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195화 (196/374)

195. 급발작(3)

“……송구합니다!”

장위가 허접하게 1회전에서 떨어진 것을 더해 장 주석이 가만있지 않았다. 개인전의 결승 진출 실패와 최악의 성적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아직 단체전이 남아 있어서 질책의 수위를 조절하긴 했어도, 남궁천의 처지가 난처하게 되었다.

본가의 가주께서 단체전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면 귀국할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경고했다.

이번 사태로 팔대세가의 입지가 더욱 난감해졌다. 왕이 총리의 지지를 받기는커녕 소원해지게 생겼다.

‘최악이군.’

한국에 당도할 때만 해도 우승 외엔 염두에 두지 않았다. 역대 최고점으로 일본과 한국을 압도해도 부족한 판에 개인전은 한국의 놀이터로 봐도 무방했다.

시게노 교관의 썩은 표정에 참혹한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준결승에 진출한 하야토에게 반전을 기대하기에는 8강전이 워낙 치열했다. 한국 칠대 가문의 후예긴 하나, 하야토가 검술로 그토록 고전하는 경우는 처음 보았다.

하야토와 천혜진의 대결은 시게노의 말대로 굉장했다. 생도의 기량을 넘어서는 수준 높은 공수였다. 가지고 있는 전부를 걸고서야 겨우 이겼다. 그야말로 한 끗 차이였기에 누가 이겼어도 이상하지 않을 명승부를 남겼다.

백중지세의 승부에서 이겼다면 칭찬받아 마땅하나, 단판으로 끝나지 않는 토너먼트였다. 온전히 준결승에 올라도 우승을 장담하기 어려운 판국에 전력의 반이 깎여 버렸다.

‘하늘의 농간이라도 지나치구나.’

하야토의 다음 상대는 부전승과 기권승으로 올라왔다. 천운이 따른다고 해도 지나치게 대진운이 좋았다. 전력의 손실은커녕 숨기고 있는 비기나 속성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정령술을 사용했지만, 되레 혼란만 가중되었다. 그마저도 지금의 판을 만들기 위해서 깔아 놓은 듯했다.

‘능구렁이 같은 놈이다.’

얄밉기가 천년 묵은 구렁이보다 더했다. 하는 짓이 밉상 그 자체긴 해도, 실력은 또 만만치가 않았다. 속 빈 쭉정이로 치부하기에는 두뇌 회전도 빨랐다.

‘어찌 보면 가장 까다로운 상대로구나.’

살펴볼수록 무진에 대한 평가가 올라갔다.

시게노가 보기에도 만만치가 않았다. 언론에 연일 오르락내리락하며 원색적인 비난, 욕설, 조리돌림을 당하는데도 태연했다. 다른 걸 다 떠나 불굴의 정신력 하나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대진표도 최악이군.’

준결승 첫 경기는 유지수와 진태수였다. 한국 생도의 대결이라 전략적 기권이 예상되었다. 자신이라도 그리했을 테니, 한국을 비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순 없지.’

사정은 원래 각자의 입맛에 따라 달라지는 법. 현재로선 한국을 최대한 도발해야 했다.

시게노는 남궁천에게 은밀히 전음을 보낸 후, 교장을 꾀어내기 위한 화두를 던졌다.

“이제 한국의 우승은 확정되었다고 봐도 무방하군요. 축하드립니다.”

“대결이 끝나지도 않았거늘, 공치사는 당치도 않소.”

“준결승은 한국 생도 간의 대결인 데다, 8강전과 비슷하다면 승부는 보나 마나가 아닙니까.”

“말이 참 이상하군. 설마 우리 생도가 짜고 친다는 거요?”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입니다. 근 10년간 절치부심한 한국의 저력을 인정합니다. 전략적으로도 훌륭한 선택이었습니다.”

“말 돌리지 마시오. 누차 말하지만, 우리 생도는 절대 짜고 치지 않소.”

“짜고 쳤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교장이 얼굴을 붉히며 강하게 부정하자, 시게노는 다소 안도했다. 조금 더 긁어 주면 불리했던 형국을 최대한 유리하게 끌어올 수 있었다. 설령, 통하지 않는다고 해도 교장을 열 받게 했다면 성공이었다.

‘하는 수 없군.’

남궁천도 시게노의 의도에 따라 주었다. 본국의 생도가 전부 탈락했지만, 한국 교장이 득의하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일본에 진다면 일진일퇴를 거론할 수나 있지, 한국에 일방적으로 패배한다면 변명의 여지조차 없다.

“승자로서 아량을 베풀어 달라는 건데, 그리 흥분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승부 조작을 거론하면서 아량을 베풀어 달라는 건가? 말이 앞뒤가 맞지 않잖아.”

“그렇게 들렸다면 실례했습니다. 우리는 그저 한국의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하려 했을 뿐입니다.”

“내가 우승에 연연하는 사람으로 보이나. 그런 더러운 우승은 필요 없네.”

흥분한 교장이 직설적으로 말하자, 시게노와 남궁천은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들의 의도대로 흘러가고는 있지만, 자국을 대놓고 힐난한 것이다.

‘빌어먹을 노인네.’

‘그 제자에 그 사부군.’

너희들이나 그런 식으로 더럽게 우승하지, 자신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무진의 얄미운 행태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그들은 알 수 있었다.

“교장께선 본국이 더러운 수라도 썼다는 겁니까?”

“누가 그렇다고 했나?”

너희들의 얄팍한 수작에는 넘어가지 않는다는, 교장의 수읽기였다. 남궁천과 시게노도 그 정도쯤은 알고 있기에 능숙하게 대처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아주 깨끗하단 말씀이군요.”

“당연하지 않나.”

“세상에 절대란 없습니다.”

“이 자리에서 공표라도 한다면 믿으시겠나?”

“이쯤 하시지요. 한국으로선 좋은 날이지 않습니까.”

일본과 중국도 만만치 않게 서로를 극혐하거늘. 시게노와 남궁천은 오랜 친구처럼 죽이 잘 맞았다.

적의 적은 아군이란 건가.

교장의 속을 긁을 듯 말 듯, 실제로는 빠져나갈 구석은 만들어 놓았다. 녹음을 한다고 해도 책잡힐 말은 절대 하지 않았다.

“믿기 힘들다면, 지금 바로 해 주지.”

교장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선 단상의 강의대 위에 있는 마이크를 들었다. 마이크를 온(on)으로 돌리자, 노이즈가 들리면서 관객을 집중시켰다.

‘아니, 미쳤나?’

‘이렇게 쉽게?’

교장의 돌연한 행동에 시게노와 남궁천은 의아했다. 적당히 화를 돋워 여지를 두는 정도를 기대했었다. 대결에서 반전을 기대하기에는 한국이 지나치게 유리한 국면이었다.

마치 역린을 건드린 듯 교장이 흥분했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할 말이 있으니 생도들은 집중해서 듣도록 합니다. 지금까지 훌륭하게 잘해 왔습니다. 하나, 모든 일이 그렇듯 화룡점정을 찍지 못하면 불미스러운 교류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미리 말해 둡니다. 혹여, 전략적인 선택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해서 대결에서 짜고 치거나, 승부를 조작한다면 아카데미에서 반드시 축출하겠습니다. 이는 교장이자, 풍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합니다.”

“……?”

환호하던 대연무장에 침묵이 흘렀다.

상상도 못 할 교장의 폭탄 발언이었다. 사석에서 편하게 하던 말과는 무게가 다르다. 공식 석상이었고, 한·중·일에 생중계가 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한 말은 공증이나 다름이 없었다. 실제로 교류전의 정해진 규칙과는 별개라고 해도, 파급력을 고려해야 했다.

-헐, 패기 쩌네. 교장이 원래 저런 성격이었냐?

-과격하기는 하지만, 맞는 말이긴 하지.

-굳이 저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말할 필욘 없잖아. 가만히나 있으면 우승은 거전데.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퇴학이구나.

-이러면 일본에도 기회가 생기는 건가?

-10할의 우승이 8할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승리한다면 티끌만 한 흠집도 없는 완벽한 우승이 되겠지.

-어쩌면 혹여나 떨어질 시청률을 위한 교장의 빌드업?

-무모한 발언이긴 한데, 흥미진진하긴 하다.

교장의 폭탄 발언에 지지부진했던 시청률이 갑자기 폭발했다. 그만큼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교류전의 목적을 상기하면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 있으나, 한국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교장이 대놓고 깽판을 친 격이다. 저리 말해 놓고 전략적 선택을 하기에는 생도들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언제부터 강했다고, 별꼴을 다 보네!

-저 말을 믿어? 말로는 뭔 말을 못 해!

-말로만 대의를 챙길 뿐이고, 실제로는 양보할걸.

-감정적으로 나갈 일은 아냐. 국익을 생각해야지.

-저거 다 교장의 쇼야. 한국에 또 속냐!

-한국은 단오도, 측천무후도 자기들 나라 거라고 했어.

-너구나, 대만 놈!

중국과 일본의 여론은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교장이 교류전의 대의를 챙기면서 실익까지 거두려는 수작으로 봤다. 말은 그렇게 해도 생도가 기권해 버리면 책임을 묻기 어려웠다.

여하튼 교장은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걸었다. 한국의 공식적인 발표나 다름이 없다. 일중(日中)은 어떻게든 한국의 흠집을 잡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기로 했다.

그런 중일의 시선을 의식해서일까.

한술 더 떠 주었다.

교장은 그 자리에서 문서로 작성해서 직인까지 찍었다.

-저거 너무 오버하는 거 아냐!

-저러다 지면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아무래도 교장이 국뽕에 심취한 모양이야, 교관들은 어서 말리지 않고 뭐 해!

-지나치게 잘되니까 생뚱맞게 교장이 트롤 짓을 다 하네!

-괜히 일본과 중국에 빌미나 제공할 텐데, 저러면 빼도 박도 못 하잖아.

무르기에는 문서가 화면에 잡혔다. 16k 고화질의 영상이라 흐릿하다는 핑계는 대기 힘들었다.

허!

이쯤 되니 시게노와 남궁천은 당혹스러웠다.

대체 어쩌자고 저런 무모한 약속을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문서가 공신력을 가지려면 협상을 거쳐야 하나, 이런 식으로 나오면 발목을 잡힐 수가 있었다.

‘이 양반이 진짜 왜 이러는 거야?’

‘이거 어째 분위기가 안 좋은데.’

원하는 대로 됐음에도 시게노와 남궁천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교장의 입을 막을 수도 없다. 어찌 되었든 준결승에 오른 한국 생도들은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더욱이 교장의 공표대로 된다는 보장은 하기 어렵다.

‘일부러 이러는 건가?’

‘우리에게 부담을 주려고?’

능구렁이 같은 교장이라면 능히 그리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좀 전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얌전히 지켜봤다. 자칫 일이 커지면 교장과 한 묶음이 되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다.

가려면 혼자 가야지, 물귀신은 용납하지 않았다.

***

의도치 않은 발언임에도 교장은 내 일이 아니라는 듯 자리에 앉아 다과를 즐겼다. 물론, 교장만 아무렇지 않을 뿐, 휴대전화는 불이 났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의미로.

문자메시지만 봐도 다급해 보인다. 친분을 보였던 인사들조차 당황했는지, 메시지의 글자마저 뭉개졌다.

‘네 말대로 했다. 됐냐?’

‘문서는 오버잖아요.’

‘난 이번에 다 걸었다. 실패하면 나만 안 죽어!’

‘그게 생도한테 할 소린가요? 저 상처 받습니다.’

‘넌 상처 좀 많이 받아도 돼.’

무진과 교장은 시게노가 수작을 부리기 전부터 전음을 나누고 있었다. 시게노의 의도는 뻔히 보였다. 할 수 있는 수가 많지도 않고, 교장을 도발해서 생도들에게 부담을 주는 정도가 전부다. 그걸 역으로 이용한다면 앞으로의 교류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정말로 교류전의 본래 목적을 위해서냐?’

‘당연하죠. 전 티끌만큼의 의도 없이 순수해요.’

‘있구나.’

‘무슨 말씀이신지? 없다니까요.’

‘말하기 싫으면 마라.’

‘진짜 숨길 수가 없네. 한 가지 있다면 공정한 협상을 위해섭니다.’

‘그럼 그렇지. 어느 쪽이든 피눈물을 흘리겠구나.’

교장은 무진이 아무 이유도 없이 판을 벌일 녀석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교장으로서 해야 할 말이었다. 교류전에 나오는 생도는 고작 3학년에 불과했다. 성좌의 선택도 받지 못한 생도들이 국가의 희생자가 되는 건 원치 않았다. 교류전을 통해 한·중·일 우호를 다지고, 실력을 향상하자는 본래의 취지를 찾아야 했다.

‘이상에 가깝지.’

일부 제재할 수 있는 정도면 족하다. 교장도 한순간에 바뀌기를 기대하진 않았다.

‘설마 지진 않겠지?’

교장은 무진의 강기(罡氣)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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