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197화 (198/374)

197. 왕서방, 무진(2)

-같은 게 아니라, 박살 났겠지. 저 바닥을 봐, 파인 거? 결투장의 바닥은 특수 설계된 대리석으로 강화를 거쳐서 어지간해서는 흠집도 안 난다고. 저게 움푹 파이다 못해 부서질 정도면 인간의 머리통은 뇌수와 선혈으로 범벅이 됐겠지.

-솔직히 이 설명충 새끼 맘에 안 들지만, 이건 인정.

-누가 보면 부모나 형제를 죽인 원순 줄 알겠다.

박진감이 넘치는 대결의 선을 한참 넘었다. 어느 순간부터 피를 튀기는 혈전이 되더니, 살수(殺手)가 빗발쳤다. 손 속 하나하나가 살벌함을 넘어 죽이려고 했다.

-방금 눈 찌르려고 했는데?

-고환 연속 차기는 너무하잖아!

-이번엔 권기로 관자놀이와 명치를 노렸잖아!

-씨발, 슬로 영상이기에 망정이지, 안 보였다고!

-공기가 갈렸어? 팔꿈치가 칼날이네.

-그런데 웃어?

-저거 완전 미친 연놈들이잖아!

피 칠갑을 하고 웃고 있는 지수와 태수였다. 터진 입술 사이로 흰 이빨을 드러내자 선홍빛 핏물이 흘러내린다.

씨익!

쌍수가 같이 광기에 젖어 들고 있었다. 이러다 사달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살벌한 광기가 휩쓸고 지나가지만, 투기는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죽어랏!”

“죽엇!”

태수와 지수는 서로를 죽이겠다고 외쳤다. 이 대결에서 반드시 이기겠다는 필사의 결의였다. 영상으로 담기에는 지나치게 살벌해서 19금을 걸어야 할 판이었다. 피가 난무하기에 선혈을 검게 칠하기까지 했다.

부르르르!

남궁천과 시게노도 작금의 돌연한 사태에 어안이 벙벙했다. 교장의 공표에 그럴듯한 쇼를 기대하긴 했지만, 이건 그런 수준을 완전히 벗어났다. 15세 액션 영화를 찍자고 했더니, 29세 그로테스크한 호러 영화를 만들어 놓았다.

‘교장,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요?’

‘진짜로 노망이 들지 않고서야!’

교장이 공표하기 직전 남궁천, 시게노와 한 대화가 방송을 탔다. 그때는 변죽을 울리는 정도로 여겼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협박이 되었다.

어쩌면 일본과 중국이 합작해서 교장을 압박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나왔다. 증거가 없기는 해도, 이쯤 되면 신빙성이 있었다.

꿀꺽!

부르르르!

남궁천과 시게노도 이제는 깨닫게 되었다. 생도들이 대련 중에 불상사가 발생한다면 자신들이 독박을 쓰게 생겼다는 걸.

본국에선 발을 뺄 게 분명하니 말이다.

결투장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감돌고 있었다. 다들 집중하며 오히려 고요해졌다.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마른침이 삼켜진다.

누구 하나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혈투.

정작 지수와 태수는 보기와 다르게 멀쩡했다. 치열하긴 해도 자신들이 겪어 왔던 훈련과 비교하면 대단치도 않았다.

‘선배, 좀 더 힘을 내라고.’

‘이 정도면 잘하는 거잖아. 너희가 괴물이라고!’

‘방금 뭐라고 했어? 무인도에 갈까?’

‘내가 잘못했다! 무인도는 싫어!’

전음을 보내며, 피날레를 장식할 투로를 설계했다. 따로 설계할 필요는 없었다. 태수가 뭘 해도 지수에게는 안 된다. 혈투도 지수가 조절해 주기에 가능했다. 작정했으면 10초 컷도 길었다.

지수와 태수는 마지막을 향해 내달렸다.

찰나 피날레를 장식하는 결정타가 교차했다. 내지른 주먹이 크로스하며 서로의 안면을 때렸다. 머리통이 박살 나도 이상하지 않을 굉음이 토해졌다.

꽈아아앙!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광경 후.

털썩!

지수가 무릎을 꿇었다.

태수는 서 있었지만, 다리가 후들거렸다. 명확히 갈린 승부긴 해도, 상처뿐인 영광이 되었다.

-진태수 승.

하아아아!

관객들은 승패가 결정될 때까지도 숨을 죽였다. 다들 수명이 10년은 줄어든 쫄깃함을 강제로 만끽해야 했다.

생도가 아닌 현역도 이만한 긴장감을 연출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래서일까, 명확하게 갈리긴 했어도 돋아난 소름이 가라앉지를 않는다. 교류전 역사에 회자될 명승부가 아닐 수 없었다.

벌떡!

손자의 경기를 관람하던 진 회장은 승리 선언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태수가 한없이 자랑스러웠다. 능히 칭찬받아 마땅한 훌륭한 승부를 펼쳤다.

끙!

감격과 한숨은 종이 한 장 차이긴 했다. 손자의 상태를 보니 다음 대결을 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저 상태로 다시 올라가라고 하기에는 무리였다.

씨익!

히죽이는 무진을 보고 진 회장은 연신 ‘썩을’을 외쳤다. 자랑스러운 손자를 위해 박수를 보내기보다, 무리한 승부를 펼친 지수가 원망스러웠다.

교류전 때마다 회자할 대결을 펼쳤지만, 정작 우승의 영광은 애먼 놈이 처먹게 생겼다.

여친과 선배가 부상을 입고 쓰러질 지경인데 웃고 있는 걸 보자니 더더욱 복장이 터진다.

-와, 인성 뭐냐?

-여자 친구 아니었어?

-진짜, 웃고 있네.

-어부지리 죽인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상은 죄다 무진이가 처먹네.

-아직 대일본 제국의 검객이 남아 있다.

-그래, 그래.

화면에 스친 무진의 환한 미소는 짤과 밈으로 영원히 고통받기 좋은 소재였다. 잊힐 만하면 영상으로 송출하여 무진의 수명을 늘려 줄 수 있었다.

당장은 지수와 태수의 승부에 초점을 맞추었다. 교류전의 명승부로 기록이 될 테고, 깨끗한 결전이 되었다. 중국과 일본이 서로 봐주고 기권했던 이전의 교류전과는 비교 불가였다.

왈가왈부했던 일본, 중국의 댓글창이 깨끗했다. 자기들도 이번에는 다른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저런 승부를 보고서 그 앞에서 조작이라고 하기에는 승자도, 패자도 상태가 심각했다.

-어디 다시 한번 지껄여 봐라, 짱개 쪽바리들아!

-우리가 너희들 같은 줄 알아!

-우린 항상 공정한 대결을 해 왔다고!

-그래. 우승 그까이 꺼 뭐 있냐, 생도라면 모름지기 이래야지!

-우린 비겁한 승리보다 아름다운 혈투를 원했다고.

-아직 진 것도 아니잖아.

-무진이 우승하면 그것도 존나 웃기네.

태수와 지수의 명승부로 인해 일본에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일본으로선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이겨 봤자 본전이고, 지면 독박을 쓸 수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이 선수를 쳤다.

-이건 다 일본의 계략이었어.

-우리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일본이 우리 대중화와 한국을 이간질하려는 게 분명해.

-한국의 명승부에 박수를 보낸다.

-우린 애초에 한국을 믿고 있었다고.

-나 같으면 기권한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개인 간의 의리 따위는 의미가 없었다. 더욱이 중국은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지 않았다. 국가를 위해서라면 개인은 언제든 희생해도 되었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은 사실 세계적인 룰이긴 했다.

일본은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준결승이 사실상의 결승이 된 이상, 반드시 이겨야 했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고, 작금의 야유가 환호로 바뀔 수 있었다.

무진과 하야토가 결투장으로 걸어갔다. 서로를 마주하는 눈빛이 극과 극이다. 여유 만만한 무진과 달리 비장한 각오로 정신을 집중하는 하야토였다.

‘일본 애들은 하나같이 하이틴 영화를 찍는구나.’

고시엔 같은 만화, 드라마, 영화에 심취했는지 생도답지 않은 비장감이 있었다. 이 하나의 승부에 나의 인생 전부를 걸겠다는 일종의 장인 정신이었다. 우리와는 다른 일본의 도제식 문화이기에 인정은 했다.

‘저러다 지면 할복하지.’

승부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면 인생이 피곤해진다. 물론,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긴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스쳐 지나가는 한 경기에 불과했다.

때론 그 하나의 경기를 평생 기억할 수도 있겠지만, 마음에 담아 두고 일생을 살 순 없다.

“한국의 공명정대한 처사에 찬사를 보낸다. 하나, 승부는 승부, 반드시 이기겠다.”

“좋아, 나도 처음부터 최선을 다해 주마.”

결투장에 들어서고, 신호가 울리기 전 무진은 내력을 끌어 올려 투기를 발산했다. 내력만 놓고 봐도 생도 수준은 넘어섰다. 극악의 효율성으로 알려졌지만, 이상하지 않았다.

우우우웅!

화아아아!

내력의 파문이 결투장을 휘몰아친다. 대결 전에 너무 열 내는 것처럼 보이나, 손을 대지 않은 이상 반칙은 아니다. 다만, 기세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서 하야토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력의 질과 양은 물론 정제된 기세가 범상치 않았다.

‘내력으론 이기기 힘들다.’

온전한 전력이라도 내력 싸움으로 간다면 불리했다. 한편으로 놀라웠다. 이만한 내력을 여태 숨기고 있었다는 뜻이 되었다. 또한, 모두가 보는 앞에서 드러냈다는 건 더는 숨길 필요가 없다는 의미였다.

‘나를 얕보는군.’

무진의 노골적인 의도에 화가 날 만도 하나, 형편이 여의치 않았다. 하야토는 천혜진과의 대결을 떠올렸다. 실로 간발의 차이였다. 여자라고 하여 얕보지 않았음에도,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면 패했을 것이다. 더욱이 그녀는 고작 1학년생에 불과했다. 2년의 세월을 고려한다면 생각하기도 싫은 결과였다.

‘앞으로가 더 문제겠어.’

그나마 시게노 교관의 적극적인 대처에 전력을 어느 정도는 회복할 수 있었다. 이번 대결을 본국에서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를 체감했다. 총점에서는 밀리더라도, 개인전 우승을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

‘공주님에게 무례를 범한 대가를 치러 주마.’

비록 미츠키 사마께서는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았지만, 대일본의 공주를 무참히 박살 냈다. 그 대신이기는 하나, 권후의 호위무사에게 죄를 물을 것이다. 자고로 수하란 주인의 잘못을 대신할 책임이 있었다.

‘네 녀석의 수가 뻔히 보이는구나.’

무진의 의도는 뻔하다. 압도적인 실력 차를 공개된 석상에서 보여 주고 싶을 테지. 한국이 일본에 가지는 열등감이었다. 임진왜란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은 패배자에 불과했다. 이순신이란 명장이 역사에 이름을 남겼으면 뭐 하나.

근대화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국가 경쟁력에선 상대가 되지 않았다. 고작 12위의 경제력으로 세계경제 3위의 본국을 걱정하는 꼴이라니.

따지고 보면 우습지 않은가. 대체 뭘 믿고 까부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설마 기억도 나지 않는 삼국시대에 문명을 전수해 줬다는 선민의식인가?

‘문명이란 흐르고, 발전하고, 또다시 흐를 뿐이다.’

과거에 얽매인 채 현실을 제대로 보지 않는 국가는 도태되어 사라질 뿐이지. 각성의 시대에 들어와 한국의 국가 경쟁력이 달라지긴 했어도, 애초에 국력의 질이 달랐다.

결국, 각성의 시대 이전의 순위대로 돌아가게 되겠지. 그것을 교류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10년 전 이후로 한국은 일본과 중국을 넘어서지 못했다. 한두 명 소수의 빼어난 자가 있다고 해도, 규모의 차이를 극복하기란 불가능하다.

피식!

무진은 가소로운 듯 웃었다. 하야토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다들 똑같지 뭐.’

전부 자기들만의 정의였다. 주변은 악의, 불의, 왜곡, 날조의 기만국이었다. 누가 맞는지, 잘했는지, 옳은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예로부터 나라가 가까울수록 우호적인 경우는 보기 힘들었다. 서로 혐오하고, 부정하고, 날을 세우곤 했다. 우리가 너희들보다는 정의롭고, 우월하다는 의식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

‘남의 눈을 함부로 보면 쓰나.’

어떤 수작을 부려도 되돌려 주겠다는 결의가 하야토에게서 느껴졌다. 무너지지 않을 거룩한 신념을 지니긴 했다. 단, 방향성이 잘못되면 신념만큼 무식하고 융통성 없는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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