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196화 (197/374)

196. 왕서방, 무진(1)

준결승이 시작되기 전.

무진은 대기실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성운 길드의 실질적인 리더로서 입지를 다져 가는 아버지는 현재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정시에 칼퇴근 하지 않는 것만 봐도.

노동부에 과로로 신고해야 마땅하나 야근 수당이 10배라고 하니 참아 주었다.

당연하게도 아버지의 옆에는 투귀 어르신이 있었다.

투귀도 이제는 어엿한 대형 길드의 길드장으로서 품격을 보였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꼬장꼬장했던 노인네가 환골탈태를 했다.

얼마 전에 자식 같은 제자들을 떠나보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꿋꿋함이다.

“던전 공략하는 거 아니었어요?”

“d급 던전이라, 길드대 1조로 충분하단다.”

“마검은 괜찮고요?”

“실장과 붙어먹으려는 것 같지만, 애송이가 별수 있겠냐.”

“애송이든, 아니든 칼 들어가면 똑같아요.”

“조처를 해 놨으니 눈먼 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버지도, 투귀도 개인전에 관해서는 묻지 않았다. 교류전에 의미를 두기엔 아들의 스케일이 너무 컸다. 비교하자면 고양이 우리에 백두산 호랑이를 집어넣은 격이다.

그마저도 따지고 보면 백두산 호랑이를 상대하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한·중·일 생도가 전부 작당해서 달려들어도, 무진이 작정하면 몰살이었다.

그렇다고 돌아가는 사정을 모르진 않았다. 교장의 폭탄 발언과 무진의 태도만 봐도 10할이다.

“우승할 셈이냐?”

“지수를 우승시키려고 했는데, 운이 따르는지 대진표가 예상과는 다르게 좋더라고요.”

“네게 부전승이나, 기권승이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교류전에서 운이 나쁜 게 더 이상하지.”

“회장님은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굳이 건강에 해로운 일을 자처하시는지 모르겠네요.”

교류전 우승은 정해진 듯하니, 이쯤에서 말을 맞추었다.

때마침 호랑이도 제 이름을 말하면 온다고, 진 회장이 대기실을 찾았다.

성운 그룹의 사업이 호황이다 보니 진 회장도 시간이 빠듯했다. 하나, 팔불출의 화신인 진 회장의 손자가 개인전 결승에 올랐다. 핑계를 대기도 수월할 테고, 아카데미에 오지 않을 리 만무했다.

무진은 모르는 척해 주었다. 잠시나마 기쁨을 만끽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곧, 정신 건강에 해로운 사태가 벌어질 테니.

“사업으로 공사가 다망하신 분이 웬일이세요?”

“강 이사가 하도 성화를 하기에, 오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찾아왔단다.”

“너무 대놓고 핑계를 대는 건 아닌가요?”

“그보다는 강 이사가 사회생활을 잘한다고 봐야겠지.”

“따지고 들면 말만 길어질 테고, 이쯤에서 제가 눈감아 드리겠습니다.”

회장과 생도의 대화라고 하기에는 말 한마디를 하는데도 속을 떠보고 긁어 댔다. 회장은 손자가 아닌 부하 직원 때문에 찾아왔다고 둘러대고, 생도는 아버지의 승진을 위해 눈감아 준다고 했다.

능구렁이들의 순수함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수 싸움이라 듣는 귀가 아주 역겨웠다.

“단, 이번엔 제가 우승하겠습니다.”

“호언장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면 누구나 우승하겠지.”

“그래서 지수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했어요.”

“생도답지 않게 아주 교활한 수를 쓰는구나.”

“교류전의 목적은 한·중·일의 우호와 실력 증진을 위해서라던데요.”

난 생도로서 최선을 다하라고 했을 뿐입니다, 라고 말했다.

무진의 치명적인 반격에 진 회장의 이마가 꿈틀거렸다.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철혈의 사업가로 정평이 난 진 회장이 일개 생도의 발언에 감정을 드러내다니, 아는 사람들이 봤다면 경악을 금치 못할 사안이다.

‘요! 밤톨……이라기엔 싹수도 없는 놈이!’

이번에는 진 회장도 뾰족한 수가 없음을 받아들였다. 교장이 헛소리하는 바람에 판이 어그러졌다. 4강에 오른 걸 확인할 때까지만 해도 환호했거늘, 삶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맹도라면 맹주의 위신을 위해서 양보의 미덕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전 어려서 그런 거 잘 모릅니다.”

이럴 때만.

진 회장은 뒷목을 잡을 뻔했고, 아버지와 투귀는 터져 나오는 실소를 간신히 참았다. 어리다고 하기에는 무진이 한 일들이 지나치게 괴랄하다.

연로하신 진 회장도 숨겨진 진실을 알면 뒷목을 잡는 걸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고혈압으로 인한 심근경색이나 심장마비를 겪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따지고 보면 열 받게 하면서도, 사정은 또 봐주고 있었다. 진 회장이 몰라서 그렇지.

“어려도 세상 돌아가는 그림은 보일 텐데. 더군다나 네놈은 아카데미의 엘리트가 아니더냐.”

“사회생활부터 배우란 말씀이세요. 인터뷰할 때 많은 도움이 되겠네요. 꼭 진 회장님의 조언이라고 출처를 밝히겠습니다.”

큭!

진 회장은 이 어린놈이 만만치 않음을 실감했다. 그렇다고 사정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이미 개인전을 통해서 손자를 의심하는 부류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하하하, 역시 재밌는 녀석이구나. 어디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하는지 꼭 지켜보마.”

“선배의 패배를 꼭 보시게 될 겁니다. 전 남의 사정을 봐줄 만큼 연차가 쌓이지 않았거든요. 일전에 당한 것도 있고. 어릴 때는 사고도 쳐 보고 그런 거죠. 하하하하하.”

“이놈아, 나 성운 그룹의 회장이다. 네 아비한테 월급 주는 사람이기도 하고!”

“패배도 패배 나름이라고 했습니다. 회장님과의 각별한 인연을 생각해서 교류전의 역사에 남을 명장면으로 마무리하려고 했거든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유치하게 나오면 저도 못 참죠.”

무진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찰나 진 회장은 엉망진창이 될 손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나이 때에는 져도 된다고 하지만, 한·중·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치욕을 당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두고두고 회자하여 흑역사와 트라우마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권후를 이기기가 쉽지는 않겠지.’

비록 손자 바보의 팔불출이긴 하나, 진 회장도 그 부분은 인정하고 있었다. 권후에게 승리하기도 어려운데, 이긴다고 해도 전력 손실은 불을 보듯 자명하다.

그렇다고 무진이 쉬운 상대냐 하면? 태수가 이기기는 했지만, 그 차이는 미미했다. 온전한 상태에서도 버거운 상대를, 전력을 반 이상 날려 먹은 상태로 싸운다면 필패였다.

‘교장은 대체 왜 그런 거야?’

진 회장으로선 교장의 급발작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 이상 가는 건 물론, 대통령상도 받을 공적이거늘.

교류전의 원칙대로 최선을 다해 최고의 효과를 거두면 좋겠지만, 굳이 무리한 확률 싸움으로 몰고 갈 필요가 있냐는 말이다.

‘상황이 참 거지 같구나.’

권후가 적당히 양보하면 아름다운 승부가 될 수 있었다. 교장의 발언 수위가 높기는 해도, 실제로 처벌하지는 못한다. 단체전도 남아 있는데, 여력을 남기는 편이 여러모로 경제적이다.

더욱이 일전에 의협단주를 노리는 바람에 관계가 틀어지기도 했고, 권후가 무조건 무진의 말을 듣는단 보장은 없다.

누가 봐도 적정한 선에서 기권해야 마땅하지만, 만약의 위험성은 항시 존재했다.

진 회장은 그런 확률 싸움에 성운 그룹의 미래인 손자를 걸 순 없었다. 남의 자식이라면 몰라도, 내 손자가 되니 선택을 망설이게 했다.

“선후배가 사이좋게 지내야지.”

“아름다운 관계란 모름지기 성의가 있어야 하는 법이죠.”

“사회생활 잘하는군.”

“오늘, 많은 걸 배웠습니다.”

한마디도 지지 않는 무진의 응수였다. 손에 땀을 쥐는 대결은 진 회장의 패배로 끝났다. 특히 너한테서 배웠다는 마침표에 다른 때였으면 여러 번 뒷목을 잡았을 것이다.

“전폭적인 지원을 해 주마. 됐느냐?”

“우리 회장님이 날로 드시려고 하시네요. 혹시, 그룹도 두루뭉술하게 계약합니까?”

“문서로 작정해 주마.”

“참고로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결승이 시작되면 돌이키기 어렵다는, 그때 가서는 값이 더 오른다는 협박이나 다름이 없었다.

진 회장은 참으로 맹랑한 녀석을 만났다는 걸 깨닫게 했다. 그래서일까, 승부욕을 자극했다. 요 맹랑한 녀석이 분해하는 걸 또 보고 싶어졌다.

“다음에는 다를 거다.”

“저도 최선을 다해서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모쪼록 만수무강하시길 빌겠습니다.”

산하와 투귀는 혀를 내둘렀다. 아들의 혀 놀림이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만수무강하란 말의 진의는, 오래오래 등골을 빼먹겠다는 개수작이 분명했다.

투지를 잃지 않고 노욕…… 의지를 불태우는 진 회장이 불쌍하다.

약조를 한 진 회장이 떠나고, 아버지와 투귀만 남았다.

“회장님을 너무 놀리지 말거라. 그러다 큰일 나.”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회장님은 요즘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고 계세요. 이럴 때일수록 삶의 활력소가 될 자극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제가 그 활력을 되찾아 드릴 생각입니다.”

“회광반조가 아니고?”

노인네가 받아들이기엔 자극이 너무 강했다. 자칫, 불미스러운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태수 선배가 좀 더 일찍 후계를 물려받는다고 생각할게요.”

“내 아들이지만, 이럴 때 보면 매정하구나.”

“누가 보면 아량이 넓은 분이신 줄 알겠네요. 회장님이 저라도 똑같이 할걸요. 아닌가요?”

“맞다.”

무자식이 상팔자라고, 투귀는 혼자 산 걸 다행으로 여겼다. 무진 같은 녀석이 아들이라고 상상하니, 답답해진다. 그러고 보면 산하 동생이 대단했다.

***

꽈아앙, 쩌어어엉!

파아아앙!

결투장이 호풍환우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나운 기파는 벼리고 벼린 날카로운 칼날과 같았다. 닿기만 해도 베어질 듯, 공기가 조각조각으로 분해되고 있었다.

결투장의 중심, 권후와 맹주가 치열한 난투극을 벌였다. 시작할 때만 해도 예의를 갖추기에 교장의 말을 뻘로 듣는 줄 알았다. 굳이 교장의 공표대로 최선을 다할 필요도 없었다. 적당히 손 속을 나누어도 불이익을 받진 않는다.

다만, 교장이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공표한 마당이라, 어느 정도 실력을 보여 주리란 기대는 있었다.

이건 그런 수준을 벗어난다. 짜고 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서로 죽이려고 싸우고 있는데, 그 앞에서 가짜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저건 너무 심한 거 아냐?

-피가 난무하잖아, 저러다 죽으면 어쩌려고?

-불구대천의 원수도 저렇게 싸우진 않겠다.

-장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살벌하잖아.

-지금이라도 말려야 하지 않을까.

-지금 권기를 본 것 같았는데? 저기서 대가리를 발로!

-우리는 한 방만 맞아도 사망 루트네.

예상보다 못하면 야유가 나오기 마련이나, 예상을 아예 벗어나 버리면 아무 말도 나오지 않는다. 멍하니 대결을 지켜보다 정신이 들었을 땐 소름이 돋았다.

오소소소!

중국과 일본도 대결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한국의 공표를 믿지 않았다. 적당히 싸우다가 한쪽이 기권하는 선에서 끝이 날 줄 알았다.

웬걸.

이제까지의 대결은 애들 장난이라고 선포하고 있었다. 섬뜩한 살기가 영상을 뚫고 나와 전달이 될 지경이다. 모골이 송연해지는 섬뜩한 한기가 대결에서 전해졌다.

-안 믿었는데, 이걸 보고 어떻게 안 믿어!

-쟤들, 같은 나라 아냐? 친한 선후배라고 들었는데.

-방금 진짜로 죽일 것 같은 일격이었어. 얼굴 맞았으면 그대로 박살 났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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