 무시하긴 힘들었다. 그로 인해 남 실장 계파와는 더더욱 사이가 좋지 않았다.

“집에 안 가세요?”

“산하는 내 친동생이나 다름이 없단다.”

“오자마자 식탁에 앉는 분이 할 소린가요.”

“어른이 먼저 수저를 들어야 평소 예의를 중시하는 우리 무진이가 편히 먹을 수 있지 않느냐.”

투귀 어르신도 아버지의 사회생활에 물들어 점점 더 뻔뻔해졌다. 길드장의 기품은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품위 유지용이었다.

반전 매력이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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