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인류최강 남사친-194화 (195/374)

194. 급발작(2)

풍야의 정령력은 중상급 이상이었다. 유정이도 마냥 놀지 않고 정령력을 키우는 데 최선을 다했었다. 지수야 애초부터 워낙 격차가 심했지만, 혜진이와도 벌어지고 있었다. 이대로는 소외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친구란 모름지기 위아래가 없기는 해도 경쟁의식은 존재했다.

-요나 소환.

무진도 요나를 소환해 만천하에 공개했다.

임자 만난 사람처럼 풍야와 요나가 소환 즉시 요란하게 격돌했다. 서로의 정령력을 교차하며 위력을 과시한다. 광풍과 소용돌이가 결투장을 휘몰아쳐 시야를 가린다.

휘이이이잉!

무진과 유정은 풍야와 요나가 만든 소용돌이 광풍 속에 있었다. 스크린으로 확인하기에는 무리다. 끝을 모르고 거세게 휘몰아치며 투명 결계를 두들겼다. 바람과 물이 결계에 부딪히며 쇠를 긁는 굉음이 발생했다.

솨아아아아!

태풍과 파도가 불어오고, 몰아쳤다. 정령의 위대한 자연력을 여실히 느끼게 하는 정령사 간의 치열한 다툼처럼 보였다.

-쟤, 정령사였어?

-마법사기도 해.

-환술도 쓰던데.

-테이머도 할 줄 알아.

-못 하는 게 뭐야?

처음에는 힘만 센 놈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무공도 잘하고, 수 싸움도 뛰어나고, 마법도 쓰고, 정령까지 부렸다. 속성에 따른 분야가 다양하긴 해도, 대부분을 할 줄 알았다. 이쯤 되면 겉으로 보이는 외형으로 평가해선 안 되었다.

-만능이라니, 인정하고 싶지 않아!

-빌어먹을, 받아들여야 하나.

-부정해 봤자, 우리만 초라해지잖아.

-그래도 어떻게 저걸 다?

-씨발, 그래, 너 잘났다. 천재 맞아.

인정해야 하나, 인정하고 싶지 않은. 미운 놈이 떡 하나 먹는 것도 꼴 보기 싫거늘.

사람의 요상한 심리였다. 나와 같은 줄 알았는데, 확연히 다르면 인정하기까지 오래 걸린다.

단, 시기 질투도 비슷하거나, 차이가 조금 났을 때나 하는 거지. 압도적인 차이와 비교 불가의 재능 앞에선 시기 질투도 생기지 않는 법이다.

다만, 무진은 미운털이 지나치게 세게 박혀서 그렇지. 그마저도 대세에 휘말려 어쩔 수 없이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휘이이이잉!

쐐애애애액!

물과 바람이 만난 상호작용은 엄청났다.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결투장을 워터밤으로 만들었다. 사나운 물결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거대한 바위처럼 무거웠다. 물 파티 한번 거하게 했다간 믹서에 넣고 갈아 놓은 고깃덩어리가 되었을 위력이다.

정작 태풍과 소용돌이의 중심에 선 무진과 유정은 태연했다. 정령력을 소모하고 있지만, 다시 채우면 그만이었다.

대인배인 무진은 선택권을 유정에게 주었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선택의 자유가 있었다.

“하기 싫으면 말고.”

“누가 하기 싫대.”

“진짜로 해도 돼, 난 상관없거든.”

“내가 상관있잖아.”

자기 몸 아니라고 막 말하는 무진의 전지적인 행태에도 유정은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음을 인정했다. 진심으로 싸워 봤자, 꼴사납게 퇴장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어쩌면 계획대로 하지 않았다고 더 심하게 두들겨 맞을 수도 있었다.

“끌 만큼 끌었지.”

“그래, 네 맘대로 해라. 적당히 가지고 놀다가 원래대로 돌려놓기나 해.”

유정은 기대하지 않았다. 정면 대결로는 무진을 이기지 못한다. 더욱이 정령을 이용한 변칙을 쓰기에는 무진도 수준 높은 정령사였다.

자신은 패를 다 깐 반면, 무진은 아직도 여력이 있었다. 3학년도 아니고, 1학년으로서 할 만큼 하기는 했다. 개인전에 나온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고, 8강까지 진출했으니 여한이 없기는…… 개뿔.

견물생심이기는 한데, 힘이 없어 고꾸라질 차례였다.

퍼퍼퍼퍼펑, 파아아앗!

요나와 풍야가 용호상박의 마침표를 찍듯 폭사하며 역소환되었다.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화려한 영상과 볼거리를 제공했다.

털썩!

시나리오대로 유정은 쓰러졌다. 단체전의 포석인 쿠키 영상조차 남기지 못했다.

“……이렇게 막막한 건 처음이야. 졌어.”

“훌륭한 승부였다.”

무진은 쓰러진 유정에게 손을 내밀었다.

스윽!

유정은 빗살처럼 지수를 살핀 후, 무진의 손을 잡았다. 아직도 일본 공주의 최후가 잔상처럼 남아 PTSD를 제공했다.

‘잘들 논다.’

시나리오 쓰는 데 맛이 들렸나? 지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꾸미지 않은 생도들의 노력과 열의는 담기지 않았다. 시작부터 암수와 암계의 연속이었다.

-강무진 승.

최선을 다한 전투 후 뒤끝 없는 패배 선언으로 8강 첫 대결이 마무리되었다. 관객들은 우리 생도의 승리에 환호했지만, 뒷맛은 굉장히 떨떠름했다.

-승부가 났는데, 안 난 거 같은 기분은 뭐지?

-정령사 간의 화려한 대결이긴 했잖아.

-화려하면 뭐 하냐고! 태풍 구경했다고 재밌냐? 구독이라도 눌러 줘?

-그럼 정령사가 무인처럼 몸으로 싸워야 하냐!

-정령에서 우위가 정해졌으면 끝난 거지, 뭐.

정령 간의 치열한 다툼은 있었지만, 무진과 유정이 어떤 식으로 결판이 났는지 보지를 못했다. 마치 드라마의 열린 결말을 보고 있는 듯한 감정이었다.

찝찝함에도 우리 관객은 대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유 불문, 우리 생도가 4강에 올라간 것으로 만족했다. 다치지 않고 무사히 올라갔으니 변수를 줄일 수도 있고, 금상첨화였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 생각일 테고.

일본과 중국의 네티즌, 관객들은 비겁한 선택 혹은, 음모론을 내세웠다.

-빵즈들끼리 짜고 쳤잖아, 신성한 교류전에서 이래도 돼!

-정해 놓고 한 게 아니라고? 아무리 정령사 간의 대결이라도 대놓고 안 보이게 한 건 승부 조작하겠다고 광고한 거나 마찬가지 아니냐!

-와, 치사하게 노네! 하긴, 조센징이 언제는 안 치사했냐!

-우리 대중화처럼 공정한 페어플레이를 해라! 이러고 이긴다고 자랑할 게 못 돼!

다른 때 같으면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일본과 중국은 개인전 성적이 처참했다. 회전을 거듭할수록 전부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역대 최고의 황금기라고 동네방네 세계에 떠들어 댔는데, 이제 와 3군 전력이라고 말을 돌리기엔 구차해졌다.

말로만 떠든 설레발이 되니 열불이 터질 수밖에.

일본, 중국의 네티즌과 관객은 너 나 할 것 없이 페어플레이 정신을 언급하며 한국의 비겁한 전략을 비난했다.

교류전의 신성한 목적을 퇴색시키지 말라며.

-내가 참 오래 살았구나. 다른 나라도 아니고 쟤들이 우리보고 페어플레이를 거론하네.

-교류전이 공정할 필요는 있는데, 언제는 지켰냐고!

-속된 말로 홈에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잖아. 자기들은 안 한 것처럼 그러냐.

-우리가 이해하자, 약한 애들 괴롭히지 말고.

-원래 강자가 양보하는 거야, 우리가 이번에는 양보 좀 하자.

-그놈의 착한 척, 그거 병이야. 자기 실속은 챙기고 남을 돌보는 거라고.

-요즘 세태가 다 자기만 생각하는데, 각박한 현실에서 남을 돌아볼 때가 필요한 법이야.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홈에서 대회를 치르면 너무 심한 경우만 아니라면 넘어간다. 더욱이 교류전이라고 해도 국가전이었다. 전략적인 선택인 데다가 확인되지 않은 사안이다. 진짜로 승부를 조작했는지는 당사자가 아니고선 모른다.

무진과 유정은 한국 생도들 자리로 돌아가서 자리에 앉았다. 아프진 않더라도 힘든 척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그러기는커녕 웃고 떠들었다. 일본과 중국이 의혹을 품든 말든, 짖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 태도였다.

“죽일 듯이 노려보는데.”

“노려본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항의하기에는 자기들도 양심에 찔릴 테고.”

“그러기엔 다음 교류전은 일본이잖아. 쟤들이 가만있겠어? 더욱이 우린 1학년이라서 3학년 때 또 나갈 수 있다고.”

“편하게 군대 2번 간다고 생각해. 상원이 넌 특별히 5번 가라.”

“그거 군대 갔다 온 분들께 대단한 실례야!”

“우릴 욕해 봤자, 자기 얼굴에 침 뱉기에 불과해.”

일본과 중국도 교류전 시 기권을 한 사례가 부지기수였다. 전력을 보존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우리는 페어플레이 위반을 매번 항의했지만, 그럴 거면 이기지 그랬냐는 조롱이 다반사였다.

더욱이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기권한다면 막을 방도도 없다. 목숨을 걸고 싸우라고 하기에는 어린 생도였고. 교류전이 생사혈투가 된다면 차후 개최에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학부모가 아카데미로 찾아와서 항의하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정정당당하게 이겨야 모양새도 나고, 후일 빌미나 시빗거리는 제공하지 말자는 취지지.”

“상원이는 낭만이 있구나. 한데, 어쩌냐. 세상은 낭만으로 돌아가지를 않아요. 교류전에서 남는 건 전적이거든. 더욱이 금지 약물이나 스킬을 썼다면 모를까, 이 정도는 쟤들도 용인할 수밖에 없어. 이걸 가지고 걸고넘어지면 다음 대회부터 엉망이 될 텐데, 자기 목에 방울을 다는 병신 같은 짓은 하지 않겠지.”

그럴 거면 교류전 규칙에 넣어 두어야 했다. 더욱이 이 부분을 건드리면 교류전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그나마 지금의 룰이 형평성이 있기도 하고.

교류전을 안 하면 그만이라는 부류도 있겠지만, 이제는 국가의 연례행사가 된 지 오래였다. 많은 이권이 몰려 있는 데다 다년간 계약을 맺어 놓은 상태일 터. 사전 고지도 없이 그만둔다면 후폭풍을 감당하지 못한다.

다음 경기가 곧바로 시작했다.

출전할 생도는 중국의 용과 한국의 권후였다. 사실상의 결승이라며 중국에선 벌써부터 떠들썩했다.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환호성과 비례해 소림에 대한 중국인들의 믿음을 엿볼 수 있었다.

어쩌랴.

오래 살아 보면 느끼겠지만, 믿음이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예상을 벗어난 선전을 기대하나,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예는 흔치 않았다.

현실은 항상 기대를 배신하며 잔인하다.

-유지수 승.

-진태수 승.

-하야토 승.

소림과 제갈세가가 무너졌다.

대중화 최강의 무재를 타고났다고 알려진 일룡의 패배는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중국의 관객과 여론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제갈수는 기문진법과 술법을 이용한 검수라 일대일 대전에서 전력을 발휘하기는 여의치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약한 건 아니다. 약했다면 남궁을 비롯한 팔대세가의 후인들을 꺾지 못했을 테니. 그렇더라도 일룡과 비교하면 부족함이 있었다.

일룡은 용의 범주를 벗어나 소림신권의 별호를 얻었다. 중국답게 나이를 속였을 수도 있겠으나, 성좌의 선택을 받는다면 차후 권성을 예약한 기대주다.

-계집한테 지다니, 이건 있을 수 없어!

-대중화의 기상이 꺾였어. 다들 돌아올 생각도 하지 마!

-어이없이 진 것도 아니고 잘 싸우다 진 건데, 너무하네.

-졌으면 끝이지, 변명한다고 승패가 바뀌냐고!

-황금기는 개뿔, 일대일로의 명성에 똥칠한 세대지.

-1명이라도 올라갔어야지. 다 지고 자빠졌네!

-그 자리에서 다들 할복해!

-할복은 일본의 아름다운 전통문화입니다.

중국 네티즌의 도를 넘어선 비난과는 별개로, 일룡과 지수의 대결은 훌륭했다.

소림의 칠십이종절기 중 무려 5개나 익힌 일룡의 무위는 놀라웠다. 같은 시대에 지수가 나오지 않았다면 우승하고도 남을 실력이었다.

하나, 아무리 선전해도 결과가 실력을 증명할 뿐이다. 패자는 역사에 기록되지 않고, 실망한 군중의 분풀이를 위한 희생양에 불과하다.

부들부들!

기어코 일어나선 안 되는 참상이 현실이 되었다.

남궁천은 믿기 힘든 결과에 분노를 참기 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개인전이 끝나지도 않았거늘, 전화통이 교장과는 다른 의미로 불이 나고 있었다.

망할!

받고 싶지 않다고 해서 받지 않을 수도 없다. 발신 번호를 본 순간 남궁천의 대뇌는 새하얀 백지가 되었다.

0