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199화 (200/374)

199. 왕서방, 무진(4)

말려도 이상하진 않았다. 하나, 국제 교류전이었다. 우리나라에서 하야토의 패배를 선언하면, 임의로 조작했다는 말이 나올 수 있었다. 괜히 분쟁이 나기를 바라지 않으니, 간섭하지 않는다. 결국, 일본에서 결정을 내리고, 백기를 들어야 했다.

퍽, 푸아아아!

무진의 펀치가 점점 강해졌다.

하야토의 잘생긴 얼굴은 피로 범벅이 되었고, 휘청거릴 때마다 선혈을 분수처럼 뿜었다.

무진은 방심하지 않고, 최선의 수로 하야토를 유린했다.

부들부들!

시게노는 떨리는 두 눈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몇 번이나 농락당해야 성이 차는 건지. 애초에 승산이 없었다. 그걸 교장은 선심을 쓰는 척 교묘하게 바꿔 말한 것이다. 전력을 다한다 한들, 무의미한 공수표였다.

지금도 봐라.

전력 대 전력의 대결이 되었더라도 난적이었다. 하물며 전력에서도 밀리는 데다가 작전과 심리전에도 한 수 위에 있었다. 하야토를 밀어붙이기 위한 모든 언행이 계획된 전략이었다.

‘설령 안다고 해도 어렵다.’

대결 텀이 너무 짧았다. 시간이 주어졌다면 저 교활한 교장은 분명 다른 수를 썼을 터. 이로써 교장은 개인전 우승과 명분을 동시에 알뜰하게 챙겼다. 자신은 교장의 노림수에 철저하게 놀아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교장은 관대한 모드를 풀지 않았다.

“생도 간의 치열한 혈전은 감동이 있구려. 앞으로도 오늘처럼 비겁한 승리보다는 공정한 교류전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하하하.”

교장의 훈훈한 덕담에 시게노와 남궁천의 속은 썩어 문드러졌다. 처음부터 노렸다고 하기에는 자신들이 한 짓이 있었다. 먼저 분노를 유도한 것도 자신들이기에 교장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었다.

‘방심 못 할 노인네였어!’

‘오늘 일을 절대 잊지 않겠다!’

앞으로가 더 문제였다. 교류전은 오늘만 하지 않는다. 한·중·일 돌아가면서 하게 될 테고, 어설프게 봐주거나 기권하긴 어렵게 되었다.

오늘과 같은 치열한 혈전이 증거로 남은 이상, 두고두고 빌미를 제공할 것이다. 설령 모르쇠로 일관한들, 한국은 할 말이 생긴다. 중국과 일본에겐 오늘의 혈투가 좋지 않은 선례가 되었다.

‘인정한다. 그러니 그만하거라!’

시게노는 끝까지 버티는 하야토가 안타까웠다. 단체전이 남아 있는데, 무리하게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쉴 시간이 주어지기는 해도, 만전을 기하기에는 부족했다.

‘악마 같은 놈! 하야토를 죽일 셈이냐?’

불굴의 용기와 집념도 통할 상대가 따로 있었다. 무진은 어쭙잖게 도발에 응수하거나, 불리한 구도 자체를 만들지 않았다. 되레 하야토의 끈질긴 저항을 악마처럼 즐기고 있었다.

퍼억, 커억!

크하하하하하!

휘청이고, 비틀거리고, 쓰러진다.

그런 하야토를 무진은 집요하게 두들겼다. 절대 틈이나 반격의 여지를 주지 않는 선에서 괴롭혔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야토도 버티기 힘들었다.

하나, 정신을 잃지도 않았다. 스스로 패배를 선언하도록 종용하고 있었다.

‘자존심을 꺾을 심산이구나!’

무진의 의도를 읽은 시게노는 치를 떨었다. 교장이나 생도나 교활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야토는 개인전뿐만 아니라 단체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기절하지 않는 이상, 절대 먼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더 문제였다.

이 정도 했으면 그만둘 법도 한데, 무진은 기절조차 용납하지 않고 있었다. 하야토의 의식이 흐릿해질 때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해 주었다. 나중에 심신미약의 핑계를 덜어 주려는 큰 뜻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우드드득!

크아아악!

이성이 붕괴하기 직전 전력을 다해 임팩트 스킬을 쓴 하야토의 오른팔이 반대 방향으로 꺾였다. 큰 기술을 쓸 때를 노리고 있었던 건 오히려 무진이었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하야토의 오른팔을 비틀어 버렸다.

덜렁!

휘청, 비틀!

투득!

하야토는 오른팔을 내주는 대신 왼팔로 무진의 얼굴을 노렸었다. 안분지족의 무진은 오른팔을 부러뜨린 것으로 만족하며 물러섰다. 이때 크림이와 요나가 하야토의 접근을 차단했다.

허!

마지막 회심의 일격마저 허무하게 끝이 나자 하야토의 두 눈이 크게 흔들렸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 결사 항전의 각오와 불굴의 용기도 희망이 있어야 타오르기 마련이다.

부르르르!

무진은 하야토에게 그 어떤 희망도 주지 않았다. 이미 승부가 끝이 난 것이나 다름없는데도 여전히 치고 빠졌다.

“……난 꺾이지 않아!”

“그래, 훌륭하다.”

하야토가 비틀거리며 틈을 주자, 무진은 쇄도하여 왼팔마저 꺾어 주었다. 팔이 부러지는 괴랄한 골음(骨音)에 다들 몸을 떨어야 했다. 처절한 것도 정도가 있었다.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

“부러진 오른팔에 내력을 주입하다니! 후우, 위험했어. 과연 일본이 인정하는 신성다워. 집념 하나는 정말 대단해. 나 같으면 진작 포기했을 거야.”

무소유의 무진은 칭찬을 아끼지 않고 베풀었다.

하야토에겐 절망적인 선포나 다름이 없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될 줄 알았지만, 무진은 맞물리는 톱니바퀴처럼 틈을 주지 않았다. 버티면 버틸수록 내외력이 아닌 정신력이 박살 나고 있었다.

하야토가 비록 생도 사이에서 뛰어난 정신력을 갖춘 천생 검객이긴 해도, 이제 열아홉 살이었다. 버티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포기를 못 하는 것이다. 더욱이 무진이 지속해서 심리전을 걸고 있었다. 나는 못 하지만 너는 한다는, 전형적인 가스라이팅이었다.

후들, 후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데도 하야토는 서 있었다. 자신이 쓰러지면 일본의 기상이 무너진다는, 죽더라도 결투장에서 죽겠다는 결의였다.

“또 무슨 비장의 수를 숨겼으려나. 결의 봐라! 이거 접근하기도 무섭네.”

무진은 하야토의 주위를 빙빙 돌며 마수와 정령을 이용했다. 그러자 다들 대연무장의 전광판을 쳐다보았다.

-15분 경과.

모든 결투는 30분을 넘기지 않는다. 숨을 참으며 지켜봤기에 체감상 1시간은 흐른 줄 알았다. 그런데 아직도 15분이나 남았다. 돌아가는 사태를 보니 무진은 시간을 전부 소모할 듯, 지공을 펼치고 있었다.

보다 못한 시게노가 자국의 교관에게 신호를 보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하야토가 완전히 망가질 수 있었다. 단체전도 문제지만, 하야토는 일본의 신성이자 천검가의 후예였다.

‘하려면 진작 할 것이지.’

일본 측의 변화를 눈치챈 무진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속도를 냈다. 하야토가 상대적으로 느리기는 했지만, 보여 주지 않은 속도였다. 알고서도 막기 힘든데, 지금 상태에서는 항거 불능이었다.

퍽, 쩌어어엉!

하야토의 흐느적거리는 제공권을 단숨에 뚫고 들어가 관자놀이를 두들겼다.

헉!

철퍼덕!

전기에 감전이 된 듯 부르르 떨던 하야토는 의식이 끊어지면서 맥없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강무진 승!

“후우우우, 겨우 이겼다. 내가 이기다니! 정말 힘든 싸움이었다고! 다 같이 오늘의 아름다운 승리를 만끽합시다!”

“……?”

두 손을 불끈 쥐며 하늘로 들어 올렸다. 무진은 승리에 감격하며 환호를 내질렀다. 말로는 힘겨운 승리였지만, 관객의 반응이 현실을 대변했다.

솨아아아아!

대연무장에 찬물을 끼얹은 듯 침묵이 흘렀다. 누구도 환호하지 못했다. 우리 생도의 승리지만, 뛸 듯이 기뻐하기에는 꺼림칙한 준결승이었다.

결투장 바닥을 칠해 놓은 선혈과 기절한 채 쓰러진 하야토. 그 앞에서 승리에 들떠서 연호하기에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아무렇지 않게 승리를 만끽하는 무진이 이상한 놈이다.

-방금 그 일격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어!

-여태 감추고 있었다는 거잖아.

-딱히 감출 필요도 없는 거 아닌가. 산송장한테 갈긴 인성은 무엇?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저 자식이 하는 꼴은 좀 그렇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하야토가 더 대단한 거지.

-일발 역전의 수를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플랜을 운영한 거지. 승리를 위한 냉철한 판단일 뿐, 악의가 있는 건 아니었어.

-저걸 보고 악의가 없다고 하다니, 눈이 사시냐?

-쪽바리는 처맞아야 제맛이지. 무진은 우리 민족의 한을 풀어 준 독립투사야.

-일제강점기 땐 찍소리도 못 한 것들이, 독립되니까 입만 살았네.

용사가 악당에게 짓밟히는 처절한 광경을 본 기분이다. 정의가 승리하기는 개뿔, 악의가 철철 넘쳤다. 그나마 무진이 우리 생도였기에 야유를 보내진 않았다.

스피커에서 이 말이 나오기 전까진.

-진태수 생도의 부상으로 강무진 생도의 우승입니다.

“이얏호! 우승이다, 내가 한·중·일의 일인자다! 어서 우승자에게 경배합시다!”

“……?”

어디에 내놔도 창피한 녀석인데, 정작 당사자는 행복해 죽고 있었다. 운이 따른다고 하기에는 실력을 보여 의문을 품진 않았다. 그런데도 하는 짓이 얄미운 걸 보면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케이스였다.

설상가상으로 겸손함은커녕 한·중·일 일인자라니, 욕먹을 짓을 대놓고 하고 있었다. 그걸 증명하듯 일본, 중국 교관과 생도들의 눈빛이 사나웠다.

스윽!

무진은 주변의 따가운 눈총에도 태연했다. 대연무장을 돌아보며 미소로 화답해 주었다.

일본과 중국 생도들은 투지를 불태우지만, 한편으로 서늘한 느낌을 받았다. 무진이 얼굴은 웃고 있는데, 눈빛은 무심했기 때문이다.

특히, 시선을 고정하는 대상이 있었다.

움찔!

무진과 눈을 마주친 장위가 식겁했는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을 쳤다. 자신을 본 것이 아닐 수도 있어서 이리저리 돌려 보지만, 무진은 너라고 꼭 집어 말하고 있었다.

‘……이 새끼가!’

장위로선 이전에 당한 굴욕과 개인전의 복수까지 다짐했었다. 준결승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무진이 자신보다 우위에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과 별개로, 독심이 상상을 초월했다.

만약 자신이 하야토였다면 어땠을까?

꿀꺽!

천극단을 복용한다고 끝날 문제가 아님을 체감했다. 저 악독한 놈이 자신을 향해 독심을 품는다고 상상해 봐라. 단체전이 열릴 때까지 될수록 피해 다니는 편이 이로웠다. 사사로이 수작을 부렸다가는 저놈이 어찌 나올지 감당이 되지 않을 듯했다.

‘쫄았냐?’

무진의 전음에 장위는 치를 떨어야 했다. 몸을 떨며 고개를 돌렸으니 아니라고 한들 구차해졌다.

부들부들!

장위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저딴 놈이 개인전에서 우승하는 것도 그렇고. 빌어먹을 놈이 운도 더럽게 좋았다.

‘좆같은 말로 할 때 100억 가지고 와라.’

무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장위는 그제야 숨통이 트였다. 자괴감이 밀려왔다. 병신 같은 현실에 울화통이 터졌다. 본국에서는 왕처럼 군림했던 자신이 소국의 생도에게 기가 죽어서 고개를 숙이다니.

‘두고 보자!’

장위는 재차 복수를 천명했지만,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럴 만큼 중요한 인물도 아니고, 이제는 관심의 대상 밖에 있었다.

짝짝짝!

대연무장의 관객들은 박수를 쳤다. 개인전 우승은 참으로 오랜만이라, 박수 받을 만하긴 했다. 모양새가 이상하긴 해도, 무진은 3학년 이하 한·중·일 1등이었다.

흠.

환호하는 무리 속, 실소(失笑)하는 인물이 있었다.

그로서는 뜻밖의 광경이긴 했다. 하나, 납득하기 힘드냐고 묻는다면 또 아니다. 운칠기삼으로 몰아가는 여론과 달리 실제로 상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또래에서 비교될 만한 생도는 세 손가락도 많았다.

‘실력도, 운도 타고났군.’

그 운이 어디까지 갈지 기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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